135. 흥행 성공
영화 시사회 때의 감상평은 매우 좋았다.
시사회에 참여한 사람 대부분이 영화가 ‘너무 좋았어요.’라는 고대하던 답을 들려주셨고, 영화 평론가와 기자들 사이에서도 매우 좋은 평이 나왔다.
시사회에 참석한 평론가 겸 기자, 그리고 유명 블로거로 알려진 차명석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호평을 남겼다.
‘극적으로 과장한 삶이 아닌 진짜 우리의 삶이 담긴 영화. 그래서 더 재밌었고, 더 아픈 마음으로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주인공 역을 맡은 이서준은 그냥 한마디로 미쳤다. 가수로서의 이서준은 생각하지 않고 말하겠다. 그는 현재 최고의 연기자다. 신인인데도 그가 최고라고 과감히 선언하겠다. 그리고 그가 다음에 또 어떤 연기를 선보여 줄지 한 사람의 배우 이서준의 팬으로서 무척 기다려진다.’
극찬에 가까운 평이었다.
이전의 비평에서 매우 날카로운 혹평을 서슴없이 날렸던 사람의 평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극찬이었다.
그러나 시사회 때의 평이 좋았다고 무조건 흥행 성적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 제작사에서 무척 힘을 쓴다고 노력했지만, 개봉관도 다른 흥행작들과 비교해서 많이 잡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부분도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경수의 사랑’은 개봉과 동시에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근 방송된 뉴스에서는 화제가 된 영화 ‘경수의 사랑’의 성공에 관해 이렇게 보도했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경수의 사랑’의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개봉 2주 만에 전국 관객 200만 돌파라는 보기 힘든 호성적을 거둔 ‘경수의 사랑’은 개봉한 지 한 달이 넘어가는 지금 전국 관객 500만 돌파라는 믿기 힘든 흥행 실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경수의 사랑’이 이렇게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게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뉴스 진행자의 얼굴 오른쪽 위에는 화제의 영화 ‘경수의 사랑’의 포스터가 등장했다.
“영화를 본 분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1위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공감되어서라는 답변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2위로는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꼽아 주셨네요. 영화의 성공과 더불어 다시 한번 화제가 되는 인물이 있는데요, 그분은 바로 주인공 경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쳐 주신 이서준 씨입니다. 유명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연예계에 입문한 이서준 씨는, 가수로서 1집과 2집 모두 성공한 밀리언셀러가 되었고요. 더불어 최근 드라마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가수 겸 연기자입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출연한 영화까지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서준 씨의 주가는 더욱 높아지고 있는데요. 과연 이서준 씨의 인기가…….”
이런 뉴스가 공중파 뉴스의 메인을 차지할 정도로 ‘경수의 사랑’은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연예계 일각에는 이서준의 영화 데뷔가 너무 성급하다는 지적도 많았었다.
가수로서의 성공, 그리고 드라마에서의 성공까지 연이어 거둔 상황이었기에 다음의 성공을 위해서는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며 힘을 비축할 필요가 있어 보였는데, 그런 여유도 없이 곧바로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너무 과욕을 부린 것이 아닐까 하는 나름 타당한 지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예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서준의 질주에는 브레이크가 없다는 사실을 세상에 제대로 알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적어도 국내에서만큼은 이서준의 인기를 능가할 스타는 찾을 수 없게 되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 * *
“하아아아암.”
늦게 잠들어 해가 중천에 뜬 지금에야 일어난 탓에, 나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서자마자 입이 찢어질 정도로 하품을 해야만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건지 동생 수정이의 타박이 곧바로 내게 날아왔다.
“지금 몇 신데 이제야 일어나시는 거야?”
나는 동생의 목소리를 듣고 의아한 시선으로 되물었다.
“그럼 너는 지금 몇 신데 학교에 안 가고 집에 있어?”
“오늘 오전 수업 휴강이야. 그래서 오늘은 점심 먹고 학교로 출발하면 돼.”
“그래?”
항상 오전부터 수업이 있는 동생에게 오랜만에 오후에 집을 나설 수 있는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로 향하고 있는 나에게 동생의 갑작스러운 명령이 날아왔다.
“물 마시지 마. 그냥 식탁에 앉아 잠시 기다려.”
“…네.”
의외로 동생의 말을 잘 듣는 편이라는 나는 동생이 시키는 대로 얌전하게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앞에는 보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주스 한 잔이 놓였다.
“마셔.”
“…네.”
이미 몇 번이나 마셔 본 주스라 마시기 전부터 내 표정은 이미 사약을 받은 죄인의 표정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나?
동생의 손에 죽지 않으려면 그냥 눈을 찔끔 감고 이 주스를 마셔야 했다.
그래서 꾹 참고 한 번에 주스를 시원하게 비우고 나니 곧바로 내 앞에는 동생 표 밥상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 보면 참 좋은 동생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내가 동생을 너무 부려먹는 거 같은 생각이 들어 동생 수정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밥은 내가 알아서 챙겨 먹을 게. 그러니 학교 가기 전까지 편하게 있어.”
“이게 편한 거야. 이래야 마음이 편한 거라고. 오빠가 우리 집 돈줄인데 마음 편히 살려면 돈줄의 건강을 잘 챙겨야지. 안 그래? 크크크.”
실없는 농담으로 내 입을 막은 동생은,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와 생선구이, 그리고 엄마가 보내 준 밑반찬까지 곁들인 제대로 된 한상차림을 만들어 내었다.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흐를 것 같은 밥상을 보며 아침 겸 점심 식사를 시작하니 잠시 사라졌다 어느새 나타난 동생이 이번에는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맛있는 김치찌개를 입에 넣던 나는 청소에 열중인 동생의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집이 이렇게 큰데 혼자 청소한다고 힘들겠네… 거기다가 엄마 대신 내 밥이며 건강까지 챙겨 주느라 바쁘고 말이야… 거기에다 학교생활까지 하니까 우리 동생도 바쁜 사람이네.’
어린 수정이가 너무 고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문득 생긴 나는, 청소하느라 바쁜 동생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청소하기에는 집이 너무 크지?”
내 질문이 조금 뜬금없었는지 동생은 고개를 조금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크긴 크지. 이 정도 퀄리티를 가진 집이면 대한민국 1%에 들어가는 고급 주택이잖아. 아, 주택은 아니니까 고급빌라라고 해야겠네.”
물론 동생의 말은 맞았다.
아주 단순하게 빌라 가격만 따져도 대한민국 1%에 들어가는 고급빌라는 분명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정말 성공했구나 하는 생각도 갑자기 들었다.
이런 비싼 집을 내가 사다니…….
물론 대출을 끼고 샀지만, 지금 추세라면 대출은 금방 갚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잠시 이야기가 딴 쪽으로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나는 동생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서 힘들지 않아? 내가 너한테 미안하게도 집안일을 전혀 못 도와주고 있잖아. 빨래며 청소, 그리고 내 식사까지 네가 다 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오빠도 집안일 많이 할게. 그동안 미안했어.”
내 사과를 들은 동생은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오빠. 그냥 지금처럼 지내자. 솔직히 오빠가 학비에 용돈까지 다 지원해 주는데, 나도 최소한 이 정도 일이라도 해야지. 그리고 청소는 주에 3번씩 청소 이모가 와서 해 주는데 내가 뭐가 힘들어? 가끔 이렇게 청소기만 몇 번 돌려도 이렇게 깨끗하게 관리가 되잖아. 그러니 내가 정작 하는 일은 빨래랑 오빠 먹을 거 챙겨 주는 것밖에 없는데… 그것도 오빠가 거의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니까 아침만 챙기면 되고. 전혀 힘들지 않으니 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까, 오라버니?”
“……넵.”
은근 엄마의 고집을 닮은 동생이기에 나는 더는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듣고 보니 동생의 말처럼 이 정도는 동생에게 맡겨도 될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생을 아낀다는 마음에 무조건 잘해 주는 것도 결코 동생을 위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기특하네, 자기가 먼저 이렇게 말하다니 말이야.
기분이 좋아진 김에 오랜만에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계를 확인한 나는 곧바로 동생을 향해 말했다.
“나 30분 안에 준비할 테니까 같이 나가자. 옷 좀 사게.”
옷이란 단어를 들은 동생은 손사래를 치며 내키지 않아 했다.
“옷? 나 옷 많아. 그러니 안 사 줘도 돼.”
그러나 나 역시 엄마를 닮았기에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맨날 후드 티에 청바지만 입지 말고 다른 것도 좀 사. 그리고 이번에는 네 옷보다 내 옷을 많이 살 거야. 그리니 오빠 옷 좀 골라 줘. 일 안 할 때 편하게 입을 옷을 좀 사야겠어. 협찬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 편하게 입을 옷이 의외로 없어.”
내 말을 들은 동생은 그건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전격적으로 오랜만의 남매 합동 외출이 결정되었다.
* * *
잠복 중이던 기자 김만복은 나타난 먹잇감을 보며 카메라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연이어 셔터를 눌러 대기 시작했다.
일명 파파라치라고 불리는 직업을 가진 사람답게 사진을 찍는 그의 손놀림은 무척 경쾌했다.
찰칵찰칵.
잠깐의 시간 동안 수십 장이 넘는 사진을 찍은 그는, 택시를 타고 사라지는 스타의 뒷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결과물을 살펴봤다.
모자에 마스크까지 쓴 모습이지만, 사진만으로도 이 남자가 최근 최고 중 최고로 꼽히는 이서준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팔짱을 낀 여자 한 명.
체형으로도 늘씬한 충분히 미녀임을 짐작할 수 있는 외형을 가진 여자는 오늘따라 과감하게 이서준의 팔짱을 끼고 집에서 나와 그와 함께 택시에 올라 사라졌다.
“크크, 오늘 사진 정말 좋네. 자, 그럼 이걸 가지고 JYK랑 협상을 시작해 볼까? 요즘 시가 총액이 최고인 회사답게 아주 통 큰 금액을 제시해 주겠지? 크크.”
마치 벌써 거액의 돈을 받은 사람처럼 즐거워하는 남자였다.
그날 저녁 회사 내 사무실.
이번에 다시 정비된 이서준 전담 회사인 ‘SJ 뮤직’의 김윤정 홍보과장은 자신을 기자라고 밝힌 의외의 인물과 통화를 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사진을 갖고 계시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그냥 사진도 아니고 누가 봐도 연인으로 보일 만한 사진을 여러 장 가지고 있죠.]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이런 내용으로 기자와 통화를 하는 건 의외로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다른 때라면 당황하지 않겠지만, 기자가 말한 사진의 주인공이 이서준이란 사실 때문에 김 과장은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표를 낼 수는 없었기에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기자님이 해 주신 말씀은 제가 잘 알아들었고요. 제가 처리할 만한 사항은 아닌 거 같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제가 제 상급자께 말씀을 드리도록 할게요.”
[하하, 좋습니다. 그럼 나중에 먼저 걸어 주실 전화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끝낸 김윤정은 아주 빠른 걸음으로 이 통화 내용을 보고할 상급자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