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예능 출연(1)
그녀가 찾아간 사람은 ‘SJ뮤직’의 실질적인 대표라 할 수 있는 조상구 대표였다.
원래 조상구는 실장직을 맡고 있었지만, 지금은 새 레이블의 대표로 승진했다.
물론 조상구 대표는 아직도 자신을 이서준의 매니저라고 소개했다.
새로 만든 이서준의 작업실 근처에 있는 한 사무실.
이곳이 바로 대표 조상구의 방이었다.
김윤정 과장은 상기된 얼굴로 조상구가 일하고 있는 대표실의 문을 노크했다.
똑똑똑.
“네, 들어오셔도 됩니다.”
노크한 후 조상구 대표의 대답까지 들은 김윤정 과장은, 그제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에서 조상구 대표는 자신의 방 벽에 종이를 덕지덕지 붙이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종이에 콘서트가 열릴 장소명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번에 기획 중인 2차 전국 투어 콘서트와 첫 해외 콘서트 일정을 두루두루 살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온 김윤정 과장을 본 조상구 대표는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반기며 물었다.
“어, 김 과장님. 무슨 일로 오셨나요?”
조상구의 물음에 김윤정은 황급히 방문 용건을 밝혔다.
“대표님도 김만복이라는 파파라치 아시죠?”
“아, 알죠. 근데 그 사람이 왜요?”
“방금 그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이서준의 비밀을 대중에게 낱낱이 밝힐 만한 사진을 찍었다고 하면서요.”
“서준이의 비밀요? 그리고 사진?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죠?”
“저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우리 회사 대표님과 자신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라고 하더라고요. 제 생각에는 아마 여자와 관련 있는 사진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았습니다.”
김윤정의 말을 들은 조상구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여자요? 어떤 여자를 말하는 거지요?”
“느낌상 사귀는 사람을 지칭하는 거 같았습니다.”
“사귀는 사람? 에이, 그럼 그건 말도 안 돼요. 서준이는 지금 현재 사귀는 사람이 없어요.”
이서준에 관한 일은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는 그였기에, 곧바로 그녀의 말에 강하게 부정했다.
그러나 김윤정도 상대에게 들은 내용이 있었기에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을 조상구에게 권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해 본 제 느낌으로는 정말 뭔가를 가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니 좀 더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뭐, 바로 알아보도록 하죠. 그건 별로 어렵지 않을 거 같네요.”
그렇게 말한 조상구는 곧바로 사무실을 나서서 이서준의 작업실로 향했다.
콘서트 준비로 편곡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이서준에게 직접 물어보기 위해서다.
조상구는 이서준이라면 자신의 물음에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잠시 후 이서준의 작업실에서 나와 다시 자신의 사무실에 돌아온 조상구는, 지금까지 사무실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김윤정 과장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사귀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하네요. 최근에 누구랑 만난 적도 없다고 하고요.”
그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머리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럼 그 남자는 왜 자신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했단 말인가?
도저히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없었다.
“정말 그쪽도 확신에 찬 느낌이었는데… 설마 서준 씨가 대표님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니겠죠?”
그녀의 물음에 조상구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리고 서준이는 그런 일로 거짓말할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글쎄요… 일단 그쪽과 이야기를 해 볼 필요는 있어 보이네요. 전화번호는 받았죠?”
“네.”
“좋습니다. 그럼 일단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죠.”
조상구는 그렇게 갑자기 머리 아픈 상황을 만든 파파라치와의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 * *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뚝.
원치 않은 답변을 들은 채 이서준의 매니저라고 하는 사람과의 통화를 끝냈다.
통화를 끝낸 김만복의 기분은 정말 최악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일이 풀려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는 말이지. 방금 통화한 사람이 그 유명한 장현식의 매니저였던 조상구란 놈이니까… 일단 내 이야기가 블러핑이라 생각하고 강하게 나온 건지도 몰라. 그리고 그래야 협상에서 돈을 최대한 깎을 수도 있고… 아무튼, 협상 상대로는 최악인 놈이야. 이 바닥에서 골통이라고 소문난 말이 안 통하는 놈이니까.”
대화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방금 통화 덕분에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상한 곳으로 흘러가는 물길의 방향을 그가 원하던 방향으로 다시 돌리기 위해 골똘히 궁리하기 시작했다.
최근 소속된 회사가 없는 프리랜서로서, 그리고 얼마 전 고소를 당한 건에서 패소하는 바람에 상당히 큰 보상금을 토해 내야 했던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었다.
그런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었기에 김만복의 머리는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돌아가고 있었다.
제법 긴 시간 고민하던 그는, 이윽고 어떤 계획이 선 모양인지 곧바로 가방 속에 있던 자신의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는 노트북으로 어떤 기사를 작성하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조상구 씨, 사람이 좋게 이야기하면 믿는 게 도리예요. 그렇게 불신이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제대로 볼 수야 있냐? 사람이 밝게 세상을 봐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법이야. 그리고 좋은 뜻으로 말하는 사람의 말은 좋게 받아들이는 최선이라는 것도 좀 알아 둬. 내가 이번에 특별히 제대로 가르쳐 줄 테니까 절대 잊어버리지 말고 앞으로 명심하며 살라고. 알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남자의 손은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엄청나게 빠르게 노트북 자판 위를 움직이고 있었다.
* * *
월드컵 주 경기장과 방송국이 있는 곳으로 잘 알려진 상암동에 자리한 한 아파트.
이곳은 사람이 주거하는 곳이 아니라 유명한 방송국 피디와 그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자주 모여 회의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선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예능 피디인 나정석이 자신의 오래된 동료와 함께 무언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이서준의 섭외가 가능할까? 요즘 잘 나가는 톱스타인데 굳이 예능에 나올 필요가 없잖아.”
그의 물음에 의논 상대인 김유정 작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녀는 예능 프로그램 작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응답해요’ 시리즈를 성공시킨 유명 드라마 작가이기도 했다.
“그건 그렇지. 요즘 이서준의 기세라면 굳이 이미지 소모가 필요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근데 그걸 알면서 캐스팅을 해 보려고 하는 이유는 도대체 뭐야?”
“그거야 당연히 출연만 하면 무조건 성공할 카드니까 그렇지.”
“하지만 까일 가능성이 매우 큰 카드이기도 하잖아. 괜히 제안했다가 까이면 우리 나 피디의 자존심만 상하는 거 아니냐?”
그녀의 물음에 나정석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 정도는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그리고 예능 피디한테 자존심이 어디 있냐? 원래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존심 따위는 시작부터 버리고 뛰어야 해. 알겠어?”
“크크, 그래서 우리 나정석 씨는 자존심은 이미 버려서 없어?”
“그럼 당연히 없지. 그러니 물어볼 거야. 이서준이 혹시 나랑 예능 프로그램할 생각이 없는지 물어볼 거라고.”
“까여도 상관없다는 마인드?”
“그렇지.”
방송계 유명 피디인 나정석은 요즘 국내 최고 스타인 이서준에게 새로운 시즌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달라고 하는 캐스팅 제의를 할 생각이었다.
원래 나정석이 만드는 프로그램이면 다른 연예인들의 경우에는 서로 하겠다며 달려들기 때문에 이렇게 나설 필요가 전혀 없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연예인이 바로 요즘 최고인 이서준이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직접 캐스팅 전화를 걸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고 등록된 전화번호를 뒤적이는 나정석.
그는 JYK와 자신을 연결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정말 많은 그였지만, 의외로 JYK와는 인연이 적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거 내가 JYK 쪽하고는 정말 인연이 없구나. 혹시나 해서 전화번호부 다 뒤졌는데, 관련된 사람 전번이 하나도 없어. 유정아, 넌 혹시 아는 사람 있어?”
그의 질문을 들은 김유정 작가는 양손을 들어 올리는 몸짓을 보이며 그에게 대답했다.
“내 인맥이 당신 인맥이잖아. 당신이 없는데 나라고 있겠어?”
“…하긴 그건 그렇지.”
함께 팀으로 일한 세월이 너무 길다 보니 아는 사람이 거의 비슷한 두 사람이었다.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한 나정석이 어떻게 JYK 쪽과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하고 있던 그때,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던 김유정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나 피디, 큰일 났어.”
“어? 뭐가 큰일이야?”
김유정은 너무 놀란 나머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대답했다.
“당신 이서준 캐스팅하면 안 되겠다. 지금 그쪽 난리 났겠네.”
“무슨 난리? 안 좋은 기사라도 떴어?”
“안 좋은 기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가 아닌 건 확실한 거 같아.”
나정석은 김유정의 설명을 들었지만, 도통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가며 투덜거렸다.
“도대체 설명을 왜 그렇게 못 하냐? 네 말만 들어서는 지금 이서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겠잖아. 글은 그렇게 잘 쓰면서 말은 정말 못해. 무슨 기사 본 건지 나도 좀 보여 줘. 답답해서 안 되겠다.”
나정석은 답답한 마음에 그녀의 스마트폰을 직접 손에 들고 그녀가 본 기사를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뒤 나정석의 표정도 조금 전의 김유정과 비슷하게 변하였다.
“이서준이 누구하고 열애 중이야?”
그의 눈에는 이서준이 누군가와 팔짱을 낀 사진이 보였다.
열애설 기사가 난 것이었다.
기사에 실린 사진으로 봤을 때는 이서준과 의문이 여자가 그의 집에서 밖으로 나오는 모습 같았다.
“JYK 난리 났겠네. 해명 기사 있어?”
“아직 없어. 지금 머리 아프겠다. 요즘 잘 나가는 중이었는데… 이런 기사는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이서준에게 브레이크로 작용할 거야. 내 생각 맞지?”
“그건 맞지.”
나정석은 문득 매우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필 자신이 캐스팅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딱 이 시점에 이런 기사가 나다니…….
그리고 고민했다.
캐스팅 전화를 걸지 말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