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윤레스토랑(5)
이정진이 가게 입구의 팻말을 오픈으로 바꾼 그 순간, 주방에 있던 이서준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주방 안의 물건들을 갑자기 옮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나정석 피디는 이서준이 왜 갑자기 그러는지 그 이유가 무척 궁금했기에 참지 못하고 바로 물었다.
“서준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정리되어 있던 것들을 다시 옮겨?”
그의 물음에 이서준은 물건을 계속 옮기는 와중에 대답했다.
“아, 나중에 요리할 때 동선을 위해 재배치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주방 기구와 음식 재료가 배치되어 있으면 나중에 주문이 여러 개 들어오면 제 동선이 마구 꼬일 거 같아서요. 그래서 가장 빠르면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이것들을 재배치하고 있는 거예요.”
나정석 피디는 이서준의 설명을 들은 후 그가 재배치한 것들의 위치를 다시 살펴보니, 과연 그의 말대로 이전보다 더 효율적으로 배치가 되고 있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것에 감탄한 나정석 피디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이야, 대단하네. 근데 너 혹시 식당 일 배운 적 있어?”
“아뇨, 없는데요.”
“그래, 내가 알기로도 너 식당에서 일해 본 적 없는 것으로 아는데… 근데 무슨 초보 주제에 이렇게 노련하게 일해? 완전 베테랑 같잖아.”
“아니 그건 또 무슨 억지세요? 못하니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결과입니다. 그러니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민망하네요.”
나정석의 말에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대답하는 이서준이었다.
이서준이 생각하기에 지금 나정석은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정석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고, 사실 따지고 보면 그의 말이 옳았다.
이서준 본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 자신이 한 행동은 주방에서 오래 일해 본 베테랑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숙련된 행동이었다.
이서준이 이렇게 갑자기 요리를 잘하게 된 이유는 앞서 설명한 대로 도깨비 상점에서 얻은 경력 30년 주방장의 요리 실력을 얻을 수 있는 숟가락 덕분이었는데, 넓은 의미에서 봤을 때 음식 실력이 좋아진다는 의미는 요리 실력 외에 주방 관리를 잘한다는 의미도 포함된 것이었으니 그가 동선까지 계산하게 된 것 역시 숟가락 덕분이었다.
식당 문을 오픈한 이후 어제보다 더 많은 손님이 ‘윤레스토랑’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손님 중 어제 방문했던 사람이 다시 식당을 찾은 경우도 있었고, 오늘이 이 근방을 지나다니는 사람이 더 많은 요일인 관계로 손님은 늘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원래의 상황이라면 주방에서 일하던 두 명이 빠진 지금 주방 상황은 엉망이 되어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주방의 상황은 예상과는 정반대로 아무런 문제 없이 순탄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주방 상황이 좋은 이유는 당연히 임시 주방장인 이서준의 활약 덕분이었다.
그는 능숙하게 주문받은 요리들을 순차적으로 처리했고, 동시에 들어온 6개의 주문 역시 아무런 문제 없이 완벽하게 처리해 내는 기적과 같은 일을 몸소 행하고 있었다.
옆에서 설거지를 도우며 그 모든 것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나정석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찍고 있는 촬영 감독을 향해 이렇게 하소연하였다.
“형, 형이 보기엔 지금 이게 진짜 정상적인 상황이야? 손님이 이 정도 왔으면 막 주문 꼬이고 죽겠다고 난리가 나야 정상이잖아. 안 그래?”
나정석 피디의 말에 촬영 감독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그게 정상이지.”
“그지? 근데 왜 이렇게 평화로운 건데? 도대체 이유가 뭐야?”
나정석의 물음에 촬영 감독은 고갯짓으로 이서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유야 당연히 임시 주방장님 덕분이지. 나 피디도 잘 알면서 왜 물어봐?”
“맞아, 나도 알아. 근데 이해가 안 되어서 그래. 분명 초보인데… 서준이 도대체 왜 이렇게 잘해? 아니 거의 혼자서 요리하는데, 어제 두 사람이 요리할 때보다 주방이 훨씬 여유 있고 편한 거 같아.”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나정석 피디의 마음에 공감하는 촬영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봐도 그래. 지금까지 우리랑 프로그램을 같이했던 연예인 중에 일은 서준이가 제일 잘하는 거 같아. 정확하고 빠르게 말이야.”
“맞아. 솔직히 승형이 형보다 더 잘하는 거 같아. 형이 봐도 그렇지?”
이번 질문에도 역시 촬영 감독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에도 그래.”
지금 이들이 거론하는 비교 대상은 나정석 피디의 최고 히트 예능 프로그램인 ‘하루세끼’의 대표 요리사 차승형이었다.
차승형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요리 실력으로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출연자였는데, 실제 현장에서 촬영 스태프가 본 차승형은 요리 실력은 물론 뛰어났지만, 그것보다 더 돋보이는 부분은 일을 너무나 잘한다는 점이었다.
TV 화면으로는 그가 요리하는 장면 위주로 방영되다 보니 사람들의 눈에는 그의 요리 실력만 부각이 되었지만, 요리가 카메라에 잡히기 전까지 차승형은 매우 분주히 일을 해야만 했고, 그 모습은 보는 사람이 놀랄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스타일이었다.
그런 실제 차승형의 진면목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이기에 이서준과의 비교가 충분히 가능했고, 그 결과는 의외로 이서준의 ‘승’이었던 것이다.
놀라운 상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정석 피디가 다른 곳을 바라보는 잠시의 휴식 시간에 놀랍게도 이서준은 다른 요리를 뚝딱 만들어 내었다.
그 많은 요리를 만들어 내는 도중 짬짬이 준비해 둔 재료로 곧바로 요리를 해내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었다.
“감독님, 이거 한번 드셔 보세요.”
열심히 설거지하면서 잡담을 나누고 있던 나정석에게 방금 완성한 요리를 내미는 이서준.
갑자기 들려오는 이서준의 목소리와 맛있는 냄새에 나정석은 고개를 저절로 돌릴 수밖에 없었고, 돌아간 그의 시선에 잡힌 것은 겉모습만 봐도 맛있을 거같이 생긴 찜닭이었다.
난데없이 등장한 찜닭을 보며 다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나정석 피디.
그런 그를 향해 이서준이 웃으며 설명했다.
“재료가 있어서 한번 만들어 봤어요. 맛이 어떤지 한번 드셔 보세요. 만약 괜찮으면 오늘 특별 메뉴로 집어넣으려고요.”
오늘처럼 바쁜 날 찜닭까지 메뉴로 올리겠다는 이서준의 말에 나정석은 더욱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이서준을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후 드디어 찜닭을 먹어 보는 나정석.
그는 한 입 먹자마자 이렇게 반응했다.
“어!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의외로 너무 맛있는 맛까지 그를 계속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서준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맛있죠? 그리고 한 가지 더 가능해요. 닭갈비는 어떠세요?”
말도 안 되는 요리 이름이 다시 이서준의 입에서 튀어나왔고, 이서준이 할 수 있으리라 쉽게 믿기지 않는 어려운 요리에 나정석 피디 역시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닭갈비? 그것도 가능하다고?”
“네. 마침 지금 밀린 요리가 없으니 시간 날 때 한번 만들어 볼게요. 재료는 거의 다 있으니까 금방 돼요.”
그렇게 말한 이서준은 곧바로 요리쇼를 시작했다.
능숙하게 닭을 해체해 버린 그는, 곧바로 각종 재료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두드려 대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빠른 칼질에 마구마구 썰려 나가는 각종 채소.
잠시 후 도마 앞에는 예쁘게 잘린 채소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는 다음으로 양념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계량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이 빈 그릇에 각종 양념 재료를 마구 때려 부으며 만든 양념장에서는 놀랍게도 진짜 닭갈비 전문점에서 나는 그런 향긋한 향이 나고 있었다.
“와, 진짜 춘천 가서 먹은 닭갈비 전문점에서 나던 냄새야….”
놀라는 나정석 피디를 다시 한번 웃으며 쳐다본 이서준은, 곧바로 최고 화력으로 단숨에 닭갈비를 볶아 냈다.
그리고 예쁜 접시에 담아서 탁자 위에 ‘탁’ 하고 내려놓는 그의 모습에 이 장면을 함께 보고 있는 전 스태프가 말을 잃고 말았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이 장면을 보고 있던 촬영 감독은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다.
“이야… 편집하기 힘들겠네. 방송에 내보낼 장면이 너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재밌는 장면이 너무 많아 자르기 힘들겠어.”
나정석 피디 역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하느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물론 어떻게 인연이 닿은 관계로 이서준의 출연이 성사되었음을 감사하는 그런 감사 인사였다.
* * *
이서준의 요리쇼가 주방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던 그때, ‘윤레스토랑’의 문이 열리고 6명의 남녀가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여자 2명과 남자 4명으로 구성된 일행이었는데, 이정진의 안내를 받고 식당 내 가장 큰 테이블에 앉았다.
“오늘 정말 기대해도 좋아. 한국 음식은 정말 맛있거든.”
자신의 친구들을 이곳에 데리고 온 제이콥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행 중 제이콥과 레베카는 한국에 놀러 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연인 관계인 두 사람은 모두 한국 음악을 좋아했었는데, 그런 공통점 때문에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게 된 것이다.
실제 한국을 방문했던 덕분에 그들은 더욱더 한국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의 중심에는 음식이 있었다.
‘맵다’는 선입견 때문에 한국 음식을 먹어 보려고 마음먹는 게 쉽지 않았는데, 용기 내어 도전한 결과 한국 음식이 ‘무척 맛있다’라는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한국 음식이 그리워 가끔 한국 식당을 찾곤 했는데, 오늘 친구들과 식사할 곳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국 가게인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뭐 먹어? 너희가 알아서 시킬 거지?”
“당연하지. 나만 믿어. 너희도 좋아할 만한 음식을 시켜 줄 테니….”
한국 음식을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친구의 말에 큰소리로 답한 제이콥은, 천천히 메뉴판을 살피며 어떤 음식을 시킬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레베카가 코를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머, 이건 무슨 냄새지? 분명 맡은 적이 있는 냄샌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에 고민하던 레베카는 잠깐 고민한 후 정답을 알아냈다.
“아, 이거 닭갈비야!”
한국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던 닭갈비.
그때 그 냄새가 놀랍게도 지금 자신의 코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그 때문에 흥분한 레베카는 메뉴판을 보고 있는 제이콥의 팔을 잡고 애타게 부탁했다.
“제이콥, 여기 닭갈비도 하나 봐. 냄새가 너무 좋아. 나 이거 먹을래.”
레베카의 말을 들은 제이콥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닭갈비 냄새 맞아? 내 생각에는 아닌 거 같아. 왜냐하면, 메뉴판에는 닭갈비가 없어.”
제이콥의 말을 들은 레베카는 믿을 수 없었기에 본인이 직접 메뉴판을 읽어 보았다.
역시나 닭갈비가 없었기에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진짜 없네… 근데 이건 닭갈비 냄새가 맞아. 자기도 알잖아. 내가 냄새에 얼마나 민감한지 말이야.”
“그건 그렇긴 한데….”
닭갈비 냄새라 확신하는 레베카의 모습에 제이콥은 어쩔 수 없이 홀에 서 있던 이정진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