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레전드를 만나다(1)
손님이 손을 드는 것을 본 이정진은, 곧바로 그들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주문 때문에 자신을 불렀다고 생각한 이정진의 물음에 제이콥은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설명했다.
“오, 미안해요. 주문이 아니라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손을 들었습니다. 사실 여기 제 옆에 앉은 레이디께서 지금 이 가게 안에서 닭갈비 냄새가 난다고 하네요. 근데 아무리 봐도 메뉴판에는 닭갈비가 없어서… 혹시 닭갈비가 있나요? 아니, 주문이 가능할까요?”
그러고 보니 자신도 닭갈비 냄새와 비슷한 냄새를 맡은 거 같긴 하였다.
그러나 메뉴에 없는 음식이 만들어질 리가 없으니 아마 비슷한 향이 우연히 난 거라 판단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이정진은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제이콥을 보며 미소 띤 얼굴로 이렇게 설명했다.
“아쉽게도 저희 가게에는 닭갈비가 없습니다. 비슷한 향이 나는 거 같지만… 제 생각에는 다른 요리 냄새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여자분이 헷갈리신 거 같습니다.”
이정진의 대답을 듣고 있던 레베카는 그게 아니라 닭갈비 냄새가 확실하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이 아니라고 하는데, 냄새만으로 직원의 말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제이콥은 실망하는 레베카를 안쓰럽게 쳐다본 뒤 다시 이정진을 향해 고개를 돌린 후 이렇게 말했다.
“그렇군요…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주문하도록 할게요.”
“네.”
이정진은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은 후 메뉴를 알려 주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 들어선 그는, 곧바로 이서준과 나정석에게 방금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조금 전 상황이 재밌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여자 손님 중 한 분이 난데없이 우리 가게 안에서 닭갈비 냄새가 난다고 그러시네. 우리는 닭갈비를 안 파는데 말이야, 어!”
말하는 도중 주방에 만들어진 닭갈비를 우연히 발견한 이정진은 순간 하던 말을 멈추고 말았다.
그는 깜짝 놀란 얼굴로 다른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어, 이거 닭갈비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이게 대체 여기 왜 있어?”
당황한 얼굴로 물어보는 그의 물음에 나정석이 나서서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형 지금 황당하지? 조금 전 내가 딱 형처럼 그랬다니까. 아니 서준이가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하더니 이렇게 뚝딱 닭갈비를 만들어 내놓지 뭐야. 내가 계속 보고 있었는데, 보면서도 ‘이게 말이 돼?’ 하고 내 스스로에게 계속 물으며 지켜봤어. 서준이가 저런 요리를 만들어 낸다는 게 너무나 신기한 광경이었거든.”
나정석의 상황 설명을 통해 닭갈비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 그 출처를 파악한 이정진은, 이서준을 깜짝 놀란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이걸 만든 사람이 서준이 너란 말이야? 와, 이걸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닭갈비가 담긴 접시와 이서준을 번갈아 바라보는 이정진을 향해 나정석은 직접 맛을 보기를 권했다.
“형, 먹어 봐. 맛이 궁금하지 않아? 진짜 맛있어.”
“그래?”
약간 미심쩍어하는 눈으로 닭갈비를 바라본 후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가는 이정진.
그는 닭갈비를 입에 넣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워했다.
“와, 맛있네. 이건 진짜 닭갈비 잘한다고 소문난 맛집에서 먹던 바로 그 맛이야. 혹시 양념을 한국에서 가지고 온 거야?”
맛집의 비법 소스를 들고 온 것이 아니냐는 그의 합리적인 의심이 깔린 물음에 이서준 대신 나정석이 나서서 대답했다.
“아니야, 형. 내가 여기 있는 재료로 서준이가 만드는 모습 다 지켜봤어. 이건 진짜 서준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직접 한 거야.”
“진짜? 와, 네 말대로라면 진짜 대박이네. 아, 잘됐다. 이거 저 손님들한테 드리는 건 어때? 여자분이 한국에서 닭갈비를 무척 맛있게 먹었던 모양인데….”
이정진의 제안에 이서준은 방긋 웃으며 동의했다.
“형님들이 맛있다고 하니 서비스로 드려도 나쁘지 않을 거 같네요. 아, 찜닭도 같이 드리면 어떨까요?”
“뭐? 찜닭? 이건 또 언제 한 거야? 아무튼, 좋아. 둘 다 내가 가지고 나갈게. 손님들이 진짜 좋아하겠다.”
이정진은 닭갈비를 애타게 눈빛으로 찾던 손님의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요리된 닭갈비와 찜닭을 양손에 들고는 홀로 향하였다.
* * *
기대감이 컸던 탓에 실망감도 무척 컸었기에 레베카는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때 다시 그녀의 코를 자극하는 맛있는 향이 맡아졌다.
눈에 의문을 담은 채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에는 보조개가 만개한 얼굴로 쟁반 가득 음식을 들고 오는 이정진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보기 좋은 미소와 함께 그녀를 비롯한 일행을 향해 이렇게 설명하며 접시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저도 지금 알았는데… 우리 식당의 셰프가 있는 재료로 닭갈비를 직접 만들어 봤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냄새만으로 이 요리의 정체를 알아챈 손님들에게 기념으로 드리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닭갈비에요. 그리고 다른 접시에 든 건 찜닭입니다. 간장 소스를 베이스로 닭을 요리한 음식이죠. 아주 맛있으니 같이 드셔 보세요.”
그가 내려놓은 두 개의 접시를 바라보는 열두 개의 눈동자.
그들은 음식을 바라보며 동시에 함께 자리한 레베카에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특히 남자 친구인 제이콥은 정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레베카를 칭찬했다.
“레베카, 너 진짜 대단해. 이걸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항상 맡던 음식 냄새도 아니고 한국에 1주일 머물 때 진짜 딱 한 번 먹었던 음식의 향인데… 너 진짜 대단하다.”
결국, 자신의 후각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레베카는, 제이콥의 말에 약간 으스대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후후, 내 코가 이 정도야. 완전 개코라고. 그리고 사실 한국에서 먹었던 닭갈비가 진짜 맛있었어. 그래서 내 머릿속에 그 향이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 있었던 거지. 자 모두 먹어 봐. 먹어 보면 내가 왜 그토록 극찬했는지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을 거야.”
레베카 때문에 더욱 큰 기대감을 품은 사람들은,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닭갈비를 포크로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잠시 후 모두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의외의 맛에 놀라 탄성을 내질렀다.
“오, 어메이징! 너무 맛있어. 이래서 레베카가 그토록 이 요리를 그리워했구나.”
“음… 너무 맛있네. 내 입에는 약간 매운 느낌도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참고 먹을 만해. 진짜 맛있어.”
그리고 이제 막 닭갈비 한 조각을 입에 넣은 제이콥은 진심으로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와, 이거 한국에서 먹었던 그때 그 맛이야. 아니 어떻게 미국에서 이 맛을 다시 볼 수 있는 거지?”
그렇게 말한 제이콥은 촬영 스태프를 향해 엄지를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맛을 미국에까지 가지고 오다니… 당신들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요….”
제이콥을 비롯한 친구들의 열띤 반응에 레베카 역시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닭갈비를 음미하며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그리고 닭갈비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 낸 것처럼 찜닭 역시 사람들의 엄청난 호평을 끌어냈다.
“와우, 이건 또 뭐야? 왜 이렇게 맛있어? 도대체 한국 사람들은 얼마나 맛있는 걸 먹으며 사는 거야?”
“이건 맵지도 않아. 달콤해. 낯설면서도 이렇게 환상적인 맛이라니… 흔하디흔한 닭으로 이런 천상의 맛을 만들어 내는 한국인들은 맛의 마법사들이야.”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자신들이 주문한 메뉴들.
비빔밥에 불고기 덮밥, 그리고 파전까지 차례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졌고, 그것들을 먹는 6명의 표정은 점점 행복감으로 물들어 갔다.
그렇게 폭풍과 같은 식사를 끝낸 사람들은 포만감 때문에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친구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맛과 건강을 모두 중요시하는 거 같아. 싱싱해 보이는 채소를 가득 담은 이 음식이 이렇게 맛있다는 건 분명히 직접 맛본 나도 쉽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야. 그리고 맨 처음 먹은 닭갈비는 정말 천국의 맛이었어.”
“맞아. 나도 동감이야. 그리고 난 개인적으로 ‘쪔닭’이 최고였어.”
“찜닭이야. 쪔닭이 아니라. 하하하.”
발음을 실수한 친구의 말을 정정해 주는 제이콥이었다.
식사가 끝나 자리에 일어선 일행은 카운터에 서 있는 이정진에게로 걸어갔다.
제이콥이 대표로 음식값을 지불하는 와중에, 그의 곁에 서 있던 레베카는 이정진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다시 맛보게 해 줘서 정말 너무 감사해요. 이제 다음 휴가 때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한국으로 가야겠어요. 아직 맛보지 못한 음식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오늘 또 깨달았거든요.”
“하하, 그러세요? 네, 한국에 다시 방문해 주세요. 저도 한국인이지만, 진짜 맛있는 음식이 우리나라에 많은 거 같아요.”
“진심으로 동감하는 말이에요.”
계산을 하던 제이콥도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레베카가 나랑 상의 없이 휴가지를 결정해 버린 점은 조금은 서운하지만, 그곳이 한국이라면 저 역시 찬성이네요. 한국은 서울에서 놀 곳도 많아 좋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예쁜 산이 많아서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어 좋았거든요. 이번에 다시 한국에 간다면 예쁜 산속을 거닐며 레베카랑 경치를 즐기고 싶네요.”
그의 여행 계획을 들은 레베카는 마음에 들었는지 사랑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좋아, 제이콥. 나도 찬성이야.”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계산을 하고 있을 때, 주방에서 일하던 이서준이 오랜만에 홀로 나왔다.
계산 중이던 이정진은, 이서준의 모습을 발견하곤 자신의 앞에 서 있던 미국인 손님들을 향해 그를 소개했다.
“우리 식당의 셰프님이 오랜만에 홀에 모습을 드러내셨네요. 저 잘생긴 남자가 바로 오늘 여러분이 맛있게 드신 음식을 만든 셰프입니다.”
이정진의 말을 들은 여섯 사람의 고개는 동시에 이서준에게로 향했다.
그들 모두 너무나 잘생긴 남자의 얼굴을 보곤 그의 외모에 엄청나게 놀랐지만, 레베카만은 다른 이유로 놀라고 있었다.
“아, 이서준!”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서 미국 팬 2호를 만나게 된 이서준이었다.
* * *
윤서정과 정영미가 갑자기 아픈 바람에 촬영에 큰 지장이 생길 거라고 염려하던 아침의 모습과 달리 ‘윤레스토랑’ 미국편 둘째 날 영업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서준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발군의 실력으로 손님들이 주문한 요리들을 아주 빠르고 맛있게 만들어 내고 있었다.
흔히 생각하는 맛과 시간이 반드시 정비례 관계에 있지 않다는 걸 몸소 보여 주고 있었다.
그렇게 둘째 날 저녁 영업이 한창인 그때, 의문의 여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