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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3)
이서준은 미국에서의 촬영 둘째 날 우연한 기회로 그의 미국 팬인 한 소녀와 그녀의 부모님을 함께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식당 안에서 소녀와 그녀의 부모님을 위한 노래를 불러 주게 되었는데, 그런 이서준의 모습에 감격한 소녀는 이서준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자신의 스마트폰에 정성스럽게 담았다.
그리고 그 소녀가 자신의 개인 SNS에 이서준이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을 업로드하게 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영상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영상을 본 사람들이 이서준의 노래에 큰 관심을 보인 이유는 그날 이서준이 소녀의 부모님을 위해 부른 마이클 존슨의 ‘빌리에게’ 때문이었다.
우연히 이서준의 ‘빌리에게’를 들은 사람들은 그의 노래 실력과 완전히 다른 곡처럼 들리는 그의 편곡 실력에 제대로 감탄하게 되었고, 그렇게 감탄한 사람들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영상을 전달하면서 이 넓디넓은 미국 땅에서도 이서준이라는 가수에 관한 관심이 생겨난 것이다.
애슐리 브룩의 말을 들은 이서준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런 이야기는 그만 해요. 그리고 오늘 작업은 여기까지 하죠. 내일부터는 실제 녹음에 들어가 보자고요.”
“오케이, 알았어. 그리고 저녁은 나랑 같이 먹자. 내가 너한테 소개해 주고 싶은 레스토랑이 있거든.”
“…저번에 먹었던 프랑스 요리라면 사양할게요. 전 아직 프랑스의 멋진 음식을 음미할 마음의 준비가 부족하다고요.”
저번에 경험한 느끼한 프랑스 음식 덕분에 슈퍼스타 애슐리 브룩의 저녁 식사 제의를 과감히 사양하는 이서준이었다.
애슐리 브룩은 그런 이서준의 마음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손을 잡고 끌었다.
“하하, 오늘은 매콤한 멕시코 요리니까 저번처럼 음식이 느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그러니 튕기지 말라고. 하하하.”
“…그래요?”
크게 웃으며 자신을 이끄는 그녀를 따라나서는 이서준의 얼굴에는 어느새 안심한 마음으로 인해 저절로 피어난 미소가 어려 있었다.
* * *
멕시코 음식은 의외로 맵고 짠 것이 한국 사람 입맛에 제법 잘 어울렸기에 이서준은 평소와 다르게 한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식사에 임하고 있었다.
그리고 애슐리 브룩은 그런 이서준의 얼굴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부탁 때문에 멀고 먼 타국에서 음반 작업 덕분에 고생하는 이서준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래서 거의 매일같이 그를 데리고 뉴욕에 있는 미슐랭 레스토랑들을 순회하고 있었는데, 평소 다른 사람의 일에 별로 관심이 없던 그녀를 생각하면 무척 이례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열심히 일한 후라 더욱 맛있게 식사에 임하던 그때, 조용히 있던 애슐리 브룩의 스마트폰이 맹렬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마이클?”
예정에 없던 소속사 대표의 전화에 그녀는 의아한 눈빛으로 자신의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들리는 마이클 본의 목소리.
[애슐리, 혹시 서준이랑 같이 있어?]
“응, 함께 저녁 먹고 있어. 혹시 서준이 때문에 나한테 전화한 거야?”
[응, 맞아. 회사로 조금 놀랄 만한 제안이 들어왔거든. 제안의 주인공은 당연히 서준이고. 그래서 너랑 작업 중인 상황을 고려해서 너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어. 너와 먼저 의논을 하고 싶었거든.]
그리고 이어진 마이클 본의 긴 설명.
애슐리 브룩은 그의 설명을 다 듣고 깜짝 놀랐다.
그녀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엄청난 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일단 알았어. 난 웬만하면 참가하게 해 주고 싶어. 엄청난 자리잖아. 일단 내가 먼저 잘 이야기를 나눠 볼 테니 기다려 봐.”
[오케이, 알았어.]
그렇게 마이클 본과 제법 길었던 통화를 끝낸 애슐리 브룩.
그녀는 여전히 즐거운 표정으로 음식을 먹고 있는 이서준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준, 조금 놀랄 만한 소식이 있는데… 식사 중인데 말해도 될까?”
이서준은 애슐리 브룩의 물음에 미소 띤 얼굴로 답했다.
“네, 괜찮아요. 무슨 일인데 그래요?”
“…놀랍게도 너에게 공연 제의가 들어왔어.”
“네? 공연 제의요?”
전혀 예상치 못한 깜짝 소식에 화들짝 놀라는 이서준.
그가 이렇게 크게 놀라는 것도 당연한 것이, 아직 공식적인 활동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미국에서 자신에게 공연을 제안한 사람 또는 단체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애슐리 브룩은 놀란 이서준을 향해 말을 이어 갔다.
“후후, 놀랐어? 나도 방금 마이클의 말을 듣고 방금 너처럼 많이 놀랐어. 근데 놀랄 일은 조금 더 남았으니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하도록 해. 이번 이야기가 방금 이야기보다 더 놀랄 만한 이야기거든.”
도대체 어디서 제안이 들어왔길래 애슐리 브룩이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이서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를 바라봤다.
애슐리 브룩은 그런 이서준을 향해 놀라운 제안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했다.
“며칠 뒤에 마이클 존슨의 추모 공연이 뉴욕에서 열려. 그 추모 공연을 진행하는 곳에서 우리 회사에 제안이 들어왔어.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네 영상 속 노래하던 사람이 지금 나와 작업 중이란 사실을 알아낸 모양이야.”
“그럼… 그 영상 속 노래하던 사람이 바로 저예요?”
“하하, 맞아. 네가 ‘빌리에게’를 부른 영상을 보고 추모 공연 오프닝에 네 무대를 제일 먼저 올렸으면 어떨까 하고 파격적인 제안을 한 사람이 저쪽에 있나 봐. 그쪽 회사에서도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이 나와 우리 쪽 회사에 연락을 취해 온 것이고.”
이서준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자신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하던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 그것이 마이클 존슨의 추모 공연과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 얼떨떨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던 그때, 애슐리 브룩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한 가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애슐리. 조금 전에 제가 무대에 섰으면 좋겠다고 제안한 사람이 있었다고 했죠? 혹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계시나요?”
이서준은 자신을 추천한 사람의 정체가 갑자기 궁금하여 그녀에게 물었고, 질문을 받은 애슐리 브룩은 그의 물음에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응, 알고 있어. 말해 줄까?”
“네.”
“제니퍼 존슨이야.”
“네?”
조금 전보다 훨씬 많이 놀라는 이서준.
그가 이렇게 놀라는 것도 당연한 것이, 제니퍼 존슨이라는 이름은 가수로서 그냥 아무렇지 않게 들을 수 있는 가벼운 네임 벨류의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제니퍼 존슨, 그녀는 오빠인 마이클 존슨처럼 한 시대의 음악을 이끌어 온 살아 있는 팝의 여왕이었다.
* * *
마이클 본 사장의 사무실.
평소에 항상 웃는 얼굴로 일하는 그답지 않게 그는 지금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가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소파에 앉아 있는 이유는 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서 미소 띤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한 남자 때문이었고, 그의 이름은 부사장 제이크 슈나이저였다.
“저의 새로운 사업 계획이 어떤가요?”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물어보는 제이크 슈나이저.
그는 분명 미소 지은 얼굴이었지만, 그 미소에 담긴 의미는 절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마치 ‘자, 내 계획이 어때? 굉장하지? 너 같은 음악쟁이들은 절대 할 수 없는 사업 아이템이야. 이제 내가 얼마나 대단한 경영자인지 잘 알겠지.’라는 긴 이야기가 담긴 미소라는 걸 마이클 본 사장은 제대로 느끼고 있었기에 그의 표정이 계속 딱딱한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는 공적인 자리였기에 기분이 좋지 않다고 계속 입을 닫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앞에 놓인 사업 계획서를 다시 한번 훑어보며 마이클은 입을 열었다.
“뉴 아시안 스타 프로젝트라… 당신이 준 계획대로라면 아주 완벽한 계획이군.”
마이클 본의 말을 들은 제이크 슈나이저 부사장의 얼굴에 핀 미소의 색은 더욱 짙어졌다.
마이클 본의 말 속에 담긴 ‘완벽한’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하, 그렇죠. 아주 완벽한 계획이죠. 지금 세계 음반 시장의 흐름은 새로운 아시아 쪽 스타들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투자금 전부를 그쪽 회사에서 부담하겠다고 했으니… 이건 그냥 공짜로 먹게 된 저녁 식사처럼 우리에겐 전혀 손해가 없는 알짜배기 사업이라고 할 수 있죠. 하하하.”
기분 좋은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호탕한 웃음.
그러나 그의 웃음을 듣고 있는 마이클 본 사장의 얼굴은 여전히 심각했다.
그는 심각한 표정 그대로 웃는 있는 슈나이저 부사장에게 물었다.
“손해가 없다라… 그건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근데 여기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네요. 여기 새로운 사업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스냅스라는 그룹의 노래는 들어 보셨나요?”
마이클 본의 추가 질문 때문에 기분 좋게 웃던 슈나이저 사장이 웃음을 갑자기 멈추었다.
“…들어는 봤습니다.”
왠지 조금 전과 다르게 무엇인가 불편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슈나이저 부사장.
그런 그를 향한 마이클 본 사장의 말은 이어졌다.
“그럼 이어서 묻겠습니다. 그들의 음악이 미국 시장에 먹힐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마이클 본 사장의 예리한 질문에 슈나이저 부사장의 말문은 순간 막혀 버리고 말았다.
마이클 본 사장의 질문은 달변가인 그가 쉽게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주저하던 그의 입이 다시 열리었다.
“일본과 미국의 음악적 상황이 다르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리고 요즘 같은 시기에 음악적 성공이란 가수의 역량에 달린 것은 아니죠. 음악적인 성공의 키는 자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돈이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 돈이 아니라 저쪽 돈이죠. 그러니 우리는 성공을 위한 과감한 투자에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고도 이 가수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건 우리 회사의 문제가 아닐까요?”
왠지 노려보는 듯한 눈으로 묻는 제이크 슈나이저 부사장을 보며 마이클 본 사장의 입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파트너와 같은 부사장이 이렇게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유야 당연히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공사를 구별하지 못한 채 자신을 향해 이렇게 으르렁대는 그의 모습에서 피곤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장의 모습에 슈나이저 부사장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사장으로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죠. 시간을 더 드릴 테니 다음 이사회 때는 지금 저의 새 프로젝트에 관한 입장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말씀을 더 드리면… 회사 내 임원진 대부분이 저의 프로젝트에 관해 긍정적인 입장을 이미 밝혔다는 걸 추가적으로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럼 바쁘실 테니 저는 제 일을 보러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말만 마무리한 슈나이저 부사장은 곧바로 마이클 본의 사장실을 빠져나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