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152화 (152/189)

152. 추모 공연(2)

다음 날 작업실에서 만난 애슐리는 나에게 밤새 적어 온 가사가 적힌 노트를 눈앞으로 쭉 내밀었다.

“읽어 봐.”

“……네.”

대답과 함께 받아 든 노트.

난 그 노트를 매우 진지한 눈으로 읽어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읽어 본 가사는 놀랍게도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래서 나는 곧장 내 소감을 기다리고 있는 애슐리 브룩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소감을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와, 너무 좋은데요. 그냥 수정 같은 거 할 필요도 없이 이대로 녹음하죠. 진짜 너무 좋아요.”

“그 정도야? 히히, 솔직히 내 마음에는 들었는데, 혹시 네가 싫다고 하면 어쩌지 하고 계속 고민하면서 작업실까지 왔는데… 내가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네. 하긴 너 정도 되는 프로듀서가 이렇게 멋진 가사를 못 알아볼 리가 없지. 안 그래?”

“흐흐, 당연하죠. 그러고 보니 우리 완전히 마음이 통한 것 같네요. 어제 애슐리한테 가사를 부탁하면서 제 머릿속에는 딱 이런 느낌의 가사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늘 이런 가사를 진짜로 적어 오셨네요. 자, 그럼, 이 좋은 느낌 그대로 살려서 녹음까지 이어 가 볼까요?”

“하하, 오케이, 가자. 근데 이번에는 악기 수를 몇 가지로 녹음할 거야?”

애슐리 브룩의 매우 중요한 물음에 나는 잠시 고민한 후 이렇게 대답했다.

“음… 제 개인적 생각으론 악기 수를 최소한으로 했으면 좋겠네요. 어쿠스틱 기타랑 피아노, 그리고 첼로만으로 사운드를 만드는 게 제일 좋아 보이는데… 애슐리의 생각은 어때요?”

내 물음에 그녀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어머! 아, 완전 대박. 나도 딱 너처럼 생각했었거든. 이렇게 좋은 멜로디 라인을 제대로 살리려면 악기 수는 최소한으로 가야 한다고 말이야. 근데 이런 것까지 마음이 통했네. 보통 녹음 때 이런 식으로 작업하는 곡이 나오면 그땐 대박 칠 경우가 많았는데… 이 노래도 그래서 솔직히 너무 기대돼. 흐흐흐.”

“저도 애슐리 말대로 되었으면 정말 좋겠네요. 그럼 연습 좀 하고 계세요. 저는 바로 녹음 부스 안으로 가서 피아노 소리부터 딸게요.”

“알았어, 자기.”

애슐리에게 멜로디 라인을 좀 더 가다듬으라고 주문한 나는, 곧장 녹음 부스 안으로 향했다.

피아노부터 녹음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악기 연주를 할 줄 안다는 것은, 아니 매우 훌륭하게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점은 실제 녹음할 때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큰 장점이었다.

직접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전문 세션에 연주를 부탁해서 녹음할 경우에는 어떤 느낌으로 어떻게 연주를 해 달라는 식의 구체적인 설명을 꼭 덧붙여야 하는데, 그게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추상적인 부분이 많은 어떤 정서적인 부분을 말로 잘 표현해야 상대방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설명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은 어떻게 보면 아주 당연한 부분이었는데, 오늘처럼 내가 직접 연주를 하게 되면 그런 설명 과정이 필요가 없게 되는 셈이니 무척 간편해진다.

그리고 아무리 전달을 잘 해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어떤 관념을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렇게 내가 직접 그런 느낌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연주하면 되니 여러 가지로 편리한 것은 분명했다.

피아노 녹음이 끝나고 기타, 그리고 첼로 녹음을 차례에 맞게 순서대로 진행하였다.

첼로 녹음까지 마친 후 잠깐 쉬러 부스 밖으로 나오자 애슐리가 웃는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앞으로 다른 사람과 작업을 하면 그 어느 것보다 네 뛰어난 연주 실력부터 떠오를 거 같아. 왜냐고? 그거야 네가 연주를 너무 잘하니까. 웬만한 세션 연주자보다 몇 배는 더 잘하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 넌 네 뛰어난 연주 실력 덕분에 절대로 굶지는 않을 거 같아. 돈 필요하면 세션 알아보면 되잖아. 우선 나 같은 경우에도 콘서트부터 각종 공연에서 네 연주에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니까.”

응?

이거 왠지 예전에 들어 본 말인 거 같은데….

전에는 한국어로, 지금은 영어로 비슷한 이야기를 이렇게 또다시 듣게 되니 기분이 정말 묘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분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의문을 풀며 한가로움을 즐길 때가 아니었으니, 이 곡의 주인공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녹음하는 일을 서둘러야겠지?

“애슐리, 멜로디는 숙지하셨죠?”

“그럼 당연하지. 나 애슐리 브룩이야. 너 설마 내가 화장도 안 하고 이렇게 있다고 해서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잊은 건 아니지?”

“그야 당연하죠. 그래서 조금 전부터 매우 설레기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디바 애슐리 브룩이 내가 만든 이 노래를 얼마나 멋지게 불러 줄지 너무나 기대되거든요. 자, 그럼 진짜로 녹음 들어가 볼까요??”

“오케이, 시작하자고.”

드디어 시작된 녹음.

애슐리 브룩은 미리 녹음된 내 연주 위에 자신의 감미롭고 허스키한 보이스를 더하기 시작했다.

♩내 작은 손에 쥐어진 마이크♪

♩너무 큰 마이크로 노래하기가 쉽진 않았지만, 날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 덕분에 처음으로 무대에 서는 행복을 느끼게 되었지♪

애슐리의 노래는 완전히 내가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왜 그녀가 전 세계 팬들에게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을 받아 왔는지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의 압도적인 노래 실력이었다.

진한 리듬 앤 브루스 곡조에 따뜻한 느낌이 담긴 그녀의 목소리는, 이어질수록 듣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강하게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노래의 절정에서는 그녀 특유의, 아니 그녀만이 낼 수 있는 가창력으로 노래에 담긴 감정을 그대로 폭발시켜 버렸다.

♪날 보고 환호하는 사람들, 그리고 혼자일 때 느껴지는 외로움과 슬픔♩

♪이 모든 것이 나의 삶, 그리고 내 행복이었네♩

그녀의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내 손에는 저절로 힘이 들어가며 주먹을 불끈 쥐어 버렸다.

“됐어!”

나는 너무 흡족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외쳐 버리고 말았고, 내 옆에서 녹음 중이던 엔지니어 존은 그런 나를 보며 이런 감상을 말하였다.

“그녀가 돌아왔어요!”

그렇다.

오늘 지금 이 녹음실에는 사람들을 열광시키던 기억 속의 디바 애슐리 브룩이 완전한 모습으로 재림해 있었다.

* * *

세계적인 음반 회사인 워너즈 뮤직의 정기 이사회의.

오늘의 이사회는 평소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던 회의와 달리 열띤 의견 충돌로 인해 회의장 안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우리 회사는 음악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오랜 시간 많은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우리 회사의 이름으로 음반을 발표했었죠. 그런데 이런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우리 회사에서 우리 스스로도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음악을 우리 손으로, 그리고 우리의 이름으로 내보내게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이 프로젝트 자체는 사업적인 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여러 가지로 부족한 뮤지션을 우리 회사의 이름으로 억지로 데뷔시킨다면 오랜 기간 쌓아 온 우리 워너즈 뮤직의 명성 또한 큰 타격을 입게 될 겁니다. 그러니 전 이 프로젝트를 지금 성급하게 진행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바입니다.”

오늘 이사회에 올라온 안건 중 가장 핵심에 해당하는 ‘뉴 아시안 스타 프로젝트’에 대해 전면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는 마이클 본 사장이었다.

그런 그의 단호한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며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제이크 슈나이저 부사장은, 이런 그의 의견에 참고 있을 수 없었는지 곧바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음반 회사를 운영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성입니다. 소위 음악을 잘한다는 평을 받는 콧대 높은 뮤지션들은 항상 말하죠. 너희들이 음악을 알아? 그리고 대중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었을 때 다시 이렇게 외칩니다. 진정한 음악을 알기에는 너희 수준이 너무 낮아. 네, 맞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경영과 예술은 별개라는 말입니다. 음악성이 높다? 만약 그런 뮤지션이 곡을 낸다면 대중이 무조건 그의 노래를 좋아할까요? 대답은 노입니다. 중요한 건 돈입니다. 돈만 있으면 무조건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찾아보면 방법은 많지요. 제일 잘 나가는 작곡가에게 최고의 곡을 받아 오면 됩니다. 거기에다 요즘 제일 핫한 뮤지션과 콜라보로 무대를 꾸민다면 그건 바로 금상첨화이지요. 결국, 돈으로 못 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근데 지금 이 프로젝트는 우리 돈이 단 한 푼도 들어가지 않고 마음껏 투자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프로젝트입니다. 이걸 도대체 왜 추진하지 말자고 하는 건가요? 저는 도무지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제이크 슈나이저 부사장은 자리에 앉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마이클 본 사장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혹시… 다른 사람의 성공이 두려우신 겁니까?”

도발적인 말.

마이클 본 사장은 그런 제이크 슈나이저 부사장의 말에 순간 발끈하며 화를 낼 뻔했지만, 온 힘을 다해 참았다.

지금 같은 공적 회의 순간에 감정적인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렇게 화가 난 마음을 추스른 그는, 곧바로 슈나이저 부사장의 말에 반박했다.

“부사장님의 두 가지 말에는 절대 동의할 수가 없네요. 첫째, 돈만 있으면 무조건 성공한다고 하셨나요? 그룹 크라켄 아시죠? 과거에 약물과 알콜 중독으로 음악적으로 전혀 준비가 안 된 그들을 월드 뮤직에서 억지로 컴백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주가 상승을 요구하는 주주들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억지 컴백이었죠. 그 당시 그들의 컴백에 투자된 금액은 듣기만 해도 ‘헉’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의 큰 금액이었죠. 하지만, 그들의 컴백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월드 뮤직은 그때의 실패 덕분에 세계 3대 음반 회사의 자리를 다른 회사에 내줘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월드 뮤직은 아직까지 예전과 같은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죠. 우리는 이 예를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제가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의 성공 때문이라고 하셨나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저는 그 누구보다 회사의 성장을 바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현재 우리 회사의 경영자를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영자로서 어떻게 성공을 바라지 않겠습니까? 저는 다만 성공이 힘들어 보이니 반대하는 것뿐입니다.”

두 사람의 대립처럼 회의장에 참석한 이사들의 의견도 거의 반반으로 나누어졌다.

결국, 이날의 회의에선 ‘뉴 아시안 스타 프로젝트’의 승인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회의를 마치게 되었다.

회의를 마친 마이클 본은 오랜만에 예전 일터인 작업실로 향하였다.

제이크 슈나이저 부사장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한 터라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이쪽으로 옮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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