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158화 (158/189)

158. 저보고 히어로가 되라고요?

직원의 안내를 받아 미팅룸으로 들어오는 이서준.

이서준을 본 케븐 파이스는 환한 미소로 그를 맞았다.

“안녕하세요, 케븐 파이스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서준입니다.”

인사를 나눈 뒤 준비된 테이블에 앉은 두 사람.

케븐 파이스는 이서준의 실물을 처음 본 후 속으로 많이 놀라고 있었다.

‘마스크가 너무 좋은데….’

물론 화면을 통해 그의 외모가 출중하단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얼굴과 화면에 비치는 얼굴은 차이가 나는 것이 보통이고,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실제보다 잘생기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냥 잘생긴 편에 속하는 외모 정도로 추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봤을 때 화면이 오히려 그의 잘생김을 다 못 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그의 눈으로 확인한 이서준의 실물은, 보자마자 그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을 만큼 잘생긴 외모였다.

지금 ‘마벌 스튜디오’가 속한 ‘월투 디자니’의 경영 철학은 서구 중심의 문화에서 다민족 다문화로의 변화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런 취지에 따라 요즘 제작되는 영화들의 주인공들은 획일적인 백인 주인공 중심에서 흑인, 황인 등 다양한 인종의 주인공이 영화에 등장하는 것으로 변화되고 있었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까진 피부색에 관한 고정관념의 벽에 막혀 실질적인 의식 변화의 현상까지는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서준 정도의 뛰어난 외모라면 피부색과 관계없이 모든 인종에게 먹힐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다.

쉽게 말해 다른 인종의 주인공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백인 외 다른 인종의 사람들도 이서준같이 잘생긴 외모라면 충분히 그들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의 벽을 허물고 아시아인 주인공의 매력에 풍덩 빠질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선 것이다.

케븐 파이스는 지금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일단 지웠다.

지금 이 자리는 다른 일을 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인 만큼 일단 본래 용건에 집중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케븐 파이스는 곧바로 이서준을 향해 본론을 꺼내었다.

“제가 그동안 이서준 씨에게 꾸준히 연락을 드렸던 이유는, 이서준 씨가 맡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괜찮은 배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시작된 오늘의 미팅.

본격적인 용건을 꺼내는 케븐 파이스의 말을 듣고 있는 이서준의 표정도 조금 전과 다르게 진지하게 변하고 있었다.

“우리 스튜디오에서는 지금 현재 아시아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한 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영화 제목은 ‘상춘’이고요. 혹시 알고 계신 이야긴가요?”

“네,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마벌 스튜디오에서 차기작으로 아시아인 주인공 영화인 ‘상춘’을 준비 중이란 이야기는 이미 전 세계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가 된 상황이었기에 이서준 역시 알고 있었다.

“모든 배역이 정해진 상황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주조연 배역 하나가 정해지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이서준 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가 찾던 이미지를 이서준 씨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아주 놀랍게도요.”

여기 오기 전 예상했던 대로 결국 캐스팅 제의였다.

그 외에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을 만나려고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자신이 알기로는 ‘마벌 스튜디오’에서 배우를 구한다는 말이 나오기만 하면,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단한 배우들까지 줄을 서서 오디션에 참가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어째서 자신은 출연 의사도 밝히지 않는 상태에서 이렇게 수차례 미팅을 원하는 메시지가 이어졌을까?

그에 관한 해답은 이어진 케븐 파이스의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너무 중요한 배역이라 지금까지 많은 오디션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배우를 만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나 감독이 염두에 두었던 이미지를 가진 배우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근데 우연히 보게 된 이서준 씨가 그와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더군요. 그래서 당신이 출연했던 드라마를 보았는데… 정말 놀랍게도 우리가 찾던 이미지의 등장인물이 그 드라마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연기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고요.”

그제야 왜 자신을 이곳에 불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또 다른 궁금증도 생겼다.

도대체 어떤 배역이기에 자신의 연기에서 이들이 찾고 있던 이미지를 보았다고 하는 것일까?

이서준은 진심으로 이들이 구하지 못했다고 했던 역할이 궁금했다.

그런 마음을 머릿속에 떠올린 그때, 케븐 파이스는 마치 이서준의 마음을 읽은 사람처럼 그의 궁금증을 풀 열쇠를 직접 이서준에게 주었다.

“우선 이것부터 읽어 보시죠. 제가 이서준 씨에게 부탁하고 싶은 배역에 관해 설명한 서류입니다. 그리고 ‘상춘’이라는 영화에 대한 시놉시스도 함께 드렸으니 같이 읽어 보시는 게 좋을 거 같군요.”

이 말을 남기고 자리를 비켜 주는 케븐 파이스.

아마도 이서준이 혼자 편하게 읽어 보라는 배려 차원에서 자리를 피해 주는 것 같았다.

이서준 입장에선 내심 바라던 바였기에 그가 원하는 대로 편한 마음으로 자신의 앞에 놓인 종이를 집어 들었다.

“음……”

이서준은 집중해서 서류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나갔다.

케븐 파이스가 이서준에게 제의한 역할은 한국인 히어로였다.

‘엘른’이라는 이름의 히어로였는데, 놀랍게도 차원을 넘어온 남자였다.

과학 대신 마법이 문명의 주축인 환상 이야기 속 세계에서 살아가던 정령사 엘른은, 나쁜 마왕과 싸우다가 사고로 차원의 경계를 넘게 되고, 그래서 지금의 지구에 있게 된다.

그가 차원의 경계를 넘어 도착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고, 원래 정령의 힘을 사용하던 그는 지구에서도 계속 그 힘을 쓸 수 있게 되어 자신을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이 사는 한국을 지키는 히어로가 된다는 이야기 속 인물이었다.

이어진 설명을 읽어 보니 원래 마벌 코믹스상에 나오는 캐릭터는 아니라고 한다.

한국의 유명 웹툰에서 나온 인물이었는데, 케븐 파이스가 그것을 우연히 본 후 마음에 들어 마벌의 세계에 편입시키려고 하는 인물이었다.

“음… 이래서 나를 캐스팅하고 싶었던 건가?”

‘엘른’이라는 배역에 관해 읽다 보니 저절로 머릿속에 ‘미라클’의 주인공 모습이 떠올랐다.

두 배역의 성격 자체가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엔 매우 이성적이면서 차가운 사람처럼 보이지만, 마음속 깊이 뜨거운 불과 같은 열정을 숨기고 살아가는 남자였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자신이 연기했던 ‘미라클’의 주인공과 비슷한 인물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엘른’은 영화 ‘상춘’의 주인공인 상춘을 도와주는 인물이었다.

중국 마피아들이 나쁜 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어린 상춘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며 기르게 되는데, 무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던 그는,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근접 전투의 달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마치 날카로운 칼과 같이 그를 휘두르는 중국 마피아의 명령에 따라 서슴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살아가던 상춘은, 어느 날 한국에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한국의 대표 히어로인 ‘엘른’과 부딪치게 된다.

기존의 인간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강함을 보였던 상춘은, 평범한 인간이 아닌 엘른에게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제압당하게 되고, 상춘을 잡은 엘른은 그가 세뇌에서 깨어나 제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된다.

세뇌에서 처음으로 제정신을 차린 상춘은, 그동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자신이 지금까지 행한 악행 때문에 괴로워하고 후회하던 그는, 자신을 키워 낸 조직을 그대로 놓아 두면 선의의 피해자가 계속 나올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결심한다.

피 묻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들을 세상에서 지우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과 대대적인 싸움을 벌이는 상춘.

엘른은 그를 도와 함께 싸우게 되고, 또 우연히 싸움에 가세한 ‘응징자들’의 멤버 ‘매의 눈’은 그런 상춘을 눈여겨보게 된다.

두 사람과 함께 마침내 중국 마피아 조직을 괴멸시킨 ‘상춘’은, ‘매의 눈’의 권유에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응징자들’의 멤버가 되면서 영화는 끝나게 된다.

이서준은 마련해 준 서류를 다 읽고 난 후 의자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혹시 근처에 누가 있는지 살펴본 것이었다.

근처에 자신 외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곧바로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허름한 뿔테 안경 하나를 꺼내 들었다.

“자, 그러면 이 영화가 얼마나 잘될 영화인지 알아볼까?”

이서준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뿔테 안경을 꼈고, 곧바로 방금 읽은 시놉시스를 바라봤다.

그리곤 깜짝 놀랐다.

“헉!”

그가 이렇게 크게 놀란 이유는 자신이 지금 끼고 있는 안경이 도깨비 안경이었기 때문이었다.

도깨비 안경으로 바라본 시놉시스에는 눈이 부실 정도의 황금빛과 파란빛이 반복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도깨비 안경의 기능에 따르면 황금빛은 돈을 뜻하는 것이고, 파란빛은 명성을 뜻하는 것이었으니, 만약 이서준이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 엄청나게 많은 돈과 드높은 명예까지 얻을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하… 이러면 이 영화를 꼭 찍어야 하잖아….”

사실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시장을 가진 미국에서 이런 천금과 같은 소중한 기회를 잡게 된 것은 분명 축복이었다.

그러나 장시간 미국에 있다 보니 그 역시 사람인지라 가족과 친구, 그리고 동료들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내심 도깨비 안경을 사용한 결과가 좋지 못하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출연 제의에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후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곡 작업을 어느 정도 끝낸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예상과 다른 너무나 좋은 결과에 그는 바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기쁘기도 했고 괴롭기도 할 찰나에 자리를 피해 주었던 케븐 파이스가 다시 미팅룸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영화 출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었기에 당분간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함에 괴로워하던 마음은 잠시 마음 한구석으로 밀어 두어야 할 때였다.

그래서 놓아 둔 물을 마시고 옷매무새도 챙기면서 마음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어느새 미팅룸에 들어온 케븐 파이스는 이서준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류는 다 읽어 보셨나요?”

“네, 다 읽었습니다.”

“그럼 혹시… 저와 그 배역에 관해 대화가 가능할까요? 아, 혹시 시간이 더 필요하시면 부담 없이 말씀하시면 됩니다.”

이서준은 그런 케븐 파이스의 물음에 자신 있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저도 묻고 싶은 게 많네요.”

“하하, 좋습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죠.”

“네.”

그렇게 두 사람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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