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162화 (162/189)

162. 세계 무대에 도전하다(1)

미국에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뉴욕으로 왔던 일본의 제니스 사단.

그들은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가 중간에 엎어지는 진귀한 경험을 하며 갈 곳 잃은 미아 신세가 되었다.

“이대로 일본에 돌아갈 수 없어요! 미국에 음반 회사가 워너즈 뮤직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하루아침에 말 바꿔 버리는 워너즈 뮤직이란 양아치 같은 회사 대신 그 이상으로 알아주는 다른 회사랑 계약을 하자고요!”

“……”

화가 난 무키야노의 주장에 사장 쿠로시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쿠로시노 사장은 화가 나서 아무렇게나 막말을 뱉고 있는 무키야노와 같은 충동적인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인 것은 아니었다.

모름지기 사업이란 이해타산에 관한 계산이 빨라야 하는 법인데, 쿠로시노 사장이 고개를 끄덕인 이유는 나름의 계산을 끝냈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보니 지금처럼 우스운 모양새가 되었는데, 이 모습 그대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너무 클 거라는 판단이 섰다.

마치 국책 사업과 같은 모양새로 외부에서 엄청난 자금을 투자받았는데, 그 거금을 들고 아무런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는 건 자신의 무능을 만천하에 스스로 까발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고다.

그와 더불어 이미 언론에서도 제니스 사단의 미국 진출에 관한 기사를 조금씩 내고 있는 시점이었기에 더더욱 이 모양 이 꼴로 돌아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무튼, 그렇게 결론이 모아진 그들은 미국에 남아 워너즈 뮤직을 대신할 회사를 찾게 되었고, 그런 노력의 결과로 일본 회사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길 정도로 일본 자금이 많이 투자된 ‘제니 뮤직’과 미국 활동에 관한 계약을 맺게 되었다.

어렵게 계약에 성공한 쿠로시노 사장은, 제니스 사단의 뮤지션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그들을 무시한 건방진 미국 놈들에게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여 주길 기원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계약을 망친 이서준이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한다는 기분 나쁜 소식만 전해져 속 시원한 복수를 꿈꾸는 그의 마음을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덜컥.

약간 거칠게 문을 열고 임시 작업실로 들어온 그는,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황당한 장면을 보고 일순간 말을 잃고 말았다.

왜냐하면, 지금 작업에 매진하고 있어도 시원치 않을 스냅스와 무키야노가 그들의 작업실에 여자를 데려와 놀고 있는 장면을 봤기 때문이었다.

사장의 등장을 확인한 스냅스의 리더 사쿠라 쇼헤이는,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그를 데리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사장 쿠로시노의 표정에서 어떤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쿠로시노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자신을 끌고 온 사쿠라 쇼헤이를 향해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이렇게 희희낙락거리며 놀고 있을 때야? 지금 우리를 물 먹인 이서준이란 놈이 할리우드 영화에까지 캐스팅되었다는 거지 같은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데 말이야….”

사쿠라 쇼헤이는 그제야 쿠로시노 사장이 화가 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마 미국 시장에 동시에 도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한국 가수 쪽에서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그를 화나게 만든 모양이었다.

사쿠라는 일단 화가 난 사장부터 달래기 시작했다.

“사장님, 일단 진정하세요. 저희 오늘 열심히 작업했어요. 사장님이 우리 작업할 때 오셨으면 화가 나지 않으셨을 텐데… 하필 작업 마치고 좀 쉬려고 할 때 오셨으니 저희가 마냥 놀고 있다고 오해하시는 거예요.”

사쿠라 쇼헤이의 변명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화가 곧바로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중요한 시기에 여자까지 불러서 노는 건 너무한 거 아냐?”

“아이고 진정하시라니까요. 일단 그건 정말 죄송해요. 그러나 잠깐 생각해 보세요. 일본에서는 사람들 눈 때문에 항상 참고만 살았던 녀석들이잖아요. 미국에서는 일본과 다르게 저렇게 놀 수 있으니… 이참에 저렇게 한번 풀어 주어야 일본에서 사고를 안 치죠. 안 그래요, 사장님?”

“…….”

일본에서는 저들의 대중적 위치 때문에 마치 수도승처럼 참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사쿠라 쇼헤이의 방금 말에는 쉽게 반박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마냥 이해해 주고 잘했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들을 향한 걱정이 담긴 충고는 잊지 않았다.

“그래도 조심해야 돼. 아무리 일본에서 엄청나게 멀리 있는 미국이라고 해도 너희를 살피는 눈이 없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그리고 이번에 제대로 된 성과를 못 내면 나는 물론이고 너희한테도 큰 피해가 생긴다는 사실도 절대 잊지 마. 그럼 나중에 정말 후회하게 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사쿠라 쇼헤이는 솔직히 쿠로시노 사장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지만, 지금은 일단 참고 달래야 하기에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사장님. 잘 알아들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기왕 여기까지 오신 김에 사장님도 함께 술 한잔해요. 사실 원래 좋은 음악이라는 게 이렇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편하게 놀다가 갑자기 나오는 거 사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안 그래요?”

그렇게 사쿠라 쇼헤이는 화가 났던 쿠로시노 사장을 잘 달랜 후 그와 함께 다시 작업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참 동안 그들의 즐거운 파티는 계속 이어졌다.

* * *

대한민국의 대표 걸그룹인 쓰리 타임즈의 멤버 나영은 요즘 많이 힘들었다.

왜냐하면, 어떤 사건을 계기로 대중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음악 방송에 출연한 나영은, 여러 가수가 모여 인터뷰할 때 선배 여자 가수가 앉았던 의자에 모르고 앉게 되었다.

그래서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돌아온 선배 가수는 잠시 우물쭈물한 모습을 보인 후 스태프의 지시에 따라 비어 있던 구석 자리에 가서 앉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쓰리 타임즈의 나영이 인기가 많다고 선배를 구석으로 보내 버린 후 자신이 센터 자리에 앉았다는 악의적 해석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해당 음악 방송은 촬영 중이라 스태프의 교통정리에 따라 자리가 그렇게 변했다고 설명하였고, 화제에 오른 선배 가수 쪽에서 나영은 모르고 앉았을 뿐이라는 해명을 해 주었지만, 물고 뜯을 먹잇감이 필요했던 인터넷 공간의 악플러들은 그런 그들의 말에 귀를 막고 눈을 막은 채 나영을 공격하는 글만 계속 재생산해 내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나영의 인성은 엉망이었다며 과거 그녀가 출연한 TV 프로그램 장면들을 교묘하게 편집한 화면을 증거 장면이라는 이름으로 올렸다.

가수가 된 이후로 가장 마음고생이 심할 거라고 여겨지는 그녀를 쓰리 타임즈 팬들은 걱정하기 시작했고, 나영은 그런 팬들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지은 채 브이로그 생방송을 촬영하고 있었다.

회사 내 휴게실에서 진행된 생방송에서 그녀는 자신의 팬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 정말 괜찮아요. 그리고 여러분의 응원 덕분에 너무 힘이 나네요.”

밝게 웃으며 말하는 그녀.

팬들은 그런 그녀의 밝은 모습에 조금씩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지금의 솔직한 심정은 전혀 편하지 않았다.

그저 억지로 참으며 방송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억지로 웃는 그녀의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우리 착한 동생 나영이가 여기 있었네.”

나영은 누군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고, 이윽고 크게 외쳤다.

“서준 오빠!”

놀랍게도 그녀의 뒤에서 나타난 잘생긴 남자는 이서준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영화에 앨범 작업에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야 정상일 터인데, 어쩐 일인지 회사에 나타난 것이었다.

“잘 지냈어, 나영아? 우리 미국에서 보고 4개월 만이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왜 미국에 있어야 될 사람이 여기에 있냐고?”

깜짝 놀란 나영처럼 그녀의 브이로그를 보고 있던 팬들도 난리가 났다.

-이서준이닷!

-악, 우리 서준좌! 얼마 만에 등장이시냐.

-보고 싶었어요, 오빠 ㅜㅜ

-서준 형! 보고 싶어서요.

나영의 팬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이서준의 등장에 환호했다.

미국에 가기 전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스타가 바로 이서준이었으니 이런 그들의 반응도 쉽게 이해가 갔다.

“내가 왜 한국에 있냐면… 아니다. 그냥 네 팬들하고 인사하면서 말할까? 팬들도 궁금하실 거 아니야.”

“그래? 그럴래?”

“응.”

어쩌다 보니 나영과 함께 브이로그를 진행하게 된 이서준.

개인 SNS상으로 나영의 브이로그에 이서준이 등장했다는 소식이 일파만파로 퍼졌는지, 그 짧은 시간에 엄청난 팬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브이로그 채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화면상에 얼굴을 드러낸 이서준.

그의 모습을 본 팬들은 환호했고, 이서준도 웃으며 팬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쓰리 타임즈 팬분들. 반갑습니다.”

나영은 팬들에게 인사하는 이서준의 옆에서 그의 인사를 정정해 주었다.

“오빠 팬들도 많아. 오빠가 네 브이로그에 나왔다는 소식에 찾아와 준 팬분이 엄청나잖아.”

“어? 그런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그는 곧바로 팬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연히 회사에 왔다가 나영이를 보고 인사하러 왔어요. 뒤에서 보니까 마침 브이로그를 하고 있더라고요. 우리 회사 동생들인 쓰리 타임즈 팬들이라서 반가운 마음에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많은 분이 저를 보러 와 주신 거 같네요. 반갑습니다.”

진짜 오랜만에 팬들과 소통하는 시간이라 그런지 이서준은 진심으로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진짜 한국에 왜 왔어? 미국에서 엄청나게 바쁠 시간 아니야?”

이서준은 나영의 물음에 미소 지으며 답했다.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 촬영하고 스케줄이 다르더라. 그리고 내가 출연한 영화가 CG 작업이 많은 영화라서 그런지 실제 촬영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더라고. 생각보다 촬영이 빨리 끝났어.”

“그래? 그래도 할 일이 있잖아. 미국에서 발매할 앨범 작업해야 하는 거 아니야?”

“맞아. 근데 앨범 작업은 꼭 미국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니잖아. 너무 미국에 오래 있었더니 한국에 너무 오고 싶더라고. 그래서 한국 와서 가족들하고 시간 좀 보내고 싶어서 들어왔어. 작업이야 일단 여기서 해도 되잖아. 나중에 곡 나오면 그때 미국에 갈 생각이야.”

“그래?”

그렇게 자신이 한국에 온 이유를 설명한 이서준은 카메라를 향해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제가 미국에 있으면서도 항상 한국 소식을 챙겨 봅니다. 근데 최근에 신경이 쓰이는 소식이 하나 있더라고요. 우리 나영이가 선배 가수에게 함부로 한다는 내용이 담긴 기사였는데요… 제가 그것과 관련되어 드릴 말씀이 있네요. 잠시 들어주시겠어요?”

나영은 이서준이 이런 이야기를 꺼낼 줄 몰랐기에 깜짝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