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세계 무대에 도전하다(2)
이서준은 카메라를 향해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겪어 본 나영이는 진짜 착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탓에 본인이 힘들어도 같이 힘들어할 동생들을 위해 먼저 웃으며 말을 건네며 응원하는 친구가 바로 이 친구고요, 그리고 같이 일하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고 해 주는 친구가 바로 이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 사람들은 나영이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왜냐면, 본인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친구거든요. 저 역시 나영이에게 많은 위로를 받은 적도 있었고요. 그리고 얼마 전에 미국에서 혼자 쓸쓸히 일하고 있는 게 걱정이 됐는지 우리 회사 JYK 형님과 함께 저를 위로하러 왔더라고요. 이모 보러 미국에 왔는데, 그 아까운 시간을 저한테 일부 할애할 정도로 마음 씀씀이가 남다른 사람이 바로 나영이란 사람이에요.”
나영은 카메라를 보며 이렇게 진지하게 말하는 이서준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자신을 위해 이렇게 선뜻 나서 주는 모습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사실 연예계에서 안 좋은 구설수가 생긴 사람에겐 일단 멀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돕기 위해 나선다고 해서 그런 구설수가 사라진다는 보장도 없고 자칫하면 그 사람에게도 불똥이 튈 수도 있는 게 연예계의 생리기 때문에 그냥 잠시 멀어진 채 소동이 잠잠해지는 걸 기다리는 게 흔한 행동 방식인데, 이서준은 그런 거는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나서고 있었다.
나영의 눈에는 그런 이서준의 행동이 놀라웠고 고맙기도 했다.
“제가 그 자리에 없어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따질 수는 없어요. 그러나 제가 여러분께 확실히 드릴 수 있는 말은 혹시나 당시의 상황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할 만한 장면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절대 이 친구가 그런 나쁜 마음을 먹고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제가 제 명예를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그러니 혹시나 그런 오해를 하고 계신다면 그 오해가 사실이 아님을 알려 드리고 싶고요. 그리고 혹시 본인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분이 오해하고 있다면 나영이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해하는 그분에게 꼭 말씀드려 주세요. 제가 이렇게 진심으로 부탁드릴게요.”
말을 마친 이서준은 카메라를 향해 정중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나영은 참고 있었던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우와앙, 고마워, 오빠.”
“…괜찮아, 나영아.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네… 오늘은 내가 있으니 편하게 울고… 내일부턴 울지 않도록 하자. 이 방송 보시는 팬들이 다 네 편 들어주실 거야. 알겠지?”
“흑흑… 응.”
이서준은 울음이 터진 나영을 계속 다독이며 옆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사람들은 한 편의 드라마 장면 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이날 이서준이 등장한 장면은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잠깐 동안 모습을 볼 수 없던 톱스타 이서준의 등장과 그리고 나영을 위한 부탁, 그리고 나영은 울고 이서준이 달래 주는 장면까지 사람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가 너무 많은 장면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해당 영상은 사람들에게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영상이 퍼져 나가자 놀라운 변화도 나타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재 대한민국의 최고 스타인 이서준의 말에 사람들이 영향을 받은 탓이었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착한 나영이 일부러 그랬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혹시나 그녀의 안티 팬들이 그때 그 일을 들먹이려고 하면 빠르게 나서서 진화해 가는 모습도 보였다.
-저거 다 컨셉이야. 카메라 앞에서는 저렇게 착하게 굴고 카메라 끄면 인기로 갑질하는 게 본모습일 거라고.
-아니 님이 어케 아셈?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뱉으시네.
-아니 보면 몰라? 직접 보라고. 자리 그냥 뺏어 버리잖아. 카메라에 자기만 나오려는 생각이 아니면 왜 저러겠어?
-아니 해당 프로그램 관계자도 자신이 실수로 자리 배치를 잘못 안내했다고 말했고, 해당 걸그룹 멤버도 그냥 단순한 해프닝일 뿐이었다고 직접 말했는데 왜 그건 생각 안 해? 님은 그냥 까고 싶은 거잖아. 안 그래?
이런 식의 댓글 설전이 이어졌지만, 나영을 옹호하는 글이 더 많아지면서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글들은 금방 힘을 잃고 사라지고 말았다.
* * *
콘서트 연습이 한창인 그때, 멤버 정현은 쉬고 있던 언니 나영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언니, 우리 언니의 아저씨 보러 가자.”
갑자기 다가와 알 수 없는 말을 건네는 정현의 모습에 나영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언니의 아저씨? 그게 무슨 말이야?”
“히히, 나영 언니의 아저씨 말이야. 언니 드라마 ‘나만의 아저씨’ 못 봤어?”
“그건 봤지. 세영 언니가 주연 맡은 드라마잖아.”
“하하, 봤네. 그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거 아니야? ‘나만의 아저씨’에서 아저씨가 어떤 존재야? 내 마음을 유일하게 알아주고 지켜 주는 뭐 그런 든든한 존재잖아. 얼마 전에 보니까 언니한테도 나만의 아저씨가 있더라고. 그리고 그분 오늘 부산에서 올라오셔서 오랜만에 작업실에 있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한번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나영은 그제야 정현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 이 자식. 언니를 놀리려고 하네? 안 되겠다. 제대로 혼쭐을 내 줘야지. 이리 와. 오늘 제대로 정신교육 해 줄게.”
“앗! 언니 왜 이래? 저리 가.”
“이리 오라고.”
연습실 안에서는 갑자기 두 사람의 추격전이 벌어졌고, 다른 멤버들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연습이 끝나고 난 뒤.
나영과 정현은 집으로 가지 않고 어디론가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그녀들은 아주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누군가의 작업실 문을 노크했다.
톡톡톡.
정현의 노크 소리에 작업실 문은 열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이서준의 매니저인 찬식이었다.
“찬식 오빠, 서준 오빠 안에 있어요?”
나영이 찬식을 향해 이렇게 묻고 있는데, 찬식의 뒤쪽에서 바로 그녀들이 찾던 사람의 모습을 나타냈다.
“어, 너희가 여기 웬일이야? 놀러 왔어?”
두 사람을 보고 놀란 이서준의 물음에 정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응, 놀러 왔어, 오빠. 나 오빠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거잖아.”
“그건 그렇네. 그럼 같이 휴게실에 가자. 나 안 그래도 배고파서 집에서 만들어 온 샌드위치 먹으려고 휴게실에 가려고 했거든. 많이 만들어 왔으니 같이 먹자.”
“오, 샌드위치?”
정현은 샌드위치라는 단어에 반색하며 반응했다.
왜냐하면, 힘든 연습으로 인해 매우 출출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휴게실로 간 세 사람.
매니저 찬식은 제대로 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본관에 있는 구내식당으로 보냈다.
친한 매니저들과 함께 수다를 떨면서 밥을 먹는 것이 찬식에겐 더 좋을 식사 시간이 될 거라고 판단한 이서준의 배려였다.
이서준은 휴게실에 도착한 후, 들고 온 에코백에서 도시락통을 꺼냈다.
그리고는 두 사람 앞에 뚜껑을 연 도시락통을 놓아주었는데, 정현과 나영은 그 도시락통에 든 샌드위치를 보고는 곧바로 탄성을 터뜨렸다.
“와, 너무 예뻐.”
“어머, 진짜 이게 뭐야? 이거 진짜 오빠가 만든 거 맞아요?”
깜짝 놀라며 묻는 정현의 모습에 이서준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내가 만든 거 맞아. 만들 때 먹어 보니 제법 맛도 있었으니까 우리 같이 맛있게 먹자.”
“네.”
드디어 시작된 시식 타임.
샌드위치를 들고 한 입 베어 먹은 두 사람은 다시 한번 탄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와아, 정말 맛있다.”
“맞아, 진짜 맛있어. 오빠 진짜 요리 잘하시네요. TV에서 본 모습이 진짜 사실이었어.”
정현은 이서준이 출연한 ‘윤레스토랑’의 한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감탄하고 있었다.
해당 프로그램에선 이서준이 만든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정말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감탄을 금치 못했었는데, 실제로 자신이 먹어 보니 사람들이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커피를 머그잔에 담아 온 이서준.
“커피도 좀 마시면서 먹어. 같이 먹으면 더 맛있을 거야.”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 나영의 옆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내려놓으며 소곤거리듯 말하는 이서준.
나영은 이런 자상한 이서준의 행동에 문득 방금 정현에게 들었던 단어가 생각났다.
‘나만의 아저씨…….’
얼마 전 브이로그에서 보여 주던 모습이나 지금 자신을 챙기는 이서준의 모습에서 정말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 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상념은 짓궂은 정현이 덕분에 바로 깨지고 말았다.
“히히, 언니 지금 무슨 생각해?”
“어, 나? 나 아무 생각 안 해.”
“진짜? 방금 표정이 조금 이상했는데….”
나영은 정현이 자신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지만, 애써 그녀의 얼굴을 무시하며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던 도중.
이서준은 문득 생각이 났는지 그녀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나 곡 하나 만들었는데, 이게 신기한 게 분명 내가 미국에서 앨범 낼 때 쓸 곡을 만들고 있었거든. 근데 만들고 보니까 이게 내가 부를 곡은 아닌 거 같더라고. 나보다는 여자 가수가 부르면 더 좋을 거 같은데… 혹시 한번 들어 봐 줄 수 있어?”
“어머 좋죠, 오빠. 오빠 노래는 언제나 환영이에요.”
“하하, 노래는 안 하고 연주만 할게. 아직 가사랑 멜로디는 약간 부족한 상황이야.”
이렇게 말한 이서준은 곧바로 자신의 작업실로 가서 기타를 들고 왔다.
그리고는 두 사람 앞에서 방금 자신이 만든 곡을 직접 연주하기 시작했다.
♩♩♪♩♪♪
경쾌한 리듬에 신선한 느낌이 가득한 곡이었다.
흥미로운 시선으로 기타를 치는 이서준을 바라보던 두 사람은 어느새 들려오는 기타 소리에 빠져 눈을 감고 감상하고 있었다.
잠시 뒤 연주가 끝나자 정현은 그와 동시에 눈을 번쩍 뜨며 이서준을 향해 말했다.
“서준 오빠, 너무 좋아요. 진짜 너무너무 좋다고요.”
나영 역시 정현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저도 너무 좋아요. 근데 오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거 같아요. 살짝 러블리한 느낌이 있네요. 그래서 오빠가 부르면 약간 여성스럽게 보일 수도 있을 거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이서준은 나영의 말에 완전히 동감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맞아. 나도 그래서 고민이었어. 이걸 내가 부르면 약간 중성적인 느낌으로 불러야 할 거 같은데… 그건 내가 내키지 않거든.”
이서준의 말을 들은 정현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잘됐네요. 오빠, 지금 이 곡은 저희 주세요. 저희가 부를게요. 오빠는 다른 곡으로 미국에서 데뷔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