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164화 (164/189)

164. 세계 무대에 도전하다(3)

이서준은 곡을 달라는 정현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진짜? 이 곡 받고 싶어?”

“네.”

정현의 대답을 들은 서준은 이번에는 나영에게 물었다.

“나영이도 너희 곡으로 하고 싶어?”

질문을 받은 나영은 잠시 주저하더니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오빠가 쓸려고 만든 곡이란 걸 아니까… 솔직히 말하기 힘든데… 그냥 오빠가 솔직하게 말해 주길 바라는 거 같으니, 진짜 솔직하게 말할게요. 저도 이 곡 저희가 불렀으면 좋겠어요.”

이서준도 내심 이 곡은 여자 가수에게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그리고 주고 싶은 가수 1순위에는 당연히 쓰리 타임즈가 있었기에 그로서도 기분 좋은 대답이었다.

“사실… 나도 너희가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했었어. 근데 너희가 직접 들어 보고 좋아해 주고 부르고 싶다고 하니 나도 기분이 좋네.”

“어머, 그래요? 진짜 너무 잘됐다. 자 그럼 이 자리에서 바로 도장 찍고 결론 내립시다. 이 곡 우리 주는 거 확실히 약속하는 겁니다.”

“하하, 알았어. 걱정하지 마.”

처음 구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 곡에게 드디어 주인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자식과 같은 곡에 주인이 생겼으니 작곡가로서 당연히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 힘이 빠지는 점도 있었다.

“근데, 약간 힘이 빠지는 기분도 드네. 미국 데뷔 앨범 때 사용하려고 잠도 안 자고 열심히 작업했었는데…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은 지금부터 다시 해야 하는 거잖아. 그 생각하니 온몸에 힘이 쭉 빠져.”

이서준의 말을 들은 나영은, 본인 역시 공감이 된다는 표정으로 그를 위로했다.

“오빠, 힘내요. 이러다가 또 어떤 계기가 생기면 금방 멋진 곡을 만들어 낼 사람이 바로 오빠잖아요. 여태까지 오빠 곡들 제가 알기론 시간 많이 든 곡들은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래, 열심히 작업하다 보면 금방 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겠지?”

“당연하죠.”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정현은,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눈을 반짝이며 이서준에게 말했다.

“오빠, 내가 방금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말해 줘요?”

이서준은 그녀의 말에 호기심을 나타내며 물었다.

“좋은 생각? 어떤 생각?”

“내가 방금 생각난 건데요… 오빠 이번에는 조금 섹시한 느낌의 노래를 해 보면 어때요?”

“섹시?”

‘섹시’라는 단어에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서준.

지금까지 꽤 많은 곡을 썼지만, 섹시한 느낌을 담아 본 적이,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한 적도 없던 터라 그 단어에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현은 그런 이서준의 격한 반응에 더욱 신이 난 사람처럼 더 강한 어조로 자신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니 왜요, 오빠? 내 생각에는 오빠도 섹시한 느낌 잘 어울릴 거 같은데….”

“내가?”

“응, 오빠. 그리고 항상 하던 스타일이 아니라 새로운 스타일이 사람들에게 더 잘 먹힌다는 사실 몰라요? 원래 대중은 낯선 모습에서 더 큰 희열을 느끼는 법이라고.”

“…….”

정현의 열정적인 설명에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이서준.

생각조차 한 적 없던 컨셉 제시에 여전히 거부감이 가시질 않는 모양이었다.

이 상황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나영도 할 말이 생겼는지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정현이 의견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물론 오빠가 강력한 남성적 매력을 어필하면서 노래를 한 적은 없지만… 그래서 더 시도해 볼 만한 도전인 거 같아요. 그리고 드라마 ‘미라클’에서 오빠 모습을 보고 진짜 섹시하다고 느꼈던 여자들도 많았어요. 드라마 댓글에 진짜 그런 내용이 많았거든요.”

본인 역시 드라마 속 이서준의 모습을 보고 너무 섹시하다고 느꼈던 사람 중 하나란 사실은 굳이 언급하지 않는 나영이었다.

두 동생의 비슷한 의견.

여전히 ‘섹시’라는 단어가 어색하고 낯설긴 했지만,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강하게 추천해 주니 망설이던 이서준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 * *

“섹시라….”

나영과 정현의 의견에 따라 ‘섹시한 느낌의 곡’을 한번 만들어 보기로 마음먹고 작업에 들어갔지만, 곡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게 흘러가고 있었다.

한참 동안 기타도 쳐 보고, 피아노 건반도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두드려 보았지만, 아직까지 좋은 결과물을 만들지 못했다.

예상보다 더딘 작업 진도에 잠깐 고민에 빠진 그는, 얼마 후 무언가를 결심한 모습으로 가방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가 가방에서 꺼낸 물건은 향수였다.

“…이게 효과가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간 도깨비 상점.

그는 그곳에서 미국 데뷔 앨범 수록곡 작업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찾았다.

제법 꼼꼼히 상점 속 물건들을 살폈지만, 그나마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해 온 물건이 바로 이 향수였다.

향수의 이름은 이름부터 강렬한 ‘악마의 유혹’이었다.

악마가 사람을 유혹할 때처럼 누군가를 유혹할 때 쓰는 향수라는 설명에 과감히 구매하긴 했지만, 그 역시 이게 어떤 도움이 될 거라는 구체적인 쓰임새를 완전히 파악한 후 구매한 것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모 아니면 도란 생각에 산 것이다.

“에이 모르겠다. 그냥 몸에 뿌려 보자. 그리고 기다려 보는 거야.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말이야. 내가 지금 물불 가릴 처지는 아니잖아. 한번 도전해 보고… 아니면 그만인 거지, 뭐.”

생각과 다르게 도깨비 상점에서 산 향수가 곡 작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딱히 없었기에 그냥 마음 편하게 그냥 뿌려 보고 반응을 살필 생각이었다.

테이블 위에 있던 향수를 들어 조심스럽게 자신의 몸에 뿌려 보는 이서준.

일단 뿌려 보니 냄새가 좋았다.

그러나 보통의 향수와 크게 다른 점은 일단 느껴지진 않았다.

그렇게 조금 더 기다려 보는 이서준.

아무리 가만히 기다려 봐도 별다른 변화가 느껴지진 않았다.

결국, 아무런 변화가 생기질 않았다고 판단한 이서준은 곧 크게 실망했다.

“이게 뭐야? 아무런 변화가 없잖아? …귀중한 이용권만 날려 버렸네.”

더 기다려 봐도 변화가 생길 거 같지는 않았다.

어렵게 얻은 이용권을 사용해서 구매한 물건이었기에 실망감도 제법 컸다.

그러나 계속 실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서둘러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했다.

이서준은 다시 다른 방법을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하다 문득 든 생각은 대중들에게 섹시하다고 평을 받는 곡들을 다시 한번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이서준은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노트북을 켜서 요즘 가장 섹시한 남자 가수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얼리엇 무크의 ‘누가 감히 나를 유혹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재생시켰다.

♩♪♪♩♩♪

곡 도입부부터 듣는 사람의 귀를 간지럽히는 기타 선율에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분명 전에 들은 적이 있는 곡인데도 이번에는 다른 때와 다르단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역시 이 곡은 요즘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라틴 팝 장르의 대표곡답게 인상적인 기타 루프와 강한 드럼 소리가 무척 매력적으로 들렸다.

‘!’

순간 다시 이상함을 느낀 이서준.

마치 잠들어 있던 세포가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귀에 들리는 소리들이 마치 음표로 변해 잠자고 있던 뇌를 때려 깨우는 듯한 자극적인 느낌에 이서준은 많이 놀라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처음 겪는 이상한 변화에 당황한 그의 머릿속으로 갑자기 어떤 멜로디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에 놀란 그는 이대로 자신도 모르게 재생 중이던 뮤직비디오를 일시 정지시킨 뒤 황급히 작업실 한편에 놓아둔 전자기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머릿속에 그려진 멜로디 라인대로 기타를 미친 듯이 연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접신한 사람처럼 음악에 푹 빠진 그가 연주하는 기타 소리는 평소의 그가 했던 음악과는 진짜 많이 다른, ‘끈적거린다’는 표현이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없는 느낌의 멜로디였다.

그렇게 한참을 연주하고 드디어 정신을 차린 이서준은, 그냥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방금 연주한 곡의 여운이 아직 그의 몸에 강하게 남았기 때문이었다.

“와… 이게 도대체 뭐였지?”

자신이 만들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곡에 이서준은 한참 동안 여운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다시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그제야 제법 정신이 든 그는, 방금 연주했던 곡을 다시 한번 천천히 연주해 보았다.

그리고 차분하게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 곡은 확실히 이전에 연주했던 곡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색깔을 가진 곡이었다.

색깔에 비유하자면 매우 짙은 빨간색이 어울릴 만한 곡으로, 만들고자 했던 ‘섹시함’이 물씬 묻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만들었네… 이게 갑자기 왜 생각난 거지? 혹시 악마의 유혹 때문인가?”

분명 조금 전까지 섹시한 느낌의 곡을 어떻게 만들지 하는 고민 때문에 혼자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향수를 뿌린 후 얼리엇 무크의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이 멜로디 라인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악마의 유혹이란 향수를 뿌린 덕분에 얼리엇 무크의 음악이 그에게 아주 강한 자극을 주었다는 식의 가설을 생각해 봐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이게 ‘악마의 유혹’이란 향수의 진정한 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번 해 보았다.

“뭐, 어쨌든 원하던 곡이 나왔잖아. 기분 좋게 말이야… 그럼 악마의 유혹의 기능에 대해서는 찬찬히 생각해 보고… 지금은 이 곡을 제대로 곡을 완성하는 데 집중하는 게 옳은 일이겠지?”

이렇게 중얼거린 이서준은 다시금 곡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 * *

나영은 회사에 연습하러 가기 전 이른 시간부터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주방에 있었다.

그 때문에 숙소는 음식 냄새로 가득했고, 쓰리 타임즈 멤버들은 평소와 다른 냄새 때문에 주방 안을 힐끔힐끔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언니 뭐 해?”

다른 사람처럼 주방 안이 궁금했던 정현은 요리 중인 나영을 발견하고 주방으로 들어오며 이렇게 물었다.

“샌드위치 만들어. 저기 너 주려고 만들어 둔 거 있으니 먹어.”

“어머, 내 것도 있어?”

“…그야 당연히 있지. 너 질문이 좀 이상한 거 아냐?”

“히히, 뭐가 이상해. 누가 봐도 서준 오빠 주려고 샌드위치 만들고 있는 거 알겠던데. 히히, 일단 잘 먹을게 언니.”

나영은 아주 짓궂게 웃으며 자신이 만든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정현이 오늘따라 미워지려고 했다.

쓰리 타임즈 멤버들의 매우 좋은 시식평을 들은 나영은 자신감을 가지고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드디어 회사에 도착한 그녀.

아주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곧장 이서준의 작업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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