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세계 무대에 도전하다(5)
거슬리는 단어를 내뱉는 마이클 본 사장의 모습 때문에 화가 많이 났지만, 사회 초년생처럼 티를 낼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웃는 얼굴로 화가 났음을 숨기며 자연스럽게 그의 말을 받았다.
“하하, 회사를 위해 그저 열심히 뛰어다녔을 뿐입니다. 부사장이라는 중요한 직을 맡고 있으면서 누구처럼 무능력한 경영자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하하하.”
슈나이저 부사장은 너털웃음과 함께 가시 돋친 말로 마이클 본 사장의 말에 응수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 마이클 본 사장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젠 대놓고 달려드는군. 휴… 지금부터는 감출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
회사를 위해 그 누구보다 협력해야 할 두 사람이 이젠 전쟁을 선포한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한편으론 마음이 좋지 못했다.
자신은 그저 자신과 회사를 위해 임원들의 제안에 따라 사장직을 맡았을 뿐인데, 부사장이란 사람은 정당하게 임명된 자신을 절대로 인정하고 싶은 않은 모양이었다.
이런 현실은 마이클 본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단 하나였다.
그 방법은 바로 자신이 나가거나 아니면 슈나이저 부사장이 나가거나, 즉 둘 중 하나는 회사를 떠나야 이 비효율적인 싸움이 끝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클 본은 이대로 순순히 사장직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만약 자신이 물러난다면, 지금 이사진의 여론에 따라 슈나이저 부사장이 다음 사장으로 취임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저런 사람이 사장이 되는 것은 회사를 위해서도 반드시 막아야 하는 일이기에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저도 앞으로는 절대 가만히 당하고 있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 부사장님께서도 언행에 특별히 신경 써 주시길 바랍니다.”
대놓고 경고의 말을 건네는 마이클 본을 바라보는 슈나이저 사장의 얼굴에는 다시 한번 미소가 피어올랐다.
물론 이번 미소에 담긴 의미는 명백히 조롱이었다.
“제 걱정을 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충고를 받은 김에 저 역시 이 자리에서 일어나기에 앞서 반드시 따르셔야 할 조언 하나 드리겠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들 있으시면 미리 프로듀서 자리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놓으십시오. 왜냐하면, 얼마 뒤에 사장직은 물론이고 우리 회사 내 프로듀서직까지 모두 맡을 수 없게 되는 힘든 현실을 맞이하실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는 여러 곳에 미리 부탁해 놓는 것이 아주 현명한 판단이란 말씀을 꼭 드리고 싶네요. 아, 어느 곳도 선이 닿지 않는다면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서로 간의 옛정을 생각해서 제가 발 벗고 나설 의향도 있으니까요, 하하하.”
이런 무시무시한 경고를 담은 말을 끝으로 건넨 슈나이저 부사장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회의실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자신을 사장직에서 끌어내리려는 주적과의 피곤한 대화를 마친 마이클 본은, 초췌한 모습으로 자신의 업무실로 돌아왔다.
‘결국, 필요한 건 실적이군.’
슈나이저 부사장이 자신을 공격하는 포인트가 바로 사장이 바뀌고 난 뒤 기대했던 경영 실적이 전혀 상승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경영 실적이 좋아지면 슈나이저 부사장의 공격은 무력화되고, 역습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해가 가질 않는 부분도 있었다.
분명 최근에 애슐리 브룩의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왜 워너즈 뮤직의 경영 실적은 나아지지 않은 것일까?
그 이유는 회사 내 뮤지션들이 오랜만에 컴백했고, 그들의 컴백이 상업적으로는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경영 지표로만 지금 회사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마이클 본의 입장에선 매우 억울한 부분이 많았다.
그가 생각하기엔 자신이 사장을 맡은 후에 회사는 점점 정상화되는 중이었다.
워너즈 뮤직은 미국 내 음반 회사 중 가장 질 높은 음악을 추구하는 제대로 된 음반 회사로 알려진 회사였다.
회사 내에는 진짜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많았고, 그런 그들이 음악성은 물론 상업적으로까지 성공을 거두면서 미국 내 몇 손가락에 드는 메이저 음반 제작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워너즈 뮤직의 음악적 위상이 많이 더럽혀진 상태였다.
회사가 커지고 투자 영역이 넓어지면서 점점 상업적 프로젝트만을 추구하는 바람에 돈만 뒤쫓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새로이 생긴 덕분이었다.
상업적인 프로젝트는 처음에는 회사의 매출 증대에 기여한 바가 무척 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영향도 점점 사라져 갔다.
대중도 그런 반복적인 시도에 익숙해진 탓에 점점 ‘워너즈 뮤직’표 음악에 실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러한 영향들로 인해 음악을 정말 잘하는 회사라는 본래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회사의 바람으로 새로 사장직에 오른 사람이 바로 프로듀서 출신 마이클 본 사장이었다.
본래의 회사 색깔을 되찾고자 하는 바람이 담긴 인사 조치였다.
마이클 본은 그런 회사의 바람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부담스러운 사장직에 맡기로 결정하였고,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괄목할 만한 성과도 보여 주고 있었다.
한때 퇴물 가수라는 놀림까지 받았던 애슐리 브룩을 멋지게 부활시켰고, 상업적인 프로젝트에 막혀 앨범을 내지 못했던 회사 내 아티스트들도 빠르게 컴백시키며 음악 마니아층에게 좋은 평가도 받고 있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판단하면 분명 마이클 본 사장은 회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사회 임원 중 절반 정도는 그런 자신의 노력들을 비뚤어진 상업적 잣대로만 보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 임원들이 있었기에 제이크 슈나이저의 비열한 뒷공작에 이사회 내 여론이 급격히 나빠진 것이었다.
현재 상황이 이러했기에 마이클 본 사장의 입장에선 슈나이저 부사장의 공작을 막아 내야 했고, 그러한 공작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시 한번 애슐리 브룩과 같은 큰 성공을 보여 주면 되었다.
마이클 본 사장은 이러한 문제들로 꽉 찬 머릿속에서 두통을 느끼는 상태로 자신의 e-메일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업무 루틴과 같은 일이었기에 별다른 기대 없이 그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메일 창을 살펴보던 그의 눈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일순간 조금 커지는 변화를 보였다.
왜냐하면, 한국으로 넘어간 이서준에게서 메일이 왔기 때문이었다.
“미국 데뷔 때 쓸 만한 곡을 2곡이나 만들었다라…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소식이군.”
내심 기대 중인 이서준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었기에 그는 곧바로 e-메일로 보내진 곡을 재생해 보았다.
‘!’
음악을 듣던 마이클 본의 표정이 일순간 확 바뀌었다.
물론 그의 표정이 갑자기 바뀐 이유는 당연하게도 이서준이 보내 준 곡 때문이었다.
처음과 다르게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음악을 듣는 마이클 본 사장.
그는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이서준이 보내온 곡을 계속 반복 재생해 듣고 있었다.
그렇게 수십 번을 반복해서 이서준의 곡을 들은 그는, 이내 결론을 내렸는지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데뷔시켜야겠어. 이건 무조건 뜨는 곡이야.”
조금 전까지 슈나이저 부사장 때문에 골치 아파하던 사람은 어느새 사라지고, 훌륭한 곡과 가수를 찾은 프로듀서의 눈으로 일에 몰두하는 그였다.
* * *
시간은 제법 흘러 드디어 많은 사람이 기대하던 마벌 스튜디오의 신작 ‘상춘’이 개봉하였다.
마벌 스튜디오의 첫 아시안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답게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으며 야심 차게 개봉한 ‘상춘’이었다.
그러나 기대와 다르게 개봉 성적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상춘’의 평이 좋지 못한 이유는 디즈니와 마벌 스튜디오가 만들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중국 영화 같은 느낌이 많이 났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영화에 중국 자본이 대량으로 계속 들어오면서 촬영이 진행됨에 따라 영화는 처음 기획과 많이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케븐 파이스가 가장 염려했던 점이 이러한 부분이었는데, 그가 고군분투하며 영화에 영향을 주는 외부 알력을 최대한 막으려고 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넘쳐나는 중국 자본의 힘을 완전히 막기엔 그가 가진 힘이 너무 모자랐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에는 중국 색이 강하게 풍기기 시작했고, 이것은 흥행 실패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수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상춘’에 출연한 조연 중 한 명인 대한민국의 이서준이 크게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서준의 출연 분량은 그다지 많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의 뛰어난 연기력과 실제처럼 보이는 화려한 액션 연기로 인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그에게 극찬을 보냈다.
“와, 너무 잘생겼어. 차갑게 웃을 때 왜 이렇게 섹시해? 혹시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거야?”
“아니야. 나도 그랬어. 진짜 멋지더라. 약간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까지 나면서… 또 액션도 너무 좋지 않았어? 그리고 예상과 다르게 발음도 너무 좋더라.”
“아, 맞아. 발음도 너무 좋았어. 약간 영국 사람처럼 발음하는 부분에서는 진짜 섹시하게 들리더라.”
“나도 그랬어. 하하.”
이렇게 호평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이서준이 연기한 ‘엘른’에 대한 평은 영화의 실패와는 너무 다르게 찬사 일변도였고, 그것은 이후에 등장한 마벌 스튜디오 영화에 그가 계속 출연하길 바란다는 팬들의 요청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 * *
“우리나라의 스타 이서준 씨의 주가가 연일 최고점을 돌파하는 모습입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팬들도 이서준의 근황에 매우 관심이 많은데요, 이서준 씨의 영상이 꾸준히 올라오는 그의 너튜브 채널 내 영상들을 살펴보면, 현재 미국에서 앨범 준비에 여념이 없는 거 같습니다. 그런 이서준 씨의 모습을 본 국내 팬들은 미국 활동을 끝내면 꼭 국내 활동에 나설 줄 것을 강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연애 뉴스 캐스터의 말처럼 이서준의 국내 인기는 다시 한번 최정상을 뚫어 버리고 말았다.
국내에서 이미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그였지만, 전 세계인이 기대하는 마벌 스튜디오 영화에 그가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누구보다 괄목할 만한 활동을 보여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인기는 국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인기몰이에 성공한 아시아 시장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팬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지금 현재 가장 섹시한 남자 연예인 중 한 명이 되면서 아시안 남자 팬에게 유독 차가웠던 백인 여성들까지 이서준을 가장 섹시한 남자 배우로 꼽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인종을 초월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