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세계 무대에 도전하다(6)
이러한 미국 그리고 유럽에서 이서준의 인기는 가히 ‘신드롬’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거세지고 있었다.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는 이러한 현상에 관해 다음과 같은 멘트를 남겼다.
“이건 매우 중요한 변화입니다. 이미 음악적으로 봤을 땐 동양 아니 아시아 음악이 서구 음악사에 신선한 자극을 주게 된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만큼은 여전히 보이지 않은 굳건한 벽이 세워져 있었죠. 그러나 이번에 이서준이란 배우가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의 많은 사람에게 그러한 보이지 않는 인종의 벽에 균열이 생기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오리엔탈 문화가 널리 퍼지게 되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서준의 뜨거운 인기는 자연스럽게 그가 맡은 ‘엘른’을 주인공으로 하는 솔로 무비 제작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의 팬들은 SNS를 통해 ‘엘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시리즈 제작을 마벌 스튜디오에 공식적으로 요청하게 되고, 마벌 스튜디오에서도 ‘엘른’의 솔로 무비 제작에 관해 매우 긍정적으로 고려 중이라는 대답이 담긴 견해를 밝히면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물론 ‘상춘’이란 영화에서 아시안 배우가 주연을 맡았었지만, 이것은 스토리 배경이 중국이라는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진짜 순수하게 아시안 주인공이 블록버스터 영화에 주연을 맡은 예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만약 진짜 ‘엘른’이 제작이 되고, 백인이나 흑인 배우들과 함께 엘른 역의 이서준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나온다면, 길고 긴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처음으로 블록버스터 영화에 아시아인이 주인공을 맡는 첫 예가 되는 영화가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었기에 이서준의 영화를 기다리는 팬들의 입장에선 이것보다 설레는 일은 없었다.
* * *
일본의 한 연예 정보 프로그램.
진행자 요노 마세무노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첫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시작부터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일본 대중 음악계의 자랑인 그룹 ‘스냅스’가 고대하던 미국 데뷔를 이제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스냅스’의 미국 데뷔 앨범 타이틀곡은 J-팝의 떠오르는 신성 무키야노 스즈끼 씨가 맡았다고 하는데요, 정식 데뷔를 앞두고 뮤직비디오 촬영에 한창인 그룹 ‘스냅스’를 만나러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자 요노 마세무노의 말이 끝나자 화면은 자연스럽게 미국의 뮤직비디오 촬영장으로 넘어갔다.
아름다운 얼굴의 리포터가 한창 촬영 중인 촬영장으로 걸어갔고, 한쪽 편에 서서 스냅스의 뮤비 촬영을 진지하게 쳐다보고 있는 무키야노 스즈끼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키야노 씨, 안녕하세요. 지금 혹시 뮤직비디오 촬영을 도와주고 계시는 건가요?”
무키야노는 리포터의 질문에 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네. 제가 옆에서 곡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장면들이 나오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작곡자가 저니까 제가 이런 부분은 가장 잘 체크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스냅스 형들이 저에게 부탁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인터뷰.
인터뷰는 시종일관 좋은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나 갈 때쯤 리포터는 무키야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번에 스냅스가 미국 데뷔 때 부를 노래는 어떤 스타일의 곡인가요?”
무키야노는 그녀의 질문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주 미국스럽다고 할 수 있는 노래에요. 미국 음악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컨트리풍과 로큰롤 리듬에 요즘 유행 중인 시티팝을 적절히 가미한 노래라고 할 수 있죠. 이 노래를 들을 사람들이 매우 좋아하실 만한 노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머, 정말요? 설명만 들어도 어서 빨리 듣고 싶은 노래네요. 그럼 정식 발매일은 언제인가요?”
“3일 뒤에요.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일본 매체에서는 연일 ‘스냅스’의 미국 데뷔에 관한 소식을 전하며 그들의 데뷔를 지원하는 모양새였다.
이것은 빌보드 차트에 차트인 하기 위한 물밑작업의 의미가 담긴 행동이기도 했다.
일본 팬들이 단합된 응원을 보내 줘야만 안정적으로 빌보드 차트에 바로 차트인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깔린 언론 활동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3일이 지난 후.
정식으로 미국에 데뷔한 스냅스의 ‘happy day’는 발매 첫날 빌보드 차트 89위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일본 내 언론은 이런 스냅스의 괄목할 만한 음원 성적에 매우 흥분하게 되었고, 이러한 성과는 곧 일본의 음악이 미국 내에서 통한다는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즉, 일본 음악의 우수성을 만천하에 증명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요즘 세계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K-팝과 비교하면 일본의 J-팝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하였으며, K-팝이 J-팝을 따라 해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는 식의 정신 승리 기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일본의 호들갑을 지켜보는 다른 나라 언론들은 고작 한 그룹이 빌보드 100에 차트인 한 경우를 두고 확대 해석하는 일본 매체의 보도를 보고 어이가 없어 코웃음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 * *
이서준의 미국 정식 데뷔 D-1.
미국 최고의 토크쇼 오비라의 ‘화려한 밤’이 방영되고 있었다.
오늘 방송은 다른 방송보다 특히 특별한 방송이었는데, 그 이유는 최근 할리우드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캐서린 파크가 출연했기 때문이었다.
원체 방송에 출연하지 않기로 유명한 그녀의 출연이었기에, 오늘의 ‘화려한 밤’은 그 어느 때 방영된 ‘화려한 밤’보다 더욱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토크쇼가 어느덧 중반쯤 진행됐을 무렵, 진행자 오비라는 조금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그녀에게 던졌다.
“캐서린, 최근 어떤 남자에게 푹 빠졌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그 소문이 사실인가요?”
미국의 여배우 캐서린 파크는 진행자 오비라 윈터스의 다소 곤란한 질문에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역으로 물었다.
“최근 어떤 남자에게 푹 빠진 사람은 오히려 오비라 당신 아닌가요?”
오비라 윈터스는 캐서린 파크의 역습에 너털웃음으로 화답했다.
“하하하, 맞죠. 제 이야기 맞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둘에겐 공통점이 있네요. 한 남자에게 푹 빠진 여자라는 점에서 말이에요.”
“하하, 정말 그러네요.”
두 사람이 이렇게 짓궂은 질문을 주고받으며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대화가 사전에 준비된 대화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캐서린 파크가 오늘 이 TV 프로그램에 나오기로 결심한 이유는, 자신의 인기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기가 아니라 어떤 사람을 위해서 출연을 결심하게 된 것이었는데, 그 사람은 잠시 뒤 직접 스튜디오에 깜짝 등장할 계획을 세워 둔 상태였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모두 반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네, 너무 궁금해요.”
오비라가 토크쇼에 함께하고 있는 방청객에게 물었고, 그녀에게 질문을 받은 방청객들은 웃으며 마치 한목소리인 것처럼 동시에 대답했다.
그런 방청객의 모습이 무척 귀여워 보였는지 오비라는 그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누군가를 소개했다.
“저와 캐서린의 마음을 동시에 뺏은 남자. 이 남자는 영화 ‘상춘’에서 엘른 역을 맡아 열연을 선보인 분이기도 합니다. 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미국을 충격으로 빠뜨린 가수이자 배우, 이서준입니다.”
오비라의 소개말이 끝나자 한쪽 편에 마련되어 있던 무대의 벽이 갑자기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벌어진 틈 사이에는 숨겨져 있던 또 하나의 무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는 이서준이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 앉아 있었다.
♪♩♪♪♩
곧이어 들리는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
이서준은 지금 자신의 미국 데뷔곡 중 하나인 ‘내가 사랑에 빠졌던 순간’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청객 중 한 명은 이서준을 알아보고 이렇게 외쳤다.
“어머, 엘른이야!”
이러한 방청객의 모습은 지금 현재 TV로 이 토크쇼를 보고 있던 많은 이들의 모습과 같았다.
그 정도로 최근 미국 내 이서준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서준의 피아노 연주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순식간에 흔들어 버리고 있었다.
분명 처음 듣는 곡이 분명했지만, 아름답고 서정적인 느낌의 도입부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머릿결을 흩날리던 그때 나는 우연히 너의 옆 모습을 보게 되었지♪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운명이란 단어를 마음속에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
운명처럼 나타난 그녀 때문에 순식간에 사랑에 포로가 된 남자의 마음을 노래한 이 곡은, 이서준의 미국 데뷔 앨범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내가 사랑에 빠졌던 순간’이었다.
쓰리 타임즈의 나영과 함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 올랐을 때의 기억을 모티브로 삼아 만든 노래였는데, 워너즈 뮤직 소속 프로듀서들은 이 노래를 듣자마자 이서준의 미국 데뷔 앨범 메인 타이틀곡은 바로 이 곡이라며 강력하게 추천했다.
그래서 첫 공식 활동에서 가장 먼저 부르는 곡이 되었다.
♩운명적인 너와 나의 만남♪
♩내 눈에는 너만 보였고 내 마음은 너만 느꼈고 내 손은 너만 만질 수 있었어♪
어느새 절정 부분에 도달한 노래.
후렴 파트에서 이서준의 감성은 드디어 폭발했다.
듣는 사람은 그의 폭발적인 감성의 폭풍우에 함께 젖어 들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이서준의 노래가 끝나자 방청객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향해 기립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짝짝짝.
짜릿.
그리고 그런 환호를 받은 이서준은 순간 쾌감을 느꼈다.
이서준은 이번 무대가 미국에서의 첫 공식 무대였다.
그래서 솔직히 걱정도 많았었는데, 다행히 노래는 순조롭게 끝낼 수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놀라움에 서둘러 확인한 방청객의 얼굴에는 자신을 보며 크게 감격한 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나 있었기에 그것을 본 이서준은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환상적인 무대를 보여 준 이서준에게 가장 열렬히 박수를 보내는 사람 중 한 명은 바로 이 토크쇼의 주인인 오비라였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크게 손뼉을 치며 이서준을 향해 외쳤다.
“브라보, 브라보. 너무 잘했어요, 서준. 자, 그리고 노래 끝났으니 어서 이리로 와요, 로맨틱 가이!”
오비라의 부름에 따라 메인 토크쇼 무대로 이동하는 이서준.
곧이어 세 사람이 모두 소파에 앉자 흥분한 오비라가 이서준을 향해 바로 질문했다.
그녀는 지금 그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