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미국 침공(1)
“서준, 방금 부른 이 노래가 이번에 발표할 노래인가요?”
“네, 맞습니다. 제 미국 데뷔곡이에요. 괜찮았나요?”
오비라는 이서준의 물음에 너무 좋았다는 말보다 더욱 진심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환상적이었어요. 뭐랄까… 약간 올드팝 느낌도 묻어나긴 했었는데… 신기한 점은 절대로 올드하게 느끼지는 않았어요.”
이런 오비라의 감상평에 옆에 있던 캐서린도 자진해서 동참했다.
“맞아요. 저도 이 노래 처음 들었을 땐 옛날에 즐겨 듣던 명곡을 들었을 때와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근데 더 놀라운 점은 의외로 신선하다는 느낌도 받았다는 점이었죠. 진짜 너무 신기하죠, 오비라?”
“네, 그렇네요, 정말 신비스러운 마법과 같은 노래였어요.”
오비라의 평소 노래를 평가할 때의 엄격함을 잘 아는 팬들은, 그녀가 지금 이서준에게 얼마나 극찬을 보내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음악에서만큼은 매우 냉철한 잣대로 평가하는 그녀였기에, 예전에 그녀의 쇼에 출연한 가수 중 몇 명은 그녀의 차갑고 냉철한 평가로 인해 크게 실망해서 우는 모습까지 보인 적이 있었다.
그래도 혹평을 가하는 오비라에게 따질 수가 없는 것이 그녀의 감상평은 그 어떤 전문가보다 더 전문적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모습을 수차례 보여 줬던 그녀가 이 정도로 호평 일변도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가 듣기에 정말 최고의 노래였다는 뜻이었다.
오비라는 이 노래와 캐서린이 얽힌 일화를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대화를 틀어 나갔다.
“이 곡 제목이 ‘내가 사랑에 빠졌던 순간’ 맞죠?”
“네, 맞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 뮤직비디오에 우리 사랑스러운 캐서린이 자진해서 출연했다는 소문도 사실인가요?”
이번 물음에는 질문 속 등장인물인 캐서린이 직접 나서서 대답했다.
“네, 맞아요. 진짜 오랜만에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게 되었어요.”
“전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 귀를 의심했어요. 제가 아는 캐서린은 뮤직비디오에 자진해서 출연하겠다고 말할 사람이 절대 아니거든요. 도대체 어떤 이유로 뮤직비디오에 직접 출연하겠다고 연락을 한 것인가요?”
캐서린은 오비라의 물음에 ‘씩’ 하고 크게 미소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과 같은 이유로요. 사실 서준 씨가 이 쇼에 초대된 이유가 바로 오비라 당신의 강력한 오퍼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다시 한번 역습을 가하는 캐서린.
그런 그녀의 역공에 오비라는 다시 한번 웃으며 대답했다.
“후후, 맞아요. 서준이 마이클 존슨의 추모 무대에서 노래하는 장면을 현장에서 봤었거든요. 그때 이 남자의 노래를 듣고 마음속으로 결심했어요. 제 쇼에 반드시 출연시켜야겠다고요. 그래서 정식으로 오퍼를 넣고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엘른’ 역으로 영화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더군요. 그래서 더욱 우리 쇼에 나오게 다시 강하게 오퍼를 보냈죠. 그게 바로 지금 서준이 이 소파에 앉아 있는 이유에요.”
두 사람 모두 이서준이란 가수에게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바로 마이클 존슨의 추모 공연 무대였다.
우연히 두 사람 모두 객석에서 마이클 존슨의 추모 무대를 보고 있었는데, 처음 본 이서준의 무대에 완전히 그에게 반해 버렸다.
그리고 이서준에게 반한 캐서린은 우연히 알게 된 그의 뮤직비디오 촬영 소식에 스스로 자청해서 출연하겠다는 뜻을 먼저 보내게 되었고, 오비라는 앞서 설명한 대로 계속 이서준의 ‘화려한 밤’ 출연을 강력히 요청한 결과 지금 이서준이 오늘 이 자리에 등장하게 되었다.
오비라는 다시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방청객을 향해 물었다.
“여러분 혹시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캐서린의 모습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네, 궁금해요.”
자신의 물음에 다시 한목소리로 대답하는 방청객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오비라는 다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외쳤다.
“궁금하신 걸 참으시면 여러분의 건강에 해로우실 거 같아서 저희가 여러분의 궁금증을 곧바로 풀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촬영한 뮤직비디오를 직접 보시죠. 참고로 뮤직비디오는 지금 처음으로 공개한다고 하네요.”
그녀의 소개가 끝나자 곧이어 무대 중앙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방금 이서준이 불렀던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나오기 시작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이서준과 캐서린 파크가 노래 속 가사처럼 서로 첫눈에 반한 연인 사이를 연기하였다.
이서준은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첫눈에 반한 순수한 남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었고, 캐서린 역시 도도하지만, 자신에게 반해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순수한 남자의 매력에 역으로 매료되는 여자의 모습을 훌륭히 소화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서준의 노래를 듣고 반한 캐서린이 다가와 입을 맞추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장면이 나오자 캐서린은 유독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이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뮤직비디오가 끝나자 진행자 오비라는 다시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하고 있는 캐서린 파크를 향해 물었다.
“자, 뮤직비디오가 모두 끝났습니다. 저는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어요. 그래서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캐서린, 혹시 질문을 하나 해도 될까요?”
캐서린 파크는 여전히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그 질문 거부해도 되나요?”
“후후, 그건 당연히 안 되죠. 이 질문이 오늘 방송의 핵심이니 그건 절대로 안 되겠네요.”
“…그럼 도대체 왜 질문을 해도 되냐고 묻는 거예요?”
“그거야 당신을 놀리고 싶어서요. 하하하.”
“…그냥 마음대로 하세요.”
캐서린 파크에게서 항복 선언을 받아 낸 오비라는,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자, 그럼 물어볼게요. 방금 뮤직비디오 마지막 장면에서 여기 있는 서준과 키스를 하는 장면이 나왔어요. 키스를 하는 게 원래 약속된 연기였나요?”
드디어 캐서린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는 오비라.
곤란한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캐서린은, 이내 자포자기하는 모습으로 물음에 답했다.
“…아니요. 원래는 그냥 얼굴만 가까이 다가서면서 끝나는 신이었어요. 근데 제가 약속대로 하지 않고 그냥 나도 모르게 키스를 해 버렸어요. 한마디로 원래의 콘티를 깨 버린 거죠.”
그녀의 대답을 들은 관객들은 그제야 오비라가 이 질문을 던진 이유를 깨달았다.
천하의 캐서린이 약속된 연기대로 하지 않고 우발적으로 키스를 해 버렸다니….
매우 놀랄 만한 비하인드 스토리였기에 지금 이 녹화장에 함께하고 있는 방청객은 물론이고 TV를 통해 이 장면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까지 모두 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이서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천하의 캐서린 파크가 키스 욕구를 참지 못할 정도의 매력을 지닌 남자라니….
최고의 토크쇼 진행자 오비라는, 이런 분위기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이서준이 다음으로 부를 곡을 요청했다.
“자, 여러분. 이 남자의 매력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의 진정한 매력을 다음 노래를 통해 느껴 보시죠. 이번에 서준이 부를 노래는 ‘악마의 유혹’이란 곡입니다.”
어느새 무대로 이동한 이서준.
그는 이미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세션들과 눈을 맞추며 한편에 놓아둔 기타를 멨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한 그는 신호에 맞춰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
화려한 기타 리프로 연주를 시작하는 이서준.
전자기타를 치며 방청객과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순수한 청년의 얼굴은 사라지고, 차가움과 뜨거움이 공존하는 야누스적인 매력의 상남자가 등장해 있었다.
* * *
-미칠 거 같아. 너무 좋아.
-나도 그래. ‘악마의 유혹’을 오늘만 해도 몇 번이나 들었는지 세기도 힘들어. 헤어 나올 수가 없어.
-나는 ‘내가 사랑에 빠졌던 순간’이 제일 좋은 거 같아. 목소리가 도대체 왜 이렇게 좋은 거야?
-나도 나도. 그 노래 들을 때마다 영화 한 편 보는 것 같아. 아,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나타날까 기대하면서 말이야.
오비라 윈터스의 ‘화려한 밤’이 방영되고 연이어 정규 앨범이 발매되자마자 이서준의 인기는 거센 폭풍처럼 미국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그의 노래는 발매 당일 곧바로 빌보드 차트에 75위로 차트인 해 버렸고, 그 뒤로도 계속 순위는 급상승하였다.
이 정도 성적이면 앨범 활동 초반이긴 했지만, 충분히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서준이 미국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연이어 터지는 캐서린 파크와의 스캔들성 기사 때문이었다.
캐서린 파크는 평소 굉장히 도도하기로 유명한 배우였다.
이름만 들어도 전 세계인이 다 알 만한 유명 남자배우들의 수많은 러브콜에도 흔들리지 않은 채 코웃음과 쿨한 거절의 뜻을 전하던 그녀였기에, 그랬던 그녀가 오히려 달려들 정도의 남자가 어떤지 궁금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이서준에게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저절로 이서준의 노래까지 듣게 되는 과정을 통해 그의 노래는 점점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악마의 유혹’은 발매 3일째 되는 날 30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고, ‘내가 사랑에 빠졌던 순간’ 역시 ‘악마의 유혹’의 뒤를 이어 계속 순위가 상승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인기를 얻고 있단 소리였다.
그리고 그런 인기는 뉴욕 시내 한복판에 있는 유명 레코드샵에서 진행된 팬 사인회 현장에서도 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꺄아아악.
드디어 등장한 이서준을 보며 사인회를 기다리는 팬들은 엄청난 환호성을 보냈다.
10명이 넘는 보디가드들의 엄중 보호 속에서 사인회장으로 이동하던 이서준은 팬들의 엄청난 환호에 머쓱해질 수밖에 없었다.
스윽.
조상구 사장은 당황해 보이는 이서준에게 곧바로 물을 건넸다.
“아, 고마워요. 안 그래도 물 생각이 간절했어요.”
조상구 사장은 이서준의 감사에 미소로 화답했다.
진짜 갈증을 느꼈는지 빠르게 물을 마시는 이서준.
그런 이서준을 보며 조상구 사장이 물었다.
“긴장돼?”
“아뇨. 긴장했다기보다는 어색하다고 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어색? 이젠 제법 적응했던 거 아니야? 한국에서는 이보다 더 큰 환호를 받았잖아.”
“그건 그렇지만… 조금 다르네요. 한국 팬들이 아닌 미국분들이 마치 한국 팬들처럼 환호성을 보내니까 이상해요.”
“후후, 그래? 걱정하지 마. 조금만 더 있으면 바로 적응할 거야.”
“네, 그렇겠죠.”
이서준은 어색한 마음을 추스르며 사인회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