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169화 (169/189)

169. 미국 침공(2)

드디어 시작된 사인회.

같은 피부 색깔의 팬들이 아니라 다양한 피부 색깔의 팬들이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은 그 모습 그 자체로 너무나 새로웠다.

“노래 너무 좋아요. 저 앨범 샀으니 여기에 사인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서준은 이번 앨범을 사서 내미는 팬을 향해 웃는 얼굴로 사인해 주었다.

어느 나라에서 하든 팬 사인회장의 모습은 대략 비슷한 것 같았다.

대부분의 팬은 이서준의 미국 데뷔 앨범이나 그의 브로마이드 사진을 들고 와서 거기에 사인을 받아 갔다.

“혹시… 이 앨범에도 사인이 가능할까요?”

이서준은 팬이 내미는 앨범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녀는 놀랍게도 이서준이 한국에서 발매했던 앨범 전부를 들고 와 사인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제 한국 앨범을 다 가지고 계시네요? 이건 도대체 어떻게 구하셨어요?”

놀라며 묻는 이서준의 물음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백인 여성 팬은 이렇게 대답했다.

“원래부터 K-팝 좋아했어요. 그래서 다른 가수 영상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오빠가 노래하는 장면을 보게 됐고요. 그리고 그때부터 오빠 노래를 듣기 시작했어요. 앨범은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구할 수 있어요.”

이서준은 미국 팬의 정성에 감동해, 그녀가 가지고 온 앨범 전부에 성심성의껏 사인을 해 주었다.

확실히 대부분의 미국 팬들 역시 다수의 한국 팬들의 모습과 그다지 큰 차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히 예외는 존재했다.

“저는 여기에 사인해 주세요.”

“…….”

이서준은 상의를 화끈하게 벗어 버린 후 자신의 배에 사인을 부탁하는 팬의 모습에 크게 당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조상구 사장이 얼른 나서서 대기 중인 경호 실장에게 눈으로 사인을 보냈다.

조상구에게 신호를 받은 경호 실장은, 빠르게 여자 팬에게 다가가 벗은 상의를 다시 입히며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끌려나가는 문제의 팬은 경호원들의 손길을 뿌리치려고 몸부림치며 외쳤다.

“어? 이거 뭐예요? 놔요! 나 아직 우리 오빠한테 사인 못 받았단 말이에요. 배가 안 되면 아래쪽 속옷에라도 해 주세요. 난 오빠의 손길을 깊숙한 곳에서 느끼고 싶을 뿐이란 말이에요. 제발 놔줘요!”

자신을 많이 당황하게 만드는 팬 덕분에 이곳이 확실히 한국과 다른 곳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우게 되는 순간이었다.

* * *

대한민국의 최고 가수인 이서준의 성공을 보며 모두가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특히 옆 나라 일본의 제니스 사단의 경우에는 이서준의 성공을 바라보며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도대체 우리랑 차이점이 뭐야? 왜 우리는 차트에서 빠지고 말았는데, 저 녀석은 순위가 빠지기는커녕 계속 올라가는 거야?”

제니스 사단의 작곡가인 무키야노 스즈끼는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일들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아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가 큰 소리로 화를 내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스냅스의 리더 쇼헤이는, 자신의 맞은편에 조용히 앉아 있는 쿠로시노 사장을 향해 진중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우리도 이서준이 취한 전략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어떨까요?”

“이서준이 취한 전략? 도대체 뭘 말하는 거야?”

쇼헤이는 쿠로시노 사장의 물음에 보다 진지한 얼굴로 설명을 이어 갔다.

“이서준의 뮤직비디오에 누가 출연했는지 벌써 잊으셨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캐서린 파크가 출연을 했습니다. 이건 다시 말해서 캐서린 파크가 이서준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서준이 지금의 인기를 얻었을까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쿠로시노 사장은 사쿠라 쇼헤이가 말하고 싶어 하는 포인트를 곧바로 알아챘다.

“우리도 유명 스타를 이용해서 홍보를 해 보자 이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대로 아무런 성과 없이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 사장님도 잘 알고 계시잖아요. 그러니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 보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고민 끝에 쇼헤이의 의견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쿠로시노 사장은, 그 즉시 홍보에 도움이 될 유명 스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통로를 통해 알아본 결과, 그의 레이더망에 생각보다 큰 월척인 부루노스 마노스라는 톱스타가 걸렸다.

평소에 워낙 아시아 팬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였기에, 스냅스가 일본의 탑 그룹이란 사실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그래서 급하게 마련된 만남의 자리.

미국의 톱스타 부루노스 마노스는 쿠로시노 사장의 제안에 흥미로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 사장님의 말씀은 그쪽 회사에서 우리 회사에 말씀하신 액수로 투자를 해 주시겠다는 뜻입니까?”

쿠로시노 사장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 제니스 엔터테인먼트는 일본을 대표하는 연예 기획 회사입니다. 그래서 대기업은 물론이고 일본 정부 측에서도 우리 회사를 확실하게 밀어주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손잡는 미국 기업 쪽에 대규모 투자 유치를 해 드리는 것은 저희 입장에선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본인이 직접 회사를 설립하여 활동 중인 부루노스에게는 무척 흥미가 동할 만한 대답이었다.

그래서 그는 눈앞에 앉아 있는 일본인의 제안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쪽에서 저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희가 바라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일단 미국 내에 방영 중인 대형 토크쇼에 우리 회사의 스냅스랑 함께 출연해 주시는 게 첫 조건입니다. 그리고 스냅스가 공식 활동을 할 때에는 약 한 달 정도 동행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음 앨범 프로듀서로 나서 주신다는 말씀도 홍보용 멘트로 허락해 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쿠로시노 사장의 요구 사항을 찬찬히 들은 부루노스.

그 역시 이 연예계 바닥에서 고생한 세월이 제법 오래되었기에, 일본의 제니스란 회사에서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곧바로 간파할 수 있었다.

분명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서 미국에서 홍보를 해 보겠다는 뜻 같았는데,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홍보 방법 중 하나였기에 그다지 크게 놀랄 만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고민할 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요구 사항은 분명 자신에게 요청하는 것들이 제법 많은 편이었다.

이들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면 이미 짜여진 그의 일정을 전격적으로 수정해야만 했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자칫하면 자신의 이미지에 큰 손상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고려할 사항들이 많은 제안이었기에 쉽게 승낙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조용히 고민하는 부루노스 마노스.

제법 긴 시간 고민에 빠져 있던 그는, 문득 생각이 났는지 쿠로시노 사장에게 이렇게 요구했다.

“혹시 스냅스라는 그룹의 노래를 들어 볼 수 있을까요?”

고민을 끝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제안이 들어온 스냅스의 실력을 확인하는 것이었기에 그들의 노래를 듣기를 요청했다.

쿠로시노 사장은 그의 요청에 웃는 얼굴로 화답했다.

“아, 물론 가능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부루노스의 요청에 따라 쿠로시노 사장은 빠르게 준비해 온 영상을 재생시켰다.

일본에서 발매한 노래들은 물론이고 최근 미국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인 ‘happy day’까지 보여 줄 생각이었다.

잠시 뒤 재생된 스냅스의 노래들.

쿠로시노 사장은 영상 속에 나오는 스냅스의 무대들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정작 이 영상을 요청한 부루노스의 표정은 영상이 계속됨에 따라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이윽고 끝난 영상.

쿠로시노 사장은 영상이 끝나자마자 부루노스에게 물었다.

“저희가 준비한 영상은 모두 끝났습니다. 보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부루노스는 쿠로시노 사장의 질문에 딱딱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 사람들 가수 활동을 몇 년 동안 했다고 하셨죠?”

예상과 다른 차가운 말투에 쿠로시노 사장은 이상함을 느끼며 머뭇거리듯 대답했다.

“…15년 동안 활동을 했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의 물음에 부루노스는 약간 화가 난 듯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15년이라… 15년 동안 가수 활동을 한 게 분명하다면,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음악 활동을 했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지네요. 가수는 노래로 자신의 감성을 표현합니다. 근데 이 사람들은 도대체 뭐죠? 노래가 도대체 뭐라고 생각했기에 이런 엉망인 무대를 할 수가 있는 겁니까?”

제대로 화가 난 부루노스.

그가 화를 내자 쿠로시노 사장은 당황해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부루노스는 당황하는 상대를 배려할 마음이 없는지 하고 싶던 말을 계속 이어 갔다.

“음악을 하는 데 가창력이 모자란 것은 경우에 따라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소울이라는 것은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이니까요. 근데 이 사람들은 제일 중요한 소울이 없어요. 그냥 노래보다는 다른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네요. 그저 팬들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이 가수라고 할 수 있습니까?”

화가 난 부루노스는 듣기만 해도 놀랄 정도의 신랄한 비평을 마구 쏟아 냈다.

그는 ‘스냅스’라는 그룹이 음악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영혼 없이 노래를 부를 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대에 섰던 가수라면, 자신의 실력이 많이 부족함을 느꼈을 텐데도 전혀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이렇게 화가 난 것이었다.

그의 날카로운 비평은 마지막으로 들은 ‘happy day’에서 폭발해 버렸다.

“그리고 도대체 이 노래는 뭡니까? 컨트리 송? 이 스냅스란 그룹이 컨트리 송이 뭔지는 알고 부르는 건가요? 미국 사람들에게 컨트리 송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부르고 있냐 이 말입니다.”

“…….”

드디어 할 말을 마쳤는지 부루노스는 더 쏘아붙이지는 않았다.

졸지에 가시방석에 앉은 쿠로시노 사장은 어쩔 수 없이 화가 난 그의 눈치를 계속 살피게 되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부루노스의 화가 조금 풀리는 듯 보이자 눈치를 살피던 쿠로시노 사장이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 스냅스의 음악이 부족하다는 지적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저희가 많이 부족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투자금을 조금 더 늘리는 건 어떨까요?”

쿠로시노 사장은 부정적으로 보이는 부루노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투자금을 더 올리겠다는 뜻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큰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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