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금의환향(1)
한국의 한 뉴스 프로그램.
뉴스의 진행을 맡은 앵커는 첫 번째 뉴스로 이서준의 소식부터 전했다.
“지금 현재 미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이서준 씨의 인기가 모두의 예상을 초월한 수준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서준 씨의 미국 데뷔 앨범 수록곡인 ‘악마의 유혹’과 ‘내가 사랑에 빠진 순간’ 이 두 곡이 빌보드 차트 1, 2위를 차지한 뒤 계속 빌보드 차트 정상을 지키고 있는데요, 미국의 음악 관련자들이 이러한 현상에 매우 놀라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음악 평론가 제론 하워드 씨는 ‘우리는 지금 이서준의 시대에 살고 있다.’라는 말을 남겨 더욱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 말은 우리나라의 이서준이란 가수가 미국 음반계를 석권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과연 이서준 씨의 노래가 이토록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저희 프로그램에서는 이서준 씨의 인기 요인을 심층 분석….”
뉴스 앵커가 전한 뉴스의 내용처럼 지금 미국에서의 이서준의 인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의 노래는 쉬지 않고 라디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고, 너튜브 채널에서는 그의 뮤직비디오가 쉴 새 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 내에는 엄청난 숫자의 팬들이 모여 이서준의 해외 팬덤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서준의 인기가 특별한 이유는 그 인기가 노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패션 잡지 ‘부구스’에서는 이서준을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스타 1위로 뽑았다.
이것은 미국 사람들이 이서준의 어떤 이미지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지가 잘 드러난 현상이라 할 수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영화 속 캐릭터인 ‘엘른’을 연기하는 이서준의 모습을 통해 차갑고 이성적인 남자의 매력을 느꼈고, 더불어 그의 노래 ‘악마의 유혹’에서는 감춰진 내면 속에 뜨거운 열정을 감춘 야누스적인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내가 사랑에 빠진 순간’을 노래하는 이서준의 모습에서는 그 누구보다 사랑에 열정적인 순수한 남자의 매력까지 느끼게 되면서 이서준이란 사람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것이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그리고 이번에는 유럽을 거쳐 미국 본토까지 점령한 이서준.
이서준에게 열광하는 나라들을 고려하면 이제 이서준은 명실상부한 월드 스타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이서준에 앞서 그룹 BTC가 미국 음반 시장의 최정상을 차지한 사례가 먼저 있었지만, 가수라는 분야를 넘어서 이서준이라는 사람에게 이렇게 큰 환호를 보낸 적은 분명 없었다.
그러니 종합하면 이서준은 아시아 스타 중 최초로 진정한 월드 스타에 오른 사람이라 할 것이다.
이제 미국 내 언론은 물론이고 세계의 언론은 이서준의 일거수일투족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열린 두 번째 콘서트인 ‘이서준 in L.A’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친 그가 다음으로 보인 행보는 마벌 스튜디오에서 촬영되는 다음 영화에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한다는 소식이었다.
이 또한 전 세계 언론들이 연일 기사화하며 관심을 보였다.
이미 ‘상춘’에서의 연기로 많은 영화 팬에게 사랑을 받던 이서준이, 다시 한번 마벌 왕조를 구현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마벌 스튜디오의 차기작에서 ‘엘른’이란 캐릭터로 출연할 거라는 소식이었다.
사람들은 이서준이 마벌 스튜디오 영화 속에서 어떤 비중을 가진 캐릭터로 나타날지 궁금해하였고, 마벌 스튜디오의 수장 케븐 파이스는 공식 행사장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출연을 공식화하였다.
“이서준 씨가 연기하는 ‘엘른’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마벌 스튜디오의 영화 세계관 속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어서 빨리 계획된 일정을 모두 끝낸 뒤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입니다.”
그의 이런 발언은 이서준이 연기하는 ‘엘른’이 새로운 마벌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사실을 대대적으로 선언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에 따라 대부분의 세계 언론에서는 월드 스타 이서준이 새로운 마벌 스튜디오 영화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보도하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는데, 유독 중국 언론에서는 이러한 이서준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유수의 언론들과 다르게 이서준에 관해 못마땅한 듯한 뉘앙스가 담긴 뉴스를 내보냈는데, 생각해 보면 그런 그들의 이런 차가운 반응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중국에선 중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를 세계인들에게 보다 강하게 각인시킬 목적으로 영화 ‘상춘’을 제작할 당시 엄청난 자금을 투입했었는데, 정작 주인공 상춘은 망한 캐릭터의 대명사라는 불명예만 안게 되었고, 좋은 것들은 모두 다 이서준이 연기한 ‘엘른’에게 집중된 셈이니 어떻게 배가 아프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처음에는 이서준에 관해 안 좋은 뉘앙스의 기사를 내보내는 중국 언론을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시선이 무척 많았는데, 시간이 흘러 그러한 그들의 속사정에 관해 짐작한 후부터는 이서준의 성공에 배 아파하며 일부러 없는 흠집이라도 만들려고 하는 그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간다는 반응이었다.
* * *
자신의 스타인 이서준이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 잡은 덕분일까?
편한 한국 대신 머나먼 미국에 장기 출장 온 상황이었음에도 조상구 사장의 얼굴에는 항상 기분 좋은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조상구 사장은 오늘도 역시 기분이 무척 좋은지 매우 밝은 표정으로 이서준을 직접 데리러 왔다.
“서준아, 준비 다 끝났어?”
짐을 정리하던 이서준은 조상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다 끝났어요. 이제 가시죠.”
“그래, 가자. 트렁크 이리 주고.”
이서준은 자신의 트렁크를 가져가려는 조상구의 모습에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하, 아니에요, 사장님. 이건 제가 끌고 갈게요.”
조상구 역시 자신의 도움을 사양하는 이서준의 모습에 웃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스타의 짐은 내가 챙겨야지. 서준아, 너 잊었어? 나 네 매니저야.”
“그걸 잊은 게 아니에요. 우리 조상구 형님은 지금은 제 매니저보다는 사장님이시잖아요. 다른 직원도 아니고 우리 회사 대표이사신데, 제 짐을 끌게 할 수는 없죠.”
조상구는 끝까지 짐을 맡기지 않으려고 하는 이서준에게서 강제로 트렁크를 빼앗아 버렸다.
그리고는 당황해하는 이서준을 향해 또박또박 말해 주었다.
“잘 들어, 이서준. 난 회사에서 필요한 일이라고 해서 사장직을 겸직하는 거야. 만약 네 매니저 역할과 사장 역할 중 무엇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난 아무 고민도 안 하고 바로 매니저요 하고 말할 거야. 그러니 고집부리지 말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못 하도록 방해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결국, 이서준은 조상구 사장의 고집에 자신의 트렁크를 넘기고 말았다.
이제 오늘의 목적지인 공항으로 출발하는 두 사람.
이서준은 앞서 걷고 있는 조상구를 향해 물었다.
“오늘도 비밀 통로로 가야 하나요?”
그의 질문에 조상구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해야 될 거 같아. 원래 다니던 길에는 네 팬들부터 기자, 그리고 파파라치까지 엄청난 인원이 너를 보기 위해 대기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의 대답에 이서준도 정말 질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간이 좀 남아 있으니 팬들에게는 단체 사진 정도는 찍어 줄 수 있는데 아쉽네요. 기자랑 파파라치만 아니면 그냥 정문으로 갈 텐데… 미국에서 활동해 보니 정말 기자랑 파파라치는 저절로 피하고 싶어지네요. 진짜 언제가 되어야 편하게 다닐 수 있을지…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많이 안타까워하며 묻는 이서준.
조상구 사장은 불쌍한 이서준에게 그가 원하는 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건 일단 포기해. 네가 미국에서 인기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 같으니까.”
“…네.”
크게 실망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이서준이었다.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두 사람.
지하 주차장에서 관리인들이 사용하는 좁은 통로가 하나 있는데, 그곳이 바로 이서준의 비밀 통로였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회사 밖으로 나가면 기다리고 있던 차에 올라 이동하게 된다.
좁은 비밀 통로를 통해 밖에 나온 이서준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을 발견했다.
“오, 우리 회사의 보물을 이제야 보게 되는군. 하하하.”
초면에 가까운 사이인데도 아주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억지 연기를 하며 반기는 사람은 워너즈 뮤직의 부사장 제이크 슈나이저였다.
그를 본 이서준의 표정이 순간 딱딱하게 변했다.
이미 마이클 본 사장과의 일부터 해서 많은 것을 보고 들은 이서준이었기에 슈나이저 부사장의 등장에 밝게 웃을 수가 없었다.
그와는 다르게 슈나이저 부사장은 억지 미소를 더 환하게 지으며 이서준에게 다가갔다.
그는 지금 필사적으로 이서준과 가까워질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자네와 잠시 나눌 이야기가 있는데, 잠시만 시간을….”
다급하게 이서준과 대화를 시도하는 슈나이저.
조상구가 그런 그를 막아섰다.
슈나이저 부사장은 갑자기 나서는 조상구 때문에 깜짝 놀라 하던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아, 아니 넌 도대체 누구길래 내 앞을 막는 거야?”
당황해서 따지는 슈나이저 부사장을 보며 조상구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소개했다.
“전 이서준 씨 매니저입니다. 지금 공항으로 바로 가야 하니 좀 비켜 주시죠.”
슈나이저 부사장은 조상구의 냉담한 반응에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서둘러 이서준을 쳐다보았지만, 그 역시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자신과 대화를 나눌 마음이 없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대로 슈나이저 부사장을 지나쳐 차에 타는 두 사람.
슈나이저 부사장은 그런 두 사람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지금 그가 여기에 나타난 이유는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마이클 본 사장을 사장 자리에서 밀어내기 위해 일본 측과 프로젝트를 추진했었지만, 마이클 본과 이사진의 반대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더군다나 다른 회사에서 데뷔한 일본의 ‘스냅스’가 엉터리라는 것이 곧 밝혀졌기에 그들과의 프로젝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마이클 본의 선견지명이 다시 한번 빛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어서 마이클 본 사장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이서준의 대성공.
이것이 결정타였다.
전부터 암암리에 마이클 본을 사장직에서 밀어내기 위해 준비해 왔던 모든 것들이 거꾸로 돌아와 자신의 입지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일 이사회에서는 자신의 해임안이 상정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도 전해지고 있었기에 마지막 시도라는 생각으로 이서준을 막아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