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금의환향(4)
“근데 진짜로 리허설 모두 끝낸 거 맞아요?”
이서준은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잘 끝냈어. 진영이 형이 제대로 준비를 해 줬더라고. 난 진짜 리허설만 하면 되니까 그냥 집중해서 스트레이트로 끝내 버렸지. 이번에 함께하는 분들 실력도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아서 그 덕도 많이 봤어.”
이서준의 대답을 듣는 지호의 눈은 순간 반짝였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묻고 답하는 분위기가 갖춰졌기 때문이었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자신이 정말 묻고 싶은 질문을 살짝 던져도 될 것 같았다.
“근데 있잖아요, 오빠… 저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이서준의 지호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궁금한 거? 물어봐.”
“진짜요? 진짜 물어도 돼요?”
“응, 괜찮아.”
이서준의 허락을 얻은 그녀는, 진짜 궁금했던 질문을 그에게 물었다.
“…캐서린 파크랑 오빠랑… 진짜 사귀는 거예요?”
“뭐?”
지호의 이번 질문은 만만치 않았는지 피자를 입에 넣다가 너무 놀라 그대로 멈춰 버렸다.
모두의 시선이 이서준의 입에 집중된 상황.
그들의 시선을 느낀 이서준은 당황해하며 황급히 대답했다.
“아냐. 절대 아냐. 나랑 캐서린은 절대로 그런 사이가 절대 아니야.”
정말 강하게 항변하는 이서준의 모습에 ‘쓰리타임즈’ 멤버 모두가 순간 일제히 안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중에 특히 나영은 자신의 표정을 감추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받쳐야 했다.
갑자기 밝아진 분위기.
이서준은 그런 분위기 변화에 약간 ‘이상하다.’라는 생각은 했지만, 해야 할 말이 있어 찾아온 것이기에 밀어 두었던 용건부터 꺼내었다.
“사실 내가 바쁜 데도 여기에 온 것은… 너희에게 줄 곡이 있어 들른 거야.”
그의 말을 들은 멤버들은 모두 함께 깜짝 놀라며 이서준을 쳐다봤다.
“저희에게 줄 곡요?”
“응. 예전에 정현이나 나영이에겐 잠깐 들려준 적이 있는 곡인데… 내가 계속 바빠서 편곡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했던 곡이거든. 근데 최근에 완성이 되어서 오늘 너희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찾아온 거야.”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선물과 같은 소식이었다.
그래서 많이 흥분한 지호는 곧바로 이서준을 향해 부탁했다.
“진짜요? 그럼 바로 들어 보면 안 될까요?”
그녀의 물음에 이서준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그럼 바로 들어 볼까?”
“네.”
한목소리로 대답하는 그녀들의 모습에 다시 기분이 좋아지는 이서준이었다.
그래서 한껏 기분 좋은 표정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던 완성 곡을 들려주었다.
♪♩♩♪♩♩
국내 가요에선 잘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리듬이 귀에 쏙쏙 박히는 듯한 곡이었다.
전반적인 느낌은 라틴 음악적 느낌이 약간 풍기기도 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이 곡을 라틴풍의 곡이라고 말하기에는 새로운 부분이 너무 많기도 했다.
어느새 곡에 집중해서 아무런 말도 없이 듣고 있는 쓰리타임즈 멤버들.
그녀들의 그런 모습을 본 이서준은, 모두가 자신의 곡을 듣고 만족할 거란 사실을 미리 예측할 수 있었다.
이윽고 곡 재생이 모두 끝나자 쓰리타임즈 멤버 모두가 이서준을 향해 엄지를 들어 올리며 찬사를 보냈다.
“이거 정말 뭐예요? 너무 좋잖아요.”
“최고예요. 진짜 이 곡 우리 주는 거예요? 그럼 진심 대박.”
“오빠, 너무 좋아요. 나 지금 소름 돋았어요.”
이서준은 자신의 곡을 듣고 좋아해 주는 그녀들을 향해 미리 지은 노래의 제목을 말해 주었다.
“가사는 일부러 안 썼어. 이번에도 가사는 너희가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 대신 제목은 생각해 뒀어. 내가 이 곡을 쓸 때 머릿속에 그렸던 이미지에 어울릴 만한 가사야.”
이서준의 말에 멤버들은 다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이서준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한 제목은 ‘10개의 반지’야.”
제목을 듣고 놀란 정현이 물었다.
“10개의 반지요? 무슨 의미를 지닌 제목이에요?”
“자신에게 빠진 남자들에게 받은 반지의 숫자를 말하는 거야. 이번에 내가 찜한 당신까지 내게 반하면 난 열 손가락 모두에 반지를 끼게 된다는 뜻이 담긴 제목이지. 난 이 곡을 쓸 때 사랑 앞에 자신만만한 여자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썼거든. 그러니 그런 내용을 담은 가사를 써 줬으면 좋겠어. 혹시 가능할까?”
“네!”
이서준의 물음에 이번에도 역시 동시에 대답하는 9명의 멤버들이었다.
* * *
집에 데려다주는 차 안.
달리는 차 안에는 어색한 표정을 짓고 앉아 있는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이들의 정체는 바로 이서준과 나영이었다.
두 사람은 어떻게 둘이서만 차에 타게 되었을까?
곡을 들려주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순간이 되었다.
원래 쓰리타임즈는 아직까지 함께 숙소 생활을 하는 중이라 멤버들 모두가 밴을 타고 귀가를 하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헤어지는 순간 이서준이 용기를 내어 나영을 붙잡았다.
“나영아, 잠깐 시간 있어? 할 말이 있는데 말이야.”
“잠깐 시간요?”
“응.”
갑자기 불도저처럼 밀고 나오는 이서준의 모습에 나영을 제외한 8명의 여자들은 과한 흥분으로 숨이 막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자, 뭐해? 얼른 집으로 갑시다. 어서요.”
눈치 빠른 리더 지호는 그런 이서준의 모습에 얼른 나서서 나머지 멤버들을 데리고 밴으로 가 버렸다.
그렇게 둘만 남겨진 상황이라 나영은 어쩔 수 없이 이서준의 차에 타야만 했다.
“잘 지냈어?”
어색한 표정으로 안부를 묻는 이서준.
나영은 그런 평범한 질문에도 얼굴이 붉어지며 대답했다.
“…네, 잘 지냈어요. 오빠는 어떻게 지냈어요?”
“나? 나야 그냥 바쁘게 지냈지. 영화에 앨범에…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어. 그래서 너한테 연락도 많이 못 했고… 네 소식 너무 궁금했는데 말이야.”
쿵.
이서준의 말을 들은 나영의 심장은 순간 너무 놀라서 멈춘 거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용기 내어 마음이 담긴 말을 건넨 이서준도 혼이 나간 사람처럼 제정신은 아닌 모습이었다.
두 사람 다 연애를 해 본 지가 너무 오래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숨 막혔다.
갑자기 적막으로 가득 찬 차 안.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던 이서준은, 다시 한번 용기 내어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혹시 오해했어?”
“네? 무슨 오해요?”
“아까 물었잖아. 나랑 캐서린 파크랑 사귀는 게 아니냐고.”
“아… 기사가 자꾸 나오니까 두 사람 사이에 좋은 감정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했었어요.”
나영은 이서준의 물음에 그때 느꼈던 감정을 조금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이서준은 전방을 주시하면서 본인 역시 솔직하게 고백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캐서린은 나에게 많은 다가오려 하긴 했어. 나랑 가까워지고 싶다는 뜻도 여러 번 밝히기도 했고…….”
이서준의 말을 듣고 있는 나영의 심장은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캐서린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알면서도 외면했어. 캐서린은 그것이 거절의 뜻인 걸 눈치챈 건지 그 뒤부터는 다행하게도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더라고. 그래서 솔직히 고마운 마음이었어.”
요즘 최고의 여배우인 캐서린 파크의 대쉬를 거절했다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영의 심장은 계속 빠르게 뛰고 있었다.
왜냐하면, 갑자기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서준의 의도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혹시 내 노래 중에 ‘내가 사랑에 빠진 순간’이란 곡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
나영은 이서준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서준은 그 모습을 힐끔 쳐다본 후 말을 이어 갔다.
“내가 그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너 때문이야. 너랑 함께 빌딩 전망대에서 뉴욕의 야경을 보고 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소스로 해서 만들어진 노래였거든.”
“…….”
나영은 진짜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서준은 지금 나영과 마음이 통하고 있다고 확신했기에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움찔.
이서준의 손이 자신의 손에 닿자 순간 깜짝 놀라는 반응을 나타냈지만, 그녀 역시 이서준을 좋아하고 있었기에 손을 빼지는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처음으로 손을 잡게 된 것이다.
운전 중이던 이서준은 이 순간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일부러 목적지를 잊은 채 그냥 길이 이어지는 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꺄아아악.
다시 한번 터져 나오는 팬들의 함성.
이서준은 그 모습에 힘을 얻어 더욱 열창했다.
♪운명과 같은 너와의 만남♩
♪마법 같은 믿을 수 없는 만남♩
♪난 너만 보고 너만 느끼고 너만을 만질 수가 있었어♩
콘서트 현장을 찾아 준 팬들을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해 노래하고 있었다.
그의 마법과 같은 목소리와 가창력에 혼이 나간 사람처럼 노래에 푹 빠진 수만 명의 팬들.
그중에는 콘서트를 보러 온 쓰리타임즈도 있었다.
그리고 그중 이 노래에 남다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 노래가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혼자만 알고 있는 나영이었다.
이서준이 자신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란 걸 알았기에 노래를 듣는 순간 그녀는 그때 그 빌딩 전망대로 와 있었다.
함께 뉴욕의 차가운 바람을 피부로 느끼며 같은 곳을 바라보던 그 순간, 그녀 역시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와, 언니 노래 너무 좋지 않아?”
“…응.”
옆에 있던 막내 채연이 이서준의 노래에 감동하여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녀의 물음에 남다른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는 그녀였다.
콘서트가 한창 진행되던 그때, 이서준의 소속사 대표인 김진영도 콘서트장 한편에서 이서준의 공연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이서준의 매니저이자 레이블의 수장인 조상구가 서 있었다.
“와, 완전 괴물이네, 괴물. 쟤 왜 저렇게 노래를 잘해?”
순수한 감탄이 섞인 질문이었기에 조상구는 웃으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네가 이 정도 칭찬하다니… 우리 서준이가 대단하긴 정말 대단한가 보다.”
“저건 대단한 정도가 아니야. 지금 저 정도로 노래하는 가수 없어. 이건 전 세계 통틀어서야. 완전 괴물이야, 괴물.”
“미국에서 더 성장했어. 그리고 항상 노력하는 가수이기도 하고. 앞으로 우리 서준이를 능가할 가수가 당분간 없을 거 같아.”
“당분간이 무슨 소리야? 한 100년은 없을 거 같아.”
김진영은 진심으로 가수 이서준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 * *
한국 콘서트가 끝나자 이서준은 다음 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왜냐하면, 마벌 스튜디오에서 개최하는 코믹콘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