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세계의 중심에 서다(3)
일본 제니스의 새로운 보이 그룹 넥스코.
그들은 최근 논란의 중심이었던 ‘스냅스’, 그리고 그들의 소속사인 제니스의 떨어진 명예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데뷔했다.
논란 속에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여전히 일본 연예계에서 막중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제니스 소속 가수답게, 그들은 단번에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얼굴을 알린 뒤 오리콘 차트에서도 빠르게 순위가 상승했다.
한 마디로 인기몰이에 성공한 것이다.
은퇴한 ‘스냅스’의 데뷔 시절이 떠오른다는 세간의 좋은 평가 덕분에 그들의 팬덤 역시 빠르게 형성되며 일명 ‘로열 로드’를 걷는 대세 보이 그룹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빠른 성공이 그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일까?
한 연예 프로그램과 인터뷰에 나선 ‘넥스코’의 리더 야코부치는, 다음과 같은 리포터의 질문에 어이없는 대답을 내뱉고 말았다.
“넥스코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그건 바로 우리 일본의 음악을 세계에 제대로 알리는 겁니다. 아직 우리 일본의 우수한 음악이 세계 시장에서는 제대로 평가를 못 받고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그의 이런 자신만만한 대답을 들은 리포터는, 그만 실수로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던지고 말았다.
“아, 요즘 최고 인기 스타인 한국의 이서준 같은 세계적인 가수가 되고 싶단 이 말씀이신가 보군요.”
개인적으로 이서준의 팬이었던 리포터는 그만 야코부치 앞에서 이서준의 경우를 예로 든 것이다.
제니스에게 부끄러움을 안겼던 비교 대상이었기에, 리포터의 말을 들은 야코부치는 순간 정색하며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한국의 이서준이 분명 대단한 성과를 보여 준 것은 맞지만, 그게 진정 그의 능력이 맞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제 생각에 그건 그냥 한국이란 나라가 밀어준 결과인 거 같아요. 우리 넥스코는 그런 만들어 준 성과가 아니라 진짜 우리의 힘으로 세계의 정상에 서고 싶어요.”
그의 대답을 들은 리포터는 순간 깜짝 놀란 얼굴로 담당 피디를 쳐다봤다.
담당 피디 역시 화들짝 놀란 얼굴로 손을 좌우로 흔들며 스태프들에게 빠르게 지시했다.
“방송 잠시 중단해. 빨리.”
그렇게 급하게 종료된 방송.
사실 그냥 일반적인 녹화였다면, 이렇게 큰 실수가 발생했어도 쉽게 넘길 방법은 있었다.
편집을 통해 문제가 될 부분은 걷어 내면 간단히 해결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필 지금의 인터뷰는 녹화와 함께 SNS상으로 실시간 생중계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장면을 보고 있던 팬들은 야코부치의 말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방금 봤어?
-응, 봤어. 이서준보고 나라에서 밀어줘서 성공했다고 말했잖아. 그거 어느 정도 맞는 말 아니야?
제니스의 팬들은 그런 야코부치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K-POP의 성공 요인을 비하하는 그런 루머들이 일본 팬들 사이에는 많이 떠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 팬들 사이에서도 크게 인기를 얻던 이서준이었기에, 방금의 발언을 듣고 화를 내는 일본 팬들도 상당히 많았다.
-아니 지금 우리 서준 오빠한테 무슨 소리를 한 거야?
-이건 참을 수 없어. 엄청난 실력으로 미국을 점령한 서준 오빠를 뭐로 보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화가 낸 팬들은 방금의 발언을 바로 SNS상으로 퍼뜨리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은 야코부치를 비난했다.
설상가상으로 급하게 중단된 그들의 인터뷰 장면도 온라인상에 퍼지기 시작했다.
실시간 인터뷰 영상을 녹화 중이던 팬이 문제의 장면을 올린 것이다.
그리고 그 영상은 다시 일파만파 온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덴마크의 한 대학 기숙사.
K-POP의 팬이었던 티나는 오늘도 자신이 좋아하는 이서준의 기사를 찾아 가며 그의 근황을 알아보고 있었다.
열심히 여러 영상을 살펴보던 그녀는, 한 영상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헛소리도 이런 헛소리는 처음 들어 보네.”
화가 난 큰 소리를 내는 그녀의 방으로 같은 방 룸메이트 카렌이 들어왔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화를 내?”
티나는 때마침 나타난 카렌이 반가운지 방금 자신이 본 영상을 바로 보여 줬다.
“이거 좀 봐. 나 이거 보고 화가 난 거였어.”
티나의 말에 그녀가 보고 있던 영상을 함께 보는 카렌.
그녀 역시 티나처럼 K-POP의 팬이자 이서준의 팬이었기에 영상을 다 보고는 크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도대체 누구야? 자기가 뭔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쓰는 거야?”
“일본 인기 그룹 멤버래. 진짜 재수 없게 생기지 않았냐?”
“얼굴도 재수 없는 건 당연한 소리고. 근데 너 가만있을 거야? 난 화가 나서 못 참겠어.”
티나는 카렌의 말을 듣고 궁금해했다.
“뭐 할 거야?”
“응, 쟤들 소속사에 항의 메일이라도 보내야겠어. 아니면 쟤들 대표 SNS 있을 거 아니야? 거기에 항의해야겠어.”
“오, 좋은 생각이네. 나도 같이하자.”
그렇게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넥스코의 공식 팬 SNS를 찾아낸 뒤 항의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세계 각지의 팬들은 망언을 내뱉은 일본 제니스의 ‘넥스코’를 향해 항의의 글을 보내기 시작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역, 미국, 그리고 유럽 등 전 세계 팬들이 일제히 항의 글을 보낸 것이다.
이것은 제니스에게 큰 충격이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대형 연예 기획사인 그들이, 일본 연예계 전체에 큰 피해를 안겨 준 형국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제니스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자사 대표 SNS에 올리게 된다.
‘최근 넥스코의 야코부치 군의 인터뷰는, 해당 프로그램 관계자의 질문을 잘못 이해한 상황에서 발생한 오해입니다. 그러니 자사의 아티스트를 향한 무분별한 비판은 자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단순히 실수였다는 어이없는 변명은 이서준의 팬들를 더욱 화나게 했다.
이 성명이 발표된 이후, 그들을 비난하는 글들이 전보다 더 많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결국 회사의 모든 SNS를 닫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지게 된다.
이서준의 글로벌 팬의 수가 얼마나 많은가를 단번에 알게 해 주는 유명한 일화가 되어 버린 사건이었다.
* * *
“하, 이게 얼마만의 휴식이야?”
영화 홍보가 끝난 이서준은 오랜만의 휴식 기간을 가졌다.
너무 급하게 달려왔던 관계로 실제 많이 지쳐 있었기에, 이번 휴식은 정말 그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한국에 들어온 후 제일 반가운 것은 엄마의 집밥이었다.
이서준을 위해 서울에 올라오신 그의 엄마는 오랫동안 타지에서 고생한 아들을 위해 약 1주일 동안 서울에 머물면서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은 이서준은, 진짜 휴식을 위해 일체의 음악 활동도 하지 않았다.
성공적으로 데뷔한 이후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손에서 놓지 않았던 기타로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나면 잠을 잤고, 일어나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스케줄이 맞으면 아무도 몰래 나영과 밤 드라이브를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외출이었다.
이서준 한 명의 힘에 의해 JYK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대 연예 기획사로 발돋움하였다.
이서준을 물론이고 쓰리타임즈와 워너비 걸즈 등의 활약으로 인해 국내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은 적은 오래되었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정도의 최고의 자리를 굳혔던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시아 최대 음반 회사로 성장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자산 규모 등 모든 면에서 일본의 음반 회사들을 드디어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그리고 다른 아시아 국가에게까지 자회사를 세워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바빠진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그는 바로 JYK의 대표인 김진영이었다.
쉬고 있는 이서준에게 그런 그가 연락을 취해 왔다.
♪♪♩♪♩♪♪♩♪♩
갑자기 시끄럽게 울리는 스마트폰.
영화를 보고 있던 이서준은, 한쪽에 치워 두었던 스마트폰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손을 뻗어 들었다.
“여보세요?”
[서준아, 뭐 하고 있어?]
전화를 건 사람은 김진영이었다.
그래서 이서준의 얼굴에는 금세 반가움이 나타났다.
“저야 잘 쉬고 있습니다. 지금은 못 봤던 영화 보고 있고요.”
[그래? 너 때문에 바빠서 못 쉬는 나 대신 너라도 많이 쉬어라. 난 아마 다음 달에도 계속 출장 중일 거 같다.]
말 속에 뼈가 있었다.
자신이 쉬지도 못하는 상태로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알아 달라는 투정이 담긴 말이었다.
그런 김진영의 내심을 바로 파악한 이서준은, 그가 원하는 대로 립서비스를 들려주었다.
“역시 우리 대표님. 아니 내가 제일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진영이 형. 형의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언제나 저를 부끄럽게 만드네요. 지금 당장 영화 보던 거 집어치우고 작곡할게요. 다음에 좋은 노래 팬들에게 들려드리려면 제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죠.”
이서준의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김진영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만족해했다.
[하하하, 이제야 네가 이 형의 노고를 알아주는구나. 말이라도 고마우니 잘 쉬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지만, 잘 쉬는 것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야. 알겠지?]
“네, 형. 그럼 조금만 더 쉬고 다시 열심히 달려 볼게요.”
원하던 동생의 답변을 들은 김진영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연락한 용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근데, 서준아. 다음 주에 다시 미국으로 들어와야 할 거 같아.]
이서준은 미리 알지 못한 스케줄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다음 주요? 상구 형한테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갑자기 무슨 일이라…….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우리 회사에서도 네가 그레미 어워드에 강력한 수상 후보라는 예상은 못 했었으니까.]
“그레미 어워드요?”
생각지도 못한 단어의 등장에 깜짝 놀란 이서준은, 전화기를 든 채 멍한 얼굴로 아무 말도 못 하였다.
* * *
‘그레미 어워드’.
미국에서 매년 시행되는 최고 권위의 음악 시상식이다.
미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대중음악 시상식이라 할 수 있는 ‘그레미 어워드’는. 대중음악의 흐름을 주도하는 나라가 미국인 만큼 전 세계에서 가장 위상과 권위가 높은 대중음악 시상식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대중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라면 누구나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상일 것이 분명했다.
그레미 어워드 심사위원 3차 회의.
이곳에 참가한 심사위원들은 올해의 그레미 어워드의 영광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