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그레미 어워드 (2)
“전 그래도 서준이가 ‘그레미상’을 받을 가능성이 적어도 60% 가까이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워낙 음원 등 데이터가 좋았잖아요. 그리고 들어 보니 근 5년 동안 서준이 미국 데뷔 앨범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둔 가수가 없었다고 들었어요. 그만큼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은 분명하니까, 그 정도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마이클 본 사장은 김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뭐, 일리가 있는 이야기야. 솔직히 내가 그레미 어워드 심사 위원이면 시상식 날 발표하는 상 모두를 서준에게 주고 싶은 심정이니까. 그 정도로 올해 이서준이란 가수는 정말 대단한 활약을 보인 건 확실하거든.”
김진영은 마이클 본 사장의 대답에서 이상한 부분을 발견하곤 그것을 콕 집어 되물었다.
“근데 아까 제가 드린 질문에 대한 답은 제대로 안 하시네요. 제가 분명 올해 그레미 어워드에서 서준이가 상을 탈 가능성이 어느 정도 되느냐고 물었잖아요. 근데 그 대답은 쏙 빼고 대충 둘러대기식 대답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정곡을 찔린 마이클 본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그냥 넘어가고 싶은 질문이었네만… 진짜 내 대답을 듣고 싶은가? 워너비 뮤직의 사장인 내가 보기엔 서준이가 상을 탈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주변의 정보를 바탕으로 실제 예측을 해 달라 이 뜻이지?”
“네, 그렇죠. 개인적 사견을 쏙 뺀 대답으로요. 지금 관계자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어느 정도 알고 계시잖아요.”
김진영 역시 한국에서 최고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이런 대형 시상식 뒤편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다.
마이클 본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면 그런 정보에 대해 모를 리가 만무했다.
어떻게 보면 그걸 잘 알기에 작심하고 물어본 질문일 수도 있었다.
마이클 본 사장은 김진영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지금 알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수상 가능성을 나지막이 알려 주었다.
“자네 질문에 답을 주면, 나 역시 60% 정도라고 보네. 다만… 자네와 다른 점은 받지 못할 가능성이 60이라는 점이지.”
김진영은 마이클 본의 대답을 듣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마이클 본 사장의 솔직한 말대로라면, 이서준이 그레미 어워드를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금 놀랐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이거 너무하네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올해는 서준이가 정말 발군의 활약을 펼친 한 해였잖아요.”
“그건 맞지. 근데 그레미 어워드가 그렇게 공평하게 상을 주는 곳은 아니라네. 수상자 선장 때문에 논란이 생기는 것은, 거의 매년 생기는 통상적인 사고와 같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 바로 그레미지. 그러니 자네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좋을 거야. 물론 서준이에게는 내가 미리 이야기를 잘해 두었으니 걱정하지 말고.”
마이클 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김진영은 마음은 무척 속상했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최고의 아티스트에게 주는 최고의 상을 받는 장면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속으로 많은 기대를 걸고 있던 그였기에 특히나 속상한 마음이 컸다.
“솔직히 힘이 빠지는 기분이네요.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 먼 곳까지 왔을 때는 우리 서준이가 상을 받기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오게 된 것인데… 지금까지 제가 했던 일들이 모두 쓸데없는 짓이었단 생각이 드니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아요.”
마이클은 크게 실망한 김진영을 위로하며 ‘그레미 어워드’ 수상 불발의 가치에 대한 그의 속내를 말해 주었다.
“실망하지 말게. 그리고 사실 나는 ‘그레미 어워드’에서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 그리 나쁜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네. 세상은 영광의 주인공만 기억하는 곳이 아니거든. 만약 서준이가 그레미상을 못 받는 불상사가 실제로 생긴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네. 그것도 그냥 일회성의 의미 정도가 아니라, 세계 대중 음악사에 길이 남을 큰 족적을 남기는 것과 같은 것이지. 불의의 세상 때문에 상을 받지 못한 진정한 챔피언으로서 기억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뜻의 말이지.”
사실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마이클 본의 솔직한 바람과 같은 말이었다.
그는 이서준이란 아티스트에 대해 남들보다 몇 배는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서준의 음악 인생에서 올해만 중요한 해가 될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업적을 이룰 거라는 나름의 확신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이서준 같은 아티스트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서포터해야 하고, 그것이 그가 사장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렇게 비운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길게 봐서는 결코,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판단했던 것이었다.
* * *
그레미 어워드가 열리기 2주 전부터 이서준은 정말 열심히 활동했다.
각종 인터뷰는 물론이고 유명 TV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그레미 어워드의 주인공이 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여러 가지 활동을 정말 성실하게 소화했다.
그렇게 대외 활동을 열심히 하며 바쁘게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니 어느덧 ‘그레이 어워드’가 열리는 날이 밝고야 말았다.
“칼리, 소식 들었어?”
시카고 튜르뷴의 연예부 기자 도널드의 물음에 같은 연예부 기자이자 친구인 칼리가 대답했다.
“어떤 소식? 아, 이서준이 그레미상을 못 받을 거라는 소문?”
칼리의 대답에 도널드는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하하, 맞아, 그 소문. 물론 너도 알고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어. 그리고 이 정도로 널리 퍼진 이야기면 거의 오피셜이라고 봐도 되겠지?”
칼리는 도널드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지. 그리고 이쪽 방면에서 일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던 사람도 제법 있었잖아. 보수적인 그레미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를 말이야.”
이들의 대화처럼 이미 많은 이들은 이서준의 그레미상 불발에 관해 소문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누군지 정확히는 밝힐 수 없는 내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서준은 최종 후보 단계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이 기자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퍼졌기 때문이었다.
과거 논란이 될만한 수상자를 선정해 많은 비난에 휩싸였던 그레미 어워드였기에, 이번에도 미국 사람도 아니고, 백인도 아닌 데뷔 1년 차 아시안 가수를 그레미 어워드의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많은 이들이 어느 정도 짐작하는 바였다.
그러나 만약 소문대로 이서준이 그레미 본상 후보에도 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레미 어워드를 향해 사람들이 어떤 비난의 화살을 쏘게 될지 그들조차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큰 파장을 몰고 올 거 같았다.
그러니 뉴스거리를 찾은 그들의 입장에선, 오늘 이서준이 진짜로 시상식에 오지 않을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올까?”
칼리의 물음에 도널드는 고개를 저었다.
“꽤 공신력 있는 정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잖아. 그러니 오지 않는다고 보는 게 맞을 거야.”
칼리 역시 도널드와 같은 생각이었다.
“내 생각에도 오지 않을 거 같아. 사실 지금 내 관심은 과연 이서준 대신 누가 이 독이 든 성배를 마시냐에 가 있어. 아마 상을 받게 되어도 골치가 무척 아플 거야. 안 그래?”
“그렇지. 좋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도 없고… 자칫하면, 비난의 화살이 자신에게 향할 거니까.”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올해의 그레미 어워드는 다른 의미로 시작부터 화제가 만발한 시상식이었다.
* * *
드디어 시작된 제62회 그레미 어워드.
수많은 스타가 그레이 어워드가 열리는 미국 LA 스테이플스 센터에 찾아 주었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레드카펫을 걸으며 수많은 카메라의 플래시 세례를 뚫고 안으로 온 스타들은, 오늘만큼은 축제의 날이라는 사실에 잊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상식에 참여하고 있었다.
화려한 축하 공연과 함께 시작된 그레미 시상식.
오늘의 주인공인 수상자를 가장 먼저 발표하게 되는 상은 ‘최고의 신인상’ 분야였다.
“최고의 신인상을 받게 될 영예의 주인공은 바로…… 메건 트레이시입니다.”
와아아아.
사람들의 환호 속에 수상자가 되었음을 알게 된 메건 트레이시.
그러나 그녀는 수상자답지 않게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복잡한 심정이 담긴 표정으로 무대에 올라온 그녀는, 자신에게 상이 수여되자 더욱 심란해하는 표정으로 수상 소감을 밝히기 시작했다.
“음…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사실 지금 기분이 매우 복잡합니다. 제가 이 대단한 상을 받게 된 건 사실 무척 기쁜 일이 분명하지만… 과연 제가 올해의 최고 신인이라는 말에 어울릴 만한 사람인지는 저 스스로도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사실 그녀가 왜 이런 소감을 밝히고 있는지는 이 장면을 보고 있는 대다수의 참석자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자신이 들고 있는 이 상이 다른 사람에게 주어졌어야 한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던 탓에 저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추측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음… 어쨌든 상을 주시기에 받긴 하겠지만… 하, 머리가 너무 복잡해 도무지 생각이 정리되질 않는군요. 죄송하지만, 수상 소감은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레미 시상식은 첫 상 수여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해주고 있었다.
그런 짐작대로 다음 상 수상에서도 조금 전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올해의 노래상의 주인공은… 빌러 아일라쉬입니다.”
빌러 아일라쉬는 수상자로 선정되었는데도 뭔가 찜찜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좌석에서 일어섰다.
그녀 역시 앞서 수상자로 선정되었던 메건 트레이시와 같은 이유가 아닐까 하고 사람들은 추측했다.
그러나 그녀는 메건 트레이시보다 더 힘든 상황을 겪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남아 있던 ‘올해의 레코드상’과 ‘올해의 앨범상’까지 그녀를 수상자로 호명했기 때문이었다.
무려 세 번 연속 수상자로 호명된 빌러 아일라쉬는, 매우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아끼는 기색이 역력하더니, 마지막으로 ‘올해의 앨범상’까지 자신에게 주어지자 뭔가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다는 단호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옆에는 조금 전과 다르게 멋있게 컴백에 성공한 디바 ‘애슐리 브룩’이 함께 서 있었다.
“하하, 상을 무려 세 개나 받았군요. 그것도 평생 활동해도 하나도 받기 힘들다는 그레미상을 한 번에 세 개나 받은 행운이 제게 올지는… 정말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환상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은 전혀 환상적인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