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185화 (185/189)

185. 그레미 어워드 (3)

“올해 빌보드 최장기간 1위 했던 가수가 누구였을까요? 질문을 조금 더 드리죠. 올해 최다 판매 앨범이 누구의 앨범이었을까요?”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 어렵지 않은 질문이죠? 여기 있는 모두가 답을 아실 겁니다. 그래서 질문을 더 드려 보겠습니다. 올해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흘러나왔던 노래는 누구의 노래였을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올해 음원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곡은 누구의 곡일까요? 여기 있는 모든 분은 방금 제가 드린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계실 겁니다.”

사람들 사이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짐작을 머릿속에 떠올린 사람들은 점점 목소리가 커지는 그녀에게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여러분 모두가 아시다시피 아주 아쉽게도 앞서 드린 질문의 답은 제가 아닙니다. 전 4개의 질문 중 단 한 개의 업적도 이루지 못한 가수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앞서 드린 질문의 답을 해낸 가수가 단 한 명이란 겁니다. 누구는 단 하나도 이루기 어려운 업적을 이 가수 겸 작곡가 겸 프로듀서는 혼자서 이 모든 것을 이루었습니다. 근데 놀라운 사실이 뭔지 아십니까? 더욱 놀랍고 짜증이 나는 사실은 이 대단한 분 대신 제게 세 개의 트로피가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이 상을 제게 주는 이유가 혹시… 참석하지 못한 진정한 상의 주인에게 대신 전달해 달라는 뜻이었던가요?”

그녀의 말은 아주 신랄했다.

그녀는 오늘 이 시상식을 보고 수상자 선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품었던 모든 사람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녀로 인해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고 있었다.

드디어 말을 멈춘 빌러 아일라쉬.

그녀가 입을 다물자 축제 같은 시상식으로 인해 떠들썩했던 시상식장 내부에는 묘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 시상식이 지금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생방송으로 방영 중이란 사실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의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애슐리 브룩은 빌러 아일라쉬가 많이 흥분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오늘따라 더 예쁜 우리의 빌러 아일라쉬 양이 너무 흥분한 것 같으니, 제가 잠시 말을 이어받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할 말이 있어 이렇게 상의 주인공이 아닌데도 무대에 올라온 것이거든요.”

베테랑 가수답게 미소 띤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애슐리 브룩이었다.

“여러분은 지금 그레미 어워드가 어떤 시상식인 거 같나요? 최고의 뮤직 시상식? 아니면 세상이 전부 자기 것인 줄 착각하는 꼰대 노인네들의 집안 잔치? 저 같은 경우에는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 시상식을 보고 계시는 많은 분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말의 시작부터 화끈한 입담을 뽐내며 시작하는 그녀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시작되자, 조금 전 빌러 아일리쉬가 폭탄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 낼 때부터 일그러지던 얼굴들이 더욱 구겨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그레미 어워드의 진행을 맡은 관계자들이었다.

말을 시작한 애슐리 브룩은 그런 그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모양인지 인상을 쓴 그들의 표정과 다르게 한껏 여유 넘치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레미 어워드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작년에도 수상자가 발표된 뒤 많은 논란이 따랐습니다. 재작년 같은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논란이 있었는데… 제 개인적으론 그때가 최고였던 거 같아요. TV로 그레미 어워드를 보면서 정말 힘들었거든요. 근데… 당신들은 그런 제 예상을 보기 좋게 깨 버렸네요. 올해 더 큰 일을 벌이면서까지요. 그런 의미에서 정말 대단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네요. 그리고 다른 의미에서는 정말 대단한 시상식은 분명한 거 같네요.”

그레미 어워드의 수상자 논란의 흑역사에 관해 신랄한 비판을 퍼붓던 그녀는, 말을 잠시 멈춘 후 들고 온 가방에서 갑자기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가방 밖으로 빠져나온 그녀의 손에는 그녀가 예전에 받았던 그레미상이 들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사람들 사이에선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무슨 행동을 할지가 불안해졌기 때문이었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동요하자 애슐리 브룩은 그들을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은 후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이건 한때 저에게 큰 영광이었던 그레미상입니다. 이 상을 받고 정말 기뻤었죠. 왜냐면, 제 음악이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이 상이 얼마나 가치가 없는 상인지를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제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상을 받았던 일을 절대 떠올리지도 않고 다른 곳에서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언급하지도 않을 생각입니다. 왜냐고요?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 상이 분명하니까요.”

말을 마친 애슐리 브룩은 들고 있던 상을 그대로 허공에서 놓아 버렸다.

그래서 그레미상은 모든 자연 만물에게 적용되는 중력에 의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고, 바닥과 강하게 부딪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져 버렸다.

아아아아.

애슐리 브룩의 돌발 행동에 탄성을 내지르는 사람들.

하지만, 자신의 상이 부러진 것을 본 애슐리 브룩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없었다.

오히려 상쾌함을 느끼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빌러 아일라쉬 역시 들고 있던 트로피를 애슐리 브룩과 같은 모습으로 바닥에 떨어뜨려 버렸다.

역시 이번에도 상은 부서져 버렸고, 그녀 역시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애슐리 브룩과 빌러 아일라쉬가 받았던 트로피를 그레미 어워드 시상식장에서 부숴 버리는 기행을 저질렀고, 이것은 본 사람들은 충격으로 인해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이 장면을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런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한 빌러 아일라쉬는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고했다.

“할 말은 끝냈네요. 그리고 꼭 해야 할 일도 끝냈고요. 그럼 이만 수상 소감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 빌어먹을 시상식에 올 일이 없을 것 같으니… 진심으로 그레미 어워드 스태프들에게 작별 인사를 드리도록 할게요. 잘 있어라, 이 빌어먹을 시상식아.”

거한 욕으로 수상 소감을 마무리한 빌러 아일라쉬는 자신을 흐뭇하게 쳐다보던 애슐리 브룩과 기분 좋은 하이파이브를 나눈 뒤 함께 시상식장을 빠져나가 버렸다.

그렇게 그레미 어워드 시상식은 이상한 분위기에서 끝이 났다.

* * *

충격으로 마무리된 그레미 어워드 시상식.

이 시상식은 끝나고 난 뒤 더욱 큰 화제에 올랐다.

물론 화제가 된 가장 큰 이유는 3개의 트로피를 받은 빌러 아일라쉬와 과거 그레이 어워드 수상자인 애슐리 브룩의 파격 퍼포먼스였다.

그것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먼저 한쪽의 사람들은 두 사람이 매우 경솔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따지고 보면 그레미상의 수상자 선정은 그레미 어워드 시상식을 매년 진행하던 사람들의 고유 권한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선택에 불만을 드러낼 수는 있겠지만, 수상자로 선정된 사람들이 전 세계로 송출 중인 생방송에서 트로피를 부순 것은 매우 경솔한 행동이 분명하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한쪽의 반응은 보고 나니 매우 속이 시원했다는 사이다 반응이었다.

세계 최고의 음악 부분 시상식을 표방하는 그레미가, 매년 수상자 선정에서 많은 논란을 만들어 왔고, 그런 문제 제기에 대한 제대로 된 피드백도 전무했다고 보는 견해였다.

즉, 그동안 안에서부터 곪아 오던 문제점이 이번에 제대로 터진 것이라 보는 시각이었다.

결국, 언제가 터질 문제를 두 여성 디바가 총대를 메고 제대로 공론화시킨 거라는 시각이었다.

많은 이들은 전자보다는 후자 쪽의 손을 들어 주었는데, 특히 한국에서는 총대를 멘 두 명의 여자 가수의 인기가 하늘을 뚫을 올라갈 기세였다.

한국 팬이야말로 이서준이 그레미상 본상 후보에도 올라가지 못한 사실에 가장 놀라워했는데, 두 여성 디바가 그런 자신들을 대신해서 제대로 비판을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인 일본의 경우, 이번에는 별다른 말들이 없었다.

그동안의 작태를 보면, 분명 두 사람을 비판하며 이서준을 깎아내리려는 듯한 스탠스를 취해야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일본 연예계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내막에는 이서준의 일본 내 인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가는 이서준의 인기에, 혹시 이서준을 비하라도 하면 일본 내 이서준 팬들이 강하게 보이콧을 해 왔기 때문에 눈치를 보게 된 탓이었다.

중국 역시 의외의 반응을 보였는데, 일각에서는 이서준이 중국인이라는 이상한 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서준의 멀지 않은 조상이 바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간 사람이니 이서준도 정확히 따져 보면 자랑스러운 중국인이라는 괴변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중국의 반응에 역시 이번에도 중국했다는 말로 정리하면 그들의 이상한 소리를 일축해 버렸다.

* * *

한국으로 돌아가는 전세기 비행기 안.

이서준은 그레미 어워드를 받지 못했지만, 별로 슬픈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뭔가 뿌듯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팬들이 자신의 공식 SNS에 올린 글을 읽고 있었다.

―진정한 상은 그레미가 아니라 우리 팬들이 주는 상이야.

―맞아. 올해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서준이 최고였어.

―동의해. 그리고 그런 가치 없는 시상식 이야기는 그만했으면 좋겠어. 그런 이야기보다는 서준이 언제 콘서트를 하는지가 내게는 더 중요한 일인걸.

김진영은 흐뭇한 표정으로 글을 읽는 이서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기분 괜찮아 보이네.”

이서준은 그런 김진영의 물음에 웃으며 반문했다.

“제가 기분이 안 좋아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이유야 어쨌든 수상을 못 했잖아. 예전부터 진짜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던 상이 바로 그레미상이었고.”

과거 이서준은 김진영에게 그레미상을 받고 싶단 말을 여러 번 했었다.

그가 동경하던 팝 가수들이 그레미를 받고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던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그 역시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하니 괜찮아요. 최고의 상은 팬들이 주는 사랑인 걸 알았거든요.”

이서준은 이 말과 함께 자신이 보고 있던 SNS를 김진영에게 건넸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라는 의미의 행동이었다.

김진영 역시 빠르게 글들을 읽으면 미소지었다.

“팬들이 고맙네. 그리고 너 좀 쉬고 바로 월드 투어 가야겠다. 콘서트를 너무 기다리고 계시네.”

“그래야죠. 이번에는 되도록 많은 나라를 가 보고 싶어요. 괜찮죠, 형?”

“그야 물론이지. 회사에서 최대한 노력해서 최고의 투어를 만들어 보자고.”

“네.”

전 세계를 도는 진정한 월드 투어 서막을 알리는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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