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그로부터 2년 후(2).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임시 파티장으로 향한 두 사람.
오랜만에 보는 이서준의 등장에 파티를 즐기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환호했다.
“오, 우리 프로듀서님 오셨네. 덕분에 상 받았어요. 와아.”
“사실 오늘 주인공은 서준 오빠잖아. 안 그래?”
“왜 아니겠어? 워너비 걸즈부터 우리 쓰리 타임즈까지…. 다 오빠가 만들어 준 노래 가지고 1위 한 거잖아. 그러니 진정한 주인공은 우리 서준 오빠가 맞지.”
용기 내어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 등장한 이서준.
사람들은 오랜만에 보는 그를 웃는 얼굴로 반겨 주었다.
같은 회사 내에서 주로 지내는 그들이지만, 녹음할 때 말고는 이서준이 거의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기에 실제로는 제법 오랜만에 보는 거라 더욱 반가운 마음이었다.
오랜만에 맥주도 마시고 사람들과 재밌는 이야기도 주고받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이서준은, 자신의 곁에 다가온 김진영을 향해 웃으며 물어보았다.
“형은 언제 컴백해요? 원래 올해 12월에 컴백할 거라고 계획하지 않았어요?”
김진영은 자신의 컴백에 관심을 가지는 이서준을 보며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우리 서준이가 이 형의 컴백 소식은 기다리고 있었나 보네. 근데 올해는 컴백이 힘들었어. 누구 덕분에 엄청나게 바빴으니까.”
“누구 때문에요?”
“하하, 그거야 바로 너지. 솔로 영화 대박을 터뜨리자마자 작업실에 틀어박혀 안 나왔잖아. 그리고 그곳에서 워너비 걸즈와 쓰리 타임즈 줄 곡도 뚝딱 만들어서 애들한테 떡하니 안긴 다음 곧바로 프로듀싱까지 끝낸 버린 사람도 그러고 보니 너였네. 나는 그런 너 덕분에 너 영화 성공에 따른 스케줄을 회사에서 다 땜빵해야 했고, 네가 곡 준 두 팀 다 대박 나는 바람에 저 녀석들 뒤도 쫓아다녀야 했고…. 아무튼, 결론은 너 때문에 엄청 바쁜 한 해였다는 말이야.”
들어보니 다 맞는 말이라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해요, 형. 저 때문에…. 제가 활동을 안 해서 많이 곤란하셨죠?”
“뭐, 우리 사이니까 솔직히 조금… 힘들긴 했지. 근데 미안해하지는 마. 네가 미안해하면 우리 사이가 별거 아닌 게 되는 거잖아. 안 그래? 난 진정한 월드 스타의 가장 가까운 형이고 싶은 사람이거든.”
“하하, 그건 사실이에요.”
“진짜? 그런 의미에서 건배?”
“네, 하하.”
병맥주째로 부딪친 두 사람은 즐거운 표정으로 맥주를 마셨다.
맥주 속 탄산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던 김진영은, 문득 생각이 난 모양인지 자신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서준에게 물었다.
“근데, 다음 달 영화 촬영은 할 수 있겠어?”
이서준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수 있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혹시라도 힘들면… 바로 말해. 알겠지?”
“네.”
그날 저녁.
파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이서준은, 잠이 오지 않는 바람에 침대에서 일어나 자신의 집 옥상으로 가 바람을 쐬려고 마음먹었다.
현재 집에는 여동생은 물론이고 부모님까지 올라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사생팬들이 늘어 보안에 유리한 서울의 최고급 빌라를 사서 거처를 옮겼는데, 이서준의 불안한 마음 상태를 염려한 부모님도 최근 서울로 올라와 함께 살고 있었다.
자신의 걷는 소리 때문에 곤히 자는 가족들의 잠을 설치게 만들까 봐 아주 조용히 움직였다.
천천히 걸은 탓에 제법 시간이 걸려서야 옥상 테라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 놓여 있던 의자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다 보니 다시 울적한 기분이 그의 곁에 찾아들었다.
“하~ 도무지 자신이 없어. 미치겠네….”
계속 도망만 치고 있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아직까지는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나 무서웠다.
여전히 외부 활동을 하지 못하고 숨어서 지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대한 공포감을 처음 느꼈을 땐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그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더욱 심해졌다.
그리고 그 때문에 점점 숨어드는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어했고, 그걸 보는 본인 역시 괴로워했다.
마음의 병이 생긴 후 영화 촬영 외에는 거의 밖으로 나간 적도 없었다.
간혹 연인인 나영과 함께 차를 타고 바람을 쐬러 나가는 것 외에는 일체의 외부 활동도 안 했다.
“나도 이런 내가 정말 싫다.”
괴로운 마음에 자신의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어 보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힘들어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그의 옆 의자에는 보고 싶었던 도깨비가 앉아 있었다.
“도깨비 님!”
깜짝 놀라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에 도깨비는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우리 서준 씨가 힘들어하길래 오랜만에 얼굴 보러 왔어요. 나 보니 반갑죠?”
“네, 반가워요. 사실 진짜 보고 싶었어요.”
도깨비는 이서준이 자신을 왜 보고 싶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준 씨가 날 보고 싶어 하는 줄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서준 씨 만나러 올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고요.”
“…때를 기다리고 계셨다고요?”
“네. 모든 인연이란 것이 다 때와 시기가 있는 법이거든요. 그러니 당연히 우리 둘이 만날 수 있는 때를 기다리는 건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일인 거죠.”
왠지 모르게 어려운 느낌이 드는 이야기라 도깨비가 하는 말에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을 이렇게 슈퍼스타로 만들어 준 존재가 바로 도깨비라는 믿을 수 없는 존재였기에 이렇게 다시 보게 되는 것만으로도 큰 의지가 되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나타난 도깨비는 그런 이서준을 미소 띤 얼굴로 잠시 쳐다보더니 다시 그에게 물었다.
“서준 씨가 지금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도깨비야말로 가장 편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였기에 이서준은 곧바로 그의 물음에 답하였다.
“별거 아닌 나란 존재의 말과 행동에 사람들이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 너무 두려워요. 난 그저 내 노래나 연기를 통해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은 단순한 마음뿐이었는데, 그들은 그걸 넘어서 그들의 삶 자체가 나에게 영향을 받는 것 같아 너무나 무서워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요.”
“또 다른 것도 있잖아요. 그것도 말해 봐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너무 무서워요. 사실 전 도깨비님의 능력을 얻어 이렇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잖아요. 실제의 저는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이서준을 괴롭히는 가장 큰 두려움 두 가지가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이 그들의 눈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두려움은 사람들은 자신을 월드 스타라 부르지만, 그것은 진정한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깨비의 신비한 능력 덕택에 만들어진 자신이었기에, 그런 능력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자신은 더 이상 사람들이 원하는 스타가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생각이 그를 두렵게 만든 것이었다.
도깨비는 속마음을 털어놓은 이서준을 향해 다정히 말을 걸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해요?”
“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거 같아요. 전 너무나 약한 사람인걸요.”
도깨비는 본인을 탓하는 이서준에게 고개를 저어 보이며 말을 이어 갔다.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일단 두 번째 말한 것부터 아니에요. 왜냐면, 당신은 제 능력으로 슈퍼스타가 된 것이 아니니까요.”
이서준은 도깨비을 바라보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내가 도움을 준 것은 맞아요. 그러나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악을 만든 것은 순전히 당신이 가지고 있던 재능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즐겨 했던 당신이었기에 그런 훌륭한 노래들을 만들 수 있었고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그런 당신의 재능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막고 있던 껍질을 깨도록 도와준 것뿐입니다. 만약 저와 만나지 않았어도 당신은 충분히 좋은 노래와 좋은 연기를 사람들에게 선보였을 겁니다. 아, 시간은 좀 걸렸을 수도 있겠네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도깨비의 말이었기에 그의 이야기를 들은 이서준의 마음속에는 자그마한 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 우리 서준 씨의 말과 행동에 너무 영향을 받는다고 했었죠. 그건 서준 씨의 탓이 아니에요. 저들은 서준 씨가 없었어도 다른 대상을 찾아 똑같이 행동했을 사람들입니다. 서준 씨는 구실일 뿐이에요. 왜냐면, 그들은 자극이 필요했을 뿐이니까요. 그러니 사실은 그들의 반응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였어요.”
말을 하는 도깨비의 손에서 갑자기 빛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서준 씨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등불과 같은 존재예요. 어둠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존재란 뜻이죠. 그러니 진짜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직접 당신의 눈으로 확인해 보도록 하세요. 저와 함께요.”
도깨비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와 이서준은 엄청나게 밝은 빛으로 둘러싸여 버렸다.
눈이 부셔 그만 눈을 감고 말았던 이서준은, 잠시 후 눈을 뜨고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옥상 테라스가 아니라 낯선 벤치에 앉아 있었던 탓이었다.
“놀라지 마세요. 제가 우리 서준 씨랑 만날 사람이 있어 이리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냥 저랑 이 벤치에 앉아 조금 있다 나타날 한 소년의 모습을 지켜보시면 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영문을 몰라 당황스러웠지만, 도깨비의 설명을 들었기에 그대로 잠시 기다렸다.
이내 모습을 드러내는 한 소년.
소년은 이서준과 같은 동양계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은 채 걷고 있었는데, 그런 소년의 뒤로 한 무리의 소년들이 나타났다.
뒤에서 나타난 무리 중 체구가 좋은 백인 소년이 앞에서 걷고 있는 동양인 소년의 발을 걸어 버렸다.
우당탕.
그대로 다리에 걸려 넣어진 소년.
백인 소년 무리들은 그런 소년을 보며 웃으며 달려들어 발로 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집단 린치.
보고 있던 이서준은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가려 했다.
덥석.
그런 그를 도깨비가 잡았다.
도깨비는 놀라 자신을 바라보는 이서준을 바라보며 이렇게 설명했다.
“나서서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인연의 고리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서준 씨는 저들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그냥 지켜보세요. 그게 저 소년을 도와주는 일입니다.”
나서면 안 된다는 도깨비의 말에 이서준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벤치에 앉아야 했다.
소년들의 공격은 집요했다.
그들은 쓰러진 소년을 계속 발로 차고 있었고, 동양계 소년은 그런 그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와아악!”
웅크려 있던 소년이 자신을 공격하는 한 소년의 발을 잡고는 그대로 일어선 것이었다.
그 때문에 발이 잡힌 소년은 역으로 땅바닥에 쓰러져야 했고, 다른 소년들은 놀란 눈으로 동양인 소년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