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깨비 덕분에 슈퍼스타-188화 (188/189)

188. 그로부터 2년 후 (3)

일어선 소년의 몸은 백인 소년들의 집단 린치로 인해 먼지투성이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소년의 코와 입에선 선명한 붉은 색깔의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 모습으로 자신을 공격한 소년들을 향해 소리쳤다.

“덤벼! 이 겁쟁이들아! 떼로 덤비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너희 같은 겁쟁이 놈들은 백 명이 몰려와도 두렵지 않아, 어서 덤벼!”

“…….”

엄청난 기세의 소년.

백인 소년 무리는 그런 소년의 기세에 밀린 듯이 재차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동양인 소년에게 다리를 잡혀 넘어진 소년 역시 그들과 비슷한 표정으로 지으며 일어서더니, 소리치는 소년을 보고는 당황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어느새 사람들로 둘러싸인 그들.

이런 상황에서 계속 동양인 소년을 때리는 것은 힘들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넘어졌던 소년은 다른 소년들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노란 원숭이가 드디어 미친 것 같으니까 일단 지금은 돌아가자. 재수 없으면 물려서 우리도 저 녀석처럼 미칠지도 몰라.”

“그, 그래.”

리더로 보이는 소년의 말에 황급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자리를 떠나는 소년들.

동양인 소년은 그런 그들이 멀어질 때까지 계속 노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얘야, 괜찮으니?”

주변에 있던 흑인 아주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년에게 물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요.”

몸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떨며 괜찮다고 말하는 소년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녀는, 주머니 속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내 소년에게 건네었다.

“이걸로 피를 좀 닦으렴.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시겠다.”

“…고맙습니다.”

건네받은 손수건으로 코피를 닦던 소년은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고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엉망이 된 몸으로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하는 소년.

도깨비는 아직 무슨 상황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해 멍한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보는 이서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일단 저 아이를 따라가죠.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 아, 그리고 너무 조심해서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가진 능력으로 서준이와 저의 존재는 감추어 두었으니까요.”

“…네.”

그렇게 한 5분 정도를 걸어간 아이는, 허름해 보이는 단독 주택 앞에 잠깐 멈추더니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벽지가 바로 눈에 들어오는 집 내부에는 마른 체구의 동양인 중년 여성이 한창 집안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본 소년은 ‘엄마’라고 소리친 후 달려가 안기었다.

“엄마!”

“어머, 피오야… 너 이게 무슨 일이니?”

소년의 엄마는 자신에게 안긴 아들의 엉망이 된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 물었다.

소년은 그런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듯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두드리며 큰소리로 대답했다.

“엄마, 괜찮아요. 이 정도는 영광의 상처니까요. 오늘은 제가 용기 내어 놈들하고 맞섰어요. 프랭크 패거리도 앞으로는 저한테 함부로 하지 못할 거에요.”

“…그래… 장하다.”

엄마는 그런 소년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다시 한번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잠시 뒤 자신의 방에 돌아온 소년은 엉망이 된 옷을 갈아입은 뒤 방구석에 놓인 책상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꺼내었다.

뒤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이서준은 소년이 꺼낸 물건을 보고 다시 한번 크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소년이 꺼낸 물건은 다름 아니라 자신의 앨범이었기 때문이었다.

동양인 소년은 이서준의 앨범을 소중한 물건 다루듯이 손으로 쓰다듬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형, 오늘 전 큰 용기를 냈어요. 너무 무서운 걸 꾹 참고 한 번 맞서 보았더니 진짜 무서운 녀석들이 이상하게도 하나도 무섭지 않게 보였어요. 형의 노래 가사처럼 용기를 내어 세상과 맞섰더니 두려운 게 모두 사라진 셈이죠. 앞으로도 형 말대로 날 괴롭히고 따돌리는 녀석들이 생긴다면 오늘처럼 용기 내어 당당하게 맞설게요.”

이 이야기를 뒤에서 듣고 있던 이서준은 충격으로 인해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도깨비는 크게 충격받은 이서준의 곁으로 다가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자, 그럼 이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볼까요?”

딱.

도깨비가 손가락을 튕기자마자 어느새 이서준은 원래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옥상 테라스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서준은 조금 전 받은 충격으로 인해 여전히 멍한 표정을 얼굴에서 지우진 못한 모습으로 물었다.

“방금 그 소년은 누구인가요?”

“소년은 미국의 작은 도시에 사는 인도계 아시안 소년입니다. 최근 미국에는 다시금 인종 차별이 심해져서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조금 전 그 친구 역시 체구가 작고 힘이 약한 탓에 아까 보았던 소년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괴롭힘을 받아야만 했죠.”

도깨비의 설명을 들으니 조금 전 보았던 장면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의문도 생겼다.

“조금 전에는 용감하게 싸웠잖아요. 오랜 시간 동안 괴롭힘을 당한 아이치고는 너무 용감했어요.”

“후후, 그게 서준 씨 덕분입니다.”

“저요?”

“네. 그 친구는 서준 씨가 미국에서 성공하여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계속 도망만 다녔어요.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들과 당당하게 맞설 용기가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 생각했어요. 이곳에선 자신과 같은 아시아 사람은 항상 백인들에게 당해야 하는 약한 존재라고요. 오랜 시간 받은 괴롭힘에 그렇게 잘못된 생각을 마음속에 가지게 된 것이었죠. 그러다 등장한 이서준이란 남자. 소년의 눈에 그는 정말 너무 멋졌어요. 백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사회에서 아시아 사람도 노력하면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신 덕분에 소년은 깨닫게 된 것이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경우였다.

본인이 그저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활동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용기와 희망이란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었다.

“소년은 당신의 노래를 들으면서 점점 가슴 속에 용기를 채웠어요. 그리고 오늘 직접 보신 것처럼 불의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용기를 보여 주었죠. 이로써 소년은 앞으로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거예요. 본인도 노력하면 불의에 맞설 수 있다는 걸 진심으로 깨우쳤기 때문이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도깨비는, 어느새 이서준 곁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걸쳤다.

“서준 씨, 안 좋은 것만 보지 마세요. 그리고 그건 당신 탓이 아닙니다. 너무 많은 생각도 하지 마세요. 그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저 당신은 좋은 노래만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노래를 통해 자신만의 행복을 찾게 될 겁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당신이 고민할 거리는 아닙니다. 그저 당신은 좋은 노래를 만들어 불렀을 뿐이니까요. 그저 당신이 내놓은 아름다운 노래는 그때부터는 당신의 것이 아닌 거죠. 누군가가 당신의 노래를 통해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은 당신이 해야 할 걱정이 아닙니다.”

너무 어려운 이야기라 도깨비가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닫혀 있던 마음의 벽들이 서서히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저 하고 싶은 노래를 부르세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거면 세상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어느새 도깨비는 사라졌고 이서준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도깨비가 떠난 자리를 한참 바라보던 그는, 다시 몸을 돌려 옥상에서 내려왔다.

이서준은 곧장 집에 만들어 둔 자신의 작업실로 들어가서 하염없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 ♩♪♩♪

애절한 멜로디의 피아노 선율이 어느새 그의 작업실 안을 가득 메웠다.

마치 아팠던 자신의 마음을 들려주는 것 같은 그의 피아노 소리였다.

그러나 그의 피아노 소리는 아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픔 속에서도 서서히 피어오르는 한 송이의 꽃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노래를 듣는 사람에게 알려 주는 것 같은 피아노 소리가 작업실을 가득 메우면서, 어느새 작업실은 마음의 안식을 찾아 주는 듯한 따뜻한 느낌이 충만했다.

그렇게 이서준의 피아노 소리는 날이 밝아올 때까지 멈출 줄을 모르고 계속 울렸다.

* * *

“마샤~ 마샤~”

이번에 새롭게 사장 비서직을 맡게 된 마샤 브린트는, 평소의 모습과 너무 다르게 매우 흥분한 마이클 본 사장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얼른 뛰어와서 물었다.

“저 여기 있어요. 사장님.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셨나요?”

마이클 본 사장은 그녀의 걱정 어린 시선과는 다르게 매우 기분이 좋아 보이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큰일은 엄청 큰일이죠. 근데 나쁜 쪽이 아니라 좋은 쪽으로 큰일이니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아, 내가 너무 흥분한 상황이라 도무지 진정이 안 되네요. 그래서 말이 조금 빠르더라도 지금은 이해를 부탁드릴게요.”

“아, 네, 사장님.”

흥분한 모습으로 그녀의 책상 앞으로 왔다 갔다 하며 생각을 정리하던 그는, 이윽고 나름 정리되었는지 다시금 그녀를 향해 빠르게 지시했다.

“회사에 있는 토미와 리차드에게 어서 연락을 넣어 줘요. 내가 지금 당장 보자고 한다고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지금 어떤 일을 하던 간에 당장 그 일을 그만두고 내 방으로 와 달라고 말해 주세요. 알겠죠, 마샤?”

“네, 사장님.”

그녀는 그의 성화에 황급히 수화기를 들며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 침착한 분이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걸까? 설마 파워볼이라도 당첨된 걸일까?’

그녀의 상식으로는 저만큼 크게 놀랄 만한 일은 미국의 로또라고 할 수 있는 파워볼에 당첨되는 경우 말고는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 * *

미국의 워너즈 뮤직.

한때 경영상의 많은 문제점이 생기기도 했던 이 회사는, 지금은 엄연히 미국에서 제일가는 음반 회사로 성장했다.

물론 그러한 성장의 이유에는 이서준이란 아티스트의 활약이 있었다.

이서준의 팬인 레이첼 도스는 정기적으로 워너즈 뮤직의 대표 SNS를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가수인 이서준의 컴백 때문이었다.

오늘도 습관처럼 워너즈 뮤직의 공식 SNS를 들여다본 그녀는,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랬다.

“어머!”

그런 친구의 반응에 옆에 앉아 있던 제이미가 물었다.

“뭔데 그렇게 깜짝 놀라?”

레이첼은 친구의 물음에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이미 워너즈 뮤직에 이상한 게 떴어.”

“뭐?”

그녀 역시 이서준의 광팬이었기에 워너즈 뮤직의 소식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레이첼의 스마트폰을 통해 확인한 워너즈 뮤직 공식 SNS.

그곳에는 이상한 문구가 하나 떠 있었다.

‘D-10’

이 이상한 문구 이외에는 어떠한 부연 설명도 없었기에 그녀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계속 신경이 쓰이는 문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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