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을잊은사이-56화 (56/127)

#56

한숨을 터트렸다. 고개 숙인 한지석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팼다.

“이렇게 세워놓고, 왜 안 하겠다는 건데.”

“좋은 말로 할 때 손 치워.”

“으응, 제발.”

매끄러운 옷감을 따라 손이 주욱 미끄러졌다. 두툼한 선단이 있는 부위가 유독 불거져 있었다. 선경은 손가락을 곧게 펴 그 위를 압박하듯 문질렀다. 지석은 참지 못하고 선경의 손목을 잡아챘다.

우선경을 내려다보는 안광이 시퍼렇게 빛났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노려보는 모습은 사냥감을 앞에 둔 맹수와 다름없었다.

당장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뜯고 싶은지 턱 근육이 불끈거렸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선이 있었다.

한지석은 숨죽여 말했다.

“잘 들어. 너 지금 흥분한 거 네 의지가 아니야. 약 기운에 그런 거니 못 본 거로 해 줄게. 병원 가서 치료받으면 괜찮아질 거야.”

“…뭐?”

“네가 정말 원하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멍청하게 굴지 말고 잘 생각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두 번째 내뱉은 말은 한지석이 본인 자신에게 하는 말과 같았다.

우선경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한지석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당장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천천히 눈을 깜빡이던 선경이 왈칵 인상을 썼다. 울분과 설움이 동시에 몰아닥쳤다.

아까와 다른 열이 머리까지 치솟자 약 기운과 더해져 눈앞이 아찔하게 돌아갔다. 선경은 어지럼증을 삭이며 눈을 꾹 감았다.

“어떻게…, 당신 지금, 하아, 내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병원엘 가라고?”

“우선경. 나 똑바로 봐. 너 아직 그 정도 아니야, 정신 차려!”

지석은 적당히 아플 만큼 선경의 양 뺨을 내리쳤다. 따끔한 통증이 볼을 때렸다. 덕분에 정신이 바짝 들긴 했지만, 한편으론 어이가 없었다.

지금 날 때린 거야? 이 상황에 제 확답을 듣겠다고 다그치는 한지석은 정말로 미친놈 같았다.

선경은 팔꿈치를 바닥에 붙이며 상체를 조금 일으켜 세웠다.

눈앞에서 흔들리는 넥타이를 고삐처럼 움켜쥐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또렷해진 눈빛과 발음으로 한지석에게 제 의사를 전했다.

“네가 뭘 알아, 내가 언제 병원 데려가 달래? 내가 원하는 건 너야.”

“…….”

“참지 말고 당장 바지나 벗어. 멍청아.”

고삐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한지석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더니 뒤로 물러났다.

탁, 열려 있던 차 문이 닫혔다.

우선경은 그대로 뒤로 떠밀렸다.

선경은 제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알파를 양팔 가득 끌어안았다. 단단한 육체가 품 안에서 짐승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한지석의 뜨거운 살갗에 얼굴을 부볐다. 땀이 배어 나올 정도로 달아오른 체온과 그사이 켜켜이 스며드는 페로몬은, 눈앞이 아득해질 만큼 좋았다.

만지고 있어도 어딘가 부족하기만 했다. 지금보다 더 깊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닿았으면 하는 마음에 선경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하체를 여러 번 치대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에 바짝 애가 끓었다.

다행히도 한지석은 더 이상 참을 생각이 없었다. 그 역시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얄팍하게 두른 여유는 이미 벗겨진 지 오래다.

뜨거운 혀가 선경의 입술을 가르고 들어와 입 안을 정신없이 헤집었다. 선경이 고개를 비틀자 엇갈린 입술이 각도를 달리하며 빈틈없이 맞붙었다.

축축한 입술을 빨아 당기고, 혀가 뒤엉킬 때마다 타액과 페로몬이 한가득 넘어왔다. 선경은 그의 어깨에 매달려 허겁지겁 받아먹었다.

두 사람 분의 호흡에 좁은 차 안은 금세 습기로 가득 찼다. 차창마다 뿌옇게 김이 서렸다.

선경의 가슴 위로 올라간 손이 아주 자연스럽게 단추로 향했다. 몸을 넉넉하게 감싸는 하늘색 셔츠는 이미 빗장뼈와 어깨를 반쯤 드러내고 있었다.

무방비하게 흐트러진 옷의 단추를 세 개 정도 풀어내자 양쪽 가슴팍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길게 뻗은 목선 아래로 반듯하고 곧은 어깨가 이어졌다. 여성의 몸처럼 부드러운 곡선은 없었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운 몸이었다.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는 당장 손대고 싶을 정도로 부드러워 보였다.

가느다란 목덜미를 따라 내려온 입술이 우묵하게 고인 쇄골 주변을 맴돌았다. 셔츠 아래로 파고 들어간 손은 납작한 배를 느릿하게 문지르더니 옆구리를 꽉 움켜잡았다. 그 강한 악력마저 자극적이었는지 우선경은 탄성과 같은 숨을 뱉으며 허리를 움찔 떨었다.

한지석의 얼굴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입술이 촘촘히 도장을 찍으며 벌어진 셔츠 사이를 누볐다.

시선을 끄는 선분홍색의 유두는 언젠가 젖은 셔츠 아래로 내비쳐 상상을 자극한 적이 있었다. 흰 피부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젖꼭지였다.

요사스럽게 생긴 살점을 혀로 짓눌렀다. 작은 유두는 그새 빳빳하게 심지를 세워 지석의 혓바닥에 맞섰다.

“으응, 거기, 간지러워.”

혀끝으로 살살 굴리자 선경은 참지 못하고 지석의 정수리를 눌렀다. 비키라는 건지, 더 하라는 건지 머리통을 누르는 손엔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물론 비켜 줄 생각도 없었지만.

지석은 젖꼭지에 혀를 문지르다 피식, 웃었다. 벌어진 입이 먹음직스럽게 힘이 들어간 유두를 단번에 삼켰다. 주변의 살까지 힘주어 빨아 당겼다.

“하앗! 아, 파, 아아!”

생경한 감각에 선경은 고개를 흔들었다. 가슴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아팠다. 한지석의 머리를 떨어트리며 열심히 밀어 봤지만, 그는 되레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가슴을 빨았다.

침으로 흥건하게 젖은 젖꼭지는 아까보다 더 도톰해졌고, 한층 더 야해 빠진 색으로 변했다. 시럽을 바른 것처럼 번들거리는 가슴 주변으로 한지석이 씹어 놓은 잇자국이 선명하다. 티 없이 깨끗하던 몸에 음란한 흔적이 남은 모습은 볼수록 허기가 졌다.

“왜 먹어도 먹어도 부족할까?”

선경이 고개를 들며 무슨 소리냐고 되묻기도 전에, 입술은 반대쪽 젖꼭지로 옮겨갔다. 가슴이 아릴 정도로 쭉쭉 빨았다가 혀로 진하게 녹였다.

아프다며 도리질 치던 선경은 어느새 손등으로 눈을 가렸다. 턱을 치켜들며 헐떡이는 신음을 뱉기 바빴다.

그의 반응을 천천히 살피다 지석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열렬히 희롱하던 가슴 주변을 입술로 잘근 베어 물고, 깊게 빨아 울긋불긋한 멍 자국을 남겼다.

감싸 쥔 허리가 연신 바들거렸다. 열린 앞섶 사이로 보이는 회색의 드로즈는 이미 밴드까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안에 갇힌 성기가 불룩 솟은 채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 위로 손을 덮어 단단하게 모양 잡힌 것을 감쌌다. 한지석의 큰 손이 예고도 없이 기둥을 거머쥐었다. 우선경은 놀라 지석의 손목을 붙잡았다.

“흐읏! 잠깐, 하아, 나 잠깐만.”

“아직 여유가 남아 있어? 얜 울고 난리가 났는데.”

“흐응, 그건 그쪽이, 오래 기다리게 했, 잖아.”

걸리적거리는 손을 귀찮다는 듯 치워내며 그의 바지를 무릎까지 더 내렸다. 드러난 하얀 허벅지가 애처로울 만큼 벌벌 떨렸다. 우선경의 긴장과 흥분을 풀어 주기 위해 허벅지를 더 묵직하게 눌렀다.

지석이 중지 끝으로 끈적하게 젖은 사타구니를 훑었다. 들뜬 숨을 내쉬는 우선경을 내려다보며 엉덩이부터 탱탱히 부푼 고환까지 길게 선을 그었다.

살 떨리는 자극에 꽉 다물린 밑구멍에선 페로몬을 품은 애액이 울컥 흘러나왔다.

찌꺽, 찌꺽, 손바닥과 속옷, 성기가 한데 들러붙어 질척한 소리를 냈다. 온통 두 사람의 숨소리만 들리는 차 안에서 한지석은 오른손을 쉬지 않고 용두질했다. 당장이라도 사정에 도달할 것처럼 선경은 허리를 들썩거렸다. 몰아치는 쾌감에 머리가 뒤죽박죽되었다.

“흐응, 으, 으읏!”

제어할 수 없는 신음이 쏟아져 나왔다. 선경은 습관처럼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오른손바닥이 입가를 감싸는 순간, 역한 구역감이 치밀었다.

“웁!”

느닷없이 지르는 소리에 한지석이 놀라 하던 짓을 멈췄다. 곧바로 누워 있던 우선경을 일으켜 앉혔다.

“왜 그래!”

“하으, 손에서 장건주, 냄새 나.”

신음을 막는답시고 들어 올린 손이, 하필 장건주가 게걸스럽게 핥아 댔던 오른손이었다.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는 침 냄새에 그만 헛구역질을 해 버린 것이다.

“너무 싫어, 이거 어떻게 좀 해 줘.”

제 손인데도 끔찍한지 오른손을 펼친 채 팔을 멀찍이 떨어트려 놓고 있었다. 더러운 오물이라도 묻은 듯 손을 덜덜 떨기까지 했다.

한지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도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뭘 어떻게 해 줘야 하는데.

어린애도 아닌데 징징거리는 걸 달래 줄 수도 없고, 이 상황에 손을 씻겨 줄 수도 없었다.

결국 목에 매고 있던 넥타이를 끌렀다. 어두운 감청색 넥타이가 선경의 오른손에 붕대처럼 둘둘 감겼다.

“됐어?”

우선경은 조심스럽게 코끝에 넥타이를 부볐다. 역겨운 침 냄새 대신 한지석의 체취가 그득했다. 이제야 안심이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머쓱해지자 선경은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싫은 걸 어떻게 해.”

“됐어. 더 이상 찬물 끼얹지 말고 뒤로 기대기나 해.”

본인도 미안했는지 순순히 말을 따른다. 어정쩡하게 세우고 있던 상체를 문과 뒷좌석 사이에 살짝 기댔다.

반쯤 누운 자세로 한지석을 올려다봤다. 그는 여전히 욕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경은 입에 고인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키스해 줘.”

“입 벌려.”

우선경은 요구대로 살포시 눈을 감고 입을 작게 벌렸다. 긴장되는지 눈꺼풀에 매달린 젖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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