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을잊은사이-60화 (60/127)

#60

넣고 싶어 미치겠다.

이 안이 얼마나 기분 좋은지 알고 있어서 참기가 더 어려웠다.

가뜩이나 야한 몸을 하고서 페로몬까지 질질 흘려대니 혼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도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후우….”

긴 한숨과 함께 한지석은 허리를 일으켰다. 당장 쑤셔 박고 싶은 마음을 눌러가며 김 박사가 두고 간 열상약을 집어 들었다. 연고를 손가락 두께만큼 듬뿍 짜냈다.

그걸 제 중지에 치덕치덕 문질렀다. 길쭉한 손가락에 꾸덕꾸덕한 약이 허옇게 덧발렸다.

침으로 적셔 눅진하게 풀어진 구멍 안으로 중지를 깊게 밀어 넣었다. 퉁퉁 부은 입구를 넘어서자 손가락은 수월하게 빨려 들어갔다.

“하윽!”

갑작스러운 삽입에 놀랐는지 우선경은 잡고 있던 엉덩이도 놓치고 허리를 꺾었다. 어찌나 힘이 들어갔는지 내벽이 손가락을 바짝 조였다. 한지석은 푹 파인 등허리를 쓰다듬으며 그를 부드럽게 달랬다.

“쉬이, 괜찮아. 힘 빼.”

“하으, 으, 안, 넣는다고, 했잖, 으응.”

자꾸만 무너져 내리는 엉덩이를 추슬러 일으키며 한지석은 손가락을 휘저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중지가 푹신하게 풀린 내벽에 꼼꼼히 연고를 바른다.

이 와중에 도독하게 튀어나온 전립선이 손끝에 걸릴 때마다 우선경은 자지러지기 일쑤였다.

중지에 발라뒀던 연고가 깨끗하게 사라졌을 때쯤 손가락을 거뒀다. 소파는 어느새 정액으로 범벅돼 있었고, 우선경은 지친 듯 숨만 헐떡거렸다.

다 젖어 버린 샤워 가운을 벗기고 그를 아기처럼 안아 침대로 옮겼다.

***

눈이 번쩍 떠졌다. 간밤에 푹 잤는지 몽롱하던 머리가 개운하고 가볍다.

대체 몇 시간이나 잔 걸까. 침실 안은 암막 커튼이 쳐져 있어 어두컴컴했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분간이 안 됐다.

선경은 가슴까지 덮고 있던 이불을 들추고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맨몸에 걸친 헐렁한 티셔츠가 흘러 내려와 허벅지까지 넉넉하게 가려 줬다. 낯선 옷에선 제 냄새가 가득 묻어났다.

목을 천천히 좌우로 꺾으며 창가로 다가갔다. 묵직한 커튼을 젖히자 한낮의 맑은 햇볕이 쏟아져 들어왔다.

눈살을 찡그리며 이마 위로 손바닥을 넓게 펼쳤다. 얼굴로 비치는 햇살을 가리며 커튼을 전부 걷었다.

거실로 나왔지만 집 안은 고요했다.

사람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대신 아일랜드 식탁 위에 덩그러니 올려둔 핸드폰과 쇼핑백들만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니 식탁에 포스트잇도 붙어 있다. 선경은 한지석이 적어 둔 쪽지부터 읽었다.

-잠깐 나갔다 올게. 2시까진 돌아올 거야.

그 밑에는 추가로 적었는지, 조금 급하게 휘갈겨 적은 글이 한 줄 덧붙어져 있었다.

-식사 거르지 마.

“…….”

종이 쇼핑백엔 익숙한 브랜드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슬쩍 안을 열어 보니 각 잡혀 개켜진 셔츠와 바지, 속옷까지 들어 있다.

옷을 새로 사 주겠다던 말이 떠올랐다. 죄 뜯어 놓은 셔츠만 사 놓을 줄 알았더니만…. 어떻게 알았는지 셔츠, 바지, 속옷까지 모두 제 사이즈였다.

선경은 비닐 포장을 찢고 태그를 뜯었다. 허전했던 맨다리에 속옷부터 챙겨 입었다. 이어 바지도 입고 빳빳한 셔츠까지 몸에 걸쳤다. 단추까지 단정하게 잠근 뒤에야 식탁 의자에 앉았다. 나머지 쇼핑백도 앞으로 끌고 와 들여다봤다.

완숙으로 잘 익은 계란 프라이에 양상추와 토마토, 아메리칸 치즈가 잔뜩 들어간 클럽 샌드위치가 투명한 상자 안에 곱게 포장돼 있었다.

한지석이 잘 챙겨 먹으라 당부까지 해 뒀지만, 별로 내키지 않았다. 꺼내 보지도 않고 종이백을 옆으로 밀어 뒀다.

부스스 뻗친 머리를 손으로 대강 넘기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미리 충전을 시켜 둔 것인지 배터리가 빵빵했다. 화면이 켜지자마자 날짜부터 확인했다. 사흘이나 지난 걸 보고 기가 막혀 헛웃음을 뱉었다.

“우선경. 아주 정신이 나갔지.”

자괴감이 들었다.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한탄하는데 이 와중에 잘 먹고 잘 쉰 사람처럼 피부가 매끈거렸다.

지난번 약으로 버텼던 히트 사이클은 누가 봐도 아팠던 사람처럼 비쩍 메말라 보였는데 이번에는 아주 양기를 듬뿍 먹은 티가 났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지난 사흘간의 기억은 머릿속에 선명했다. 하물며 이 식탁에서 있었던 일까지도.

잊고 싶어도 몸과 감각이 생생하게 기억한다.

우선경은 자책하듯 얼굴을 비볐다.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지다 핸드폰을 쥐고 벌떡 일어났다. 괴로워한다고 이미 벌어졌던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더 이상 땅을 파고 있을 순 없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없다. 한지석이 돌아오기 전에 오피스텔을 나가야 했다. 괜히 얼굴을 마주해 봤자 민망하기만 할 뿐이지. 그에게 책임져 달라며 들러붙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곧장 강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저예요. 지금 바로 오피스텔로 차 좀 보내 주세요.”

***

울창하게 뻗은 나뭇가지 사이로 뙤약볕이 내리쬈다. 찌는 듯한 더위에 잠시만 밖을 걸어도 이마와 목덜미가 금세 흠뻑 젖는다.

어느새 한 달이 지나고, 여름의 한가운데에 접어들고 있었다.

우선경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학교를 나왔다.

방학 기간이라 그런지 캠퍼스는 평소보다 한산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선경처럼 계절 학기를 듣는 학생들이었다.

조금이나마 빨리 학기를 끝내고 싶어서 방학도 반납하고 계절 학기 강의를 신청했다. 겸사겸사 궁금했던 경영학과 마케팅 수업도 신청해서 들었다. 덕분에 평일 내내 학교에 나오고 있었다. 놀랍게도 학기 중보다 바빴다.

공부는 지루하고 따분했지만, 집에서 할 일 없이 늘어져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아니, 그보다 그냥 바쁘게 지내며 딴생각을 하지 않는 게 중요했다.

걱정했던 장건주의 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수습됐다. 여기에 우선경이 나선 건 없었다. 온 가족들이 앞다퉈 나서 준 덕분이다.

선경이 약에 취해 정신없었던 사흘간, 알고 보니 많은 일들이 있었다.

태광의 최문영 변호사는 큰형 우선우에게 사건에 대해 알렸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눈이 뒤집힐 뻔했던 우선우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곧바로 우 회장과 우재경에게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치밀하게 초동 조치를 취했다.

가장 먼저 호텔 레스토랑과 VIP 엘리베이터의 CCTV를 확보하고, 두 사람이 사용했던 와인 잔 또한 수거했다. 내용물은 이미 다 마신 뒤라 검사를 진행하기엔 여의치 않았다. 대신 서빙했던 직원을 추궁해 장건주에게 사주를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모든 일들은 수사 기관의 도움 없이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가족들을 제외하곤 주변 누구도 알 수 없도록 극비로 진행됐다.

하지만 기자들은 귀신같이 냄새를 맡기 마련이다. 특급호텔에 경찰이 출동한 것을 본 기자 몇몇이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사건을 파헤치려 들었다.

곧바로 서화 측과 합의가 이뤄졌다. 더 큰 특종을 약속받으며 취재는 시작도 해 보지 못하고 엎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경찰들 역시 소득 없이 돌아갔다. 모두 우 회장의 지시였다. 장건주는 이대로 조용히 묻힐 수 있겠다 싶어 좋아했지만, 그의 처리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은퇴를 선언하고 스스로 뒷방으로 들어간 호랑이는 아직도 이빨이 건재했다. 감히 제가 가장 아끼는 손주를 건드렸으니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었다.

우 회장이 장건주의 횡령 건을 터트렸다. 굵직한 증거들이 지면을 통해 대서특필됐다. 특종을 약속받았던 기자는 단독 타이틀을 달고 쉼 없이 기사를 쏟아냈다.

장건주는 서화 건설 대표직을 맡고 있던 지난 5년간 각종 리베이트와 개인 유상증자 대금 납부 건으로 꾸준히 회사 자금을 빼돌려 왔다. 금액만 해도 50억가량이었다.

이사회의 결정으로 대표직에서 해임된 것은 물론이고 곧바로 강도 높은 검찰 조사가 시작됐다. 오메가 불법 성매매 이슈까지 함께 터져 최근 9시 뉴스만 틀었다 하면 장건주가 나왔다.

검찰 조사를 받은 지 하루도 안 돼 증거 인멸과 도주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구속 기소가 됐다. 장건주가 양 손목에 수갑을 차고 호송차에 올라타는 자료 화면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대중들은 사건의 진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재계 쪽에선 장 대표가 우 회장의 손자를 함부로 건드리려 했다가 목이 날아갔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퍼져 나갔다.

이 일을 계기로 두 가지가 증명됐다. 하나는 노인네의 영향력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의 손자 사랑이 생각보다 더 지극하다는 것이다. 덕분에 우선경에게 따라붙던 저급한 관심은 이번 기회에 깡그리 정리됐다.

그가 약에 취해 있던 사흘간 오피스텔에 틀어박혀 한지석과 정신없이 뒹굴었다는 건 아마도 가족 모두가 알고 있는 듯했다. 예상과 달리 질책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신경 쓰지 마! 네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어.’

우선우는 곁에서 누구보다 든든하게 위로했고,

‘다른 양아치 새끼들보단 그나마 한지석이 낫지.’

이역만리에 떨어져 있던 우재경은 한지석을 재평가하며 선경을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장 걱정했던 우 회장은 얼마 전, 손자를 별채로 불러 따로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네가 아무 놈이나 만나고 다니지 않을 거란 건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안다. 결혼하기 전까진 네 마음대로 연애해도 말리지 않으마. 요즘 시대에 여러 사람 겪어 본다고 해서 흠 될 것 없지. 그래야 사람 고르는 눈도 생기는 거고.’

아마도 한지석을 염두에 두시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았다.

둘이 만나도 된다고 에둘러 표현하신 거겠지만 정작 할아버지도 모르고 계시는 게 있었다. 우선경은 이미 고백도, 연애도 여러 번 거절당했다.

한지석에겐 따로 메시지를 보냈다.

도와줘서 고마웠다는 말로 서두를 시작했다. 신경 쓸 것 없다, 나는 괜찮으니 그냥 없었던 일로 해 줬으면 좋겠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말미엔 고맙다는 인사를 문자로 전해서 미안하다, 건강 잘 챙기고 앞으로 하는 일 모두 잘되길 기원하겠다 같은 상투적인 말 또한 잊지 않고 남겼다.

수십 번 고쳐 쓴 메시지를 보내고 난 뒤, 우선경은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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