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을잊은사이-75화 (75/127)

#75

근처 마켓에서 아침에 먹을 과일과 빵을 조금 사고, 옆집에 가져다 바칠 와인도 골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하이드파크에 들러 짧은 산책도 마쳤다.

옆집에 사는 프랑스인 부부에게 뇌물을 전달해 준 뒤 집에 돌아와서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하루만큼은 옆집 부부를 위해 조용한 밤을 선물하기로 했다.

츕, 츄웁, 쭙.

간지러운 자극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커튼이 쳐진 침실 안은 새벽빛이 들어 아직 어슴푸레하다.

옆자리는 텅 비어 있고 대신 하반신 쪽이 무덤처럼 둥글게 솟아 있었다.

한지석은 고민할 것도 없이 덮고 있던 침구를 들췄다. 다리 사이에 파고들어 열심히 오르내리는 머리통이 보였다.

그 작은 입으로 귀두를 입에 담고 쭉쭉 빨아 당기고 있었다. 타액으로 흥건하게 젖은 기둥을 열심히 잡고 흔든다.

우선경의 펠라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잠들어 있던 사람의 좆을 세우기엔 충분했다.

하아, 나른한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고개를 뒤로 꺾은 한지석은 손바닥 아래 두툼한 부위로 눈가를 꾹, 눌렀다. 막 일어난 탓에 목소리는 바닥까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침부터 빨아 주는 건 상상도 못 해 봤는데.”

“으응, 형, 빨리….”

밑에서 들려오는 우선경의 숨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아침부터 성욕이 끓어올랐다고 치기엔 눈이 반쯤 풀려 있었고, 성기에 대고 뱉어내는 젖은 호흡에 페로몬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 상황을 인지한 순간, 지석은 멈칫하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설마, 히트야?”

“하아, 흐읏. 그런, 가 봐.”

“이런, 나 좀 봐봐.”

단번에 상체를 일으킨 뒤 서둘러 우선경의 상태를 살폈다.

여전히 제 좆을 절구공이마냥 소중히 쥐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뺨에 치덕치덕 문질러대는 것이 누가 봐도 발정 난 오메가의 모습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한지석은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났다.

“기다려, 금방 준비할게.”

“하아, 빨리.”

한지석은 당장 욕실로 달려가 거울이 달린 선반장을 열었다. 그 뒤엔 해열제와 진통제, 연고 같은 각종 비상약이 있었다.

한지석의 눈이 일렬로 늘어선 갈색 플라스틱 병을 훑는다.

그중 러트 촉진제라고 쓰인 것을 집어 들었다. 손에 쥔 약병 라벨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그 안에서 알약 두 개를 꺼냈다.

그것을 입에 털어 넣고 물도 없이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당연히 입안에 쓴맛이 고였다. 덕분에 잠이 싹 달아났다.

세면대 수전을 밀어 올려 찬 물에 세수를 하고, 이도 닦았다. 칫솔질하면서 핸드폰으론 아멜리아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멜리아는 영국 현지에서 한지석과 우선경의 유학 생활을 도와주고 있는 일종의 현지 수행 비서였다.

[선경이 히트 사이클이 왔어요. 준비해주세요. 집에서 함께 머물 겁니다. 이번 주 일정은 모두 취소하고, 식사는 때에 맞춰 문 앞에 놔주세요. 나흘 정도 걸릴 것 같네요.]

오전 7시에 이런 문자를 받는 기분은 어떨까. 내용은 대놓고 이번 주 내내 섹스만 하며 지내겠다는 선전포고와 다름없었다. 미안하긴 했지만, 아멜리아는 원래 이런 일을 도와주기 위해 고용된 사람이었다.

그녀는 전문가다. 우선경과 한지석이 발정기 동안 서로에게만 몰두할 수 있게 모든 서비스를 지원해 줄 것이다.

가볍게 세안을 마친 지석은 얼굴에 묻은 물기를 훔쳐내며 거울을 바라봤다. 아직 눈은 평소와 같은 짙은 갈색이다.

우선경의 주기에 맞춰 러트를 이끌어 내려면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최소 두 시간, 아마도 그 정도.

처음으로 함께 맞는 발정기라 그런지 묘하게 긴장이 됐다. 몸을 섞는 게 처음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한지석은 웃음이 번진 입가를 문지르며 욕실을 나섰다.

다시 돌아왔을 땐, 우선경은 그 잠시를 못 참고 홀로 욕구를 풀어내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바지와 속옷은 반쯤 내린 채 성기를 쥐고 흔드는 모습이 과할 만큼 음란해 보였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헐떡이는 숨소리가 새어나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새를 못 기다리고.”

“하아, 아! 형, 한지석, 빨, 리.”

“많이 급한가 보네. 어쩌지, 난 아직인데.”

일부러 시간을 끌듯 목소리가 느긋했다.

침대에 걸터앉은 한지석은 누워 있는 선경의 파자마 단추를 풀었다. 헐겁게 벌어진 셔츠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납작한 가슴을 어루만졌다.

흥분으로 달아오른 피부는 온통 뜨끈하다. 손바닥에 민감해진 젖꼭지가 스치자 선경이 하윽, 허리를 튕기며 신음을 질렀다.

“아멜리아한테 연락했어, 한 나흘 쉬면 되겠지.”

“아멜리, 흐읏, 으!”

바짝 깎인 손톱 끝으로 열매처럼 붉어진 유두를 세게 긁었다. 고통과 한 끗 차이인 자극적인 쾌감에 선경이 몸을 떨었다. 어느새 쥐고 있던 성기는 하얀 정액을 울컥울컥 토해내고 있었다.

“다른 여자 이름을 부르면서 싸다니, 우선경 버릇이 아주 나빠졌네.”

“하아… 빨리 형 거 넣어 줘. 흐응, 으. 빨리.”

선경은 부끄러움도 없이 다리를 넓게 벌렸다. 알파를 끌어당기는 몸짓에 지석은 속절없이 함락되어 넘어간다.

곧바로 상의를 벗어던지고, 뜨끈하게 달아오른 오메가에게 제 몸을 길게 붙였다.

러트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문제없었다. 그는 언제든 우선경에게 흥분할 자신 있었다.

***

긴 창문을 열자 방 안에 자욱하게 덮인 페로몬과 체액 냄새가 빠져나가고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잠든 선경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집 안의 창문을 모두 열었다.

그렇게 잠시 환기를 해 두고, 지석은 냉장고에서 맥주 하나를 꺼내 발코니로 나갔다.

풀 탭을 당기자 시원하게 탄산이 터지는 소리가 난다. 지석은 둥글게 꺾인 발코니 난간에 팔을 걸치고 목을 좌우로 풀었다.

바지만 느슨하게 걸친 채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은 상쾌하고 개운해 보였다. 나흘을 밤낮없이 섹스한 사람치고 피곤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좋은 아침.”

바로 옆 발코니에서 아침 인사가 들려왔다.

맥주를 한 모금 넘기던 지석은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옆집 남자가 희뿌연 담배 연기를 뱉으며 손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주 격렬한 낮과 밤을 보냈더군요, 당신 오메가는 살아 있습니까?”

지석은 낮게 웃음을 흘렸다.

안 그래도 방음이 취약한데, 나흘 밤낮을 붙어먹었으니 옆집에서 모를 리 없었다.

“안 그래도 쓰러져서 자고 있어요. 체력이 그렇게 좋질 못해서. 미안하게도 또 폐를 끼쳤군요. 조만간 방음 공사를 해 놓겠습니다.”

“우리야 뭐… 지난번에 준 와인을 어디서 샀는지만 알려 준다면 계속 모른 척 지내 줄 수 있어요. 그거 아주 괜찮더군요. 잘 마셨어요.”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요. 알려 주는 건 어렵지 않아요. 조만간 더 선물할게요.”

옆집 남자는 제안이 달가운지 어깨를 으쓱였다. 절반쯤 타들어 간 담배를 입술에 물고 뺨이 홀쭉해지도록 길게 빨았다. 내뱉은 연기가 공중으로 뿌옇게 흩어진다.

남자의 시선이 고급 주택가의 활기 넘치는 거리를 훑는다. 오늘은 주말이라 꽃시장이 섰다. 봄을 맞은 다양한 꽃과 화분들로 오랜만에 거리는 생기가 넘쳤다.

“많이 즐겨 둬요, 신혼이란 건 짧아서 더 소중하거든. 서로가 너무 애틋하고, 같이 있어도 더 붙어 있고 싶고, 눈빛만 마주쳐도 사랑이 들끓는… 하하, 살다 보면 인생에 그런 순간이 드물거든요.”

“맞아요, 좋은 때죠.”

“아이가 생기면 또 달라질 겁니다. 뭐 보니까… 금방 생길 것 같은데.”

옆집 남자가 엄지를 치켜들며 은근한 눈빛을 보냈다.

한지석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뒤돌았다.

남은 맥주로 입을 축이며 발코니 난간에 허리를 붙였다. 열어 둔 긴 창 너머, 얇은 커튼이 흩날렸다. 그 틈새로 곤히 잠들어 있는 선경의 얼굴이 보였다.

아이라, 급할 건 없지만 생기면 좋겠지.

이왕이면 우선경을 닮았으면 좋을 것 같다. 그를 닮은 아이라면 분명 천사처럼 사랑스러울 테니까.

지석은 머지않을 미래를 그려 보며 잠든 우선경을 눈에 담았다.

***

2년 뒤, 서울.

“경영지원본부 얘기 들었어?”

“거기 올해 신입이 스물여덟 살이라며, 아무리 회사가 나이보다 직급이라지만 이건 심해도 너무 심한 거 아냐? 아주 낙하산인 거 이마에 써 놓은 수준이지.”

“대놓고 가족 경영으로 가겠다는 말이네.”

회사는 요즘 어수선하다. 사실 며칠 전 인사 발령 공고가 뜬 이후로 계속 그랬다.

정기적으로 발표되는 공고에는 신규 부임된 상무이사가 포함돼 있었다.

특별한 내용 없이 이름과 직책, 부서명이 전부였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가 서화 그룹 직계와 긴밀한 관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회사 대주주가 될 거라는 근거없는 소문도 암암리에 돌았다.

과연 서른도 안 된 젊은 임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형식을 파괴하는 낙하산 발령에 내부에선 은근한 반발이 터져 나오는 중이다.

그리고 오늘, 소문의 상무이사가 첫 출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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