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눈앞에 보이는 하얀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으며 난잡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지글거리는 열기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지석은 걸신들린 사람처럼 연신 살을 깨물고 핥으며 목에 고여 있는 페로몬을 빨아 마셨다.
정신없이 휘둘리고 있던 선경은 인형처럼 흔들리는 팔을 겨우 위로 뻗었다. 떨리는 손으로 붙잡은 지석의 뺨은 온통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본인이 울고 있는지도 모르는 가여운 남자를 쓰다듬었다. 거친 추삽질에 호흡이 달렸지만, 기꺼이 그를 위해 입술을 내줬다.
뜨거운 혀가 입속으로 침투하고 자극적인 페로몬이 왈칵왈칵 흘러 들어온다. 숨조차 쉬기 어려울 만큼 열기가 몰아닥쳤다.
“흐읍, 읍, 으읍!”
입술이 막혀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미끈거리는 애액은 어느새 사타구니 주변을 흠뻑 적셨다. 젖은 살들이 사정없이 부딪혔다. 후덥지근해진 창고엔 야한 냄새가 가득 떠돌았다.
아랫배가 기어코 맞닿자 선경은 고개를 숙이며 악, 소리를 질렀다. 지석의 옷깃을 움켜잡고 바르르 떨었다.
비정상적으로 커진 성기는 평소 닿지 않던 포궁의 입구까지 밀려왔다. 조금 남아 있던 뿌리까지 집어넣자 귀두가 기어코 그 안을 넘어가 버린다.
“흐윽!”
숨이 넘어가는 신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벌어져 있던 허벅지가 잘게 경련했다.
노팅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히트 사이클 상태가 아닐 때 겪는 건 처음이었다. 상상도 못 할 아픔에 선경은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원래라면 부드럽게 열려야 할 포궁이 억지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귀두의 감각은 쾌락보단 몸을 쪼개는 고통에 가까웠다.
선경은 기절하지 않으려고 억지로 입술을 씹었다. 덕분에 울음과 같은 신음까지도 모조리 삼켜졌다.
“하아, 선경, 아. 미안, 해. 미안….”
노팅을 시작한 지석이 입술을 겹쳐왔다. 잇자국이 새겨지다 못해 옅게 피 맛이 나는 점막을 정성스레 빨고 눈물로 젖은 뺨과 눈가를 싹싹 핥았다. 그가 통증으로 덜덜 떨어대는 선경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아윽! 하아, 아, 파! 형, 흐윽.”
삽입된 성기가 비좁은 내벽 안에서 크게 부풀기 시작했다. 포궁 입구에 걸린 귀두 역시 한도 끝도 없이 커지고 있었다.
선경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지석의 품 안에서 몸을 비틀었다. 눈앞이 새하얗게 질려 갈 무렵, 아랫배를 압박하던 성기는 어느 순간 뜨끈한 정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허리를 치대던 지석이 드디어 몸을 뒤로 물렸다. 벌어진 구멍에선 하얗고 불투명한 정액이 질금질금 흘러나왔다.
그가 빠져나갔는데도 여전히 뱃속이 묵직했다. 지친 선경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때 얼굴 위로 물기가 뚝뚝 떨어졌다.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린 선경은 그게 한지석이 흘리는 눈물이라는 걸 알았다.
“울지 마. 나 괜찮아….”
덜덜거리는 손을 들어 지석의 젖은 얼굴을 대신 닦아 주었다. 큼직한 몸이 아이처럼 안겨 왔다. 땀으로 범벅이 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안타깝게도 그 뒤론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경은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
“…표님, 대표님!”
자신을 부르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자 걱정된다는 듯 쳐다보고 있는 윤진이의 얼굴이 보였다. 우선경은 눈가를 비비며 허리를 바로 세웠다. 잠깐 머리를 기대고 있다는 게 벌써 이십 분이나 지나 있었다.
“피곤하세요?”
“아…. 잠깐 또 졸았나 보네.”
우선경은 요즘 걸핏하면 잠들었다. 아무리 해가 바뀌었다지만 봄을 타기엔 시기가 일렀다.
윤진이는 탐색하듯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대표의 안색을 살폈다.
“어디 몸이 안 좋으신 건 아니에요? 병원 한번 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픈 곳 없이 멀쩡하니까 신경 쓸 거 없어요. 가지고 온 거나 줘요.”
대꾸하는 말투는 방금 잠에서 깨어난 사람답지 않게 또렷했다. 윤진이는 미심쩍어하면서도 들고 있던 계약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
몸이 달라진 건 우선경 또한 느끼고 있었다. 예전보다 쉽게 지쳤고, 잠도 늘었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어디가 아파서가 아니라 임신을 해서 그렇다.
지난 러트 때 노팅을 했던 터라 아이가 들어설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이미 검사를 끝냈지만 아직 한지석에겐 알리지 못했다.
임신 8주 차. 아기는 건강하게 잘 크고 있었고 얼마 전 병원 초음파로 귀여운 팔다리도 확인했다.
이번엔 반드시 낳을 생각이다. 최근 상실감을 크게 느끼고 있는 지석에게 또 하나의 가족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오늘은 얘기해야지. 우선경은 서류를 훑으면서 작은 계획을 세웠다.
계약서 검토를 끝낸 뒤, 미뤄 놨던 우편물을 확인했다. 날짜별로 차곡차곡 모아 놓은 것들 속엔 무척이나 익숙한 갈색 서류 봉투도 있었다. 한동안 뜸하더니 오랜만에 또 나타난 것이다.
우선경은 다른 것은 제쳐 두고 서류 봉투부터 집어 들었다.
페이퍼 나이프로 입구를 찢고 봉투를 뒤집었다. 책상 위로 사진 대여섯 장이 팔랑거리며 쏟아졌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주워 들던 선경은 기가 막힌 듯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 사진엔 김현진만 찍혀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병원에 들어가는 것과 약국에서 나오는 모습이 전부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임팩트가 컸다.
그가 들어간 병원은 특수형질과였다. 어찌나 친절하신지 줌까지 당겨 찍은 사진엔 처방받은 내복약 봉투에 쓰인 글자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열성 오메가 전용 억제제 2주일 치. 1일 1회 복용.
김현진이 오메가로 발현했다.
***
현진이 오메가로 발현한 시기는 한지석이 부모상을 당했던 때와 겹쳤다.
발현 열이 심할 때라, 부고 문자를 받고도 찾아가 볼 수 없었다.
그래서 현진은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외출이 자유로워지자마자 한지석을 찾아갔다. 위로를 전하고 싶었고, 제 상태도 알려 주고 싶었다. 그러기까지 딱 두 달이 걸렸다.
“죄송해요. 꼭 찾아뵙고 싶었는데.”
“신경 쓸 거 없어. 설사 발현이 아니었더라도 제주도잖아. 멀어서 못 온 사람 많아.”
한지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혼자서 고생이 많았다며, 현진을 다독거렸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김현진은 뒤늦게 오메가로 발현했다. 나이도, 시기도 모두 우선경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열성 오메가로 발현했다는 것이다. 김현진은 페로몬이 약하고 발정기도 드물게 찾아오는 편이었다. 페로몬이 얼마나 희미한지 알파들도 잘 감지하지 못했다. 집중해서 살펴보지 않으면 베타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아직은 페로몬 조절도 서툴고, 알파의 페로몬에도 내성이 없어 외출하려면 매일매일 억제제를 복용해야 했다.
그러한 불편에도 김현진은 오메가로 발현한 게 내심 기분 좋은지 연신 다리를 까딱거리고 볼을 붉게 물들였다.
그 모습을 보던 지석은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네가… 정말로 발현할 줄은 몰랐어.”
고작 오 퍼센트의 확률이었다. 게다가 이미 성인이 된 이후라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거 알아요? 우리 엄마도 오메가였대요. 외삼촌은 늦게라도 발현할 거라고 그랬는데, 진짜 그렇게 됐어요. 신기하죠. 도박을 그렇게 잘 맞췄으면 진즉에 부자 됐을 텐데.”
히히, 김현진은 아무 생각 없이 천진하게 웃었다.
한지석은 골치가 아픈지 턱을 괴었던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선경이가 알면 난리 나겠군, 머릿속엔 그 생각만 들었다.
한지석은 슬쩍 눈을 돌려 앞에 앉아 있는 김현진을 살펴봤다. 오메가로 발현했다고는 하나 제 눈에는 그저 늘 봐왔던 모습 그대로였다. 게다가 이제 막 성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어리숙해 보이기만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쩔 생각이야. 검정고시는 겨우 통과했고, 취직이라도 하려고?”
“그러고 싶은데… 생각보다 오메가 뽑아 주는 곳이 별로 없더라고요. 있더라도 학력을 우선으로 보고요…. 아직 고민하고 있어요. 급한 대로 호프집이나 고깃집 아르바이트라도 할까 싶은데.”
“술 파는 곳은 빼고.”
지석은 현진의 의견을 딱 잘라버렸다. 아무리 열성이라고 하나 오메가의 몸으로 술집 알바라니,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그럼 어떻게 해요.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데.”
현진은 우울해지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바닥을 내려다봤다. 당장 생계 문제도 그렇지만 외삼촌이 빌린 돈도 갚아야 했다.
외삼촌이 사채를 끌어다 썼다. 현진은 저도 모르게 보증인이 되어 있었다. 빼도 박도 못하게 빚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매달 돌아오는 수금 일에 맞춰 이자를 준비해야 한다. 원금을 갚는 건 감히 꿈도 못 꿨다.
한지석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마침 이곳은 본사 건물 안에 있는 카페였다.
바쁘다 보니 늘 사람을 구하고 있었고, 업무 환경도 나빠 보이지 않는다. 김현진이 일하기엔 적당해 보였다.
“여긴 어때. 커피 내리는 거야 기술이 필요하다지만 청소나 음료 제조 정도는 너도 할 수 있지?”
“제가 카페를… 요?”
지석의 제안에 김현진의 눈과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한눈에 봐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게 보였다. 발갛게 부풀어 오른 뺨이 그 증거였다.
커피숍 같은 곳은 특히나 자리 구하기 어려운 곳 중 하나였다.
오메가에 친화적인 편이지만, 그만큼 얼굴과 행색을 많이 따졌다. 김현진도 몇 번 찾아간 적이 있었으나 구질구질한 옷차림 때문인지 매번 거절의 말만 들었다.
게다가 여기서 일한다면 형을 매일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건물 1층과 전무실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벌어져 있겠지만 그래도 한 건물 안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설레는 일이었다.
김현진은 너무 좋다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렸다. 들떠서 심장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