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1장. 공(?)부터 시작하는 곤륜노의 삶 (10)
* * *
“대, 대사저...?”
“다시 말해봐, 장 사제. 뭘 보았다고?”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 단아한 인상이지만, 그것이 싸늘한 냉기로 가득 채워지니 이보다도 더 두려울 수 없었다.
“그, 그것이... 대사저, 오해입니다, 오해.”
“오해라?”
고개를 살짝 비틀며 되묻는 백세령.
장가놈의 등짝이 식은땀으로 젖어들어가는 게 실시간으로 보이는 듯했다.
놈은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으며 변명했다.
“저기 저, 깜둥이, 아니... 그 덩치 큰 놈이 어제 대사저에게...”
“내 분명 그렇게 말하지 말라했거늘. 심지어 백 소협의 이름도 모르는구나.”
백 소협. 백세령의 입에서 나오니 굉장히 기분 좋은 울림처럼 들렸다.
얼른 저게 백 가가로 바뀌는 걸 들어야하는데. 그때를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아랫도리에 피가 쏠렸다.
‘아 자꾸 발기해대는 거 고쳐야되는데.’
수컷의 정점에 선 육체가 자꾸만 자기자신을 어필하려한다.
힐끔힐끔 바라보는 관객들도 많으니 참기도 힘들었다.
“아, 아닙니다. 어제 지나가듯 들어, 기, 기억이 잠시...”
“변명, 변명, 변명.”
“...대, 대사저.”
백세령은 차가운 눈으로 잔뜩 오그라든 장가놈을 내려다보더니,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시선을 돌렸다.
그러곤 따뜻함이 느껴지는 미소와 눈길로 두 손을 마주치는 그녀.
“금방 또 뵙게 되네요, 백 소협.”
“저도 반갑습니다, 선녀님. 굳이 소협이니 뭐니 거창하게 안 불러주셔도 됩니다. 그냥 일하러 온 노예인데요.”
“아뇨, 어젯밤 사람을 구하시지 않으셨나요. 그것만으로도 그리 불리기에 충분하지요.”
목소리에서 꿀이 떨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사람을 구했다라.
어제 도연 누님을 구한 걸 말하는 듯했다. 이래서 좋은 일을 하면 누군가는 알아봐준다니까.
또 그것이 장차 내 보지가 될 여자라면 정말 기쁜 일이었다.
“과찬이십니다.”
“아니에요. 어제는 참으로... 멋지셨는 걸요.”
슬쩍 내 고간을 스치는 그녀의 눈동자.
멋지다는 게 자지인지, 내 행동인지 헷갈리는 시선처리였지만, 아무튼 나쁠 건 없었다.
그런데 그때 장가놈이 초를 쳤다.
“저, 대사저. 제가, 제가 망발에 대해 사과드리겠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풀어주십시오!”
“어, 저, 저도? 대사저, 노여움을 풀어주십시오!!”
“노, 노여움을 풀어주십시오!”
한창 즐거운 시선교환의 순간에, 자기가 쩌리가 되는 걸 눈치챘는지 장가놈이 끼어들었다.
뒤에 있던 남도사놈들까지 합세해 다짜고짜 도게자를 시전하는 녀석.
근데 그걸 또 따라주는 걸 보니, 아무래도 무당파 남제자들 중 장가놈이 꽤나 끗발을 날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걸 본 백세령은 한심하다는 눈길로 장가놈을 내려다 보았다.
“일어나, 장 사제.”
“대사저께서노여움을 풀어주시기 전까지는 절대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하아...”
슬슬 분노가 차오르는 듯한 백세령.
기회를 포착한 나는 장가놈에게 뛰쳐나가며 연기를 시작했다.
“아이고, 일어나십쇼!장 도사님!”
“놔, 놔라! 깜, 아니, 놓으시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그냥 힘들어도 숙소까지 걸어가겠습니다!!그러니 도복을 더럽히지 마십쇼!”
“아니, 그게... 으헉!!”
처음엔 버티는가 싶더니, 살짝 힘을 주자마자 썩은 감자 마냥 쑥 뽑혀져나오는 장가놈.
나는 놈의 팔을 내 어깨까지 들어올리며 호소했다.
“다 제 잘못이니, 장 도사님께 벌을 내리진 말아주십쇼, 선녀님.”
“백 소협... 숙소까지 걸어가다뇨...?”
“대, 대사저! 이건 이놈이 지금, 자기 잘못을 덮으려고...!!”
“장 사제!!”
기어이 화가 났는지 큰소리를 치는 백세령.
그에 엎드린 두 놈은 더욱 땅바닥에 달라붙었고, 장가놈은 내게 매달린 채로 딱딱하게 굳었다.
백세령은 내게 우스꽝스럽게 매달린 장가를 보며 싸늘하게 읊조렸다.
“장 사제가 나에게 한 음담패설은 그냥 넘어간다 치더라도.”
“아, 아닙니다. 대사저, 음담패설이라뇨... 그것은...”
“조용.”
“헙...”
조금씩 올라오는 백세령의 기세에 자지 안의 내기가 반응하는 것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강한 암컷을 알아채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하는 것일까.
삼베 바지 위로 불쑥 튀어나온 귀두를 겉옷으로 살짝 가렸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터 무당이 손님들을 이렇게 무례하게 대했지?”
“무, 무슨 말씀을...”
"숙소까지 걸어가? 인부들은 내공 한줌 없는 평범한 양민이야. 그리고."
백세령의 흰 손가락이 애진 누님의 발치에 있는 검들을 가리켰다.
“왜 무인의 검이 땅바닥에 저렇게 형편없이 나뒹굴고 있는 거지? 봉검함은 어디에 둔 것이고?”
“아...”
장가놈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해졌다.
하긴 검을 내려놓으면 저렇게 땅바닥에 내려놓게 하지는 않을 테니, 따로 보관하는 함을 두는 듯했다.
그게 봉검함이고, 이 멍청한 새끼는 내게 꼽을 줄 생각에 풀발해서 두고 온 것이다.
나는 백세령에게 보이지 않게 슬쩍 몸을 돌리고는, 장가놈을 바라보며 입술로 말했다.
‘병, 신.’
장가놈의 얼굴에 시뻘건 핏줄이 돋아나는 것이 보였다.
“이익...!! 이, 이 망할...!!”
“...장 사제.”
“아니, 그. 대사저, 정말로 오해입니다! 제가 분명 이놈들에게 가져오라 시켰는데... 이놈들이 깜빡한 겁니다!”
백세령은 장가놈의 변명을 듣다말고 차갑게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일고의 관심도 두지 않는 얼굴이었다.
“백 소협, 그만 장 사제를 놔주세요.”
“알겠습니다.”
“악!”
바닥에 거하게 엉덩이를 박는 녀석. 나도, 백세령도 놈에게서 시선을 돌려 서로를 바라봤다.
그녀는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와 애진 누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제의 망발과 그릇된 행동은 추후 진심으로 사죄드릴테니, 우선은 숙소로 가시죠. 백 소협, 그리고 애진 소저, 해가 뜨면 산을 오르기가 더 힘들 거예요.”
“...감사합니다, 선녀님.”
“검은 마차에 두고 저를 따라오도록 하세요.”
“네. 얘들아, 출발하자!”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해검지에서 출발한 애진 누님의 상행.
뒤편에는 멍한 얼굴로 버려진 장가놈과 두 남도사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데 선녀님.”
“네, 백 소협.”
“왜 오신 겁니까? 선녀님처럼 높은 분이 이런 인부들 만나러 일일이 내려오시진 않을 거 아닙니까.”
“그게...”
걸음에 맞춰 살랑살랑 흔들리는 백세령의 머리카락.
달콤한 향기가 콧가를 간질였다.
“...원래 만날 사람이 있었는데, 오늘 못 온다고 하더라구요.”
“흠, 그렇군요.”
“정말이에요!”
내 말뜻을 뭐로 알아들은 건지, 가볍게 성을 내는 그녀.
살짝 달아오른 귓가와 목덜미에서, 진한 암컷 냄새가 풍겨왔다.
*
“남성분들은 이곳에서 머무시면 될 거에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선녀님.”
“선녀님의 안녕을 항상 빌겠습니다...”
“네, 모쪼록 공사 기간 동안 몸 조심하세요.”
백세령이 직접 인부들의 숙소까지 우리들을 데려다 주었다.
그에 감명이라도 받았는지 연신 고마움을 표하는 남자 노예들.
나도 바깥에서 누님들과 작별을 고했다.
“...하, 이제 다른 놈들 자지는 기별도 안 올 것 같은데.”
“가끔 찾아오십쇼, 도연 누님. 또 씹창나도록 박아줄테니까.”
“흠... 정말?”
“그럼요.”
옷 위로 슬쩍 보지를 매만져주니,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내 팔을 더듬는 도연.
애진 누님이 그런 내 손을 탁하고 쳐내더니, 도연의 앞을 가로막았다.
“너 조심해. 무슨 생각 하는지 뻔히 다 보여.”
“내가 뭘요, 누님.”
애진은 뒤에서 여전히 인사를 받는 백세령을 흘끗이더니, 내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선녀님을 건드리면 진짜 좆되는 거야. 네 거 잘린다구!”
암컷의 애정이 듬뿍 담긴 말투. 나는 애진 누님을 단단한 가슴팍에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선녀 보지는 보지 아니랍니까? 걱정마세요, 누님.”
“야! 너, 웁... 우움...”
이러다간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군침을 잔뜩 넘겨주며 그녀의 입을 막아버렸다.
질척한 입맞춤과 더불어 젖탱이까지 끈덕지게 주무르자, 금세 완전히 풀려선 내게 기대는 애진.
“저기, 인사들 끝... 아, 실례를...”
“푸하아... 나쁜 새끼...”
“꼭 찾아와요.”
“...알았어.”
애진 누님은 내 품이 아쉬운지 잠시간 볼과 손을 맞대고 있다가 떨어졌다.
곧 하산을 도와줄 무당의 제자가 하나 도착했고, 애진 누님은 그녀의 인솔을 받아 떠나갔다.
그렇게 피곤한지 숙소에 짱박힌 남자놈들을 제외하고, 따스한 봄햇살 아래에 둘만 남은 나와 백세령.
멀리 손을 흔드는 애진 누님을 바라보는 내 뒤로, 그녀가 다가왔다.
“시원섭섭하시겠어요, 백 소협.”
“좋은 인연이었습니다.”
“혹... 깊은 사이신가요?”
아까의 대화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나보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잠시나마 서로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것 뿐입니다.”
“아하...”
“왜 그러십니까?”
대뜸 고개를 돌리며 묻자, 안 그래도 커다란 눈동자가 한층 더 커지는 그녀.
“다,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저, 깊은 사이시라면... 제 재량으로 백 소협은 보내드릴 수도 있을 테니까요.”
안되지, 안돼. 내가 노리는 건 이 무당이니까.
백세령의 장포 뒤에 그려진 흑백 태극 문양을 새까맣게 물들이기 전까지는 돌아갈 수 없다.
“괜찮습니다. 그럼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제가 너무 붙잡았네요. 오늘은 식사를 보내드릴 테니, 숙소에서 푹 쉬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선녀님.”
그렇게 올 때처럼, 다시 한 번 가벼운 몸놀림으로 나뭇가지를 타고 사라지는 그녀.
나는 재빨리 숲속으로 들어가서, 백세령을 떠올리며 한 발 뽑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