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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17화 (17/230)

〈 17화 〉 선녀님과 제자 (6)

* * *

“제가 스승님께... 제자님을 가르치라고 허락받은 것은 딱 하나, 태극권이에요.”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심하게 답했다.

어차피 다른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고작 노예 따위에게 뭘 가르치겠는가.

무슨 비급 하나만 떨어져도 개새끼들처럼 달려드는 중원무림인데 말이다.

‘아무튼, 무당에서 배우는 태극권이라.’

분명 중국산 정품 태극권일게 분명한데도, 머릿속에선 노인네들이 허우적대는 그림 밖에 그려지질 않았다.

왜 그런 것들 있잖은가.

어디 산 중턱 공원에서 나무에 등을 턱턱 부딪히고, 손으로 원을 만들며 허이짜, 허이짜 하는 것들.

내게 태극권이라는 이름은 아침 에어로빅 방송에서 나올 것만 같은 뉘앙스를 진하게 풍겼다.

“우리 제자님은 외국에서 와서 잘 모르겠지만, 태극권은 모든 무당의 무공에 근간이 되는 기초에요.”

“그렇군요.”

“흠... 백문이불여일견. 제가 먼저 보여드릴테니, 잘 보세요, 제자님?”

“...네, 사부.”

시원찮은 대답에 살짝 오기가 생겼는지, 백세령이 새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곧 소위 마보 자세라고 불리는 스쿼트 준비동작을 취하더니, 양손을 머리와 사타구니로 보냈다.

‘그냥 에어로빅 태극인데?’

허나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잠시, 백세령의 손이 내 눈앞에서 찬찬히 한 바퀴 도는 순간.

나는 기묘한 흡인력을 느꼈다.

이어지는 부드러운 손짓에 내 몸뚱아리가 따라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뭐, 뭐야...?’

자지가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흑천묵지신공을 운기하면서, 백세령의 몸짓을 눈 안쪽에 아로새겼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춤처럼 보였다.

태극권(太??)이 아니라, 태극무(太?)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부드럽게 흩날리는 권각(?)이 눈앞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불어온 봄바람 하나가 백세령의 옷깃을 스쳤다.

그녀의 손이 부드럽게 바람을 가두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작 속에서, 백세령의 손 안에서 바람은 계속해서 불었다.

그리고 점점 빨라지는 그녀의 주먹과 발. 그에 맞춰 그녀가 가둔 바람도 폭풍처럼 거세지기 시작했다.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다가도, 거대한 파도처럼 세차게 이는 모습이었다.

“흡!”

짧은 기합성과 함께, 그녀의 손바닥이 내게로 향했다.

태풍처럼 거세어졌던 바람이, 어느새 처음의 봄바람이 되어 내 가슴팍을 두들겼다.

“후우, 후... 어떠신가요, 제자님?”

뿌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백세령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존나 따먹고 싶다.’

“엄청 났습니다, 사부.”

“후훗.”

그녀는 감동에 찬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이내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로 손을 까딱였다.

“그럼 어디, 제자님의 실력 좀 볼까요?”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을 테니, 최선을 다해서 들어와보세요.”

따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나는 백세령에게 짓쳐들어갔다.

타탁. 가벼운 발구름으로도 순식간에 몇 미터의 거리를 좁히는 미친 몸뚱아리.

살짝 놀랐다는 얼굴을 한 백세령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내가 아는 무술이 뭐지?’

의무감으로 3년 다닌 태권도. 친구 따라가서 줄넘기만 30분 하다 뛰쳐나온 복싱.

그 외의 티비에서 자주 보던 UFC의 기술들.

상당히 자극적이고 살이 맞대어지는 기술들이 떠올랐지만, 시작부터 그러면 우리 사부님 얼굴 보기가 좀 그럴 것이다.

‘무난하게 복싱이나 따라해보자.’

태권도의 발차기는 그녀가 맞으면 너무 아플 거고.

나는 적당히 와리가리를 치며 두꺼운 팔뚝으로 가드를 올렸다.

“신기한 자세네요. 방어에는 좋아 보여요.”

“얕보지 마십쇼, 사부!!”

여전히 여유가 가득한 백세령에게 가볍게 잽을 날렸다.

그동안 팔굽이나 윗몸, 간단한 운동을 해보면서 이 몸뚱아리가 진짜 미쳤다는 걸 깨달았지만.

후웅!

단순한 잽에서도 바람 소리가 날 줄은 몰랐다.

“읏...!”

놀란 얼굴로 다급히 고개를 옆으로 꺾는 백세령.

잽은 원투가 기본이니까, 나는 그대로 그녀의 얼굴을 향해 한 번 더 가볍게 잽을 날렸다.

후웅!

그에 뚜둑 소리가 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개를 비트는 그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겠다는 말을 지키기 위해 그런 걸까.

조금 자세가 무너진 백세령을 보며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이 직격타를 날릴 타이밍이라고.

살짝 허리를 비틀며, 나는 그대로 강렬한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쐐애액!

“흐읏!”

쿵!

무슨 돌덩이가 날라가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내 시야가 땅바닥에 처박혀있었다.

“배, 백 소협! 아니, 제자님! 괜찮아요?”

“어우...”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녀의 얼굴에 주먹이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다급히 팔을 멈추려 했었다.

‘얼굴 다치면 안되니까.’

하지만 내가 팔을 거두기도 전에 보드라운 촉감이 주먹을 감싸며, 순간 세상이 한 바퀴 크게 돌았었다.

“괜찮...습니다.”

땅바닥에 부딪히기 직전 본능적으로 내기를 운용했는지, 들어온 충격은 거의 전무했다.

다만 어리둥절할 뿐.

“미, 미안해요. 순간 손이 제멋대로...”

“그것보다, 방금은 뭐였습니까?”

궁금증 가득한 내 목소리에, 백세령이 나를 일으켜주며 말을 이었다.

“아까 보여줬던 태극권이에요. 유(?)의 묘리를 사용해서, 제자님의 힘을 흘려낸 거죠.”

“유(?)의 묘리...”

“이리로 와요, 제자님. 한 번 겪어봤으니, 더 잘 이해가 될 거에요!”

무공 이야기에 기분이 들뜨는지, 백세령이 꽤나 하이톤의 목소리로 나를 잡아끌었다.

근처의 바위에 대충 몸을 기댄 채, 그녀가 까만 눈동자를 별처럼 반짝이며 말했다.

“태극권에는 두 가지 묘리가 숨겨져 있어요.”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쫙 펼치며 설명을 시작하는 그녀.

나는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백세령의 얼굴과 목소리를 감상했다.

“유수(?)의 묘리, 그리고 회(回)의 묘리. 모든 건 이 두 가지로 가능해요. 아까 내가 제자님의 공격을 반격한 건, 아주 기본적인 유수의 묘리에요. 적의 힘을 이용해서, 간단한 손짓만으로도 쉽게 공격을 흘려낼 수 있죠. 그리고 또...”

“...”

우리 사부님은 무공 이야기만 하면 말이 많아지는구나.

참새처럼 재잘대는 그녀의 입술에선 무협지에서 몇 번 들어본 기술들이 튀어나왔다.

이화접목이라던가, 사량발천근이라던가 하는 것들.

하지만 솔직히 그런 것들보다는, 살짝 홍조를 띤 얼굴로 정말 행복하다는 듯 설명하는 백세령에게 더욱 눈길이 갔다.

‘왜 차기 장문인인지 알겠네.’

이만큼 행복한 얼굴로 제자를 가르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또 회의 묘리를 사용해서, 아주 작은 힘으로도 상대에게 큰 피해를 줄 수도 있구요. 태극이란 건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제자님?”

“네, 정말 대단합니다, 사부.”

방긋 웃는 나를 보자, 무언가 깨달은 듯 시무룩해하며 말을 꺼내는 그녀.

“아... 미안해요. 최근에 이렇게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할 상대가 없어서... 너무 제 얘기만 했네요, 제자님.”

“괜찮습니다. 정말 제대로 된 사부를 둔 것 같아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그럼 다행이구요.”

“그리고... 언제든 제자에게 고민상담을 해도 좋습니다.”

“후후, 말씀만은 고마워요.”

분명 차가운 인상이라고 기억속에서 떠올렸던 것 같은데, 가까워진 그녀는 꽤나 잘 웃는 사람이었다.

뒤이어 백세령이 장두식과의 대결에서 녀석이 사용할 만한 것들을 읊어줬다.

“서로의 내공을 금제하고 싸우는 터라, 육체와 기술이 주를 이룰 거에요. 당연히 육체는... 제자님이 우세할 테고, 기술은 장 사제가 우세할테죠.”

“그럼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사부.”

“장 사제가 취할 것은 단 하나 밖에 없어요. 유능제강(????).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태극의 요결.”

유능제강. 하긴 비리비리한 녀석이 이 몰상식한 흑인의 육체를 이기려면 그 수 밖에 없을 거다.

아무리 나라도 내기 없이 그런 업어치기 몇 번 당하면 골이 울릴 테니까.

“그렇다면 간단해요. 제자님도 똑같이 부드러움으로 맞서면 되요.”

“부드러움으로? 어떻게 말입니까?”

“흐름은 더 큰 흐름에 집어삼켜지는 법. 그리고 지금부터 그걸 제가 알려줄게요, 제자님.”

“알겠습니다.”

나는 결연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백세령 또한 아이 같았던 얼굴은 치우고, 처음의 차가운 인상으로 돌아와 제대로 가르쳐주겠다는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콰드득.

“음?”

“왜요?”

“아... 아닙니다.”

달빛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발에 밟혔다.

하지만 이미 가루처럼 바스라진 터라, 희미하게 반짝이는 옥빛말고는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것을 땅바닥에 꾹꾹 즈려밟으며 백세령에게로 갔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부.”

“이번엔 방심하지 않을 거에요.”

*

“어우...”

드디어 첫 날 수련이 끝났다.

종이 12번 울리니 더는 너무 늦을 것 같다며 미소와 함께 사라진 백세령.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웃음이 지어졌다. 대신 몸을 혹사했지만, 이쯤이야 하루 푹 자면 다 낫겠지.

“몇 번을 넘어졌냐...”

적어도 두 자릿수는 분명할 거다.

“흠...”

그건 그렇고, 거진 3시간을 백세령과 몸을 섞었더니 자지가 아프도록 빳빳하게 발기한 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저녁 먹고 대충 네다섯명 정도 인부 누님들과 한 판 때리는데, 그걸 못했으니.

“한 발 빼고 잘까.”

나는 평소처럼 매난국죽이 머무는 임시 숙소로 향했다.

저 아래에 냄새나는 남자 숙소는 이미 발길을 끊은지 오래다.

달콤한 분내가 풍기는 여인네들이 자는 곳이 있는데 굳이 갈 필요가 없지.

달칵.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롱고롱 가느다란 숨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녀들의 숙소도 좁기는 매한가지여서, 넷이서 길다란 침상에 누워 자는 것이 보였다.

‘달빛도 밝은데 밖에서...’

아니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자고 있는 년들 중 대충 하나 찍어서 그대로 박으면 되지 않겠는가.

‘매를 빼면 4분의 3, 75%. 무조건 성공하는 확률이지.’

나는 기척을 죽이며 그녀들의 발치에 섰다.

이제 다음 차례는, 자다가 내 자지에 봉변을 당할 년을 선택할 차례.

입을 꽉 틀어막고, 다른 이가 깨어나지 않도록 숨죽이며 박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쿠퍼액이 질질 새는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삼베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자지를 꺼떡이며 본능이 이끌리는 곳을 찾았다.

‘맨 왼쪽.’

그쪽 보지에서 야릇한 향기가 풍겨왔다.

색에 굶주린 듯한 냄새. 나는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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