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대결(??) (2)
* * *
타타탓!
“어서 따라오세요!”
다람쥐 마냥 험한 산길을 날라댕기는 무당의 여제자, 진소월.
살짝 갈색기가 도는 단발과 눈동자도 그런 느낌을 더해줬다.
날쎄게 산을 타는 그녀의 꽁무니를 쫓다보니, 몸에서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은 것을 알게되었다.
슬슬 초여름에 접어드는 날씨에, 아무리 그래도 땀 정도는 흘렸었는데.
‘어제의 변화 때문인가?’
어젯밤 평소보다 매의 반응도 더 격했고, 뭔가 신체적인 향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뭐가 됐든 좋은 일이라 나는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도착한 산 중턱의 거대한 문.
고풍스러운 자태의 현판에는, 무당파(???)라는 글씨가 멋드러진 형태로 휘갈겨져 있었다.
“이곳부터가, 진정한 무당파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백 소협.”
“그렇군요. 뭔가... 기묘한 감각이 느껴집니다.”
“...간파하셨군요?! 역시 대사저가 인정하신 분 다워요!”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빛내는 소월. 잘해보아야 중학생쯤 되어보이는데, 이런 애를 보내다니.
곧 그녀가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거 아시나요? 이곳에는... 개파조사이신 장삼봉 진인께서 설치한 기묘한 진법(??)이 존재하고 있어요. 흑심을 품고 무당을 노리는 자들을 배제하는, 아주 엄청나고 대단한 진이죠!”
소월이 하는 이야기에 살짝 뜨끔했다. ‘흑심을 품고 무당을 노리는’ 이라니.
‘완전 내 얘기잖아, 씹...’
확실히 이곳의 무언가가 자꾸만 신경을 건드리기는 한다.
제대로 배운 게 없어서 애매하지만, 흑천묵지신공이 반응하는 걸 보면 뭐가 있기는 한 모양.
나는 소월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저에게 말씀해주셔도 됩니까? 제가 사실은 흑심을 품은 무뢰한이면 어쩌려구요?”
“...어?”
소월의 얼굴이 삽시간에 당황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그 얼굴이 정말 귀여워서, 나는 한술 더 뜨며 그녀를 놀렸다.
“거기에 흑심(?心)이라니. 피부색이 까맣다고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네? 아, 아니, 백 소협. 저는, 그... 그렇게 말하려던게...”
“장 도사님도 저를 대놓고 싫어하셨는데, 무당은 저를 반기지 않나봅니다.”
“...아으, 그...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저는 백 소협... 어, 엄청 반기는데에...”
다급히 손을 휘저으며 점점 오그라드는 그녀의 얼굴.
급기야 똘망한 눈가에 눈물까지 비치기 시작해서, 나는 서둘러 그녀를 달랬다.
“저는, 히끅... 그런 게, 그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째송, 째송해여...”
“아이고, 울지 마십쇼. 제가 농을 좀 부린 겁니다.”
“흐끅... 제가, 잘못한 게... 훌쩍, 아닌 거에요?”
“예, 예. 도사님이 너무 귀여우셔서 장난을 좀 친겁니다. 뚝 하십쇼.”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눈물을 훔쳐내고는 허리춤에 착하고 손을 올리는 소월.
“뚝이라뇨! 훌쩍, 저는 어린 아이가 아니에요!”
“네, 제가 우리 도사님을 몰라뵀습니다.”
“크흥, 그, 백 소협.”
“네?”
“정말로 괜찮은 거죠? 대사저가 알면 저, 저 엄청 혼날 거에요.”
쪼그만 손을 모아 불안한 듯 안절부절 못하는 소월.
나도 모르게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달래줬다.
“네, 전 그런 거 신경 안 씁니다.”
“그, 그리구... 진법 이야기두... 비밀로 해주세요오...”
“네. 전 아무것도 들은 게 없습니다.”
“헤헷...”
이런 딸내미 하나 있으면 진짜 행복하겠네.
그녀는 머리를 전부 덮는 두툼한 손이 좋은지 연신 내 쓰다듬을 받으며 실실 웃음을 흘렸다.
“도사님, 그런데 어서 가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 어, 어서 가요, 백 소협! 대사저께서 백 소협 옷 좀 맞춰주라고도 하셨는데!”
“옷이요?”
“네, 그... 옷차림이... 커흐흠!”
누군가를 흉내내는지, 헛기침까지 하며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소월.
확실히 이 반나체에 가까운 삼베옷을 입고 대련을 하기엔 조금 그랬다.
어디 시장바닥에서 싸움질 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인상을 보여줘야지.
“얼른 안내해주십쇼.”
“네!!”
그렇게 소월을 따라 도착한 전각.
우의각(???)이라 써진 곳으로 들어가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여자 셋이 튀어나와 나를 끌고갔다.
“금방 될 거에요, 백 소협!”
그녀들을 따라 들어간 방은 온갖 천과 실 등으로 가득한 방이었다.
곧바로 나를 위아래로 재보더니, 휙휙 움직이며 재료들을 집어드는 여자들.
“상의... 보통 남성의 두 배 이상...”
“하의... 보통 남성의... 실례.”
“...음.”
순식간에 다가와 내 삼베옷을 벗겨버리는 그녀.
당연히 속옷 따위는 없기에, 아침 더위에 축 늘어진 커다란 자지와 불알이 그대로 드러났다.
“커흡...”
“둘째야?”
“...바지품은, 넉넉히 만들어 두시오, 언니.”
“...아, 그래.”
코피를 쏟은 둘째가 사라지고, 언니와 남은 한 명이 신들린 가위질로 옷감을 자르기 시작했다.
평범한 남성이라면 나체로 당당히 서있지 못하겠지만, 나는 꿇릴게 없었기에 그대로 서있었다.
부우욱.
“...앗.”
연신 내 자지를 힐끔거리던 언니가 옷감 하나를 실시간으로 날려먹었다.
“...흠, 막내야. 가서 도포용으로 하나 가져오거라.”
“도포용으로요?”
“그래. 제일 큰 걸로다가.”
곧 안쪽의 창고로 들어간 막내가 딱 봐도 방금 찢어진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좋아보이는 옷감을 들고왔다.
도포라고 하는 걸 보니, 백세령이 입던 그 도포의 재질과 같은 걸까.
조금 뒤 코피를 닦아낸 둘째까지 돌아와 내 무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문직 대단하네.’
대략 20분. 어느새 만들어진 정갈한 흰색 무복이 내 앞에 놓여졌다.
“입어보시오.”
“네.”
과연. 백세령 정도의 제자가 쓰는 만큼, 옷감이 부드럽게 몸을 감싸왔다.
심지어 서늘하면서도 온기가 느껴지는게, 평범한 천은 아니다 싶었다.
놀란 내 얼굴을 보고 자랑하듯 덧붙이는 언니.
“천잠사의 실이 섞인, 아주 귀한 옷감이오.”
“...너무 귀한 것을 주신 거 아닙니까? 제가 어떻게 사례를...”
“돈 주고도 못 구하는 것이오. 그리고 사례는... 충분히 받았소.”
세 여자의 눈길이 내 고간에 박혀있는 걸 느끼며, 가볍게 두 손을 모았다.
“언제고 은혜를 갚겠습니다.”
“...백무진 소협, 맞소?”
“네.”
“이설이라 하오. 뒤는 내 동생들인 이란, 이매라 하지. 시간이 된다면... 언제든 다시 방문하시오.”
“그럼... 지금 하나만 더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어째 자매들이랑 연이 깊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새카만 문양 하나를 옷에 새긴 나는 고개를 숙이며 안녕을 고했고, 우의각 밖으로 나와 소월을 만났다.
“와,백 소협!! 신수가 훤해졌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거울이 없는게 아쉬웠지만, 척봐도 무복은 내게 굉장히 잘 어울렸다.
애초에 역삼각형의 근육질 몸뚱아리는 핏이 안 좋을 수가 없다.
품이 조금 넓기는 했지만, 오히려 움직이기 편해서 더 좋았다.
“어서 가시죠.”
“네!!”
귀여운 다람쥐같은 소월을 따라, 우리는 무당의 안으로 향했다.
*
“늦었구나.”
“죄, 죄송해요... 대사저.”
무표정이 꽤나 차가워보이는 백세령. 그녀의 눈길이 소월을 향했다.
“너무 나무라지 마십쇼, 사부. 저 때문에 늦은 겁니다.”
“...흠, 이번 한 번은 그냥 넘어가겠지만. 언제나 시간을 소중히 해야한단다, 소월아. 알겠니?”
“사, 사부...? 앗, 네!”
사부라는 단어에 눈에 커지고, 백세령의 물음에 한 번 더 커지는 소월.
백세령은 그런 소월의 뽀얀 볼따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잘 어울리네요, 제자님.”
“제자님...?”
“괜찮습니까?”
“...네. 그리고 이건...”
백세령의 손길이 내 가슴팍에 새겨진 문양을 짚었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흑색 스페이드 문양에, 안쪽에 Q자가 새겨진 자수.
솔직히 다른 뜻을 제외하고 봐도 예쁘게 잘 뽑혔다.
“저희 부족의 문양입니다.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서죠.”
“아... 그럼 제게 주었던 선물도...?”
“네.”
백세령이 노리개가 달려있는 허리춤을 살짝 매만졌다.
뾰족한 극점으로부터 내려오는 매끈한 곡선, 살짝 안쪽으로 모여, 얇게 내려오는 아랫부분.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제자님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멸족해버린 부족의 문양이 달린 흑색 노리개.
천년만년, 부서지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무진의 미소가 떠올랐다.
‘제자님에게는 정말 의미 있는 문양이겠지.’
무당의 태극처럼.
그러니 옷에도 남겨 잊고 싶지 않으려는 것일터. 자신도 그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라, 이 기묘한 문양의 노리개를 선물로 준 것일까.
무어가 됐든, 그가 준 선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콩닥거리게 되었다.
“사부?”
“...아. 다음부턴 꼭 제대로 옷을 입도록 해요. 이렇게 신수가 훤해지는데. 낯부끄러운 삼베옷은... 둘만 있을 때 입구요.”
“사부가 원하신다면 그리 하지요.”
내 가슴팍에 새겨진 문양을 조금 더 손으로 훑더니, 이내 몸을 돌리는 백세령.
그녀가 문을 열자, 바깥의 광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널따란 연무장과, 드문드문 보이는 관객들.
“어서 가요. 다들 기다리고 계시니.”
“네.”
“저, 저 백 소협!”
백세령을 따라 나가기 직전 소월이 내 다리에 찰싹 달라붙더니, 이내 커다란 눈망울을 꿈뻑거리며 물었다.
“사부랑 제자라니... 대사저와 무슨 관계신가요...!?”
“나중에 알려드리겠습니다.”
“...꼭이에요?”
“네.”
“움, 그럼 지금은 머리 쓰다듬어 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도대체 머리 쓰다듬는 거랑, 나랑 백세령의 관계가 무슨 상관인가 싶었지만.
나는 복슬복슬한 소월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진소월! 백 소협을 방해하지 마렴!”
“네, 네엣...”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살짝 언성을 높이는 백세령. 그녀의 두 주먹이 불끈 쥐어져 있었다.
‘...소월이 녀석, 나도 못해본 걸...’
띠동갑은 차이 나는 사매에게 질투를 하는 그녀였다.
그리고 곧, 두 사내가 단단한 판석이 깔린 연무장 위에 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