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대결(??) (4)
* * *
“카, 학...”
털썩. 부들부들 떨어대던 장두식의 몸뚱아리가 바닥에 달라붙었다.
딱 봐도 의술쪽에 조예가 깊어보이는 분들이 두식이에게 달려갔고, 나는 심호흡을 하며 자세를 다잡았다.
‘이게... 진정한 무공.’
호흡과 흐름, 내 몸의 움직임이 하나가 되며.
모든 것이 부드럽게 흘러갔던 일체감. 전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승자... 백무진.”
“변변찮았습니다.”
“큭... 기고만장하지 마시게. 무당의 배움을...”
“아, 예.”
뭐라뭐라 씨부리는 이장로에게서 몸을 돌려 연무장을 내려갔다.
승리의 기쁨이 상쾌하게 몸을 적셨다.
“제자님!!!”
“아, 사부!!”
저 멀리 아리따운 선녀님이 내게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바로 꽉 끌어안고 자지를 비비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았다.
“하아, 하아... 정말, 정말로 대단했어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그녀가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기쁨을 쏟아냈다.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는 모습에, 자꾸만 발기하려는 자지를 참느라 혼이 났다.
“스승님께서도, 완벽한...”
“백 소협! 완전 멋졌어요!!”
“도사님도 계셨군요. 감사합니다.”
“헤헤, 칭찬했으니까 저도 칭찬해주세요!”
다짜고짜 쪼그만 머리통을 들이미는 소월.
슥슥 쓰다듬어주며 턱까지 살살 긁어주니, 갸르릉거리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그런 소월을 도끼눈을 뜨며 쳐다보는 백세령.
“소월아.”
“흐흥, 흥... 대사저?”
“어른들이 말씀하시는데, 지금 이게 무슨 예의없는 짓이야.”
“아, 그, 그것이...”
우리 선녀님이 아무래도 쪼끄만 도사님한테 질투를 하나보다.
자기도 당당하게 머리 쓰다듬어 달라고 하면 될 것을.
울먹거리는 소월을 달래준 건, 뒤에서 기척도 없이 나타난 한 여인이었다.
“추하구나, 세령아.”
백세령처럼 새카만 흑장발에, 군청빛을 띠는 신비로운 느낌의 눈동자.
나른한 듯하면서도 날카로운 묘한 감각이 뒷골을 찔렀다.
‘잠깐... 군청색?’
분명, 아까 내공을 금제할 때 보였던 눈동자의 색이...
“추, 추하다니요, 스승님!”
“소월이는 아직 다 크려면 멀었거늘, 쯧쯧. 가진 바 패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년.”
“읏... 그, 그만 좀 하세요!”
그 여인의 눈동자가 백세령의 가슴팍을 향했다.
새하얀 무복 위로 당당히 존재감을 발하는 선녀님의 젖탱이.
딱딱하게 솟은 발기 자지를 정리하며 여인을 쳐다보았다.
무심한 듯한 얼굴. 입가에 살짝 지어진 미소가 백세령과 조금 닮은 듯 했다.
“뭐, 아무튼. 소월이는 저리 가있거라.”
“네! 말씀들 나누세요!”
쪼르르 달려나가는 소월.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백세령보다 살짝 작은 키의 여인에게 포권했다.
“백무진이라고 합니다. 장문인.”
“응? 나를 아는가?”
“아까 전에도 제게 오시지 않았습니까.”
“흠, 들켰구만.”
내공이 금제되어 있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아마 있더라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 거다.
‘그만큼 차이가 크니까.’
절대 고수. 무당파 장문인. 정파 무림의 두 기둥 중 하나.
소싯적의 별호, 천극혜검(????).
담소율이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자네 자지가 크던데, 어디 한 번 보아도 되겠나?”
“...스승님!!!”
백세령의 새된 고함이 연무장에 울렸다.
*
“거참, 제자가 스승한테 소리나 지르고 말이야. 괘씸한 년.”
“스승님! 제발 바깥에서만이라도 체통을...”
“체통이고 뭐고, 어차피 눈만 부라려도 알아서 설설 기잖느냐.”
“그, 그건...”
담소율의 논리에 백세령이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이 그랬다. 절대 고수가 눈을 부라리는데, 알아서 기어야지 뭐 어쩌겠어.
고로 나도 기고 있는 중이다.
“어서 따라오게. 승리자에게 밥이라도 한 번 맥여야지.”
“...예.”
“...미안해요, 제자님. 스승님께서 고집이 강하셔서...”
“괜찮습니다, 사부.”
괜찮아야지, 시발... 아까 내공을 금제할 때 했던 점혈.
그건 담소율이 한 거였다. 즉 절대 고수가 내 몸에 점혈을 한 거고, 내 수준으로는 푸는 게 당연히 불가능하다.
‘...어쨌든, 얼굴을 텄으니 이득이다.’
점혈이야 결국은 풀어줄 테고. 적당히 이야기만 나누고 돌아가도 큰 소득일 테지.
그렇게 혜원각이라 적힌 건물에 도착하고, 우리는 윗층으로 향했다.
“상을 내올까요?”
“그래, 다과랑 차 좀 가져오거라.”
“네. 잠깐만 기다려요, 제자님.”
“꼬리 좀 적당히 치거라.”
“읏...”
백세령이 도망치듯 방을 떠났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담소율이 내게 손짓했다.
“앉으시게.”
“예.”
담소율의 군청빛 눈동자가 무진을 향했다.
떡벌어진 어깨와, 한없이 넓은 가슴. 제자의 몸통만한 허벅지에... 튼실한 양물까지.
오랫동안 굶주린 그녀에겐 군침 도는 먹잇감으로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지막의 그 일격. 그것은 분명 ‘완벽’한 발경(??)이었다.
장두식의 힘을 한 푼도 흘려보내지 않고, 회(回)로 가두어 그대로 내질렀다.
몸의 움직임, 호흡, 힘의 흐름, 타격점.
모든 것이 정박자로 이루어져, 근 10년을 가르친 무당의 제자를 박살냈다.
‘그것도 내공을 금한 채로.’
웬만한 일류 권법가 못지 않은 파괴력.
그때 담소율은 자신이 제대로 점혈을 하지 않았나 하는 착각까지 들었었다.
“본녀는 담소율. 무당의 장문인을 맡고 있네.”
“백무진입니다. 아래쪽에서 공사일을 돕고 있습니다.”
거대한 풍채에서 느껴지는 잠룡의 기운.
괜히 무진이 주물럭거린다고 느낄 정도로 오래 만진 이유가 있었다.
‘적어도 세령이만한 내공을 지녔다니...’
어렸을 때부터 그 재능을 알아보고 직접 거둬 키운 수제자, 백세령.
예전 소림의 방장을 구한 대가로 받은 대환단도 맥이고, 직접 발로 뛰어 잡아온 영수(??)의 내단도 맥이고.
그리 고생하며 키운 아이의 내공을 이 새카만 이국의 남자가 가지고 있었다.
“혹, 사문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래, 세령이도 없다 했었지.”
그의 몸은 무인이라기보단, 전신의 근육을 다 쓰는 잡부의 몸이었다.
제자가 착각했나 싶어 자신도 만져보았지만, 그것은 확실했다. 그럼에도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 우람한 육체를 꽉 채운 밀도 높은 내기.
지금은 잠들어 있지만, 아까 전 자신이 금제하기 전만 해도 마치 터질 듯 과하게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 담소율은 그가 영약만 냅다 처먹고 제대로 수련하지 않은 어디 이국 거부(巨?)의 아들인 줄로도 생각했었다.
‘헌데 그것은 또 아니고...’
그 ‘발경’은 재능이 없는 범인(凡人)들은 절대로 해내지 못할 일격.
섬서의 맹주년이나 자신과도 같은, 소위 한 시대를 풍미할 천재들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내공의 양과, 이해되지 않는 깨달음의 수준.
심기체가 전혀 들어맞지 않는 무진을 보며 담소율은 결정을 내렸다.
“당분간 금제를 풀어주지 않을 생각일세.”
“...씨발?”
“...”
“죄송합니다.”
“화끈하시구만. 이해하네. 갑자기 이러니 당황했겠지.”
나는 무심코 튀어나온 말에 바로 대가리를 박았다.
다행히 우리 절대 고수님이 이해해주셨는지, 너그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네는 지금 자네의 상태가 어떻다고 보는가?”
“...음, 육신을 말하시는 것인지?”
“자네의 단전 속에 담긴,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내공.”
“...”
역시 아까 나를 만져보며 몸을 살핀 듯 싶었다.
백세령은 별말이 없었는데, 그녀는 그냥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을 수도.
담소율은 말문이 막힌 내게 설명을 덧붙였다.
“사문이나, 내공을 얻은 이력 같은 것을 묻는 게 아닐세. 그것은 중요치 않아.”
“그럼...”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과하다니요?”
내 물음에 담소율이 나를 꿰뚫어 보듯 말했다.
“백무진. 자네는 지금 터지기 일보직전일세.”
자지가요? 라고 묻기에는 그녀의 얼굴이 너무 진지했다. 다급히 야한 것을 치우고 생각을 정리했다.
내공의 금제를 풀어주지 않겠다는 말, 그리고 내공이 너무 과해 터지겠다는 말.
‘나 좆될 뻔한 건가?’
무협지에서 보면 영약을 과다하게 처먹고 운기조식을 제대로 하지 못해 뒤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루지 못하는 대량의 내공으로 인해, 주화입마(?火??)에 빠져들어 그대로 폭사하는 거다.
담소율은 내가 지금 그런 상태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래서 금제로 잠깐 내공을 다스려준 건가??’
무려 절대 고수가 말하는 주화입마.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황급히 들었던 고개를 다시 처박고 말했다.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흠...”
슬며시 턱을 괴고는, 자신의 앞에 바짝 엎드린 무진을 내려다보는 담소율.
그녀는 실로 오랜만에 식었던 감정에 불이 붙은 것을 깨달았다.
‘본녀를 뛰어넘는 남자와 혼인하겠다 다짐한지 어언...’
...자세한 숫자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포기하고 있던 차에, 실로 찬란한 무재(??)가 나타났으니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자를 붙잡을까.
‘겁을 좀 더 줘볼까.’
당당히 자지를 걸겠다고 선언하는 사내이니 확실하게 휘어잡을 필요가 있었다.
담소율이 목을 가다듬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대의 몸은 지금, 좁은 물길에 홍수가 난꼴이지. 과해도 너무 과해.”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천천히, 수준에 맞게 길을 넓혀야지. 홍수가 나면 물길이 터지고 망하겠지만, 한 길, 두 길, 열길. 천천히 늘려나가면 운하가 만들어지는 것일세.”
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것이 보였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주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오랜 세월 수련해온 담소율의 양심은 태극처럼 둥글었다.
“그럼, 그 말씀은...”
“세령이처럼, 본녀도 자네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지. 어떻게, 수락하시겠는가?”
“허, 허나... 저는 아직 노예의 신분인데...”
“자네를 산 것이 본녀일세. 몇 달 뒤의 봉룡지회를 위해서.”
담소율은 한 번 튕기는 무진의 겸손함이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제 분수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태사부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세령이가 사부이니, 태사부가 맞겠지.”
담소율이 슬쩍 손을 뻗자, 옆방의 문이 벌컥 열리며 종이 하나가 그녀의 손으로 빨려들어왔다.
흰 바탕에 검게 쓰여진 것은, 무진의 노예증서.
“백무진.”
“예, 태사부.”
그녀의 부름에 고개를 든 무진의 눈에 노예증서가 화르륵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허공섭물(???物)에 이은 삼매진화(三?火). 엷은 미소를 지은 담소율이 선녀처럼 보였다.
‘존나 멋있어 우리 태사부.’
남자라면 모름지기 이런 여자에게 순정을 바쳐야하지 않겠는가.
나는 벌떡 일어서서, 자세를 잡았다.
“절 올리겠습니다.”
“내 평생 사내놈에게 받을 줄은 몰랐는데.”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열심히 배우겠다도 아니고, 모시겠다니.
담소율은 무진의 단어 선정에 웃음을 흘리며, 아홉 번의 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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