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26화 (26/230)

〈 26화 〉 색마(色?)의 스승 (1)

* * *

‘...왜지? 왜 가슴이...’

닫혀진 문의 바깥.

다과와 차를 들고온 백세령은 안쪽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한참을 망부석처럼 서있었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들어가 다과상을 내려놓으면 될 것을, 무엇이 망설여졌을까.

­...태사부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세령이가 사부이니, 본녀는 태사부가 맞겠지.

‘태사부... 사부.’

자신과 무진만의 관계가, 스승에게로까지 이어졌다. 기쁜 일이었다.

무진을 눈여겨 봐달라고 스승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기도 했고, 그의 앞날이 창창하게 빛날 행복한 일인데.

왠지 모르게, 무진을 빼앗기는 것 같았다.

‘...무슨 소리야. 제자님이 내 소유도 아니고.’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 요새 스승님께서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시니, 저도 모르게 이상한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니 가슴이 먹먹한 것도, 이상한 일이겠지.

“스승님, 세령입니다.”

“그래, 들어오거라.”

신색을 가다듬고 안으로 들어섰다.

구배지례를 마친 제자님은 살짝 더운 듯, 옷깃을 펄럭이고 있었다.

백세령은 저도 모르게 손이 움직였다.

“더운가요, 제자님? 땀이 났어요.”

새하얀 무복 소매를 쥐어, 무진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정성스레 닦아냈다.

“아, 감사합니다. 사부.”

“대결도 끝났는데, 더 이상 서로를 그리 부르지 않아도 된다.”

“사제지간은 부모의 연보다도 깊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스승님?”

“...그랬지.”

무진은 심상치 않은 기류에 침을 삼켰다.

‘뭐시여.’

느긋한 얼굴로 제자를 바라보는 담소율과, 자기 스승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백세령.

그녀가 흠흠, 하고 헛기침을 내뱉더니. 소매에 가려진 허리춤을 슬쩍 드러내었다.

새카만 노리개가 담소율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못 보던 것인데... 음?’

무진의 가슴팍에 비슷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허허.’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더더니, 딱 그짝 아니던가.

담소율은 제자의 오리발에 한 방 먹었다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무진이는 이만 내려가 보거라. 장두식에 대한 처분과, 추후의 수련에 관한 것은 사람을 보내도록 하마.”

“예, 태사부. 그럼... 사부도 나중에 봅시다.”

“그래요, 제자님.”

달칵. 무진이 나간 방.

자매처럼 친근해 보이는 사제지간 사이에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내내 실없는 웃음을 머금고 있던 담소율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관심 없는 줄 알았더니?”

“사부가 제자에게 관심을 쏟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걱정 말거라. 내 누구 하나를 편애하지는 않을 테니.”

“읏...”

여전히 숫기 없는 제자를 바라보며, 담소율이 달래듯 말을 이었다.

“본녀의 제자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내인데. 스승된 도리로 한 번 녀석의 됨됨이를 알아는 봐야하지 않겠느냐.”

“따, 딱히 그런 사이를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래? 그럼 이 스승이...”

“안돼요!”

“뭐가 안된다는 게냐? 응?”

담소율의 물음에 백세령은 좀처럼 입술만 깨물 뿐 답하지 못했다.

명색이 도사라고 너무 감싸며 키운 탓일까.

때로는 당가의 그 미친년처럼 사내를 적극적으로 탐하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풋풋한 순정을 보는 것도 나름 맛이 있었다.

‘그래도 몸에 좋은 것은 스승이 먼저 맛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이해하거라.

담소율은 슬슬 제자놀리기를 그만두고, 진지한 얼굴을 했다.

“아무튼, 네가 말한 데로 눈여겨볼 가치는 있어 보이더구나. 한동안은 즐겁겠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승님.”

“특히 그 마지막 일격. 곰곰이 생각해보거라.”

“...예.”

툭하고 던져진 스승의 조언에, 백세령이 고개를 조아렸다.

‘완벽한 일체감. 완벽한 흐름. 제자님이 보여준 것.’

그녀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진의 마지막 일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기분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처음 스승의 검무(??)를 보았을 때처럼, 별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을 가져본 적이 언제였지.’

작년에 있었던, 떠올리기도 싫은 처참한 패배.

쉽사리 넘을 것만 같았던 초절정의 벽은 그 패배 이후 두텁게만 쌓여왔고, 지금에 와서는 발목을 붙잡는 진창이 되었다.

스승님께서도 그런 자신의 상태를 헤아리듯, 별반 다른 말씀을 하시지 않았었는데.

‘...제자님의 그것이, 분명 내게 도움이 된다고 여기신 거겠지.’

그녀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 나왔다. 그는 정말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있었다.

무진이 오고나서는 하루하루가 즐겁게만 느껴졌으니까.

그의 엉성한 자세를 봐주는 것도, 수련을 빙자해 살짝살짝 몸이 맞닿을 때도, 그리고 그가 품에 꼬옥 끌어안아줄 때도.

전부 바보처럼 웃음이 흘러나오려는 것을 참았었다.

‘...약속, 지켜주러 가야지.’

무진의 포옹은 꽤나 직설적이고 부끄러우니까, 둘만 있을 때 안기는 게 좋을 것이다.

“제자,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그래. 생각해보니 무진이에게 밥을 못 먹였구나. 네가 가서 좀 사주거라.”

“네.”

몸이 단 듯한 백세령이 방을 나간 직후, 담소율이 다과상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들이키며 읊조렸다.

“게있느냐.”

“존명.”

아무것도 없던 천장에서, 돌연 흑의무복을 입은 인영이 낙하해 무릎을 꿇었다.

담소율은 손을 내밀었고, 흑의인은 품에서 둘둘 말려진 종이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촤라락하고 펴진 두루마리.

“흠... 무역선에서 하역, 애진이라는 노예상이 구입. 직후 무당으로 왔다라... 다른 특이점은?”

“그것이...”

무진의 이력은 특출난 것이 없었다. 그의 이야기대로일 뿐.

‘진정 고향의 부족이 중원의 문파와도 같단 말인가.’

담소율의 손에서 불이 피어오르고, 잠깐 말을 멈췄던 흑의인은 특이사항을 보고했다.

“...이곳에 온 직후부터, 한시도 정사(??)를 쉰 적이 없습니다.”

“한시도? ...상대는?”

“이전의 노예상들은 물론이고, 현재는 사군자와 그녀들이 이끄는 인부들도 전부...”

“...전부?”

“예.”

흑의인이 무엇인가를 떠올렸는지, 슬쩍 허벅지를 비비며 고개를 숙였다.

담소율은 그런 수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사내 놈들의 정력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개중에서도 간간히 색마(色?)라고 불릴만큼 천박한 놈들이 중원에는 존재했다.

현 무림에도 색마가 버젓이 활동중이고. 그런데...

‘이놈은 그 범주를 뛰어넘는구나.’

색마 방원. 그놈은 여무림인 셋과 한꺼번에 동침해 지금 고금제일의 색마로 불리고 있다.

헌데 수하가 건넨 종이에는 흐트러진 글씨체로 분명하게 써있었다.

­백무진. 모월 모일. 사군자 넷과 하루동안 동침.

보통 차 한 번 마실 시간보다 짧은 것이 사내와의 정사인데.

제자년이 데려온 이국의 흑인은 담소율의 상식을 단번에 파괴시켜버렸다.

“...거짓은 없으렷다.”

“제가 하루종일 천리경(???)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장문인.”

“음...”

담소율은 잠깐 백무진과 하루동안 정사를 나누는 상상을 했다가, 곧바로 머리를 털었다.

그 크고 우람한 몸이 자신을 껴안는 순간, 아랫도리가 젖어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절대 고수의 상상은 실재와도 다름이 없었다.

“...어땠나?”

“...그날 남편이 기절할 때까지 하고, 부족해서 홀로 동이 틀 때까지 위로했습니다.”

눈앞에 있는 수하는 무당에서 20년은 도를 닦은 도사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그만큼이나 주체하지 못하다니.

“...나가보시게.”

“예.”

그보다 오래 수련한 자신도, 아랫도리의 떨림을 주체하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담소율은 촉촉이 젖은 자신의 속곳 위로, 느긋하게 손가락을 지분거렸다.

*

“제자님!!”

“하으읏!! 하앙, 앙!!”

“보지 좀 제대로 쪼... 아, 사부. 곧 나가겠습니다.”

“아... 네. 그, 미안해요.”

백세령은 무진이 항상 있는 곳의 문을 두드렸다가, 귓가에 울리는 야릇한 교성에 슬쩍 뒤로 빠졌다.

그녀들의 목소리에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흥분과 열락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도... 기분이 좋은 걸까?’

애도 아니고, 무진과 그녀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이 무공을 수련하고, 깨달음을 얻을 때의 쾌감보다 더할 지는 의문이었다.

“빨아.”

“...흠흠.”

그때 문 너머로 들려온 무진의 낮은 목소리.

괜시리 묘한 기분이 들어 머리칼을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곧 하얀 무복을 입은 무진이 문을 열고 나왔다.

그 틈 사이로 훅 끼쳐오는 무언가 비릿한 냄새와, 무진의 땀냄새.

머릿속이 지잉지잉 울리는 듯 했다.

“죄송합니다, 사부.”

“아,아니에요. 저도 무턱대고 찾아온 거니까요.”

“그럼, 무슨 일로?”

해는 이미 뉘엿뉘엿 저가고 있었다.

동생들에게 부탁해 분을 칠하고, 하얀 도포 안쪽에는 선물로 받은 다홍색 치마까지 예쁘게 차려입었다.

남자 사제들의 눈동자가 떨어질 줄 모른다며, 여사제들이 해준 칭찬에 미소가 지어졌다.

‘가슴이 이상해.’

이게 뭐라고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백세령은 마른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같이저녁, 먹으러 갈래요? 내가 사줄게요.”

“물론입니다, 사부. 맘껏 먹어도 되죠?”

“후훗, 그럼요. 저 돈 많아요!”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냥 저잣거리에 가서 함께 저녁을 먹자고 이야기하고, 무진은 그것에 고개를 끄덕였을 뿐인데.

“어서 가죠. 힘을 썼더니 배고픕니다.”

“힘, 아... 힘. 네, 힘 썼으니까... 어, 얼른 가요!”

*

“저번엔 1층이었는데, 이번엔 3층이군요.”

“아래서 먹고 싶은데, 그러면 제자님이 불편할까 봐요.”

확실히 그랬다. 이 방문만 열고 나가면, 아직 제대로 기감 다루는 법을 모르는 나조차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시선들이 느껴지니까.

“다 우리 사부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거, 거짓말 하지 마요.”

“아까 객잔에 들어섰을 때, 전부 숨죽이는 거 못 느끼셨습니까? 하늘의 선녀가 하계로 내려왔는데 그럴 만도 하지요.”

“그, 그만해요... 제발...”

백세령이 볼을 붉히며 손을 휘저었다.

그럼에도 버티기 힘들었는지, 잔에 따라진 술을 쭈욱들이켰다.

낯간지러운 소리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아까 숙소에서 봤을 땐 진짜 그대로 덮쳐버리고 싶은 거 참느라 혼났으니까.

여자답게 차려입은 백세령은, 남심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낭심도 자극하고.’

탁자 아래로 내가 자지 주물럭거리는 걸 알까 모르겠다.

그냥 웃는 얼굴 자체가 포르노다.

“흠흠, 아무튼. 배불리 먹어요, 제자님. 아니, 이젠 또 다르게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저야 사부 말이라면 다 좋습니다.”

“...그럼, 백 사제?”

“크...”

“...제자님?”

쌀 뻔했다. 이래도 괜찮냐는 얼굴로 백 사제? 하고 물으니, 귓가가 녹아내리는 줄 알았다.

나는 더 만졌다간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황급히 자지에서 손을 뗐다.

“아닙니다. 그럼 저도대사저라고 부르면 될까요?”

“음, 백 사저라고 해요. 대사저는, 조금 멀어보이니까...?”

“알겠습니다, 백 사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그녀.

괜시리 고개를 돌려 죽엽청인지 뭔지를 쭉 들이켰다.

지금 덮치면 내공도 못 써서 주먹질 한 방에 뻗겠지.

그리고 흑천묵지신공을 쓰면서 떡을 쳐야, 여자들이 더 잘 느낀다.

‘...그 편이 내게도 좋고.’

그렇게 한 젓갈 크게 오리구이를 집어먹는데, 백세령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따가... 우리 같이 항상 수련하던 들판에 가요.”

“좋습니다.”

“뭘 하려는 줄 알고 좋다고 그래요, 사제는?”

“사저가 하는 일이면 다 좋으니 좋다고 그러는 겁니다.”

“피...”

진짜다. 백세령이면 나를 존나게 때려도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입술을 삐죽이던 그녀가 오묘한 얼굴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거 알아요? 사실, 저는꽤 오랫동안 벽에 막혀있었어요.”

“사저는 천잰줄 알았는데요?”

“...저보다도 더한 천재가 있더라구요. 쬐깐한 년이.”

...이제 보니 눈동자가 살짝 풀려있는 게, 우리 사저는 술에 약한 듯 싶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