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색마(色?)의 스승 (8)
* * *
‘어떡할까요? 아무래도 태사부를 노리는 것 같은데.’
...본녀를 말이냐?
‘네.’
저딴 허접에게 노려질 거라 생각은 못했는지, 살짝 어이없어 하는 담소율의 표정.
나는 방금 생각난 계획을 그녀에게 전했다.
‘제가 잠시 자리를 피할테니, 놈이 유혹하면 함께 밖으로 나오십쇼.’
명색이 색마의 제자인데 여자한테 쩔쩔 매지는 않겠지.
어차피 놈이 담소율을 점찍은 이상, 가만히 있어봤자 시간만 지체될 뿐이었다.
백세령이 진짜 암캐가 되기 전에 서둘러 방법을 찾아야했다.
헌데 담소율이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나를 노려보며 전음을 보냈다.
...본녀 걱정은 안 하느냐?
‘...’
입술을 깨물고, 눈을 치켜뜬 앙칼진 얼굴.
여기서 절대 고수 어쩌고하면 지랄 날 것이 느껴졌다.
지금 담소율은 한 마리의 암컷. 수컷으로서 보호해줘야 할 보지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꼬옥 맞잡아주며 속삭였다.
‘저 개새끼가 허튼 짓을 하면 당장 달려오겠습니다.’
...정말로?
‘당연하죠. 그리고 태사부를 믿고 있으니 이런 계획을 세운 겁니다.’
...흠흠. 알겠다. 가보거라.
겨우 허락을 맡고, 나는 볼일이 있는 것처럼 객잔을 빠져나왔다.
‘...미쳤구나, 담소율.’
자기 걱정을 안 하느냐니.
세상 누가 절대지경의 고수를 걱정하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무진이 자신을 걱정해줬으면 했다.
철없는 가슴이 자꾸만 그리 하기를 보챘다.
“하아...”
담소율은 무진이 매만지던 손을 감싸쥐고는, 이색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객잔 내부는 물론, 외부까지 전부 감싸고 있던 그녀의 기감이 이색의 숨소리 하나까지 잡아냈다.
“큼큼...”
헛기침과 함께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이색.
녀석이 품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술병에 무언가 스르륵하고 흘러들어가는 것이 들렸다.
‘무언가 또 약을 쓰는 겐가?’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이색.
놈이 아무런 허락도 구하지 않고, 무진이 앉던 자리에 앉는 것이 보였다.
뒤이어 이색이 가져온 술병을 턱하니 내려놓으며 느끼하게 속삭였다.
“실례하오, 소저. 혼자인 듯 한데... 본인도 적적해서 그러니 술 한 잔 하시겠소?”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하하! 목소리도 참으로 아름답구려. 본인과 함께 술을 마시면 시간이 잘 갈 것이오.”
되도 않는 개소리로 술병을 내미는 놈.
죽립의 틈 사이로 보이는 놈의 눈동자에 저열한 욕망이 번질거리는 것이 보였다.
‘...역겹구나.’
무진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저딴 눈빛을 받는 것 자체가 토악질이 나왔다.
계획이고 나발이고, 더는 봐줄 수가 없었다.
어차피 오늘 색마를 잡을 것 아닌가?
그렇게 손을 뻗어 술병을 빼앗으려는 순간.
“이 개새끼가 어디서 눈깔을 그따위로 뜨래?”
“네, 네놈은 뭐... 히이이익!!”
“하루만에 다시 보네, 쓰레기?”
“...무진아?”
자신의 물음에 씨익하고 미소짓는 무진.
이내 그의 장난끼 어린 말투가 들려왔다.
“어차피 오늘 다 조질 건데. 이럴 필요 있습니까. 줘패서 데려가시죠.”
정확히 자신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무진을 보며, 담소율이 맑은 미소를 지었다.
“동감이구나.”
콰직!!
“꺼흑...”
무진의 솥뚜껑같은 손바닥에 따귀를 맞은 이색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놀란 주인장이 다가왔지만, 이내 담소율이 건넨 전음에 발걸음을 돌렸다.
무진 또한 검은 장포를 벗고, 무당의 표식이 적혀진 무복을 드러냈다.
“며칠간 추적했던 무뢰한입니다. 무당이 인도해 갈 것이니, 손님분들께선 마음 편히들 계십시오.”
주변에선 그럼 그렇지 하는 이야기와 함께, 둘의 정체에 대해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가시죠, 태사부.”
“...잘했다.”
“뭘요. 그냥 이 새끼 눈깔이 마음에 안 든 것 뿐입니다.”
“끄으...”
담소율은 성큼성큼 객잔을 빠져나가는 무진을 따라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
인근의 산.
나무 등치에 몸을 기댄 이색의 눈동자에 두툼하고 시커먼 손바닥이 보였다.
저것에 맞을 때면 꼭 입속에서 하얀 무언가가 쏟아졌었다.
“반갑다, 이색아.”
“태, 태사부님... 살려주시오... 제발...”
“우선 하나 묻자.”
“예, 예...”
“객잔은 또 왜 왔냐?”
무심한 듯 말하는 목소리에, 이색은 순순히 입을 열었다.
“사, 사부가 시켰소... 무당 주위를 감시하라고...”
“너 혼자?”
“다들 아파서...”
“왜 아픈데?”
네놈 때문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이색은 간신히 집어넣었다.
“고, 고뿔에 걸렸소...”
“그렇구나. 근데 가라는 무당산은 안 가고 왜 객잔에 있었지?”
“...이리 나왔는데, 계집질 좀 하고 가야...”
거짓을 말하면 된통 맞을 것 같아 솔직히 말했건만, 순식간에 손바닥이 날아왔다.
짜아악!
“끄악!!”
“진짜?”
“진짜, 진짜요!! 내, 내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하오, 태사부님!!”
입에서 또 잘게 부서진 하얀 파편들이 튀어나왔다.
이색은 부들부들 떨며 간절히 애원했다.
“불알도 걸 수 있어?”
“...아?”
“망설이는 걸 보니 뭐가 있네.”
“아니, 그... 꺼허어억!!”
반대쪽 뺨을 후려치는 솥뚜껑에 남은 이빨마저 박살이 난 것이 느껴졌다.
이색이 엉엉 울며 애걸복걸했다.
“왜, 왜 그러시오... 다 말한다 하지 안핬소... 흐어엉...”
“저, 무진아. 이만하면...”
“감히 내 여자를 그딴 식으로 쳐다봤는데. 이정도면 싸게 쳐준 거야,이색아.”
“죄, 죄송하오. 태사부님의 여자분... 내, 내 이리 사가하겟소...”
쉭쉭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넙죽 엎드리는 이색.
그제야 무진이 그를 일으켜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자자, 됐어. 이제 네 사부가 어딨는지나 말해봐.”
“대, 대별산 중턱 즈음에 동굴 같은 산채가 있소...”
“안내해.”
“아, 안내...?”
“그럼? 대별산 중턱이 뭐 한둘이냐?”
이색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과 함께, 부들거리는 다리를 옮겼다.
언제든 잡을 수 있게 이색을 앞에 세워두고, 호북의 머리를 감싸고 있는 대별산으로 향했다.
*
“흠흠, 무진아.”
“예, 태사부.”
“흐흥, 아니다.”
괜시리 나를 부르는 담소율.
아까부터 내 소맷자락을 붙잡고 날 듯이 걷는데, 자꾸만 그녀의 체취가 살랑살랑 풍겨와 참기가 힘들었다.
“이색아, 빨리 좀 가자.”
“예, 헤엑... 알겠습니다, 태사부...”
“거 색공을 익혔다는 새끼가 왜 이렇게 체력이 부실해.”
“그러게 말이다. 우리 무진이는 밤새도록... 흠흠.”
아주 그냥 대놓고 달라붙는 그녀. 삐졌다가, 달라붙었다가.
이제는 또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본다.
“왜 그러십니까, 대체.”
“아니래두.”
담소율은 콩콩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무진의 곁에서 나란히 걸었다.
색마고 뭐고, 제자고... 음 제자는 그래도 중하지. 아무튼, 기분이 날아갈듯 좋았다.
‘내 여자. 내 여자... 흐흥.’
내심 아까 무진의 자지를 때린 것이 미안해졌다. 많이 아팠겠지. 호하고 불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태사부의 체면이 있으니.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붙잡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 이곳입니다요... 케흑...”
침을 질질 흘리며 쓰러진 이색. 녀석의 앞으로, 동굴처럼 꾸며진 산채가 눈에 들어왔다.
“야, 들어가서 사부 데리고 나와.”
“이미 기절했느니라, 무진아.”
“...”
담소율의 말대로 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버려두고 동굴 입구로 다가섰다.
“공력을 끌어올리거라. 안쪽에 미향(??)이 가득해.”
“알겠습니다.”
흑천묵지신공의 내기가 활주로를 내달리는 것처럼 순식간에 전신을 휘감았다.
담소율과의 교접 이후 눈에 띄게 나아진 내기의 흐름. 그녀에게 제대로 무공을 배울 날이 기다려졌다.
자박자박. 조용한 발걸음과 함께 안쪽으로 향했다.
코끝을 찌르는 오묘한 분내.
‘이것도 춘약이네.’
내 수준으로는 춘약이 몸 안에 들어오는 것만 막는 수준이지, 피부에 달라붙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고 싸울 수 있겠느냐?”
“뭐... 싸워야지요.”
무복 위로 빳빳하게 세워진 흑자지.
아까 담소율 때문에 잔뜩 흥분한 영향인지, 자지가 성을 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본녀에게 맡기거라.”
“네, 태사부.”
든든한 그녀에게 앞을 맡기고,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다 나온 넓은 공동(??). 이곳부터는 확실히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겼다.
“조심하거라. 좋지 않아.”
그 말과 함께, 슬며시 바닥에 차오르는 짙은 분홍빛 연기가 보였다.
“태사부, 바닥에...”
“괜찮다. 본녀에게 이런 독 따위는... 흐읏...?!”
“태사부!”
야릇한 신음과 함께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담소율.
그녀가 입을 틀어막고는, 벌벌 떨고 있었다.
“흐긋... 흡, 흐아앙...”
“태사부, 괜찮...”
딸랑. 갑작스레 들려오는 청아한 방울소리.
잔뜩 느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젖힌 담소율이 침을 질질 흘리며 말했다.
“하으응...!! 색마가, 어찌... 흣, 미혼술(???)을... 오옷...!”
“오랫동안 네년들을 잡아죽이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담소율.”
웅웅대며 울리는 목소리.
담소율이 고개를 마구 휘저으며 저항하고 있었다.
딸랑.
“아긋...!”
그녀가 내 옷자락을 붙잡고, 괴로운 듯 몸을 한껏 비틀었다.
고작 색마 따위가 미혼술 같은 고급진 사술을 갖고 있다니.
“미색령(?色?)이 잘 통하는 걸 보니공화춘을 맡았구나, 담소율. 더러운 년.”
“모습을 드러내라!”
“그리고 깜둥이. 네놈이 감히 내 어미를 사칭한 극악무도한 놈이렸다.”
"아들!!"
"닥쳐라!!!"
딸랑.
“아읏! 무진아... 날, 날 기절시키던가 하거라, 어서...!!”
담소율의 군청빛의 눈동자가, 탁하게 물들어 있었다.
뭔진 몰라도 색마의 춘약과 저 종소리가 좆같은 시너지를 일으키는 게 분명했다.
무려 절대 고수의 정신까지 제압하려하는 수준이라니.
다만 내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흑천묵지신공 때문인가?'
뭐가 됐든 이제 스승과 제자를 구하려면 내가 발로 뛰어야했다. 색마 방원은 아마도 절정 근처의 무인. 어떻게든 승기를 따낼 수 있을만한 차이다.
“그 지고한 경지에 올랐어도, 계집은 암컷이다. 담소율, 네년도 다르지 않지.”
의외로 나와 같은 사상을 가진 프렌즈였다.
이정도는 되야 색마지.
딸랑.
“흐긋... 무지나, 무진... 큽...”
결국 담소율이 고개를 푹 숙이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어둑한 동굴 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색마, 방원.
놈은 기생오라비라는 말을 빼다박은 듯했다.
특히나 저 하늘하늘 거리는 금발.
그리고 시선을 내리자 시원하게 깐 아랫도리가 보였다.
“옷 좀 입고 다녀라, 아들아.”
“닥쳐!!! 이 후레자식이 어딜 감히!!”
씨발, 아무리 그래도 첫 등장부터 아래를 까고 나오는 건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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