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무당(??)에서 독식(??) (4)
* * *
“헤헤, 스승님...”
“그래, 그래. 한잔 더 받거라, 세령아.”
쪼르르륵. 방금 비워진 백세령의 잔에 투명한 액체가 채워졌다.
입구까지 찰랑거릴 정도로 가득 따라진 술.
백세령은 풀린 눈동자로 나를 슬쩍 쳐다봤다가, 다시 담소율을 쳐다봤다.
내가 구해줬으면 하는 느낌이 가득했지만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어여 들거라. 무당의 조사들께서 직접 담그신 술이다.”
“...네.”
꿀꺽, 꿀꺽, 꿀꺽.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시는 그녀의 목젖이 꿈틀대는 것이 보였다.
이미 많이 마신 탓에, 입술에서 삐져나와 목을 타고 흐르는 술 한 방울도 눈에 띄었다.
“푸흐... 기, 기쁜 날인 건 맞지만, 스승님... 이건 너무 많... 흐끅.”
살짝 나온 딸꾹질과 함께, 청아하게 퍼지는 주향(??).
좋은 술이라 그런지, 알코올의 역함보다는 깔끔한 향기가 인상적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네가 다음 경지에 올랐을 때 열고 싶었지만, 그때는 본녀가 저 아래에 묻혀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후으... 그런 말씀 마세효...”
이미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라와 말까지 새는 백세령.
나는 옆에서 담소율이 따라준 술을 홀짝이며 백세령의 귓가를 매만졌다.
“흐힛... 간지러워요, 백 사제에...”
“입에 머리카락이 들어갔습니다, 사저.”
“우웅...”
하얀 손으로 볼따구를 쓸어내리며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그녀.
“자자, 오늘은 남김없이 비우자꾸나.”
“스, 스승님...”
“쓰읍, 조사들께서 후학들을 위해 직접 담그신 미인주를 거절하려는 게야?”
그렇다. 미인주.
지금 담소율이 백세령에게 강제로 권하고 있는 건 바로 그 미인주였다.
‘입으로 빚은 술이랬나.’
저 윗대의 장문인들이, 내공을 담아 직접 입으로 빚어낸 무당의 전통술이란다.
어째서 옆나라의 술이 이곳에서 전통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담소율 것도 있겠지?’
뭐 아무튼, 중요한 건 이 보기만해도 독해 보이는 술을.
지금 두시간 정도 내리 백세령에게 때리붓고 있는 담소율이다.
많이도 쟁여뒀는지, 어디서 술이 계속 나온다.
“흐으... 스승님, 저... 더는 버틸 수가...”
“어허! 괜히 내기로 주독을 날리거나 하지 말거라. 이게 얼마나 귀한 술인데...!”
꼴꼴꼴꼴.
그러면서 백세령의 잔에는 넘치도록 따르는 담소율.
“무진이, 너도 받거라.”
“예.”
백세령을 보내버리려는 의도가 너무 뻔해서, 나는 실실 웃으며 그녀의 잔을 받았다.
마주친 눈빛에 왠지 모를 흥분이 엿보였다.
‘안달이 났구만.’
아까 대뜸 백세령이 경지를 넘어선 것을 축하하자며 혜원각으로 데리고 오더니.
그때부터 이어진 술판.
백세령은 연신 웃음을 흘리며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때마다 그녀가 잔을 받는 속도가 빨라졌었다.
“태사부께서도 잔 받으시지요.”
“그래.”
나 또한 담소율의 잔에 한가득 술을 채우고.
몇 번이나 부딪힌 지 모를 잔을 부딪히려는데.
“흐에에...”
콩, 하는 귀여운 소리와 함께 탁자에 고개를 박은 백세령.
슬쩍 손을 뻗어 어깨를 토닥이니 힘든지 푸후, 푸후하는 숨소리만 내쉰다.
“백 사저, 이만 들어가서 주무시죠.”
“흐으... 아직, 갠차는데...”
“그러다 또 ‘실수’라도 하면 어쩌느냐. 세령아.”
“읏...”
실수? 뭔진 모르겠지만, 담소율을 째릿하고 보는 걸 보니 꽤 커다란 실수인 듯 싶었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려는 백세령.
내가 잡아주려 하자, 담소율이 손을 드는 것이 보였다.
“본녀가 데려다...”
“백 사제, 저 좀 데려다 주실래요?”
담소율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흐느적거리는 몸을 내게 기대오는 그녀.
나는 슬며시 허리를 휘감아 매끈한 곡선을 쓰다듬었다.
“흠, 알겠습니다.”
“...어서 갔다오거라.”
“자, 제 어깨에 팔을 감으시지요.”
몸조차 가누기 힘든지,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는 천천히 얽혀오는 그녀.
슬쩍 담소율을 쳐다보니 제자를 무슨 불여우 보듯이 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도사가 저런 눈빛을 해도 돼?’
하긴 뭐, 자지를 보고 흘리는 음탕한 눈빛이나 저거나.
나는 도통 일어나지를 못하는 백세령의 오금에 손을 집어넣어 번쩍 들어올렸다.
“꺅!”
“이게 편할 겁니다.”
“...그러게요. 정말 편해요, 백 사제.”
“갔다오겠습니다.”
그대로 방을 나가자 목에 감긴 백세령의 가녀린 팔이 더욱 강하게 얽혀오는 것이 느껴졌다.
오똑한 콧대를 내 목덜미에 설설 비비면서, 옅은 신음을 흘리는 그녀.
‘이대로 확 따먹어?’
솔직히 그녀가 거부할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도 고개를 돌리고, 입술과 입술을 맞부딪히면 그대로 받아줄 것 같으니까.
하지만 그러기엔 살짝 아쉬웠다.
‘먼저 담소율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돼.’
이미 반쯤 그리된 것 같지만, 좀 더 쐐기를 박을 무언가가 필요했다.
온갖 음탕하고 변태적인 요구에도 응하도록, 고고한 여고수를 암캐로 끌어내릴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엔 백세령의 존재가 지금까지 큰 도움이 됐었고.
“우웅... 사제의 품, 커다래서 참 좋네요. 히히...”
“제가 안아주면 모두들 좋아하더군요.”
“그럼요. 이렇게 안락하고 편안한 품을 누가 싫어해요... 안 그런가요?”
언제 깼는지, 내 볼을 잡아 눈을 마주치는 백세령.
취한 듯 했지만, 눈동자 안쪽 너머로 진심이 담긴 눈빛이 엿보였다.
담소율이 때때로 내게 보내는 눈빛.
지금까지 따먹어온 여자들이 보내던 눈빛.
그녀는 나와 입을 맞추기를 원하고 있었다.
“백 사저.”
“...세령이라고 불러줘요, 무진.”
발걸음은 이미 멈춰선 지 오래였다.
달빛이 비치는 복도의 어느 곳.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움, 츄우...”
“쪼옥...”
백세령의 감긴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혀도 타액도 섞지 않는 그저 담백한 입맞춤.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볼에 발갛게 홍조가 오른 것이 보였다.
“무진...”
나는 사랑스러움이 가득한 세령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조용히 읊조렸다.
“저는 이제 가족도, 고향도 없는 몸입니다. 세령, 당신 같은 사람은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어줍잖게 튕기는 마음 반, 그리고 그녀가 정말로 진심일까 의심되는 마음 반.
아니 솔직히 말해서, 죄책감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왜 이러지...’
아무런 감정 없이 따먹는 여자들과는 다른 느낌.
진심으로 마주쳐오는 눈빛은 조금 버거운 느낌이었다.
백세령은 차분히 내 볼을 쓸어내리더니, 이내 나를 꼬옥 껴안으며 속삭였다.
“무진이 그... 야, 야한 걸 좋아하는 것 정돈 알아요. 하지만 그건 외로워서라고 생각해요. 포옹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 관계를 나누면... 서로의 살갗이 맞닿으니까.”
“...”
“그 온기가 좋았던 거겠죠, 무진은.”
음탕하고 음란한 내 성적 취향을 이렇게까지 포장하다니.
허나 그녀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도 무진에게 온기를 줄 수 있어요. 평생토록. 그리고...”
“...”
“가족도, 고향도. 전부 제가 줄 수 있어요, 무진.”
“...세령.”
눈가가 시큰거렸다.
그녀의 이름 밖에 말하지 못한 것은, 더 말하면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올까봐 그랬다.
백세령은 내 감정을 알아차렸는지, 어색해보이는 어투로 말했다.
“하암... 피, 피곤해요. 조금만 더 가면 제 방이에요, 무진.”
나는 말없이 그녀를 방에다 데려다 주었고, 잘 정돈된 침상에까지 눕혀주었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서로의 선.
그녀가 내 가슴팍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사실... 그, 이미 가족이 됐다는 선물도 받았잖아요, 안 그래요?”
“...그렇네요.”
창가로 들어온 달빛에 은은하게 빛나는 묵빛의 노리개.
나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이것에 담긴 의미가 조금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짝 건전한 방향으로.
‘...나도 내심 혼자라고 느꼈던 건가?’
갑작스레 이 세계에 떨어져서, 뜬끔없이 가족이라는 의미로 건넨 장신구.
나는 잠시 그것을 매만지다가, 그녀의 목소리에 일어났다.
“이만 가봐요. 스승님께서 기다리시겠다.”
“...잘자요, 세령.”
“네, 헤헷...”
맑은 미소를 짓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방을 나섰다.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해!!’
팡팡팡!
무진이 나간 방 안으로, 백세령이 이불을 팡팡 걷어차며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억눌렀다.
생애 처음 맞춰본 사내의 입술은, 놀랍도록 달콤했다.
*
‘...본녀는.’
어찌하고 싶은 것인가.
쓸쓸히 혼자 남겨진 담소율의 잔에 술이 차올랐다.
듣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들려왔다.
자신 정도 되는 고수가, 고작 몇 장 떨어진 복도의 속삭임을 듣지 못할 리가.
툭, 투툭.
하얀 무복에 회색 얼룩이 졌다.
“무, 무어냐.”
담소율은 자신의 감정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나의 여인과, 다수의 사내. 하나의 사내와 다수의 여인.
중원은 그 무엇도 가리지 않는다. 다만 능력이 있다면 마음껏 호사를 누리면 그뿐.
첫 경험, 첫 사내. 특별하긴 하지만 영원치는 않는 것이다.
그저 자신이 영원하게 여기려 하니 이러는 것이다.
‘...’
그래도 이 감정은 너무나 이상했다.
오랜 세월을 고련하며 버리고 또 버려와서 텅 빈 마음 속에.
대뜸 들어찬 하나가 가히 태산과도 같았다.
그 무게가 자신을 지긋이 누르니, 눈가에서 샘물이 마르지 않았다.
“흐윽...”
커다란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이래서야 주책이었다.
필시 오랜만에 꺼낸 술 때문이겠지.
어서 내기를 피워올려 주독을 밀어보내고, 남은 감정마저...
드르륵.
“태사부?”
“...”
숨이 턱하고 막혔다.
살며시 눈을 뜨니,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사내가 보였다.
우묵하고 깊은, 그 안에서 별이 빛나는 우주(??)와도 같은 칠흑색 눈동자를 마주쳤다.
꼬옥 쥐고 있던 술잔과 술병을 빼앗기고, 질펀하게 몸을 섞던 그때처럼 그가 자신의 앞에 마주 앉았다.
“왜 우십니까. 아... 다 들으셨군요.”
“...그래. 추하지 않느냐.”
“추하다뇨, 이리도 아름다우신데.”
“외적인 미를...”
“쉬이.”
두터운 손가락이 입술을 짓눌렀다.
바보 같은 몸뚱아리는, 그곳에서부터 열꽃을 피워 전신으로 흘려보냈다.
“하아...”
“뭐가 그리 슬프셨습니까. 세령이에게 이 무진이를 빼앗기는 듯 했습니까?”
“...”
고개를 끄덕였다.
세령이라니. 그새 이름까지 튼 것이더냐.
“걱정마십시오, 태사부.”
“...”
“저는 욕심쟁이라, 갖고 싶은 것은 전부 가져야 합니다.”
입술을 짓누르던 손이 내려와, 목덜미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닿은 곳곳마다 열락이 퍼지는 듯 했다.
조심스레 매만지던 손이 허리를 감아 밀었다.
머리가, 등이 바닥에 닿아, 들썩이는 가슴팍이 보였다.
“제가 그때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 아이를 배라고.”
“...또, 말장난을...”
“분명히 진심이라 말을 해드렸었는데, 제 불찰이군요. 아니면...”
꾸욱, 하고. 널따란 엄지가 아랫배를 지그시 내리눌렀다.
항상 무진의 것이 들어오면, 마주 눌려 극상의 쾌락을 가져다주는 곳.
“이곳에 또, 제 진심을 남겨드려야겠습니까?”
두꺼운 손가락 너머로 그의 양물이 불룩 솟아있는 것이 보였다.
담소율은, 무진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