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빈집털이 (2)
* * *
“흠, 아가. 소율이가 온다는 구나.”
“아앗...! 천극혜검께서 오신다는 것이에요?”
“그래. 자기 제자도 둘 데려오겠다는데...”
고즈넉한 전각의 어딘가.
조손(??)간의 대화가 이어졌다.
“허접선녀가요?”
“...세령이를 그리 말하지 말라고 했잖느냐.”
“허접을 허접이라 부르지, 뭐라고 부르겠어요 할머님?”
“하...”
무림맹주 소서화.
그녀는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손녀의 말투에 머리를 짚었다.
“이번엔 중한 일로 오는 것이니, 괜한 사고를 내면 경을 칠 것이다. 알겠느냐.”
“오호홋♡, 소녀가 그런 허접에게 당하겠어요?”
살짝 노기를 띤 음성으로 혼내봐도, 조그만 손으로 조그만 입을 가리며 얄밉게 웃는 손녀의 얼굴.
‘너무 오냐오냐했구나. 본녀가...’
일찍이 아비와 어미를 여의어 사랑만을 쏟아부었더니...
발칙한 몸뚱아리에 발칙한 성격을 가지게 된 자신의 손녀, 소소유.
어깨가 결릴 정도로 커다란 가슴은 자신도, 딸도 그랬으니 이해는 하지만...
저 망측하고 괴상한 성격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넘치는 재능과 넘치는 사랑으로 인해...
조금 비뚤어진 것이 아닐까. 그리 생각할 뿐이었다.
“헌데... 둘이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제가 알기로 천극혜검님의 제자는 허접선녀 하나로 알고 있어요.”
“나도 그런줄 알았는데... 새로 들였나보구나.”
“흐흥♡, 이번엔 어떤 허접일지 기대가 되는 것이에요.”
“...”
먼 곳을 쳐다보는 무림맹주 소서화의 입가에, 작은 한숨이 감돌았다.
*
“이곳입니까, 무림맹이.”
“그래, 쓰잘데기 없이 존나게 크지 않느냐.”
“...스승님.”
“아... 굉장히 크지 않느냐.”
“예, 마치 제것처럼 크고 두껍군요.”
“...미친놈.”
하도 붙어있었더니 어느새 무진의 말투가 입에 붙어버렸다.
슬슬 절대 고수 천극혜검 담소율로 돌아올 시간.
‘본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면, 무진이 놈도 좀 더 본녀를 우러러 볼 것이야.’
자고로 남녀간의 사랑은 더 원하는 쪽이 지는 것이라고 배웠었다.
그녀는 무진이 자신을 더 원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육체든, 마음이든.
아무튼, 무당에서 출발한지 반나절.
일행은 무림맹에 도착했다.
아침나절부터 쉬지 않고 달려온 결과였다.
“워워...”
마부의 음성과 함께 말들이 차츰 속도를 줄여나갔다.
무림맹의 입구, 살벌한 눈초리로 주변을 쳐다보는 무사의 앞에 마차가 멈춰섰다.
“정지. 소속과 이름을 밝히시오.”
“고생이 많소.”
“...?”
무진은 왠지 모를 연민을 느끼며 여무사에게 인사를 남겼다.
무사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안쪽을 살폈다.
‘내 탈탈 털어주마.’
감히 대무림맹의 무사에게 이상한 헛소리나 내뱉다니.
마침 무료하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흠...”
안쪽에는 죽립을 쓴 하관만으로도 아랫도리가 젖을 것 같은 미녀 둘이 있었다.
입맛을 다시며 아예 하차까지 시켜 몸수색을 하려는 찰나.
“비키거라, 이놈아.”
담소율이 무진의 등을 찰싹 내려치고는, 품에서 어떤 패 하나를 꺼내었다.
녹옥으로 은은한 빛을 내는 직사각형의 패.
가운데엔 벗 우(?)자가 멋들어지게 새겨져 있었다.
“이, 이건...”
소위 붕우패라 불리며 무림에서 딱 두 사람만이 들고 있는 귀중한 보물.
그것을 보자 무사의 건방진 눈동자가 순식간에 경외와 존경으로 가득 찼다.
“처, 천극혜검을 뵙습니다!!”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허리를 숙이는 무사.
포권을 한 손이 머리 위까지 올라와 있었다.
“쉿. 조용히 문이나 여시게. 동네방네 떠들어댈 셈인가.”
“아, 알겠습니다. 이봐! 어서 개문하도록 해!! 빨리!!”
무사의 다급한 손짓에 무림맹의 대문이 커다란 굉음을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이내 다시 출발하기 시작하는 마차.
무사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처박으며 인사를 했다.
“사, 살펴가십시오!! 저는 백호단 무사, 이미자입니다!!”
“그래, 미자야. 다음부터는 눈깔 똑바로 뜨고.”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왠 시커먼 놈의 목소리.
그녀는 섬찟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지만, 어느새 마차는 저 앞으로 먼지구름과 함께 나아간 상태였다.
“마지막에 뭐라고 했던 거에요, 무진?”
“별거 아니에요. 그냥 저새끼가 세령을 이상하게 보길래.”
“...그렇군요.”
“세령이 같은 여자도 꼬실만큼 매력적이란 거죠.”
“읏... 무, 무진...”
“쳇.”
가는 내내 백세령에게만 붙어있었더니, 은근슬쩍 심술이 난 마음을 표출하는 담소율.
나는 모른 척 백세령의 입술에 입술을 덮었다.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혀를 빼꼼 내밀어오는 그녀.
앙증맞은 분홍빛 살덩이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며 백세령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우음... 츕, 하아...”
“앞에 있는 스승은 뵈지도 않느냐!”
“아, 계셨습니까.”
“이, 이... 못된 놈!!”
담소율은 쫙하고 손을 펼쳤지만, 무진의 상반신 앞쪽은 죄다 걸레짝이라 차마 때릴 수가 없었다.
심지어 자신 때문에 생긴 상처들 아닌가.
“그거 맞으면 제자 죽습니다. 진짜로.”
“으으...! 세령이 너!”
“...네, 스승님.”
기어코 삿대질까지 하며 제자를 노려보는 담소율.
백세령이 담담한 얼굴로 스승을 바라봤다.
“흐으... 아니다. 다음부턴... 본녀가 안 보는 곳에서 하거라.”
“...네.”
“네? 네에? 하...”
결국 삐졌다는 듯 팔짱을 끼고는 창밖을 쳐다보는 담소율.
솔직히 백세령도 담소율의 앞에서 받아줄 줄은 몰랐는데.
차근차근 내게 순종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이따 또 해줄게요, 세령."
"...알았어요."
나는 그녀의 허벅지를 주무르며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계획을 떠올렸다.
‘상황을 봐서 양가장으로 가고...’
공화춘이 아직 남은 것이 있으니, 그것을 새로 구한 향로를 사용해 양가장에 뿌려버릴 생각이다.
그다음엔 2주 동안 담소율과 열심히 실전 테스트를 거친 색혼미령술을 사용.
싹 다 내 노예로 만들어버린 다음 처우를 결정해야지.
‘그리고 양광은... 있으려나, 없으려나.’
꼬리가 좀 드러났다고 곧바로 양가장을 묻어버리진 않을 거고.
섬서 밖을 돌면서 추적을 뿌리치고 있지 않을까.
혹시라도 놈이 있다면 바로 도망갈 준비를 해야했다.
그렇게 두 여자의 눈길을 한 번에 받으며 도착한 무림맹 본단.
마차에서 내리니 하늘 높이 솟은 커다란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쯧쯧, 이 높이면 바람이 불 때마다 심장이 떨리겠구나.”
“올 때마다 하시는 소리세요.”
“이익... 본녀가 언제 그랬느냐!”
슬슬 자기 스승도 맥이기 시작하는 백세령.
자매같은 모습에 피식 웃음이 지어졌다.
“이놈이고 저년이고... 본녀를 물로 보는구나...”
그때, 아이처럼 투덜거리는 담소율의 앞으로 한 여자가 다가왔다.
“인사 올립니다, 담 장문인. 무림맹 주작단 부단주 갈단려라 합니다. 단주께서는 임무에 나가 대신 제가 모시게 된 점 사과드립니다.”
“아, 흠흠... 반갑네. 맹주께선 계시는가.”
“네, 안내하겠습니다.”
이내 우리 둘에게도 시선을 보내고는, 갈단려가 몸을 돌렸다.
‘시발... 이거 언제 올라가냐.’
밖에서 봤을 때도 까마득했는데, 저 꼭대기까지 계단이 몇 개나 있을까.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갈단려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위로 올라가는 대신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뭔가 익숙한 느낌인데.’
무당의 현판 아래에서 느꼈던 그 느낌과 비슷했다.
이내 특별할 것 없는 방안으로 들어와, 몇 가지 가구를 조작하는 갈단려.
곧 방의 풍경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널따란 방으로 변모했다.
“오...”
고풍스러운 내부. 커다란 탁자에 앉아 담소율처럼 서류를 보고 있는 여자.
자연스레 풍기는 예리한 기도에 나는 그녀가 누군지 알아챘다.
‘파천검선 소서화.’
바닷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머리색이 인상적이었다.
“모셔왔습니다, 맹주님.”
“그래, 수고했다.”
이내 깊게 고개를 숙이고 사라지는 갈단려.
“앉으시게나.”
우리는 소서화의 손짓에 따라 가운데에 준비된 탁자로 걸어갔다.
곧 서류를 정리하고 찻잔과 주전자를 들고 일어서는 소서화.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숙.”
“그래, 못 본 새에 더 아름다워졌구나, 세령아. 그리고... 혹시 했는데,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얼른 더 강해져서 우리 손녀 좀 꼭 혼내주거라.”
“아하하...”
멋쩍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 백세령.
손녀라.그래, 무림맹주의 손녀인 소소유도 있겠지.
‘근데 진짜 가슴 크네.’
소서화의 일러는 없어서 몰랐는데, 소소유의 커다란 젖탱이는 유전인 듯 했다.
“너는 친우가 왔는데 아는 척도 안 하느냐?”
“보나마나 밖에서부터 씨부렁대면서 왔을 게 뻔하잖느냐. 대충 얼굴 보면 됐지.”
“...썩을 년.”
“망할 년.”
이게 공알 친구지.
아주 그냥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다가, 내게로 시선을 돌리는 소서화.
'눈빛이...'
흥미로움과 동시에 왠지 모를 끈적함이 느껴졌다.
“헌데... 옆에 있는 늠름한 사내는 누구신겐가?”
“처음 뵙겠습니다, 맹주님. 저는 태사부 밑에서 수학하고 있는 백무진이라 합니다.”
“...태사부?”
“사정이 있다.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서화.”
궁금증이 넘치는 소서화의 눈빛에 서둘러 무진에게 향하는 시선을 빼앗는 담소율.
소서화도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워낙 사안이 중해 관심을 돌렸다.
“그래... 우선, 시신부터 보지.”
몸을 돌려 방안 깊숙한 곳으로 안내하는 소서화.
그녀를 따라가니, 끔찍한 모습으로 보존된 시신이 있었다.
군데군데 눈에 띄는 피부색을 보아 확실히 흑인이었다.
“여기 그때 남은 옷가지와, 증거들일세. 주변에서 낭인의 시신 두 구도 발견됐고.”
나와 담소율, 백세령은 천천히 증거들과 시신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히 나오는 것은 없었다.
담소율은 무당의 수법이 시신에 남겨져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고, 증거들은 그냥 피에 젖은 거적떼기 뿐이었다.
‘...바다에서 표류하던 흑인 노옌가?’
어쩌다 이곳으로 흘러들어왔고, 날 증오하는 장두식의 눈에 띄어 죽었다.
안타까운 삶이었다.
“흠... 자네도 이자와 같은 곤륜인으로 보이는데, 맞나?”
“아, 맹주님. 맞습니다.”
그때 내게 접근한 소서화.
전신을 싸악 훑는 시선에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빛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내 오묘한 웃음을 띠고는 말을 꺼내는 그녀.
“사실 이것들 말고... 그자가 남긴 책 같은 것이 있네. 해석을 할 수 없어서 문제지. 한 번 보겠나?”
소서화의 이야기에 담소율과 백세령도 가까이 다가왔다.
이내 어떤 함에서 낡은 수첩을 꺼내주는 소서화.
나는 그것을 받아 펼쳐들었다.
“음...”
아주 익숙하디 익숙한, 오랫동안 주입식 교육을 받았던 외국의 언어가 있었다.
다만 문제가 살짝 있었다.
“알아보겠나?”
“무진, 양이의 글자 같은데... 무슨 뜻인가요?”
“빨리 말해보거라, 무진아.”
“그러니까...”
씨발, 이 새끼 왜 필기체로 써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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