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빈집털이 (6)
* * *
‘상처도 별로 안 불편하고, 양광만 없으면 해볼만 해.’
아직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지는 않았는지, 섬서의 밤거리는 한산했다.
나와 백세령은 낮에 저잣거리에 나가 구해둔 천으로 만든 복면을 쓰고 양가장으로 향했다.
“무진.”
집과 집, 벽과 벽 사이의 어둠을 틈타 발을 놀렸다.
“무, 무진... 어딨어요...?”
헌데 뒤쪽에서 백세령이 애타게 나를 부르는 것이 보였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의 눈빛으로 고개를 휙휙 돌리고 있는 그녀.
조심스레 다가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세령.”
“흣... 아, 무진...”
그제서야 안도한 얼굴로 잡은 손을 꼬옥 쥐는 백세령.
“나 여기 있어요, 세령.”
“...미안해요, 전혀 기척이 안 느껴져서.”
“다행이네요. 세령의 수준으로도 못 느낄 정도면.”
“읏... 무진이 이상한 거라구요. 어떻게 그렇게 하나도 안 느껴지는 거에요...”
밤에 한정해서는, 이 몸뚱아리의 은신잠행술은 가히 끝판왕을 달리는 듯 했다.
작전의 성공 확률이 수직 상승한다는 거지.
나는 그녀와 함께 다시 한 번 양가장의 위치를 숙지하고 발을 놀렸다.
“조용하네요. 안쪽에서 기척이 느껴지진 않아요.”
그렇게 도착한 양가장.
나보단 그녀의 기감이 아직은 더 정확하니, 백세령이 먼저 안쪽을 훑어냈다.
“저도 그래요. 집은 비어있는 것 같군요.”
육안으로도, 기감으로도 양가장의 안쪽은 텅 비어있었다.
꽤나 큰 장원이니 시종이 있을 법한데도, 을씨년스러움만이 느껴지는 양가장.
“그렇다면 아마 지하에 있을 거에요. 가보죠, 세령.”
“꿀꺽... 알겠어요.”
딸랑거리지 않게 잘 매어둔 미색령을 확인하고, 양가장의 담을 넘었다.
타닥.
“흩어져서 찾아보죠.”
“네.”
어둠 속에 숨어 양가장 곳곳을 탐색했다.
아마 쉽게 찾아낼 수는 없겠지.
‘일단 뒤져보자.’
정원에 있는 석대도 두드려보고, 가옥의 기둥들도 뒤져보고.
뒷간까지 갔다왔지만 기감으로 아무리 주변을 살펴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장원을 한 바퀴 돌고 오자, 마찬가지로 허탕을 친 백세령이 보였다.
“뭐 좀 찾았어요?”
“아뇨. 혹시 다른 곳에 입구가 있는 거 아닐까요, 무진?”
다른 곳이라.
생각해보면, 굳이 입구를 여기다 만들지 않아도 됐다.
이쪽은 그저 표면적인 것일 뿐.
원작에서도 양가장이 근거지란 걸 알았을 땐 이미 불에 타 전소된 상황이었고.
슬슬 혈교의 침공이 본격화되어서 제대로 조사 같은 걸 할 시간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나도 일단 이곳으로 온 건데...’
백세령의 말대로 애초에 입구가 다른 곳에 있다면.
“무진?”
“...혈혈동자는 아이 같은 모습이라고 했었죠.”
“네. 어린 아이의 피로 목욕하며 항상 아이의 모습을 유지한다는... 그런 낭설도 있어요.”
굳이 어린 아이가 아니어도 되긴 한다.
사람의 피에서 뽑아낸 혈기로 모습을 유지하는 거니까.
‘섬서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만한 피를 공급할만한 곳이...’
한 곳 있었다. 어느 도시에나 있는 어두운 곳. 응달진 곳.
섬서의 빛을 보고 찾아온 이들이 스며드는 장소.
“...빈민촌으로 가요, 세령.”
“...네.”
빈민촌의 코흘리개 아이들과, 언제 죽어나자빠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빈민들이 목표라면.
‘근데 이쪽엔 거지들이 있지 않나?’
맹주가 바보도 아니고, 빈민촌에도 분명 끄나풀을 심어놨을텐데.
왠지 모를 불안함을 안고 빈민촌에 도착했다.
우리가 지나가는 발걸음에 따라, 홀연히사라지는 문지방 너머의 호롱불들.
“...저희를 경계하는 것 같아요, 무진.”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그렇게 잠깐 빈민촌을 돌아다니며 의심가는 곳을 찾아보는데, 뒤쪽에서 미행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미 세령도 눈치챈 듯한 얼굴.
우린 으슥한 골목에 멈춰서서 그들을 기다렸다.
곧 길쭉한 봉 하나를 어깨에 걸치고 나타난 인영 하나.
더러운 옷가지 사이로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피부가 보였다.
“이거, 손님이었으면 말을 하지 그랬소. 야밤에 발에 땀띠나게 쫓아왔더니만.”
손님이라.
일단 저 거지의 장단에 맞춰보기로 했다.
“누구시오?”
“아가씨가 복면에 하인까지 데리고 나온 걸 보니, 다 알고 오신 듯 한데. 피차 그럴 필요 있겠소?”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시오.”
기감으로 주변을 흝어본 결과, 나와 세령에게 비빌 만한 고수는 없었다.
눈 앞의 봉을 든 여자 거지도 겨우 절정 정도의 수준이고.
“거참, 이래서 남정네들이란.”
“똑바로 이야기해줬으면 하는데.”
나는 슬쩍 흑천묵지신공의 내기를 끌어올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봉을 고쳐잡으며 긴장을 끌어올리는 거지.
수준 차이를 느낀 그녀의 몸이 굳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큼큼... 그렇게 거칠게 나올 필요 없잖소. 내 얼른 안내해 드리리다.”
거지의 대답에 빈민촌에서 더러운 공작이 펼쳐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 같은 손님이 더 있나?”
“얄쌍한 영계좆맛에 미쳐서 이곳에 오는 아가씨들이 한둘이겠소.”
“우리 아가씨는 그런 걸레년들과는 달라.”
“큭큭, 우리 동자님들한테 한 번 둘러쌓이면 좋아죽으실텐데. 이따가 아가씨 우는 소리 듣고 화내지나 마시오.”
동자님들?
설마 혈혈동자는 여기서 창관이라도 운영하고 있는 건가.
의문과 함께 거지를 따라 걸어갔다.
조금 뒤 도착한 빈민촌 끝자락, 허름한 판잣집으로 들어가는 거지.
“들어오시오. 계단을 타고 쭉 따라가면 동자궁(?子?)이 아가씨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흐흐...”
아무 말 없이 백세령을 슬쩍 쳐다봤다가, 거지를 따라 안으로 향했다.
판잣집의 바닥을 덮은 짐승가죽을 들어내자 나타난 지하로 향하는 계단.
“크크, 좋은 시간들 되시오.”
느글느글한 웃음과 함께 내 몸뚱아릴 쳐다보며 입맛을 다시는 거지.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은 걸 참고, 백세령과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양광이 혈동자들로 창관이라도 운영하는 건가 봅니다.”
“...만약 그렇다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만도 하네요.”
시대를 막론하고 아이들에게 손을 대는 것은 사회적 매장으로 가는 지름길이니까.
그리고 이렇게 빈민촌에서 대놓고 영업을 하는데 맹주가 모른다는 건...
‘무림맹 내에서도 동자궁이란 곳을 사용하는 미친년이 있다는 소린가.’
아니면 빈민촌에 심어둔 년들이 전부 배신자 새끼던가.
여러 의문들을 담아둔 채 걸어가다보니, 거지 하나가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와 백세령을 슥 훑어보고는 입구를 열어주는 거지.
“반갑소이다. 동자궁에 온 걸 환영하오.”
문이 열리고, 끈적하게 감겨오는 진한 정사의 향기를 느꼈다.
“웁...”
“조금만 참아요, 세령.”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듯 입을 틀어막는 그녀.
솔직히 역겨울 정도로 냄새가 진했지만, 색공을 수련한 탓인지 나는 괜찮았다.
“일단 둘러보죠.”
마치 궁전처럼 보석과 각종 장식품들로 꾸며진 지하.
동자궁이라는 말처럼, 돈을 쳐바른 티가 났다.
“아아앙...!”
“하읏, 하아...!”
그리고 그 안쪽은 난교의 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여인네 한 명에 동자 서넛이 달라붙어 짐승처럼 서로를 탐하고 있었다.
얇은 발이 처진 방 하나하나마다 그러했다.
이내 우리에게로 다가오는 동자 하나.
“처음 뵙겠습니다. 미동(美?)이라 해요.”
“안내 부탁하지.”
“후훗, 네. 우선 차라도 한 잔 하세요.”
미동이 우리에게 쟁반에 있던 차를 들이밀었다.
오묘한 빛깔을 내는 차.
마시는 척을 하며 슬쩍 구석에 차를 버렸다.
틈을 보아 백세령도 나를 따라했고, 이내 잔을 받으며 물어보는 미동.
“여기서 즐기시겠어요, 아가씨? 아니면 더 안쪽으로...?”
“...우리는 안쪽으로 들어가라 하던데.”
“아.”
순간 미동의 눈동자가 탐욕으로 반짝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확실히 잡아냈다.
이내 처음과 같은 얼굴로 돌아와 우릴 안내하는 미동.
지하에 무슨 개미굴을 파놨는지, 굽이굽이 움직여 으슥한 곳에 다다랐다.
“이곳입니다.”
“이쪽은 뭐가 다르지?”
“진짜배기 동자님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지요. 지고한 쾌락을 경험하실 수 있을 겝니다.”
“그렇군.”
백세령과 내 눈동자가 마주쳤다.
아마 이곳이 진짜 ‘혈동자’들이 있을 만한 곳.
우리 둘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내기를 끌어올렸다.
“뭐, 무슨... 헙!”
순식간에 사지를 구속당하고, 내질러진 손가락에 아혈이 제압당한 미동.
봇짐을 열어 마비약까지 마시게 하자 곧 녀석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이내 조심스레 귓가를 문에 가져가는 백세령.
집중하는 듯 그녀의 고운 아미가 살짝 찌푸려졌다.
그분께선... 어디...
이러고 있을게... 당장...
‘그분? 당장?’
백세령이 무진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쪽에서 느껴지는 기운들이 하나같이 꺼림칙하고 불길했다.
곧 무진이 문쪽으로 다가와 향로를 꺼내고 안쪽에 불을 붙였다.
‘이쪽으로 와요, 세령.’
백세령이 무진의 속삭임에 뒤로 돌아가 철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이내 향로에서 옅은 분홍빛깔의 연기가 새어나오고, 태극권을 응용해 연기를 문 너머로 흘려보냈다.
그렇게 몇 분, 굳게 닫힌 문 바깥으로 이변이 들려왔다.
아으... 뭐야, 씹...
미친 새끼가 왜 세우고 지랄... 읏?!
효과는 확실했다.
갑자기 지들끼리 있는데 하초를 세우니 당황할 만하지.
나는 미색령을 꺼내들며 속삭였다.
‘안으로 들어가서 제압할 테니, 신호하면 들어와요 세령.’
‘...알았어요. 다치면 안돼요, 무진.’
‘걱정마요.’
미리 말을 맞춰둔 것이었다.
미색령의 대상에 백세령도 포함되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소소유를 따먹을 때처럼 느긋하게 통제 가능하면 모르겠는데, 난전이 벌어지면 위험해질 가능성이 컸다.
“후...”
문에 가까이 다가섰다.
향로는 숨을 다했고,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움은 더욱 커져있었다.
나는 천천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
“와씨...”
백세령을 밖에 두고 오기를 잘했다 싶었다.
“아으윽...!!”
“헉, 허어어억!!”
바지를 벗고 열심히 자지를 문지르며 딸을 치고 있는 새끼.
“미, 미친 새끼야! 내 바지는 왜 벗겨!!”
“흐읗, 흐히힣!!”
구멍을 찾아 옆에 있는 녀석의 바지를 벗기는 새끼.
“흐으, 흐으읏!!”
손이나 사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바닥에 사타구니를 비비고 있는 새끼까지.
“애미, 씹...”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나오고.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에 서둘러 문을 닫았다.
쿠웅...!
“흐익?”
“뭐, 뭐냐 네놈은... 으아악...!!”
초반에 내공으로 대처했는지 그나마 멀쩡한 놈 하나가 나를 쳐다봤지만.
다른 놈에게 덮쳐서 바닥에 깔렸다.
떡협지의 춘약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다.
“크읏, 싼다, 싼다앗!!”
이미 춘약에 반쯤 정신을 놓고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녀석들.
나는 불쌍한 중생을 구제하는 마음으로.
“모두.”
미색령을 힘차게 흔들었다.
딸랑!
“동작 그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