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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51화 (51/230)

〈 51화 〉 두더지 잡기 (1)

* * *

“쥐새끼가 벌써 냄새를 맡았구나.”

“커흑, 크아악...”

으슥한 산기슭.

멀리 불빛이 빛나는 거대한 전각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저 높은 전각에 둥지를 튼 것은.

중원 무림의 기둥이라 불리는 여인 중 하나.

그녀를 떠올리자, 아릿한 환통이 가슴과 하복부를 적셨다.

‘심장과 단전. 이리 두 곳이었던가.’

벌레로만 여겼던 중원에 쓸만한 계집이 있었을 줄은.

교주의 발걸음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발목을 붙잡았던 과거.

혈혈동자, 양광이 쓴웃음을 지으며 거지의 뱃속에서 손을 꺼내었다.

주머니에서 동전이라도 꺼내듯 자연스러운 손놀림이었다.

“끄륵...”

질리게도 쫓아온 거지 새끼들과, 무림맹의 들개들.

그리고 방금 내장이 피곤죽이 되어 뒤진 마지막 거지 한 년까지.

양광이 시체를 쓰레기 버리듯 바닥에 내던졌다.

“허으윽... 끄학...!!

“쯧쯧, 못난 놈. 여기서 그냥 죽여주랴?”

느긋이 시선을 돌린 양광의 발치.

한 사내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온몸의 혈관이 징그럽게 튀어나오고, 바닥을 긁는 손가락에선 손톱이 부러져나갔다.

“카흐... 아, 아니오. 버틸 수, 버틸 수 있소... 끄아아악....!!”

“그래, 그 깜둥이를 죽이려면 더더욱 강해져야지.”

"백, 무진...!!"

"그래, 그 놈."

뭘 처먹었는지는 몰라도, 놈의 공력은 최소 초절정의 수준이었다.

어떤 놈인지 한 번 이야기라도 나눠보려 했건만.

천극혜검이 마치 애인처럼 감싸돌아 결국 포기했었다.

“크흐... 허윽, 허억...”

조금 진정된 듯한 사내를 보며 양광이 바닥에 엎어진 시체에 손을 가져갔다.

콰득, 콰드드득...!!

“허어, 허억... 우욱...”

사내의 눈에, 거지의 시체가 자그마한 단약으로 압축되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미 몇 번이고 보아온 광경이지만.

구역질 나도록 끔찍했다.

“자, 먹거라.”

새빨간 눈동자를 빛내며 혈단을 들이미는 양광.

이번에도 어김없이 망설임이 밀려들었다.

‘내가, 내가... 어쩌다...’

하지만 후회는 언제나 늦었고.

“커으, 꿀꺽...”

눈앞의 존재는 망설임이 없었다.

노괴의 손이 우악스럽게 자신의 입을 열어재꼈다.

장두식은 식도를 타고 녹아드는 비릿한 혈향에 몸부림치며,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 흐아아아악!!!”

“그래, 잘되어가는구나.”

양광의 시선이 다시 섬서를 향했다.

자신이 들킨 이상, 섬서에 숨겨둔 혈교의 간자들과 세력은 어느 정도 청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동자궁과 제단은 토사속에 묻힐 것이고.

아쉬울 것은 없었다.

언제고 또 만들면 되는 것이니.

“흐으, 흐으... 끄아으, 하아...”

“슬슬 가야겠다. 일어서거라.”

산의 어둠 속으로, 그렇게 두 사내가 사라졌다.

*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애타게 나를 끌어안는 백세령을 재우고, 비단결 같은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상념에 빠졌었다.

어쩌면 이 세계에 와서 가장 먼저 해야했던 것.

‘미래의 사건들.’

원작을 설렁설렁 봤다지만, 굵직한 사건과 흐름들은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다.

세세한 건 가끔 찾아오는 두통에 딸려오는 어떤 기억들로 보충할 수 있고.

‘이미 내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무당파에서 혈동자가 나올 일도 없었을 뿐더러.

양광은 애초에 들키지도 않는다.

백세령이 초절정에 다다르는 순간도 지금보다 훨씬 뒤였고.

하지만 그래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봉룡지회나, 나중에 있을 혈교의 습격이 그렇겠지.’

혹시 모른다.

혈교의 재림도 나 때문에 더더욱 가속화될 수 있었다.

양광이 갑자기 야마가 돌아서 습격할 수도 있었고.

내가 모르는 혈교의 간자들이 나를 암살할 수도 있겠지.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어.’

주인공처럼 모두를 구할 생각은 없었다.

결국 혈교와 맞붙는다면 비슷하게 흘러갈 테지만.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내 가까이 있는 것들 뿐.

‘갑갑하네.’

어차피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걱정해봤자 헛수고다.

곤히 잠든 세령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고, 몰래 밖으로 나왔다.

“후우...”

새벽동이 터오고 있었다.

무진의 눈가에 비치는 맑은 햇살.

어슴푸레한 공터에 그가 자리를 잡았다.

‘몸 좀 풀어둘까.’

이젠 그의 일부가 된 듯한 기수식이 펼쳐졌다.

오른손은 위로, 왼손은 아래로.

무진의 정신이 고양되기 시작했다.

‘먼저 태극을 그리고.’

한 바퀴 원을 그림과 동시에 무진 주변의 공기가 일변했다.

그의 손짓에 따라, 아지랑이가 피어가듯 대기가 일렁였다.

이어 흑천묵지신공의 내기가 무진의 전신을 막힘없이 질주했다.

태극신공의 묘리에 따라.

원(?)을 그리며 무한하게.

다만 무당의 태극과는 조금 다른, 패도적이고 폭력적인 원이 그려졌다.

후웅!

굳건한 주먹을 쥐어 뻗어간 방향으로 거친 바람이 몰아쳤다.

‘유수(??)와 회(回).’

무진이 가볍게 손짓하자.

이번엔 뻗어나간 바람이 그의 손으로 빨려들어오듯 방향을 바꾸었다.

거센 바람은 산들바람이 되어 하얀 소매를 펄럭이고.

이내 잠을 자듯 미약한 숨이 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처음의 자세로 돌아온 무진.

‘부족하다.’

완벽했다.

틈틈이 짬을 내 연습한 태극권은 제몸과 같았고.

당장이라도 주먹을 쥐어 내기를 끌어올리면, 갑주라도 씌운 듯 칠흑빛 내기가 팔뚝까지 뒤덮었다.

소위 호신강기라 불리는.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야 사용할 수 있는 기술.

무진의 생각대로 절정과 초절정의 차이는 그에겐 무관했다.

이미 내기는 절대 고수의 흐름을 따르고, 그 양은 초절정의 수준에 비견됐으니.

‘...그래도 부족해.’

허나 중요한 한 조각이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이 세계에 들어와 얻은 축복받은 재능과 몸뚱아리.

담소율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막힘없이 할 수 있었고, 그것이 재밌기도 했다.

다만.

‘더 나아갈 수가 없어.’

완벽하다는 건.

덜어낼 것도, 더할 것도 없다는 말.

그 말인 즉,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

지금 무진의 상태가 그러했다.

아무런 노력없이 얻어진 것은 공허했다.

과장을 보태서, 담소율과 하루종일 떡치는 게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더 힘들었다.

한 번 색을 알게 된 소율의 욕정은 혀를 내두를 정도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흑천묵지신공은 분명, 엄청난 신공이었다.

정을 나눈 상대의 심법을 훔쳐오는 그런 미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훔쳐오는 것만으론 부족할 거야.’

미래의 적과 목표는 더 위에 있으니까.

그러니 가진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담소율의 태극신공.

소소유에게서 어느 정도의 흐름만을 얻은 단천파둔신공.

마지막으로 색금태양공.

‘이건 빼고.’

떡칠 땐 좋지만, 담소율이 쓰레기라고 한 걸 보면 전투에 쓸만하지는 않을 거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현 무림의 절대 고수가 익히고 있는 극성의 심법 두 개.

태극과 파둔.

‘회전(回)을, 유수(??)를 파둔(??)처럼 겹겹이 쌓아볼까.’

지금까지 무언가를 할 때 한 번에 하나의 심법만을 사용했다.

관계를 가질 때엔 색금태양공, 싸울 땐 태극신공.

그 편이 익숙하고 쉬웠으니까.

하지만 기왕 모든 심법을 포용하는 신공을 가지고 있는 것.

전부 합쳐보면 어떨까.

오른손으로 동그라미, 왼손으로 세모를 그리는 짓이었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미친 몸뚱아리는 그런 것쯤 가뿐히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파둔신공의, 단천파둔검법의 형(?)과 식(?) 따위는 모른다.

그러니 내가 아는 것. 잘하는 것.

태극권에 파둔의 흐름을 덧씌운다.

“하아...”

몸을 움직이자 흑천묵지신공의 내기가 자연스럽게 원을 그린다.

한 바퀴, 두 바퀴.

막힘없이 흐르는 원 위로, 또 다른 원을 겹친다.

파도에 파도가 덮여 더욱 그 크기를 키우는 것처럼.

“큭...”

전신에 부하가 걸린 듯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한 번 더.

나무에 나이테를 추가하듯, 원과 원 사이에 원을 추가했다.

튼튼한 몸뚱아리와, 넘칠 듯 쌓여있는 내공이 그것을 보조했다.

원래의 흐름과는 또 다른 내기의 흐름이 전신을 휘감았다.

‘된다.’

이전보다 훨씬 거칠고, 패도적인 내기의 흐름.

"큽..."

목구멍에서 비릿한 피맛이 느껴졌다.

갑작스런 내력의 거친 물결에 가벼운 내상을 입은 듯했다.

“조금만, 더.”

하지만 아직 버틸만 했다.

커다란 하나의 흐름을 토대로, 작은 흐름들이 그 안을 채워가며 기묘한 문양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회전시킨다.’

원과 회전은 떼려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

각각의 원을 따로 회전시키는 것은 아직 무리였고.

커다란 원을 축으로, 내가 만들어낸 모든 흐름을 한 방향으로 회전시켰다.

“크윽...”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힘이 오른팔에 감겨오는 것이 느껴졌다.

찰나의 시간마다 가속에 가속을 더하는 흐름.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느끼고,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가가가가각!!!

“커윽...!”

연무장의 석판이 부채꼴로 갈려나가며 거대한 돌풍이 몰아쳤다.

그 반동으로 인해 터져나간 소맷자락과.

피싯, 하고 상처가 터진 가슴팍.

“씹...”

무복을 새로 받은지 얼마나 됐다고, 또 피에 젖어버렸다.

하지만 눈앞에 광경을 쳐다본 순간 그런 것쯤은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워졌다.

“와...”

고작 주먹질 한 방에.

방사형의 거대한 흔적이 연무장에 아로새겨졌다.

“이게 되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몸뚱아리였다.

*

“...담소율. 네년이 가르친 게야?”

“...그런 걸로, 해두마.”

“근데 아무리 그래도 심법까지 가르치는 건 아니지 않느냐, 소율아.”

담소율은 오랜 친우의 질책에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아니... 본녀는 가르친 적 없단 말이다.’

새벽녘 갑작스레 느껴진 거대한 기의 흐름.

소서화와 함께 전각의 꼭대기에 올라 그 주인을 찾으니.

자신의 제자인 무진이 그곳에 있었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 얼굴로 이리저리 몸을 푸는가 싶더니.

‘...파둔신공을 써?!’

오랫동안 알고, 또 배워보기도 했던 것이기에 확실했다.

무엇보다, 바로 옆에 저 심법을 평생 수련해온 장본인이 있잖은가.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분명 파둔신공이군. 헌데...”

“태극 또한 섞여있어.”

“그래. 양의신공(????)도 가르친 게냐, 벌써?”

소서화의 의문은 타당했다.

한 몸에 두 개의 심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무당의 비전, 양의신공이 필수였다.

하지만 아직 세령이에게도 전수하지 않은 것을 무진에게 알려준 적은 없었다.

그리고 양의신공이라도, 각각 따로 쓰는 것이지 저리 합쳐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아니? 그러면 저놈이 스스로 파둔신공과 태극신공을 풀어내어 합치기라도 했단 게야?”

“...”

혹시 저것이 무진이 말하던 그, 흑천묵지신공이란 것의 효용인가 싶었다.

처음엔 말이 안되는 헛소리라 여겼지만...

‘본녀의 흐름을 따라하고.’

이제는 파둔신공까지 흉내 내다니.

“뭐라 말이라도 해봐라, 소율아. 저것이 진정 가능한 일이냐?”

“...무진이는, 재능이 있거든.”

“하. 너랑 내가 재능이 없어서 저짓을 못했느냐?”

“...”

불가능하니까 못한 것이다.

하지만 무진은 그것을 보란 듯이 해냈다.

‘그런데...’

분명 저렇게 신공을 얻어내기 위해선...

계집과의 정사가 필요하다 하지 않았나.

그래서 자신도 아리까리함을 밀어두고 어느정도 납득을 한 것이고.

반반의 의심이 담소율을 덮쳤다.

‘둘 중 어떤 년이랑 한 거냐, 무진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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