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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72화 (72/230)

〈 72화 〉 추적(??) (5)

* * *

“크하악!!”

“아...?”

“분명 소서화의 손녀였지. 그 가증스러운 기운.”

“끄윽, 끄하아악!!”

소소유 대신 바닥에 쓰러진 것은 걸견.

길가의 쓰레기 마냥 바닥을 나뒹구는 팔 한짝.

그녀의 오른팔이 거칠게 뜯겨져 나가있었다.

“네년은 나중의 즐거움으로 미룰 것이니 구석에 박혀있거라. 함부로 입을 열면 옆에 있는 거지년의 사지가 잘릴 것이니 그리 알도록.”

“아, 아... 거, 걸견님...!”

“크흐, 아으윽....”

쓰러진 채로 다급히 팔을 지혈하는 걸견.

흘려낸 피와 공포에 이미 그녀의 얼굴은 핼쑥하게 변해있었다.

그 모습에 즐거운지 웃음을 흘리며 나서는 양광.

“이것 참. 본좌의 유흥을 위해 이리 모여주니 고맙구나. 불타는 마을에 모여든 모습이 마치 부나방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유흥비는 내가 낼 테니 이만 가시는 게 어떻소, 양형.”

“허허허, 지랄이 짜구나 아해야. 네놈에게는 특별히 소개시켜줄 놈이 있다.”

슬쩍 자리를 비켜서는 양광.

“나오거라, 두식아.”

불타는 마을 안쪽에서 걸어나오는 남자의 인영.

저번에 본 것보다 훨씬 마르고, 창백한 얼굴의 장두식이 보였다.

‘저, 저 시발...’

보자마자 있는 데로 올라오는 짜증과 분노.

후회해봐야 늦었지만, 가만히 있기에는 못마땅했다.

옆에 양광이 있던 말던 그대로 쏘아붙였다.

“등신 새끼. 불알은 왜 달고 다니냐?”

“...닥쳐라.”

“남자놈이 후달린다고 저런 쓰레기 새끼한테 붙어? 저기 네 스승님이 울고 계시는 거 안 보이나?”

“그 입 닥치라고 했다!!!”

싸늘하던 면상 치고는 순식간에 불이 붙는 장두식.

놈의 몸에서 붉은색 혈기가 아지랑이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래, 와라.’

그렇게 이대로 덮쳐들어오기를 바랬지만, 양광의 제지가 빨랐다.

“멈추거라.”

“크, 윽...”

그의 명령에 비정상적으로 움직임을 멈추는 녀석.

마치 전원이 뽑힌 로봇처럼 삐끄덕거리는 것이 보였다.

‘...혈기인가.’

언뜻 붉은 실 같은 기운이 장두식을 감싸는 것이 눈에 들어왔었다.

“클클, 영악한 녀석이로고. 담긴 내기가 참으로 신묘하구나.”

“...보셨소?”

“그래. 태극과... 파둔인가. 아하, 그 두 버러지년의 진전을 이었구나.”

늙은이 새끼. 눈치는 존나게 좋아요.

한 톨의 내력이라도 아끼려 팽팽하게 돌아가던 태극을 잠재웠다.

장두식이 이성을 잃고 들어오면 그대로 묵룡펀치를 날려서 갈아버리려 했는데.

“양의신공이라도 익힌 겐가. 어찌 한 몸에... 흠.”

궁금증이 샘솟는지 수염도 없는 턱을 쓰다듬는 양광.

나는 천천히 다리를 움직여 소소유의 앞을 막아섰다.

“배, 백 소협...”

이럴 땐 백 소협인가.

평소 같으면 귀여워 해줬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바라는 게 뭐요, 양형.”

“그 경망스런 주둥아리를 천 갈래로 찢는 게 본좌의 바램이다만. 본좌의 제자가 선약이 있다는 구나.”

스릉.

배신자 새끼 치고는 꽤나 좋은 검을 뽑아드는 장두식.

아마 죽인 사람들 중 누군가의 검이 아닐까.

“검도 반납한 새끼가 검을 들고 지랄. 그걸로 네 후장이나 쑤셔라 배신자 새끼야.”

“...씨발!! 이 개새끼가!!”

“쓰읍... 진정하거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장두식을 멈춰세우는 양광.

그가 손을 까딱하더니, 조용히 있던 운휘가 다가와 스스로 뽑아든 칼을 목에 들이밀었다.

“한 번만 더 그 입을 나불거리면 여기 이 계집의 목이 날아갈 게다.”

“...”

“도망치거나, 싸우지 않으려해도 날아간다. 저기 두 버러지의 목숨도.”

양광이 연신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선고했다.

강자가 법인 세상. 나는 이빨을 갈며 답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요.”

대답 대신 앞으로 나선 것은 장두식.

놈의 검이 내 목젖을 가리켰다.

“네놈이 죽을 때까지, 나와 결투하는 것이다.”

“패배자 새... 큭.”

“끌끌끌. 왜, 주둥아리가 간지럽느냐.”

“...내가 이기면 어떻게 되는 거요, 그럼.”

나와 장두식의 시선이 양광을 향했다.

잠깐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무감정한 어조로 답하는 양광.

“네놈이 내 노예가 되는 것이지. 패배한 쓰레기는 필요없다.”

“큭...”

저딴 걸 믿고 이 지랄이냐 소리치고 싶었지만.

차분히 입을 다물고 머리를 굴렸다.

‘혈기. 혈기를 어떻게든 사용해봐야 해.’

아마 기회는 단 한 번.

내 내기의 흐름을 단박에 읽어내는 새끼가, 혈기를 쓰는 걸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노릴 것은...

“그럼, 시작하거라.”

타탓.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진 장두식.

어느새 내 바로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녀석이 수직으로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큭...!”

저번과는 차원이 다른 묵직함.

붉은 안개 같은 것이 한순간 검에 휘감기고, 그대로 나를 찍어눌렀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야금야금 묵천흑지신공의 강기를 갉아먹는 혈기.

“뒈져!!”

“시끄러워 이 개새끼야!!”

파륜으로 만들어낸 반탄강기로 놈을 쳐내고, 그대로 반격했다.

진각을 밟으며 내질러지는 주먹.

붉은 안개 같은 기운이 앞을 가로막았다.

쾅! 콰앙!!

“크으... 겨우 이정도냐!!”

한두 걸음 물러나며 입가에 피를 닦아내는 장두식.

어디서 영약을 다발로 처먹었는지, 생각보다 무리없이 내 공격을 받아낸다.

‘그래도 아직은 여유야.’

시도해보지 않은 기술도 있었고.

여차하면 혈기를 폭주시켜 어떻게든 장두식은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야 뒤가 없다.’

나도 살고, 구하러온 운휘와 소소유, 걸견까지 살릴 수 있을까.

“어딜 한눈을 파는 거냐!!!”

“윽...!”

비어있는 옆구리를 강타하는 놈의 검.

살짝 스쳐지나간 살결이 거칠게 뜯겨나갔다.

“배, 백 소협...!!!”

어떻게든 해봐야지.

나는 장두식과 공방을 이어가며 소소유에게 전음을 날렸다.

­소 소저, 제가 신호하면 바닥을 공격해서 먼지구름을 피우세요!

“흐읏...?”

살짝 커지는 소소유의 눈동자.

양광이 전음을 훔쳐들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었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끌끌끌. 좀 더 힘내 보거라, 두식아.”

“흐아아아!!”

“흐읍!”

아예 내 시체도 남기지 않을 생각인지 한가득 내기를 몰아넣은 장두식의 검.

나 또한 파륜을 겹치고 겹치며 미친 듯이 회전시켰다.

이전의 내 한계에 가까운 회전.

담소율의 모든 것을 얻어낸 지금은 충분히 더 회전이 가능했지만.

‘전력을 보일 순 없지.’

아직 뒤에는 양광이 있었다.

그리고 검과 주먹이 맞붙는 찰나의 순간.

장두식의 몸에 탁하게 빛나는 대량의 혈기가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양광, 이 개씨발새끼...!’

콰아아아앙!!!

“크하악!!”

짙게 피어오른 흙먼지.

충격으로 잠깐 뿌옇게 변했던 시야가 돌아오자, 걸레짝이 된 팔의 모습이 보였다.

군데군데 뼈까지 보이는 중상.

아릿한 것이 아직 감각은 남아있었다.

“뒈져.”

“크윽...!”

다급히 고개를 젖혀 먼지구름 틈새로 날아오는 검을 피했다.

이젠 완전히 혈인(血人)이 되어버린 장두식의 모습.

악귀 같은 형상의 핏빛 아지랑이가 놈을 뒤덮고 있었다.

“네놈을 죽이고!! 백세령, 그 걸레년도 죽일 것이다!!”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린 병신 새끼.

직감적으로 이걸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놈이 들으면 가장 충격을 받을만한 이야기가 뭘까.

‘제발 걸려라.’

나는 기감으로 운휘의 위치를 파악하면서, 놈에게 가까이 붙어 속삭였다.

잔뜩 깔보고 무시하는 목소리로.

즐겁다는 듯 비아냥거렸다.

“야, 세령이랑 나랑 이미 떡친 건 알아? 신음 소리 들어본 적 없지?”

“뭐, 뭐라...?”

“세령이랑 나랑 사귄다고. 멍청한 패배자 새끼야.”

마치 석고상처럼 우뚝 굳어버린 장두식.

다급히 내력을 끌어올려 놈의 명치를 때렸지만, 양광의 혈기에 막혀 손만 더 엉망이 되었다.

‘제기랄...!’

대신 뼈가 저려오는 고통을 참아내며 입을 열었다.

­소 소저, 지금!!!

걸견을 부축하고 일어나 검을 휘두르는 소소유.

“히야아압!!!”

단천파둔의 제일초식 단류일섬.

공간을 제압한 파도가 거칠게 땅바닥을 내리쳤다.

쿠아아아앙!!

불탄 마을의 잿더미와 합쳐져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재와 흙먼지.

“클클클. 어디 재롱들 피워보거라.”

강자의 여유인지 곧바로 제압하지는 않는 양광.

나는 그 틈에 서둘러 운휘에게로 붙었다.

‘그게 네 패착이다, 개새끼야.’

무심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운휘.

세상 끝났다는 듯 포기한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담 사저의 얼굴을 어찌 볼, 웁?!”

“닥치고, 내 피나 마시세요.”

피가 줄줄 흐르는 팔뚝을 그녀의 입에 처박았다.

입속으로 넘치도록 들어오는 핏줄기에 본능적으로 그것을 삼키는 운휘.

눈을 감고, 그녀의 몸속에 있을 생사혈고를 찾아냈다.

‘자궁이군.’

꿀렁. 운휘의 입속으로 파고들어간 내 피가 그녀의 안쪽을 헤집었다.

“우웁?”

세밀해진 내기의 운용이 여기도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보다 잘 움직여주는 혈기.

이내 운휘의 아랫배에 도달한 혈기가 생사혈고를 찾아냈다.

그리고 녀석을 내 피로 덮으려는 찰나.

오싹.

‘알아챘나!’

전신에 솜털이 바짝 서는 기분.

이제는 한 끗 차이였다.

1초를 쪼개고 또 쪼갠 순간의 시간.

양광의 생사혈고를 내 피로 덮고, 소유권을 박탈했다.

­끼에에엑!

녀석이 발악하는 게 느껴졌지만, 그래봐야 벌레 새끼.

흑천묵지신공과 혈기가 가득 담긴 내 피 앞에서는 별 수 없었다.

“흐으읍!!!”

녀석에게 내려진 명령을 바꾸고, 다시 흐르는 시간.

나는 있는 힘껏 내력을 쥐어짜 강기를 두텁게 쌓았다.

“이노오오옴!!!”

카가가가가각!!!!

양광의 수도에 두부 마냥 개박살나는 칠흑강기.

폭발하듯 터져나오는 놈의 혈기에 자욱하던 흙먼지가 순식간에 흩어졌다.

“크...”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다만.”

양광의 선혈빛 강기가 내 심장 바로 앞에 멈춰서 있었고.

그 앞을 운휘의 청명한 푸른빛 검강이 가로막고 있었다.

“기회가 온 것 같구나.”

“소 소저! 당장 도망쳐요!!”

“백 소협... 가, 같이...”

“당장!!!”

까득, 쩌저적.

순식간에 실금이 퍼져나가는 운휘의 검.

나와 그녀가 각자의 기합성을 내지르며 양광을 밀쳐냈다.

“네놈이, 어찌 혈기를...!!!”

“하압!!”

“으아아!!”

두 사람 분의 내기는 조금 위협적이었는지 뒤로 쭉 튕겨나가는 양광.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을 털어낸 놈이 소리쳤다.

“계집의 뒤를 쫓아라!”

“크으...!”

걸견과 함께 사라지는 소소유의 뒤를 쫓는 장두식.

나와 운휘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빠르게 산속으로 발을 내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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