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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73화 (73/230)

〈 73화 〉 추적(??) (6)

* * *

“네 이노옴!! 뼈를 부수고 살을 뭉개버려야 답을 고하겠느냐!!!”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고함소리.

다 늙은 할배 목청이 아주 우렁차다.

“괜찮느냐.”

“...그럭저럭입니다.”

하도 달려서 이젠 어딘지도 모를 산길.

걸레짝이 된 팔엔 대충 지혈만 해둔 다음.

모든 내기를 다리에 때려박아서 달리는 중이었다.

“게 서지 못할까!!!”

“서란다고 서겠냐!!!”

“이런 찢어죽일 놈이!!!”

우지끈, 콰아앙!

이따금씩 날라오는 끔찍할 정도로 파괴적인 혈기.

두꺼운 아름드리 나무들이 개박살나며 비산했다.

어렵지않게 저게 혈사대주가 쓰던 폭혈강기란 걸 알아냈지만.

딱히 지금 쓸모 있는 사실은 아니었다.

“내가 막아서마. 그 틈에 도망치거라.”

“혼자서요? 택도 없는 소리하지 마십쇼. 막을 거면 둘이서 막아야 됩니다.”

그나마 둘이 합치면 바늘구멍이라도 보이겠는데...

부상이 심한 팔에 슬슬 감각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승부를 봐야해.’

그때, 저 앞에 탁 트인 공간이 보였다.

차라리 저기서, 뭐라도 방법을 찾아내야 할까.

“멈추거라!”

“큭...!?”

다급히 나를 잡아세우는 운휘.

앞은 공터가 아니었다.

“...절벽이구나.”

“씹...”

주인공 이 새끼는 절벽기연 같은 거 안 먹어서 있는 줄도 몰랐는데.

까마득한 높이를 보니 살짝 기대하게 된다.

“흐, 개같은 거.”

“...미안하구나.”

“그러게 제자 인성 교육 좀 똑바로 시키시지 그랬습니까, 사숙.”

“...그러게 말이다.”

끝이 다가왔다는 걸 알았는지, 딱히 반박하지는 않는 운휘.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붉은 장포를 입은 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클클, 절벽이구나.”

독 안에 든 쥐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느긋이 뒷짐까지 쥔 채 걸어오는 양광.

나는 허리를 쭉 피며 입술을 비틀었다.

“소아성애자 새끼. 좆같게도 웃는구만.”

“...곱게 죽지는 못할게다, 네놈.”

거친 호흡을 달래며 아직 넉넉하게 남은 내기를 있는 데로 끌어올렸다.

곳곳의 요혈을 보호하고, 팔에는 한 겹, 두 겹, 세 겹...

내기가 허락하는 한계까지 칠흑강기를 중첩시켰다.

“백무진, 아직 여력이...”

“아뇨. 전부 쏟을 겁니다.”

여력을 남겨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불알이 텅텅 빌 정도로 계속해서 내기를 퍼올렸다.

“허어... 이해가 되지 않는 내공량이로고. 허나 경지의 차이를 고작 양으로 메꿀 수 있다면, 경지를 나누지도 않았겠지.”

“주저리주저리. 늙으니 입이 근질거리시나?”

“명을 재촉하는구나.”

사락. 순간 모습을 감춘 양광.

섬뜩한 느낌과 함께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올렸다.

“크아악!”

“끌끌, 이리 물렁한 강기는 처음 보는구나, 응?”

몇 겹이고 겹쳐둔 칠흑강기가 순식간에 우그러졌다.

강기의 밀도와 수준에서 너무나 차이가 났다.

‘그래도...’

가깝게 붙은 이상, 저 좆만한 몸뚱아리에 주먹을 맞추면...

후웅!

“뭣...”

허공을 가르는 나선파륜권.

붉은 안개가 흩어지더니, 바로 옆에서 양광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형환위!’

소설로만 보던 걸 실제로 보니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시발 사람이 잔상을 남기냐고!

“한쪽 팔 먼저 받아가마.”

“큭...!”

“어딜!”

다행히 자세가 무너진 내 옆쪽을 막아서는 운휘의 검.

가볍게 혀를 찬 양광이 뒤로 물러났다.

“버러지가 둘이나 모인들, 버러지지.”

처음으로 자세를 잡는 양광.

그의 손 주변으로 선혈빛 강기가 둥글게 뭉쳐 구의 형태를 이루었다.

저 안에 끔찍할 정도의 내력이 담긴 것이 느껴졌다.

“강환(??)...!”

“어디 받아보거라.”

순간 가슴을 옥죄는 두려움에 멈칫한 내 앞을, 누군가 가로막았다.

“가서 담 사저에게 전하거라. 미안하다고.”

운휘의 나지막한 읊조림.

그리고 느릿하게 쏘아지는 죽음의 형태.

“후우...”

마치 담소율의 검을 연상시키는.

청명한 푸른빛이 그 앞을 막아섰다.

난폭한 혈기 앞에서도 꺼지지 않고 푸르게 피어나는 태극 문양.

콰가가가각!!!

"크윽...!"

흡사 거미줄이 쳐진 것처럼 금이 간 검이.

깨어지지 않고 죽음의 진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하아, 하아...!”

분명 그녀의 경지로는 양광을 절대 막을 수 없을 텐데.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혈기가 물러서고 있었다.

“허어, 대단하구나.”

낮게 파고들어오는 양광의 목소리.

밀려나는 듯 했던 혈기가 다시금 형체를 갖춰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아...”

운휘의 탄식.

이미 죽기 직전이었던 그녀의 몸이 더 이상 버텨내질 못했다.

한 곳이 부서지자,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태극.

직후, 눈앞이 선혈빛 아지랑이로 붉게 물들었다.

귀가 먹먹해지는 폭음이 지나가고,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사, 사숙...”

뿌연 먼지구름이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듯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드러난 풍경.

양광이 거칠게 펄럭거리는 소매를 휘날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실로 놀랍구나. 그 순간에, 절대의 자리에 발을 걸치다니.”

“하악, 하아... 크윽...”

오른쪽 어깨 부분이 둥글게 파여있는 운휘의 뒷모습.

아까 전의 걸견처럼, 그녀 또한 오른팔이 보이지 않았다.

“무(?)라는 것은 참으로 신묘하다. 본좌의 공격을, 본좌가 살아온 세월의 반도 못 살았을 버러지가 받아내다니. 괜히 무공을 마음 공부라 하는 것이 아니야.”

끔찍할 정도의 공격을 퍼부어 놓고선, 아무렇지 않은 듯 서있는 양광.

운휘의 시선이 뒤로 돌아 나를 향했다.

“도망, 치거라...”

“쯧. 비키거라. 곧 죽을 년이.”

툭. 가볍게 밀쳐낸 손짓에, 운휘가 쓰러져 바닥을 굴렀다.

미약하게 느껴지는 생의 숨결.

“이, 씹새끼가.”

“끌끌, 욕만 해서 달라지는 것이 무어가 있겠는고.”

그렇게 다가온 양광.

어떻게든 일어나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지만.

양광의 폭력적인 기운이 아직까지 내장을 진탕내고 있었다.

“쿨럭...”

그저 기세에 버티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죄이는 듯한 압도적인 격차.

면상에 모래라도 뿌리려 바닥을 긁는데.

의외의 구원이 나타났다.

“양광, 그 놈은 내가 죽이기로 약조 받은 놈이오!”

“...음? 계집은 어쩌고... 이놈이!”

나와 양광의 사이를 가르는 장두식의 강기.

놈의 압박에서 벗어난 나는 다급히 자세를 잡았다.

“허어, 은을 원으로 갚는구나.”

“저놈만 죽이면. 뭐든지 하겠다고 약조 했었소, 나는. 내게 넘기시오.”

“본좌가 네놈이 아까워서 지금껏 살려두는 줄 알았느냐.”

살벌하게 서로를 노려보는 양광과 장두식.

나는 자꾸만 멀어져가는 의식 사이로, 서서히 고양되는 정신을 느꼈다.

‘이건...’

깜빡 눈을 감자 보이는.

처음 무아지경에 올라 느꼈던, 묵빛의 거신.

놈의 손아귀가 다시 한 번 나를 움켜쥐자, 찰나의 전능감이 전신을 가득 채워갔다.

상황을 타파할 방법.

그것을 떠올렸다.

‘대체 뭐냐, 너는.’

여전히 대답이 없는 거신.

눈을 깜빡이는 순간, 현세로 돌아왔다.

“...약조를 지키시오.”

“허허, 그래... 네놈도 곱게 죽을 생각은 말거라... 음?”

나를 바라보는 양광의 시선이 느껴졌다.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걸레짝이 된 팔에, 혈기를 일으켜 끊어진 감각을 이어나갔다.

늘어졌던 손가락이 다시 주먹을 쥐고.

두터운 강기가 팔을 덮어갔다.

아직, 운휘처럼 절대 고수의 자리에 발을 걸치기엔 한참 부족했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어.’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있었다.

후폭풍이 두려워하지 못했던 것.

자칫해서 기를 통제하지 못하면 팔이 터져버릴까 감히 시도해보지도 못했던 것.

지금은 뭐, 팔이 터져버린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

“이놈...?”

묵천흑지신공의 내기와 혈기를 하나로 모았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 울컥이는 내기의 흐름.

그 울컥임마저 유유히 흐르도록 내버려두고, 오히려 파둔을 더해 겹겹이 쌓아올렸다.

터지라고, 발악하라고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후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내기가 입 밖으로 연기가 되어 뿜어졌다.

위협을 느끼고 손에 강기를 두르는 양광이 보였다.

나를 죽이는 것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장두식이 놈에게 덮쳐들어갔다.

‘병신들.’

이번엔 고작 팔 두 짝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팔, 몸통, 다리. 가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에 파륜을 만들어냈다.

키이잉...!!

‘큽...!’

격렬한 반동에 무너지는 육체, 고통으로 꺼져가는 정신.

여기서 죽어버리면, 슬퍼할 사람이 생각났다.

‘소율, 세령.’

그리고 소소유도 나를 생각해주려나.

콰득, 혀를 깨물어 검게 점멸하는 정신을 간신히 일깨웠다.

‘죽기는, 시발.’

맹렬히 회전하는 파륜의 고리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정방향으로만 회전하던 고리들을 억지로 잡아끌어, 역방향으로 가속시켰다.

전신이 용광로에 던져진 듯 불타올랐다.

“크학...”

넝마가 된 몸에 가해지는 거대한 압박감.

‘다 죽이고, 돌아간다.’

멈추지 않았다.

수백의 파륜이 얽히고 설키며, 미친 듯이 폭발하고 부딪혀 나간다.

지혈해둔 몸뚱아리 곳곳에서 핏줄기가 터져나왔다.

“이놈! 무슨, 무슨 짓을 하려는 게야!!”

가볍게 장두식을 제압한 양광이 내게 짓쳐들어왔다.

당황한 것이 분명한 늙은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나이는 처먹을 대로 처먹은 주제에 새파랗게 어린 몸뚱아리를 한 소아성애자 새끼.

“뭐하긴, 씨발아.”

내가 할 것은 단 하나.

미친 듯이 날뛰는 이 광륜(??)을 원하는 곳으로 쏟아내는 것.

죽기 직전의 몸뚱아리라도, 이런 것쯤은 할 수 있었다.

무진류(???)

나선파륜권(????)

“뒤져.”

그 어느 때보다도 단단히 내딛은 진각.

피투성이가 된 주먹을 놈에게 곧게 내질렀다.

오의(??)

광룡만천(????)

눈앞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

“허억... 허윽...”

“하아, 하아... 자, 잠깐만요.”

두 여인이 산길을 내달리던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건만, 서둘러 도망쳐야 하는데.

걸견이 소소유를 재촉했다.

“소 소저! 한시가 급하오. 지금 당장...”

“아뇨. 쫓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에요.”

“뭐, 무슨... 아?”

확실히 그러했다.

거칠게 뿜어지던 장두식의 혈기는 이미 자취를 감춘지 오래.

저 멀리, 혈혈동자의 섬뜩하고 폭력적인 혈기만이 느껴졌다.

“...걸견님. 당장 돌아가서 사람들을 불러오는 것이에요.”

“소, 소 소저께선...”

“...백 소협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아, 안됩니다! 저기는 지금 사지(死?)란 말이오!”

팔을 잡아끄는 걸견을 뿌리치는 소소유.

그녀는 두려움에 찬 얼굴로, 결의에 찬 말을 내뱉었다.

“백 소협은 여기서 죽을 사람이 아닌 것이에요. 반드시, 살려야하는 사람이에요.”

무섭고, 두려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를 잃는다는 것이 더 두려웠다.

친근한 두 사람이 슬퍼할까봐?

아니면, 사실 내심 그를 좋아해서?

...아니었다.

‘이대로 죽으면, 소녀는 영원히 당신을 이기지 못하게 되는 것이에요!’

감히 자신을 앞서는 허접한 사내라니. 용납할 수 없었다.

죽더라도 자신에게 패배한 후 죽어야한다.

평생, 자신한테 놀림이나 받으며. 그렇게 살다가.

“...서두르라는 것이에요, 걸견님.”

고개를 저어 정신을 다잡은 소소유가 산길을 되짚어 올라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걸견은, 입술을 깨물며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하아, 하아...”

두려움으로 떨리는 손은 검집을 굳게 쥐고.

공포로 풀리려는 다리에 힘을 주어 굳세게 내딛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마침내 도달한 절벽의 언저리.

소소유의 입술이 경악으로 크게 벌어졌다.

“아...?”

한순간 깨끗하게 사라진 양광의 기운.

그 대신 보이는 것은.

절벽 주변을 전부 뒤덮은, 거대한 묵빛의 용(?).

“배, 백 소협...?”

묵룡이 사방을 날뛰며 모든 것을 파괴하고, 천지를 뒤흔들고는 사라져갔다.

그야말로 경천동지(????).

거친 충격파가 이곳까지 닿을 정도였다.

“제발...”

정신을 차린 소소유가 다급히 절벽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풀숲을 헤쳐나왔을 때,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있는 무진이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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