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단주입니다. 목욕은 끝마치셨습니까, 단주.”
욕탕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욕조에 머리끝까지 푹 잠겨있던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연둣빛 머리칼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는 물방울.
그 찰팍거리는 물소리에 부단주가 말을 이었다.
“수건과 옷은 준비해두었습니다. 식사는 어떻게 하실 건지요.”
“음...”
자신을 살뜰하게 챙기는 부단주의 배려에, 당하린이 한참을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둘이서 먹죠. 같이 내려가요, 가영.”
“아... 네, 단주.”
이내 방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
욕조에서 당하린이 눈과 귀를 꼼꼼이 씻어내며 세안을 마쳤다.
“아... 그러고 보니, 발도 닿았었죠?”
쓰레기같은 사내를 본 눈과, 돼지 멱따는 소리를 들은 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사내에게 닿았던 발까지.
전부 강박적으로 씻어낸 그녀가 이내 욕탕을 빠져나왔다.
“역시... 가령이네요.”
몸에 묻은 물을 닦아내기 위한 수건과 은은한 녹빛의 궁장.
더러운 시선을 가려줄 면사가 딸린 모자.
당하린의 눈꼬리가 가볍게 휘어졌다.
잠시 뒤, 묵기로 한 객잔의 일층.
적당히 사람이 들어찬 식탁들 사이로 손을 흔드는 이가 있었다.
“오래 기다렸나요?”
“아닙니다, 단주.”
당하린이 자신에게로 살짝 쏠리는 시선을 피하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흠, 둘 뿐인데 이름으로 불러도 되요, 가령.”
“그, 그럼... 하린 언니...”
볼을 화악 붉히며 시선을 피하는 동생, 이가령.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따르던 동생이고, 언제나 믿음직한 자매였다.
“그래요, 듣기 좋네요.”
“...어, 언니두요.”
“음? 내가 뭘요?”
“아, 아니에요.”
정절단 일을 맡은 후로는 조금 멀어진 것 같기도 했지만.
이렇게 귀여운 모습을 보니 괜한 걱정인 듯 싶었다.
“오늘은 가령이 먹고 싶은 걸로 시켜요. 언니가 사줄테니.”
“핫... 정말요?”
“그럼요. 얼른.”
이내 점소이를 불러 이것저것 시키고는 재잘대며 떠드는 가령.
“어제 언니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몰라요. 저, 저도 언젠가 언니처럼 될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가령이 열심히 노력하는 건 언니도 알고 있어요.”
귀여운 동생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에헤헷... 앗, 소, 손까지 잡아주시다니...”
아주 홍시처럼 발갛게 달아오르는 얼굴.
당하린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끔 보면 가령은 날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네, 네에에에?!!”
“뭐에요, 그 반응은? 혹시 나 싫어해요?”
“아, 아뇨!! 정말, 정말 조, 좋아해요...”
“나두 좋아해요, 가령.”
꼬옥 손을 쥐어주자 아예 부들부들 떨면서 숨소리까지 거칠어지는 동생.
다행히 저 붉어진 얼굴이 터지기 전에, 시킨 음식이 나왔다.
“많이 들어요, 가령.”
“하아, 하아... 네, 네에...”
그리고 겨우 언니의 손을 놓은 이가령은, 터질 듯한 가슴을 간신히 가라앉혔다.
‘어, 언니랑 손 잡았어어어엇!!!’
언제부터였을까.
어릴 적 당가의 수련이 힘들다고 밖으로 뛰쳐나온 그녀와 물가에서 놀았을 때?
그녀가 이복 남자형제들에게 몹쓸 짓을 당할 뻔한 날, 자신에게 찾아와 엉엉 울었을 때?
아니면, 함께 정절단에 들어와 임무를 수행하던 날들?
‘언니 너무 좋아... 사랑해요...’
이가령은 당하린에 대한 동경과 친근함이 어느 순간 더 깊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때마침 자신도, 언니도 저급한 사내 따위에게는 관심조차 가지 않는 여인들이었고.
날로 성숙해지는 몸은 그녀와의 모든 것에서 야릇한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많이 먹어둬요. 슬슬 맹으로 복귀해야 하니까요.”
“아... 이제, 돌아가시는 거에요?”
“네. 봉룡지회도... 석달 쯤 남았나요? 소소유 고 앙큼한 계집애를 이번에야 말로 꺾어야 하니까요.”
그녀의 목표는 자신의 목표였고.
하린이 가는 곳 어디든 따라가고 싶었다.
“당연히 언니가 그 가슴만 큰 바보를 이기실 거에요.”
“푸훕... 아무리 그래도 맹주님의 손녀를 그렇게 폄하하면 안되죠, 가령.”
“앗... 죄, 죄송해요.”
“뭐, 우리 둘 만의 비밀로... 음?”
그렇게 화기애애한 식사가 이어질 무렵.
조금 떨어진 식탁에서 어떤 대화가 들려왔다.
“자네... 그, 사천의 귀신 들린 절벽 아는가?”
평소라면 그저 스쳐가겠지만, 하필이면 고향땅의 이야기.
조용해진 하린을 따라 가령 또한 옆으로 귀를 기울였다.
“아... 그 뭐냐, 천령? 아니 만령곡 아니던가?”
“맞네.”
“근데, 거기는 왜?”
“아 이 사람아, 내가 이번에 일이 있어서 사천에 갔다오지 않았는가.”
대낮부터 약주를 걸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내 둘.
먼저 이야기를 꺼낸 사내가 말을 이었다.
“놀라지 말고 들으시게나. 그 만령곡에서, 거대한 흑룡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것 아닌가!”
“...”
순식간에 식어버린 반대쪽 사내의 얼굴.
“심지어 그 만 마리의 귀신들도 전부 성불해서 평범한 절벽이 되었다고 하네.”
“사천 음식이 그리도 맵다더니, 가서 정신을 던져두고 왔는가?”
“아닐세. 진짜라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두 사내.
조금 흥미롭기는 했지만,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역시 사내들은 허풍이 반이로군요.”
“그 허풍조차 없으면 존재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들이니까요.”
신랄한 비판과 함께 끝나가는 식사.
차로 간단히 입가심을 하고 일어나려는 찰나, 그녀들은 다시금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자꾸 이러면 내 오늘 술 안 살 걸세. 뭔 되도않는 헛소리만 늘어놓는가.”
“하... 그걸 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증말...”
“됐고. 그만 마시세.”
“아, 아니 잠깐만! 진짜, 진짜로 엄청난 소문이 하나 있네.”
“크흠... 말해보시게나.”
간절한 모습에 결국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는 사내.
이야기를 꺼낸 남자가 귀를 가까이 하라는 손짓을 하고는 조용히 속삭이기 시작했다.
“자네... 선녀봉과 유녀봉 소저를 아는가?”
“어허, 중원천지에 그 두 봉황을 모르는 이가 있겠나.”
일어나던 두 여자는 슬그머니 다시 착석했다.
안 그래도 산속을 헤집고 다니던 터라 무림의 소식에는 영 까막눈인 상태.
슬쩍 내공을 끌어올리며 귀를 쫑긋 세웠다.
“그 둘이 말일세...”
“그래, 그 둘이...?”
“그러니까...”
한참을 뜸 들이던 남자는, 술 한 병이 더 나오고 나서야 능글맞게 말을 이었다.
“...그 두 소저가, 회임을 했다고 하네.”
“...뭐라?!”
경악으로 가득 찬 얼굴.
하린과 가령의 표정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더더욱 충격적인 말.
“그, 그게 진짠가?”
“그렇네. 심지어... 둘이 같은 사내의 아이를 뱄다고... 히이이익!!!”
하린은 그 말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음을 느꼈다.
탁자에 꽂힌 비도에 화들짝 놀라는 쓰레기 둘.
그녀가 천천히 다가가 비도를 뽑았다.
“그게... 무슨 개소리죠?”
“소, 소저는 누구신데...”
“방금 당신이 내뱉은 개소리, 똑바로 설명해봐요.”
“가, 갑자기 무슨... 힉...”
따지려드는 남자의 등 뒤로 들려오는 싸늘한 목소리.
“별 되도않는 좆같은 소리로 두 분의 이름을 모욕한 거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결국 사천에 갔다왔다는 남정네는 살벌한 기세를 내뿜는 하린과 가령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언니, 그 두 분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죠?”
“지금부터... 알아봐야죠. 당장 맹에 전서구를 보내세요.”
“네.”
값을 치루고 객잔을 나온 당하린.
나긋이 감겨있는 실눈 사이로, 싸늘한 녹빛 안광이 흘러나왔다.
“찢어죽여야할... 쓰레기 따위가 감히...”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사내는 정절단의 1호 절근대상감이었다.
*
“...이걸, 입으란 말이더냐?”
“어차피 도포를 입으니까 뒤에는 안 보일 겁니다.”
“그, 그래도...”
한낮의 우의각, 나는 당당하게 소율의 엉덩이를 주무르며 이것저것 주문했다.
내가 준비한 옷이 그리도 좋은지 얼굴을 붉히는 그녀.
“태사부께서 꼭 입어주셨으면 합니다.”
“읏... 제, 제자들이 장문인을 어떻게 보겠느냐...!!”
“다른 사람 눈길을 신경 쓸 게 뭐가 있습니까.”
확실히 이 천쪼가리에 가까운 옷은 상당히 신경 쓰이긴 하겠다만.
‘어차피 입는 건 소율이랑 세령인데 뭐.’
이 옷을 입고 봉룡지회에서 당당히 축사를 할 소율을 떠올리자 바지가 한껏 솟아올랐다.
“이, 이... 이건 또 왜 세우느냐...”
“태사부가 이걸 입은 모습을 상상하니 어쩔 수가 없더군요.”
“읏...”
“그러니까... 얼른 입어줘, 소율.”
나긋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이자 결국 옷을 들고선 안쪽으로 사라지는 소율.
그녀를 뒤로하고, 장문인이 추행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우의각주에게 다가갔다.
내 당당한 모습에 헛기침을 내뱉는 우의각주 이설.
“크흠... 자, 장문인과도... 그런 사이셨소.”
“보시다시피.”
이젠 뭐 숨길 것도 없다.
나는 소율의 도포를 그녀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도포 문양을 바꾸고 싶습니다.”
“...문양이라면?”
“태극 문양이요. 여기, 제 옷에 새겨진 문양으로 바꿨으면 하는데.”
살짝 굳어가는 이설의 얼굴.
그녀가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백 소협, 태극은 무당의 근간이오. 장삼봉 진인으로부터 내려온 신앙과도 같지요. 그런 문양을 바꾼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법이며...”
“우의각주님.”
“...네.”
뭔 개소리를 씨부렁대는 건지.
“바꿔주세요.”
“하, 하지만...”
“어제 자매들과 같이하니 아쉽지 않으셨습니까. 혼자 했다면... 세밴데.”
“세... 배...”
이설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무복 위로도 당당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저 자지에, 무려 세 번이나 사정할 때까지 박히면.
어제 한 번의 사정으로도 정신을 잃을 뻔했는데.
‘...안돼.’
그래도, 태극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것은 무당의 정신이자, 신념이자, 의지였다.
“그래도, 그것은 허락할 수 없...”
“부각주님한테 가봐야겠군요.”
“안됩니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얼굴이 달아오른 이설이 우물쭈물대며 내뱉었다.
“자, 장문인의 재가가 떨어져야...”
“태사부께선 당연히 허락하실 겁니다. 어차피 허락하실 텐데... 지금 거절하시면 자지도 잃고, 그냥 옷만 바뀌는 겁니다.”
“그, 그런...”
대충 30~40대 정도의 미시 여무림인들은 대체적으로 따먹기가 쉬웠다.
남편은 이제 성기능이 없는 수준이나 다름 없고.
대신 여자의 성욕은 폭발할 때니까.
“결정하시지요, 우의각주님.”
거미줄 친 보지에 두꺼운 육봉을 쑤셔박으면.
어디 불감증이라도 걸린 게 아닌 이상 내 자지에 푹 빠질 수 밖에 없었다.
“...하, 하루에 한 번...”
“각주님, 장문인께서 어제 하루종일 저와 있으셨습니다. 오늘도 그럴 거구요.”
“읏... 그, 그럼...”
“달에 한 번. 그 이상은 안됩니다.”
절망에 빠진 그녀의 얼굴.
나는 이설의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달랬다.
“대신 그 날은 무릉도원을 경험하게 해드리죠.”
“...알겠소이다.”
또 하나의 여자가 자지에 굴복했음을 확인한 나는.
옷을 갈아입고 나온 소율의 모습에 감탄했다.
“와...”
“저, 정말로 이딴 걸 입고 가라는 것이냐...”
“쪽, 예쁘기만 한데.”
“읏... 도, 도포나 얼른 내놓거라.”
훤히 드러난 뽀얀 등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고, 아직은 태극 문양인 도포를 덮어줬다.
우의각을 나서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령.
“아... 스, 스승님, 그 옷은...”
“여름용... 무복이니라.”
등을 시원하게 트고, 엉밑살을 강조한 천쪼가리.
슬쩍 치맛자락만 들춰도 보지가 보이는 바람직한 무복.
“세령 것도 있어요.”
“앗... 고, 고마워요, 무진.”
나는 둘의 허리를 가볍게 끌어안고선, 장로들이 기다리고 있을 장로각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