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인가요?”
“그런 것... 같아요, 하린 언니.”
조금 높다란 절벽.
두 여인이 거칠게 솟아오른 절벽의 주변을 천천히 시야에 넣었다.
군데군데 보이는 마치 용이 똬리를 튼 듯한 모양새의 흔적들.
당하린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쓰레기 주제에, 실력은 진짜라 이건가요?’
얼핏 보아도 무지막지한 위력의 초식이 주변을 전부 휩쓴 것이 분명했다.
짐짓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녀가 자신의 손으로 가늠을 해보았지만.
도저히 가능한 영역의 기술이 아니었다.
“엄청나네요, 언니. 어떻게 이런 초식을...”
“...”
시일이 조금 지나 원래의 모습은 아니었으나.
거대한 무언가가 절벽을 휩쓸고 지나간 상흔은 여전히 어떠한 감정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다.
그것이 경외심이든, 질투든.
어쨌든 간에, 두 여인이 다른 감정을 느꼈다는 것은 분명했다.
“천극혜검님께서 하신 걸지도 모르죠.”
“아, 아니에요, 언니. 분명 맹의 보고서에는 양광과 대치한 백무진이라는 사내가...”
“가령.”
“핫... 죄, 죄송해요, 언니.”
그녀 또한 남자라는 존재의 무가치함을 알았으면 했지만.
아끼는 동생의 혼삿길을 제마음대로 막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아...”
당하린의 주먹이 꾸욱 쥐어졌다.
종의 번식을 위한 씨주머니 역할 말고는 하등 무가치한 쓰레기 따위가.
알면 알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 사내였다.
“그만 맹으로 돌아가죠.”
“네, 하린 언니.”
당하린이 냉랭한 얼굴로 발걸음을 돌렸다.
만령곡이라는 이름을 잃어버린 절벽엔 더 이상의 가치는 없었다.
어린 시절 두려움과 공포의 장소였던 이곳은, 이젠 시냇물이 흐르는 흔해 빠진 절벽일뿐.
‘백세령, 소소유. 그대들도 이렇게... 무가치해진 건 아니겠죠?’
그녀들에게서 조금이나마의 가치가 남아있기를 바랬다.
사내 따위를 향한 연심이 아니라.
몇 년전 자신의 목표가 되었던 그 당차고 강한 여인들이길 기도했다.
*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은 전각.
그 아래에, 세 명의 여인이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입니다, 단주.”
“갈 부단주도 오랜만이에요. 별일 없었나요?”
평온한 얼굴에서 느껴지는 기세에 갈단려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더 강해졌구려, 단주.’
이번 외유가 꽤나 도움이 되었는지, 그녀의 기세가 날카롭게 벼려진 것이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다른 이유일 수도 있으려나.
뭐가 됐든, 이후의 일은 백무진이라는 사내에게 달려있었다.
“별일 없었습니다만, 우선 맹주님부터 뵈러 가시죠.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어요. 이 부단주는 돌아가서 쉬고 계세요.”
“네, 단주.”
가령이 정절단 숙소로 발을 돌리고, 갈단려와 당하린은 맹의 안쪽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맹의 모습에 감회가 남다른지 느릿한 걸음의 당하린.
갈단려 역시 발걸음 속도를 늦춰 그녀와 보폭을 맞췄다.
“갈 부단주.”
“네.”
“부단주는 직접 보았죠?”
“무엇을 말하시는 건지...”
“아시잖아요. 백무진. 그 사내에 대해서 전부 말해보세요.”
역시나. 이 집요하고 독사같은 여자가 묻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마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왔겠지.
갈단려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별달리 아는 건 없습니다. 그래도, 꽤나 괜찮은 사내...”
“그런 건 당신이 판단할 일이 아니에요. 정절단주인 내가 판단할 일이지.”
“하지만, 이미 백 소저와 소 소저 두 분 모두...”
“그 쓰레기가, 어떤 쓰레기같은 수를 썼을지 누가 아나요?”
당하린이 갈단려의 말을 단호하게 끊어냈다.
“앞으로 중원무림을 이끌어갈 둘에게, 더 이상 하등한 쓰레기의 씨가 묻는 것은 절대로 용납지 않을 겁니다.”
“...단주. 정절단은 제멋대로 판단을 내려 멀쩡한 연인들을 갈라놓는 조직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쓰레기인지 아닌지, 꼭 직접 보아야 알던가요?”
고개를 든 갈단려의 눈에, 가늘게 뜨여진 당하린의 눈동자가 보였다.
연녹빛으로 짙게 빛나는 안광.
‘이미... 제대로 볼 생각이 없군.’
갈단려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은 과거의 일로 남성이란 존재를 극도로 혐오하게 되었다는 것과.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을 잔인하게 징벌한다는 것.
또한 독공으로 초절정에 다다른, 독인의 경지에 이른 그녀라면.
‘백 소협 또한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가 얼마나 강한지는 이번에 알게 되었지만.
독은 또 다른 문제 아니던가.
“...가시죠.”
그렇게 침묵속에서 도착한 맹주실.
갈단려가 문을 두드렸다.
“맹주님. 정절단주 당하린이 복귀했습니다.”
“들게나.”
안쪽으로 들어서자,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조손이 보였다.
“할머님. 어저껜 까망이랑 같이 경극을 보러갔다는 것이에요!”
“그래. 재밌었느냐.”
“네! 까망이도 즐거워했다는 것이에요.”
해맑게 웃으며 배를 쓰다듬는 소소유와, 그런 손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맹주의 눈빛.
맹주의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
“아, 어서오게.”
“무림맹 주작단 단주 당하린. 임무 복귀했습니다.”
“수고했네. 와서 차 한잔 들지.”
“예.”
탁자로 걸어오는 당하린의 눈에, 달랑달랑 흔들리는 만두가 보였다.
여전히 커다란 흉부와, 빵빵한 볼따구.
그리고... 착 달라붙는 옷 위로 완만하게 솟은 아랫배.
“아앗...!! 하린 언니인 것이에요!?”
“...소유.”
“정말 오랜만인 것이에요!”
반갑게 맞이해주는 동생이자 경쟁 상대의 나약해진 모습에, 당하린이 입술을 짓씹었다.
당장이라도 이게 대체 무슨 꼴이냐 소리치고 싶었지만.
맹주의 손녀에게 그럴 수도 없는 노릇.
“...변했네요, 소유.”
“흐응, 하린 언니도 머리가 길어졌다는 것이에요.”
“그 얘기가 아니에요.”
“아...! 헤헷, 소녀가 살이 찐 건 아닌 것이에요.”
배를 쓰다듬는 소유의 표정.
그건 분명히,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이었다.
고작 하등한 수컷 따위에게 굴복한 패배자의 얼굴.
‘너는 무가치해졌구나.’
당하린이 매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어, 언니?”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렇지. 소유야, 그만 나가보거라.”
역시. 맹주가 자신과 따로 이야기하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당의 차기 장문인과 무림맹주의 손녀를 동시에 임신시킨 희대의 쓰레기.
그런 쓰레기를 처단하기 위해선 확실히 맹주의 재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잘 드는 칼도 필요하겠죠.’
은밀하고, 조용하고, 티나지 않는 칼.
“아앗... 아직 까망이의 하루를 덜 들려드린 것이에요!”
“저녁에 들으마. 응?”
“...우우, 알겠다는 것이에요.”
시무룩해진 소소유가 방을 나가고, 조용해진 방안.
소서화가 먼저 미소 띤 입을 열었다.
“저 앙큼한 계집애가 어쩌다 저리 됐는지.”
“맡겨만 주신다면 제가 확실히 처리를...”
“정말 행복해보여서, 본인까지 즐거워지는 기분일세.”
“...”
당하린의 입가가 미세하게 비틀렸다.
방금 맹주를 보며 설마, 했던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본래는 자네를 통해서... 어떻게든, 뭐라든 해보고 싶었네만.”
“그렇다면, 제가...”
“아니. 그럴 필요 없네. 죽어가던 딸아이에게 약속한 것처럼, 소유가 행복해하니... 다 되었네.”
당하린은 냉랭하게 굳어가는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맹주마저도 이미 그 쓰레기에게 홀랑 넘어간 상태였다.
‘어떤 수를 쓴 건 가요, 쓰레기!!’
이렇게 된 이상, 자신만이라도 무림의 정절을 바로잡아야 했다.
“그렇다면... 그, 이국의 사내를 인정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음... 봉룡지회에서 최종 우승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네만, 아마 그 녀석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시커먼 피부만큼이나, 검은 속내를 지녔을 지도 모릅니다.”
“후훗, 본인의 속내도 그리 깨끗하지만은 않네.”
당하린이 입술을 짓씹었다.
이래서야 아무것도 하지 못할 판이었다.
허나 그녀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도... 직접, 알아보셔야하지 않겠습니까. 진정 그 사내가 가진 뜻이 뭔지, 그 깊은 속내를요.”
“흠...”
그건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소서화.
눈앞의 단주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오랜 친우마저도 그 녀석의 계집이 되지 않았던가.
‘...알고싶긴 하군.’
따지고 보면 그 출신이 꽤나 불분명했다.
실력도, 재능도 범상치 않지만... 그가 실은 혈교의 간자였다면?
무리수라고 생각은 하나, 백무진이 가진 비밀이 무엇일지 궁금한 것은 사실이었다.
“봉룡지회 전까지 무당에서 머물게나. 2달 정도 남았으니, 머물면서 한 번 알아보게.”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아니. 너무 다하진 말고. 적당히 하시게. 몸이 상하지 않게.”
마침내 떨어진 맹주의 허락에, 당하린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몸이 아니더라도, 망가트릴 곳은 무수히 많았다.
*
독사가 무당을 노리고 있는 그 시각.
무진은 이제 짐승처럼 교성만 내지르는, 이름도 기억 안나는 각주 하나의 보지에 길게 정액을 싸지르고 있었다.
끝까지 쑤셔넣어 질벽을 정액으로 가득 채우는 격렬한 사정.
천박한 신음소리가 밤의 침묵을 깨트렸다.
“응옷... 오옥...!”
“크...”
“하악, 하아악...”
흑천묵지신공으로 내공을 뽑아내고.
요도에 남은 정액을 울컥 쏟아내며 물었다.
“이제 말해봐. 오장로가 관계를 안 한지 얼마나 됐다고?”
“네, 백 대협... 하아, 하아... 그러니까, 으읏...!!”
거칠게 자지를 뽑아내자 바짝 힘이 들어가는 뒷태.
나는 푹 패인 등골 사이에 자지를 얹어두고 숨을 골랐다.
“벌써, 십오년 째 독수공방을...”
“씹...”
각주들과 질펀하게 떡을 친지 고작 며칠.
내 좆맛을 잊지 못한 그녀들이 찾아와 스스로 다리를 벌렸다.
몇 번 쑤셔주면 있는 비밀 없는 비밀 다 토해내며 자지를 갈망하는 암캐들.
봉사의 대가는 그녀들과 같은 배분이자 동문이었던 장로들의 이야기였고.
운자배 둘을 제외하고는, 전부 각주들 마냥 섹스리스 상태인 것을 파악했다.
“아무튼, 그렇단 말이지...”
“네엣... 후으, 배, 백 대협...”
“왜.”
“더, 더 쑤셔주세요...”
정액을 질질 흘리며 스스로 보지를 벌리는...
‘무슨 각주였더라.’
하도 따먹어서 기억이 안 난다.
알아낼 거 다 알아낸 보지엔 이제 관심이 없긴 하지만.
“흠... 네가 무슨 각주였지?”
“대, 대천각주에요, 백 대협...”
“아하.”
우리 대천각주님은 그래도 쓸모가 있었다.
대천각이면 속가가 아닌 본산 제자들을 관리하는 직책이고.
거기엔 싱싱하고 파릇파릇한 여제자들이 가득하겠지.
“싹수가 괜찮은 여제자들을 데려와. 세 명당 한 번. 알겠나?”
“그, 그럼 오늘은...”
“끝이지. 네가 대천각주라 그나마 더 해주는 거야.”
“흐윽... 아, 알겠어요, 백 대협.”
여운에 젖어 축 늘어진 암캐에게 도포를 덮어주고는 밖으로 나왔다.
우의각주가 직접 그려넣은 문양의 도포.
“후우...”
봉룡지회까지 이제 두달.
무당이 손에 들어올 날이 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