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가시지 않은 새벽녘의 찬 공기.
곧 떠오를 태양으로 후끈 달아오르기 전, 정절단 둘의 숙소를 찾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꾸벅꾸벅 졸다가 나를 맞이하는 시비 하나.
“아... 배, 백 대협, 아침부터 어인 일로...”
“두 분은 안에 계십니까?”
“네, 아직 주무시고 계실 거에요.”
“그럼 시간이 좀 남겠군요.”
자연스레 시비의 허리를 끌어안고, 치맛자락 뒤쪽을 끌어올렸다.
작은 탄성과 함께 내게 안겨드는 그녀.
“앗... 배, 백 대협...”
“남는 방으로 갈까요?”
“네엣...”
흰 치마가 회색으로 푹 젖을 때까지 그녀를 괴롭혀준 후, 다시 당하린의 방으로 돌아왔다.
다리를 후들거리며 둘을 부르는 시비.
그녀가 쓰러지지 않게 엉덩이를 단단히 쥐었다.
“주, 주작단주님... 백무진, 대협께서, 읏... 찾아오셨습니다...”
살짝 귀를 기울이자 들리는 소곤거리는 목소리.
부단주인 이가령과 쑥덕대더니, 이내 방문이 열렸다.
“읏...?”
“간밤에 잘 주무셨습니까.”
정체 모를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는 당하린.
아마 시비의 옷에 덕지덕지 싸질러둔 정액 내음이 풀풀 풍기고 있을 거다.
일부러 치마며 등에 싸질러줬으니까.
하얀 손으로 코를 살짝 감싸쥐며 답하는 그녀.
“돌아가주세요. 아침부터 무슨 일이 신지는 모르겠지만...”
“장문인께서 찾으십니다. 괜찮다면, 아침을 함께 하자고 하시더군요.”
“...장문인께서요.”
“네.”
나이만 먹은 인간의 부름은 꼬장 취급이지만.
그 인간이 절대자에 칼질 한 번으로 산을 부수는 수준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도 거절할 수 없는 부름이 되는 거다.
“...곧 올라가겠습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준비하고 나오시지요.”
“아뇨, 알아서...”
당하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밖으로 훌쩍 나왔다.
명백한 무시이자, 무당에서 누가 위인지 알려주기 위한 제스쳐.
곧 준비를 끝낸 둘이 숙소 밖으로 나왔다.
“가시죠. 무당에서 직접 기른 나물들로 한상 차려놨습니다.”
“그쪽이 차린 것도 아닌데 유세가 심하군요.”
아주 그냥 한 마디를 안 지려한다.
소유는 예전에 이랬을 때 귀여웠지만, 이년은... 뭔가 좀 띠꺼운 느낌.
대신 슬쩍 눈을 돌려 이가령과 시선을 맞췄다.
“이 부단주께서는 가리는 음식이 있으십니까?”
“아, 저, 저요? 아뇨... 뭐...”
역시 나와 눈을 못 마주치는 이가령.
자꾸만 아래로 향하는 시선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분명 입맛에 맞으실 겁니다. 무당산의 정기를 받아 피부랑 건강에도 좋을 거구요.”
“앗... 그러고 보니, 요새 피부가 좀 거칠어졌는데...”
“가령.”
“헙...”
방문판매원 마냥 약을 치는데 들어오는 견제.
확실히 어두운 과거를 가진 년이라 그런가, 꽤나 방어적이었다.
그에 반해 이가령은... 확실히, 쉬웠고.
“사기꾼인지 무인인지 모를 말솜씨군요, 백 소협.”
“뭐, 드셔보시면 알 겁니다.”
사실 진짜 풀떼기 주제에 맛있긴 하다.
...내가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힘을 써서 그런지는 몰라도 맛있긴 해.
곧 도착한 혜원각.
시비의 안내를 받아 안쪽의 식당으로 향했다.
“앗, 하린 언니인 것이에요!”
“...하린.”
“...반가워요, 둘 모두.”
서로 인사를 나누는 그녀들.
내게 다가오는 소유와 세령에게 가볍게 입을 맞춰주고 시선을 돌리자.
보이지 않던 소율도 얇은 도포 자락을 여미며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벌써 왔느냐.”
“장문인께 인사올립니다.”
“그래요, 아침부터 이리 불러서 미안하구려.”
“아닙니다.”
소율에게 깊게 고개를 숙이는 당하린과 이가령.
계단에서 내려오는 소율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
“뭣들 하시는가. 어서 오게.”
“...예.”
자연스레 서로의 허리와 어깨에 걸쳐지는 팔을 보고 당황한 듯한 목소리.
아마 지금쯤이면 눈치채지 않았을까.
무당의 새로운 도포를 입은 운연이 내게 따먹히는 걸 직관했고.
지금 소율이 입은 도포도 그것과 같은 도포니까.
좀 더 좋은 재질에, 무당(武當)이라는 글자가 멋들어지게 새겨지긴 했지만.
“그럼 편히들 들게나.”
“예.”
여섯, 아니 여덟이 함께한 식사.
이젠 조금 펑퍼짐한 옷을 입은 세령과 소유를 챙겨주고.
부러운 듯 바라보는 소율과 함께 넷이서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끝마쳤다.
이후 방안에서 이어진 티타임.
비싸디 비싼 차가 각자의 찻잔에 채워졌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둘을 부른 이유가 있네만.”
“말씀하시지요.”
“그전에... 소유와 세령이, 둘은 잠깐 나가줄 수 있겠느냐.”
“...네, 스승님.”
“알겠다는 것이에요, 사숙.”
나가기 전 내 볼에 쪽하고 입을 맞춰주는 둘.
가볍게 엉덩이를 주물러주며 둘을 내보냈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으니, 잠깐 차를 더 가져오마.”
이어 잠시 방을 나서는 소율.
그녀가 나가자마자 당하린이 득달같이 쏘아붙여왔다.
“...장문인의 앞에서도, 추행을 서슴치 않는군요. 백 소협.”
“추행이라뇨? 봉룡지회가 끝나면 제 아내가 될 여자들인데... 무언가 문제라도.”
“예의도 없고, 상식도 없군요. 산부에게 그런 짓을 하는 것 자체가 역겹단 말입니다.”
당장이라도 내게 독을 풀 것만 같은 표독스러운 얼굴.
그에 반해 이가령은 싸늘한 분위기에 살짝 굳어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몸에서 내보내는 신호는 거부할 수 없는지 점점 거칠어지는 숨과 발게지는 볼.
그녀의 차에 타둔 미약이 슬슬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듯했다.
‘딱히 더 미룰 이유는 없겠지.’
이가령과 당하린의 사이는 거진 자매 수준.
일단 내 걸로 만들어두면 두고두고 써먹을 일이 있을 거다.
우선 지금은, 건방진 당하린의 사상을 꺾어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 보였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이국에서 태어난지라, 그곳에선 이렇게 애정표현을 자주하는 걸 좋게 보거든요.”
“중원에서 사실 계획이라면, 중원의 법도에 따르셔야죠.”
“이것 참. 살아온 세월을 단번에 뒤엎기란 힘든 법 아니겠습니까.”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문란하고 추잡하면 그리 할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역시나 한 마디를 안 지는 당하린.
오랜만에 부족의 이름을 팔며 뻔뻔하게 답했다.
“저희 부족은 강자생존의 법칙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었으니까.”
“...갑자기 무슨?”
“그곳의 짐승들은 강한 수컷이 모든 암컷을 독차지합니다. 나약한 씨들을 도태시키고, 강한 자손을 많이 만들어 종족을 강화시키는 본능적인 수법이죠. 그리고 저는 부족에서,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배웠습니다.”
머나먼 아프리카의 사바나.
그곳에 사는 백수의 왕 사자는 일부다처제다.
그리고 내 꿈은, 무림의 사자가 되는 거고.
“그게 어쨌단...”
“벌써 둘입니다. 제 아이를 밴 여자가. 둘 모두 강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이죠. 그녀들을 강제로 범해 취했다 한들, 방금처럼 제 행동을 용납했겠습니까?”
“읏...”
“아닙니다. 소유와 세령은, 무(武)라는 것을 잠시 놓아줄 정도로 제게 푹 빠져든 겁니다. 여성의 가장 소중한 곳에, 제 씨를 품을 정도로 말이죠.”
그녀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당하린의 사상으로 반박했다.
내가 직접 찌르기라도 했다는 듯 배를 가리는 그녀.
“...아니에요.”
무심코 튀어나온 듯한 말.
당하린에게 남자는 무가치, 쓰레기 같은 존재.
무림을 약화시키는 썩은 종자로 보고 있는 거다.
‘거기에...’
남성혐오증과 불감증까지 겹쳐 암컷으로서의 기쁨을 전혀 알지 못하는 여자.
하지만 그녀보다 명백히 강한 여자들이 내게 굴복해 그 어떠한 짓도 용납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떽떽거리며 눈을 돌릴 수 있을까.
“그건... 당신이 무언가 더러운 술수를 썼겠죠.”
“그리고 문란하고 추잡한 게 아니라... 저는 무림을 강화시키고 있는 겁니다. 제 강한 씨앗을 이용해서.”
“큭... 고작 당신 같은 사내에게 굴복한 계집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요!!”
결국 분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치는 당하린.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서 독설이 쏘아졌다.
“당신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자인지는 그간의 정보로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이 여자 저 여자 가리지않고 건드리는 창남!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노예상 일행, 봉룡지회의 건물들을 짓고있는 사군자와 인부들! 그리고... 무당의, 다른 일원들까지.”
이야, 숨도 안 쉬고 쏘아붙이네.
하지만 난 딱히 거리낄 게 없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강한 수컷이, 모든 암컷을 독차지한다고. 직접 그녀들을 만나보셨습니까?”
“...맹의 정보력을 얕보시는군요.”
“그럼 말해보시죠. 그녀들이 저를 싫어하던가요?”
“큿...”
그럴 리가 없겠지.
이 흑좆을 한 번 맛보면, 넓어진 보지를 채워줄 건 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을 테니까.
입술을 짓씹은 당하린이 다시금 내게 삿대질을 해왔다.
“그럼 인정하시는 거군요. 문란하게 여자들을 범했다는 것을?”
“...그래서요?”
“혹, 정절단이라고 들어보셨는지는 모르겠군요.”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문란한 남정네들을 징벌하는 특무대라고 하더군요.”
“네. 그렇다면 당신이 그 조건에 딱 부합한다는 것 또한, 알고 계시겠군요.”
얇게 뜬 실눈에서 녹빛의 안광이 새어나왔다.
독을 쓰는 건가 싶던 찰나, 방문이 벌컥 열렸다.
“당 소저. 듣자듣자하니 너무 막무가내인 듯 한데.”
“...담 장문인.”
내가 선물해준 옷을 입고, 팔꿈치 즈음에 도포를 걸쳐 요염한 모습으로 걸어들어오는 소율.
곧 내가 앉은 의자 뒤로 돌아온 그녀가, 가느다란 손가락을 내 옷속으로 집어넣었다.
“흐응...”
"..."
능숙하게 내 젖꼭지를 간질이며 괴롭히는 그녀.
말문이 막힌 당하린에게 나긋이 말을 거는 것이 들려왔다.
“사내에게 굴복한 계집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라.”
“읏...”
“본녀도 그러한가? 쪼옥, 츕... 쪽, 응?”
볼에 입을 맞추던 소유와 세령보다도 더.
농밀하고 진한 입맞춤을 내게 남기는 소율.
나 또한 뒤로 손을 뻗어 소율의 볼과 목덜미, 어깨를 차분히 쓸어내렸다.
“장문인께서 물어보시지 않습니까, 정절단주님.”
“...천극혜검께서, 왜... 그 사내에게, 창기처럼 아양을 떠시는 겁니까...?”
“자네말대로. 이, 백무진이라는 사내에게 굴복했기 때문이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당하린의 실눈이 크게 뜨여지는 것이 보였다.
온갖 감정이 적나라하게 휘몰아치는 연녹빛의 눈동자.
옆에 앉은 이가령은 크게 놀란 듯 입을 손으로 가렸다.
“그, 그런...”
도망치듯 뒷걸음치는 그녀.
소율이 내 허벅지에 위에 엉덩이를 갖다 붙이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정절단은 강제적이고 불법적인 수단으로 여성을 취하고, 여성이 싫어하는데도 몹쓸 짓을 하는 사내들을 징벌하기 위해 세운 특무대인데 말이야.”
“...”
“녹옥봉 자네가 그 권한을 어찌 쓰든 본녀의 알 바가 아니네만. 무진을 건드리면... 흠, 여기까지만 하지.”
이거지. 이게 권력의 참맛 아니겠는가.
내가 말할 땐 바락바락 대들던 년이, 소율의 몇 마디엔 입을 닥치는 걸 보니 짜릿한 쾌감이 밀려왔다.
당장이라도 소율을 벗기고 박아주고 싶을 정도.
‘진짜 박을까?’
좋아할 것 같은데.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 당하린이 허망한 얼굴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 것이 보였다.
“두 달간, 무당에서 편히 지내주게나. 단, 무당을 떠나는 건 허락하지 않을 걸세.”
“자, 장문인...?”
사실상 내게 따먹힐 때까지 여기 갇혀있으라는 선고.
알아서 내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소율에게 무한한 사랑이 샘솟았다.
“본녀를 그리 심하게 모욕해놓고,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겐가? 창기니, 계집이니?”
“...죄, 죄송, 합니다.”
“가보시게.”
당하린이 다급히 고개를 숙이고 방을 뛰쳐나가자.
이가령이 서둘러 그녀의 뒤를 따라가려는 것이 보였다.
“가령 소저.”
“네, 네엣?!”
“잠깐 이야기 좀 하시죠.”
겁먹은 토끼 같은 그녀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