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115화 (115/230)

‘춘약도 독으로 치는 건가?’

따지고 보면 독같은 게 맞긴 한데.

뭐 이런 뉘앙스의 이야기도 있잖은가.

‘약이 과하면 독이고, 독도 잘 쓰면 약이다.’

뭐가 됐든, 춘약도 암혈심법에 해당된다는 건 나쁘지 않았다.

거기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춘약은, 공화춘이나 다른 춘약과는 조금 달라 보이니까.

‘뭐랄까... 엑기스같은 느낌인데.’

곤히 자고 있는 소율에게 한 번 시험해보려다가.

침까지 질질 흘리며 깊게 자는 모습을 보고 손을 거뒀다.

괜히 또 아침부터 발정나서 잡히면 답이 없다.

“새로 생긴 전속 시비 얼굴이나 보러가야지.”

손 끝에 모아둔 춘약 엑기스를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춘약병에 담고.

대충 옷을 껴입은 다음 혜원각을 나섰다.

그렇게 당하린의 숙소로 가던 길, 마주 올라오는 여자가 보였다.

“아... 백, 소협.”

“오, 마침 찾으러 가고 있었는데요, 당 소저.”

평소대로의 연녹빛 궁장을 입은 채 올라오고 있던 그녀.

빤히 바라보던 당하린이 내게 조심스레 포권을 올렸다.

“...아침, 드셨습니까.”

이왕 하기로 한 거 제대로 하려는 건가.

저 꾹 감긴 실눈에 무슨 꿍꿍이가 잠들어있을지 상당히 궁금했다.

“아뇨. 혹시 요리할 줄 아십니까?”

“...어느 정도는요.”

“그럼 부탁드리죠. 당 소저의 숙소에 주방이 있을 겁니다.”

잠시 뒤 얼렁뚱땅 도착한 숙소의 주방.

당하린이 오묘한 얼굴로 계란볶음밥을 만드는 것이 보였다.

“이정도 양이면...”

“세배는 더 하세요. 모실 분의 양 정도는 아셔야죠.”

“...알겠습니다.”

“그럼 만들면서 이야기나 좀 나눠볼까요.”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풋고추를 장에 푹 찍어먹으며 말을 이었다.

“기본적으론 제가 해달라는 걸 해주시면 됩니다. 그게 뭐든 간에.”

“알겠습니다. 단... 가령은, 이제 건들지 말아주세요.”

“그렇잖아도 그럴 겁니다. 애초에 본인이 직접 벌을 받는데, 뭣하러 부외자를 건드리겠습니까.”

어차피 안 건드리면 수일 내로 알아서 찾아올 거다.

보지는 잔뜩 적시고, 얼른 박아달라고 울어대면서.

안도하는 듯한 당하린의 표정을 보며 덧붙였다.

“스스로 찾아오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가령이, 고작 그런 육욕 따위에 져서 사내를 찾아갈 일은 없을 겁니다.”

가지말라고 쫀득하게 달라붙던 보짓살이 아직도 선명한데 말이야.

뭐라 더 놀리진 않고 요리하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리고 제가 어디 가자면 같이 가고, 뭐 그래주시면 됩니다. 소유랑 세령이 슬슬 배가 많이 불러서, 쉬게 해주고 싶거든요.”

점점 불러오는 그녀들의 배를 보면 감회가 새롭다.

이렇게 이쁘고 가슴 큰 처자들이 내 여자인 것도 신기하고.

그녀들이 내 아이를 밴 채 행복하게 웃는 모습도 신기하다.

가끔은 이게 전부 꿈만 같아서, 조금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소율도 슬슬... 봉룡지회가 얼마 안남았으니, 바쁘다고 하더군요.”

“...그렇군요.”

“그러니 많이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백일간.”

“...네. 다됐습니다.”

생각보다 요리를 잘하는 모양새.

김이 모락모락나는 중화풍 계란볶음밥이 내 앞에 놓여졌다.

‘딱히 독을 넣는 것 같지는 않고.’

뭐라뭐라 씨부리면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딱히 하독하는 모습도 안 보였고, 내공의 움직임도 없었다.

‘암혈마라신공은 결국 신공이니까, 내기를 움직임이 있을 텐데...’

혹시 모른다. 내가 모르는 방법이 있을지도.

암혈심법을 개량한 내 버전 흑혈심법을 운용하며 볶음밥을 크게 한술 떴다.

“음음...”

“...입맞엔 맞으신지.”

“...잘하시는데요.”

개맛있는데?

가끔 소율이 밥을 해주는데, 겨우겨우 먹을만한 수준인 거에 비하면 천상의 맛이었다.

‘괜찮아, 소율인 요리 빼고 다 잘하니까.’

어젯밤부터 적잖이 기력을 소모한 탓에 볶음밥은 술술 잘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예상한대로, 반쯤 먹기 시작하자 미묘한 맛이 안에서 돌았다.

아주 조용히, 목구멍을 넘어가 뱃속부터 전신으로 퍼지는 오묘한 기운.

나는 직감적으로, 당하린이 나와의 싸움을 오래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 소저도 뭐 좀 드시지.”

“괜찮습니다.”

기미를 시켜봤자 어차피 자기 독인데 통할 리가 없었다.

대신 약간 식사 속도를 늦추며 당하린의 독을 천천히 흡수해갔다.

‘큽...’

그러다 갑작스레 퍼지기 시작하는 독기.

잠자고 있던 용을 건드린 것 마냥 화끈하게 터져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백 소협?”

입가에 흐르는 검붉은 핏줄기에 당하린이 놀래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내가 뒤지면 자기도 좆되게 생겼으니 급하겠지.

“혀를, 씹었군요.”

“...혀를 누가 그렇게, 아니. 그, 혹시 모르니 잠시 진맥을...”

하지만 나도 뒤질 생각은 없었다.

빠르게 그녀를 제지하고, 흑혈심법으로 독기운을 야금야금 깨물어 없애갔다.

‘대체 뭔 독이야, 씨발...’

느낌상 시한폭탄처럼 텀을 두고 발동되는 독인 듯 했다.

그걸 내가 처먹겠다고 건드렸다가 곧바로 터진 거고.

차츰차츰 독기운이 흑혈심법에 소화되는 것을 느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진맥이요? 혹시 독이라도 쓰셨습니까?”

“...아, 아뇨.”

순간 새파랗게 질렸다 돌아오는 그녀의 안색.

시커먼 피부라 검은색 독기가 보이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안 넣었습니다. 괜히, 혀 깨물다 죽으면 모두 제 탓처럼 보일 테니 물어본 겁니다.”

“그럼 물 좀 가져오세요.”

“...네.”

역시나 위험한 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첫날부터 이지랄을 하다니.

나도 첫날부터 좀 굴려줄 생각은 있었는데, 이건 좀 많이 아프다.

“크흐...”

그래도 점점 진정되어가는 독기.

심호흡을 하며 흑혈심법에 녹아든 독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많이도 처넣었네, 씨발.’

거진 한 컵 정도에 가까운 분량.

내 몸뚱아리가 커서 많이 쓴 건지, 아니면 그냥 빨리 날 죽여버리고 싶은 건지.

당하린이 물을 떠오기를 기다리며 볶음밥을 싹싹 비워냈다.

*

‘...대체 뭐죠?’

가벼운 내기의 흐름, 그리고 이어진 백무진의 각혈.

워낙 까만 피부 탓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독이 스며들어 죽은 피였다.

‘무언가의 심법? 아니면 배운 무공의 효능?’

무당파의 그 어느 심법과 무공도 독을 치유하는 것은 없었다.

장문인인 천극혜검 정도라면 자력으로 독기를 뽑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그녀마저도 해독하지 않는다면 결국 죽음에 이를 것이다.

헌데 사내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식사를 이어갔다.

‘환혼미령독(幻魂迷靈毒)을 이리도 쉽게?’

당가 비전의 극독.

인간의 뇌에 작용해 환상을 보이게 하고, 결국은 미쳐 백치로 만드는 극독.

그 작용들을 적절히 완급시켜 백무진의 정신을 완전히 손아귀에 쥐려했는데.

이래서야 첫 단추부터 틀어지고 말았다.

‘...무언가의, 영약이나 환단을 먹고 온 걸까요.’

장문인의 기둥서방이니 그정도의 지원이 있을 수 있었다.

자신을 의심해 보낸 것일 테고.

아까 느껴진 내기의 흐름은 영약같은 것을 흡수하기 위해 사용한 거겠지.

그렇다면 기회는 많았다.

제조된 독이 아닌, 자신의 내공이 독 그 자체였으니까.

‘어디,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보죠.’

당하린은 사내가 부탁한 물을 대접에 한가득 받아 돌아갔다.

“오, 고맙습니다.”

그 짧은 새에 돌아온 혈색.

환혼미령독을 중화시킬 정도라면 강한 약향이나 영약 특유의 정순한 기운이 느껴져야할텐데.

너무나도 깨끗한 모습에 다른 의심이 들었다.

‘혹시, 가령이 암혈심법을...’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위해 희생한 가령을 의심하다니.

그리고 애초에, 암혈심법 따위로 암혈마라신공의 독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신공이고, 절학인 것이다.

“우물우물, 아! 먹고 우의각으로 갑시다. 그 궁장도 괜찮긴 한데, 한여름에 너무 덥잖아요?”

“괜찮...”

“아뇨. 사양하지 마세요. 한 벌 선물해 드릴테니.”

역겨운 낯짝으로 명령하는 꼴이라니.

분노를 삼키며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

내 내공 속을 떠돌아다니는 정체불명의 독.

그것을 흑혈심법이 조금씩 소화해가며 진화하는 것이 느껴졌다.

‘독 자체가 암혈마라신공의 일부라 그런가?’

안그래도 한번은 따먹어야 신공을 익힐 수 있었는데, 이정도면 독만으로도 어느 정도 수준이 올라갈 듯 했다.

“...이딴 걸, 입으라구요?”

“네.”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우의각주가 내가 주문한 옷을 만들어 가져왔다.

탄탄한 몸매에 잘 어울리는 연녹색의 시스루 치파오.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큭...”

소율의 옷처럼 짧은 치맛단에, 안쪽의 속곳이 훤히 보이도록 제작한 시스루였다.

거기에 착 달라붙어 그대로 라인이 드러나는 천박한 옷쪼가리.

감긴 실눈으로도 적잖이 당황한 것이 그대로 보여졌다.

“저를, 뭐라고 생각하는...”

“제 수발을 들 시비요. 더한 수발도 들으셔야 하는데, 벌써 포기하시렵니까?”

“...쓰레기 자식.”

자그맣게 들려오는 욕을 곱씹으며 당하린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기다렸다.

곧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고 들어온 그녀.

“역시 잘 어울리십니다. 근데, 속옷은 왜 안 입으셨습니까?”

“그딴, 그딴 걸 속옷이라고...!”

“어서 입고 오세요. 마음 바뀌게 하지 말고.”

“...개새끼.”

이젠 대놓고 욕을 하는 당하린.

솔직히 속곳은 내가 뭐도 욕을 먹을만한 디자인이긴 했다.

‘저 시스루에, 마이크로 비키니면 어쩔 수없지.’

아주 바람직한 현대의 복식을 참고해 만든 당하린 전용 복장.

원래라면 상당히 눈치를 볼만한 복장이지만, 장문인인 소율부터가 그런 천쪼가리를 입고 다니니 거리낄 건 없었다.

“크흑... 이런, 이딴 걸...”

“오.”

상당히 부끄러운지, 가슴과 비부를 팔로 가린 그녀.

오히려 안 입은 것처럼 보여서 그녀의 의도와는 다르게 더 꼴려졌다.

“흠.”

“윽...?”

그리고 그런 내 정신상태를 반영해 수직상승하는 아랫도리.

단단하게 부푼 자지가 느껴졌다.

어차피 결국은 하게 될 거, 미룰 필요 없겠지.

당하린도 빨리 내 자지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다.

“...본의 아니게 커졌군요.”

“...”

나는 의자에 편안히 걸터앉아, 당하린을 불렀다.

“소율도 세령도 소유도 없으니, 처리해주셔야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