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신공.’
당연히 실제로 본 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무공 실력과, 원작의 묘사로 인해 나는 알 수 있었다.
주서현은 지금, 음양신공을 사용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은공, 은공하며 부르던 게 전부 연기인가?
아니면 그녀가 운휘의 가르침을 받아 다시금 스스로 음양신공을 얻어낸 걸까?
‘아니, 그럴 리가.’
본능적으로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주서현이 배우고 있는 건 운휘의 태청검법과 태청신공.
장문인의 직계만 배울 수 있는 태극혜검과 태극신공과는 엄연히 다른 무공이다.
태극이라는 원류는 같겠지만, 결국 나뉘었다는 건 가르침 자체가 다르다는 것.
그녀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음양신공을 만들어내기 위한 재료 자체가 부족하면 만들어낼 수 없다.
‘물론 진짜 엄청난 천재라 가능할 수도 있지만...’
더군다나 그녀가 음양신공을 발휘하는 건 원작의 중후반부.
깨달음과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금으로선 절대 불가능하다.
허나 방금의 모습은 음양신공이 경지에 다다랐을 때 보여지는 신묘한 현상.
원작 자체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는 지금의 나는,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 추측했다.
‘원작을 기억하고 있는 거야.’
모종의 수단이든, 아니면 그녀가 기억해낸 것이든.
주서현은 지금 원작의 주서진의 기억을 갖고 있는 거다.
복잡해지는 머리에 잠깐 자리를 피할까 싶던 찰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시죠?”
“백무진이오. 미안하오, 수련에 열심이길래 밖에서 조금 기다렸소.”
“아... 은공이시군요.”
주서현이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다가왔다.
물기에 젖은 듯 고혹적인 자태와 아름다운 얼굴.
새카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려나?’
그녀가 원작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의 나는 완전히 생뚱맞게 등장한 놈일 거다.
또한 내가 그녀의 것을 빼앗았다 생각할 수도 있을 거고.
실제로 ‘주서진’과 인연을 맺을 모든 것들을 내가 취했으니까.
‘씹... 근데 그럼 안쪽은 남자 아닌가?’
그런 주제에 은공, 은공거리면서 야릇한 눈길로 나는 괜찮다고?
산적년들이랑 보비면서 성 정체성이 조금 뒤바꼈나.
‘아니면...’
원작을 어떻게 알게 되었든 간에, 그걸 아직 믿지 못하는 걸 수도.
무공은 무공이니 어쨌든 간에 한 번 해본 거고, 나머지는 아리까리한 상태일 수도 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세계와는 완전히 딴판일테니.
“은공,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요?”
너무 생각에 빠져있었나 보다.
나는 빙긋 웃으며 답했다.
“방금 전 이장로께 연락이 왔소. 제자인 주 소저는 응당 알아야할 듯 해서.”
“말씀 하시지요.”
“올라가서 합시다. 다들 모여있소.”
“...네.”
곧 그녀가 하얀 도포와 검을 패용하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무당에 새겨넣은 복종의 태극문양이 아닌, 수수한 장식 하나 없는 깨끗한 도포.
새하얀 눈밭처럼 고결하고 순결한 미(美)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순간 내가 할 일이 뭔지 명확해졌다.
‘이것저것 잴 필요있나.’
원작이 어쨌고, 주인공이 어쨌고.
전부 쓰잘데기 없는 소리다.
여기는 내 세상이니까.
‘넷째 부인 후보 등록이다.’
뻐근하게 달아오르는 자지를 달래며 혜원각으로 향했다.
곧 혜원각에 도착하자, 입구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당하린이 득달같이 내게 달려왔다.
“오셨어요, 주인님.”
“그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며 주서현의 기척을 살폈다.
생각외로 크게 놀라지는 않는 모습.
‘뭐, 당하린은 며칠 보면서 익숙해졌겠지.’
여름날 백사장에서도 보기 힘든 파격적인 마이크로 비키니에, 얇은 망사로 된 연녹빛 치파오.
계단을 올라가는 그녀의 뒷태에 분홍빛 뒷구멍이 훤히 보였다.
“올라가지. 따라오시오, 주 소저.”
“아... 네.”
아니네, 놀란 거 맞구나.
주서현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냥 옷이 개변태같아서 그런가...’
그건 뭐 차차 알아가면 될 것이고.
혜원각의 집무실에 들어가자, 내 보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퍼뜩퍼뜩 좀 오거라. 사내놈이 게을러가지고.”
“아, 주 소저도 오셨군요.”
“서현 언니, 안녕인 것이에요.”
소율에게 먼저 포권을 하고, 남은 이들과 인사를 나누는 주서현.
내가 다가가 소유와 세령을 끌어안아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흠...’
살짝 떠볼까 싶어 확실히 예전보다 커진 둘의 젖가슴을 부드럽게 주물렀다.
“오라버니이!”
“그래그래. 세령도, 쪽. 흠, 가슴이 더 커진 것 같은데...”
“움, 응... 스승님도 계신데... 무진...”
“까망이 밥 주려고 커지는 것이에요.”
“그런가. 까망인 좋겠네. 맘마가 이렇게 많아서.”
“에헤헷.”
그렇게 대놓고 주물러대자 결국 내 등짝을 갈기는 소율.
“작작 좀 하거라, 쫌!!”
“아잇...”
나는 따가운 등짝의 고통을 상쇄하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그러면서 슬쩍 눈을 돌렸는데, 주서현이 고개를 돌린 채 심호흡을 하는 것이 보였다.
“흐으, 흐으... 후...”
금방 원래의 호흡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분명한 동요와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노골적인 변태커플을 보고 낼법한 반응은 아니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진 후 둘을 놔줬다.
헛기침과 함께 나를 째릿하면서 말을 잇는 소율.
“큼큼, 낯부끄러운 짓은 그만들 하고. 전서에 따르면 이장로가 본거지를 찾았다고 하는구나. 곧바로 돌입할 생각이다.”
“안쪽에 있답니까?”
“그래. 양광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는구나.”
나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서문비연이 납치당한지 벌써 일주일째다.
저번에 내가 만령곡에 떨어졌을 때의 일을 떠올리면, 양광은 충분히 서문비연을 데리고 도망갈 수 있었다.
당가의 지독한 추격을 뿌리치고 결국은 도망친 놈이니까.
“일부러 알려준 듯 합니다만.”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도 없지. 심지어 호북성 인근의 야산이다.”
이정도면 그냥 대놓고 오라는 수준이다.
“그래서... 무진이 너를 보내기로 했다. 섣불리 제자들을 보내봤자 의미가 없고, 양광이... 혹시라도 너를 기다리는 걸 수도 있으니.”
“스승님.”
“걱정하지말거라, 세령아. 본녀도 몰래 뒤따를 예정이니.”
걱정스러운 듯 나를 꼭 껴안는 세령.
소율이 괜찮다며 말을 이었다.
“싸운다면... 본녀와 무진이가 합공해서 기필코 녀석을 죽여버릴 것이고. 도망친다면... 지금은 그걸로 족하겠지.”
“...네, 알겠습니다.”
“아무튼, 무진이만 가는 것은 아니다. 두 명이 더 갈 게야.”
소율의 말이 끝나고 조금 뒤 두 여자가 들어왔다.
공손히 소율에게 포권하는 천화령과 팽가인.
그리고...
‘쟤는 왜 저래?’
바짝 얼어붙어있는 주서현.
의아함을 감추며 잠자코 소율의 말을 들었다.
“팽 소저, 천 소저. 무진이를 도와 서문 소저를 구해내주시게나.”
“물론입니다. 그 악적을 제 손으로 반드시...”
“네, 장문인. 백 소협을 물심양면으로 돕겠습니다.”
“그럼 계획을 설명하지.”
주서현은 소율의 설명이 이어지는 내내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 이유를 짐작하려 해봐도, 아무것도 알고 있는 게 없으니 아리송할 뿐.
‘안쪽의 인물은 전부 주서현이 알만한 인물이다.’
원작의 기억이 있다는 가정하에.
그렇다면 남은 건 천화령인데...
확실히 저 여자는 나도 기억에 없는 인물이다.
‘뭔가 숨기는 게 있나?’
내가 원작을 뒤틀어서 나온 결과물이라 생각했는데.
천화령도 조금 더 주시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하아, 하아...”
주서현이 저렇게 당황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잠시 뒤 소율이 계획 설명을 마치고.
최종적으로 나와 팽가인, 천화령과 주서현이 운휘를 추적해 서문비연을 구해내기로 결정했다.
주서현의 참가는 전적으로 그녀의 의지였다.
“별 일 없을 게야.”
“스승님...”
“사숙만 믿겠다는 것이에요...!”
소율을 안 믿으면 누굴 믿으려고 소유야...
떠나기 전 잠깐의 정비 시간, 내게 누군가 다가왔다.
“...은공.”
“아, 주 소저. 무슨 일이시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직 팽가인과 천화령이 준비중이니 나는 그녀를 따라나섰다.
인적 없는 곳에서 멈춰선 주서현.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천화령, 그녀가 누군지 아시나요?”
“아, 주 소저는 모를만 하오. 저번에 팽가인 소저를 도와 양광과 맞선 소저요.”
“...그렇군요. 그럼, 그전의 행적은...”
그녀는 운휘가 떠나간 뒤 일주일간 두문불출했으니 천화령을 모를만 했다.
하지만 겨우 그런 걸로 그렇게 사시나무 떨 듯 불안해 하지는 않았을 터.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을 꺼냈다.
“일인전승으로 무예를 익힌 여인이고, 성격 또한 그리 모나지 않아보였소. 서문 소저를 구출하는데 충분한 전력이 될 것이오.”
“...네. 혹시 몰라... 말씀드렸어요.”
“걱정마시오. 뜻밖의 일이 발생하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으니.”
“...알겠습니다.”
곧 준비를 마친 팽가인, 천화령과 함께 운휘가 보낸 장소로 이동했다.
*
“그때 보았던 계집이로구나.”
“노괴, 죽지도 않고 살아있군. 그 더러운 목숨줄은 언제쯤 끊을 예정인지?”
“교주가 부여하신 천명을 다 이룬 후!”
호북 인근의 야산.
붉은 장포를 걸친 자그마한 소년과, 현기가 가득한 눈으로 아이를 노려보는 도사가 있었다.
아이의 주변에 일렁이는 강대한 핏빛 기운과.
도사의 오른손에 맺힌 푸른 빛의 검.
일촉즉발의 상황.
소년이 먼저 기운을 거두었다.
“...무슨 꿍꿍이지, 양광?”
“사실 말이다. 원래라면 본좌가 이곳에 있어선 안된다.”
“당연한 소리를...”
“허나, 본좌가 겪은 패배의 수치가 발을 묶는구나. 놈의 면상을 한번 보고싶다.”
운휘는 직감적으로 양광이 얼굴을 보고싶다는 ‘놈’의 정체를 깨달았다.
장문인의 제자이자, 자신에게 여자의 기쁨을 알려준 사내.
“그럼 더더욱 당신을 쓰러트려야겠군.”
“큭큭, 애송이년이 절대에 발 좀 걸쳤다고 오만해졌구나.”
“다 늙어빠진 노괴의 모가지를 비틀 정도는 되지.”
다시금 살벌하게 맞붙는 두 사람의 기운.
하지만 이내 운휘가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먼저 나서려는 순간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휘 장로님.”
“서문 소저!”
양광의 뒤에서 서문비연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부상이 심하다 들었는데, 그런 것은 일절 없이 건강한 모습.
다만 얼굴이 조금 상했고, 눈동자에 진한 두려움이 엿보였다.
“천방지축 날뛰지 말고 가만히 있거라. 놈의 얼굴만 본다면 이 계집을 멀쩡히 보내주지.”
“지랄하지마라, 노괴. 분명 생사혈고를 서문 소저의 뱃속에 넣어뒀겠지.”
“크큭, 그때 혈고가 잘 들어갔으면 지금쯤 네년이 본좌의 하초를 물고있었을 텐데 말이다.”
“닥치거라."
양광의 음담패설에 발끈한 운휘가 검을 쥐었지만.
서문비연이 그 앞을 막아섰다.
“그만, 둬주세요... 장로님.”
“...제기랄.”
그렇게 잠시간의 대치상태가 이어졌고.
곧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한 기운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허어, 그 시커먼 자식이 대체 만령곡에서 뭘 처먹고 나온 것이야.”
“세간에서 기연이라 부르는 것들이겠지.”
“흐으, 그래. 이쯤은 되야 본좌가 진심으로 그 명줄을 끊어줄만 하지.”
양광은 호승심이 끓어오르는지 잔악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뒤, 네 개의 인영이 둘의 한가운데에 가라앉았다.
“하...”
마치 거신이 일어나는 듯 커다란 체구.
밤하늘처럼 새카맣게 약동하는 근육질의 피부.
양광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소리쳤다.
“이놈!! 역시 살아있었구나!! 혈교가 재림할 그때, 반드시 네놈을...”
“좀 닥쳐라, 소아성애자 새끼야!”
흑색의 빛줄기가 양광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