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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133화 (133/230)

묵묵히 포권을 하는 오도결.

느끼한 미소를 짓는 남궁악.

이제 보니 그 둘이었나.

‘하긴, 당하린이 이틀 전인가에 다들 도착했다고 보고해줬으니...’

명색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후계자들이라 무당에서 따로 숙소를 내줬었다.

딱히 찾아가볼 이유도 없기에 관심도 안두고 있었는데...

“이제 소저의 이름을 여쭤봐도 되겠소?”

자신감 넘치는 말투에 주서현이 떨떠름한 얼굴로 답했다.

“...저는 주서현이라 합니다.”

“이름도 참으로 아름다우시오.”

“...네.”

멀리서 보고 있으려니 헛웃음이 났다.

한 편의 촌극이 따로 없는 상황.

남궁악이 금테가 둘러진 고급진 초대장을 한 번 더 주서현에게 들이밀었다.

“아까는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소. 사과드리오.”

“저는 딱히 관심이...”

“설명하자면, 봉룡회는 봉룡을 꿈꾸는 자들과, 나와 친우처럼 이미 봉룡의 위(位)를 얻은 자들이 서로 친목을 다지는 모임이오.”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소저의 미모와 무예가 범상치 않으니, 본인이 직접 초대하는 것이외다.”

마치 너한테 엄청난 기회를 주는 거라는 듯 거만한 표정.

주서현도 그런 느낌을 읽었는지 미간이 좁혀지는 것이 보였다.

“벌써 무희봉 연화란 소저도 참가하기로 했고, 무당에 있는 다른 봉룡들에게도 본인이 직접 연락을 할 것이오.”

“그럼 그쪽으로 가시면 되지 저를 왜...”

“경지에 오른 자로서 알 수 있소. 주 소저라면 분명 봉룡회의 기둥이 될만한 여인이라는 것을!”

주먹까지 그러쥐며 제발 참가해달라고 성토하는 남궁악.

딱 봐도 주서현의 얼굴에 홀라당 넘어간 게 분명했다.

“그러니 주 소저께서 나와서 자리를 빛내주시면 정말 고맙겠소.”

상당히 집착이 강한 새끼였다.

근데 저 새끼 시발 세령이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

‘뭐 포기해주면 나야 편하긴 한데...’

왠지 모르게 내 여자가 까인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주서현도 내 여자가 될 사람인데 말이지.

이미 내 거라고 영역표시도 해놨잖은가?

나는 천천히 그쪽으로 발걸음을 떼며 대화를 계속 엿들었다.

“...됐습니다.”

“이런 기회는 다신 오지 않을 것이오. 봉룡회의 후기지수들이 언젠가 무림을 제패하는 때에, 주 소저께선 그 역사의 어느 한 귀퉁이에도 실리지 않을 것이오.”

이젠 되도 않는 개소리까지 떠들어대며 주서현을 협박하는 남궁악.

오도결은 벙어리 새끼라도 되는지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보였다.

‘뭐하는 새끼지 쟤는?’

원작에선 주인공이 여자만 끌고 다니기에 봉룡지회 이후로 나오는 일이 없는 녀석이다.

본격적인 대회가 열리고서 주인공에게 패배하는, 이미 결과가 정해진 역할.

어차피 여기서도 바뀔 건 없으니 다시 시선을 돌렸다.

“하... 비키시라구요.”

주서현의 얼굴이 점점 싸늘해지고 있었다.

대의를 위해서 뷰지에 정액토핑까지 마다하지 않는 착한 여자를 저렇게까지 만들다니.

“한 번만 생각해보시오. 이미 혈교의 위협이 수면 위로 올라온 바!”

남궁악은 그것도 모르고 열변을 토해냈다.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 무림을 이끌어갈 후기지수끼리 친목을 도모하자는 게 그리 싫소?”

“자꾸 이러시면... 참지 않겠습니다.”

“하하핫! 소저께서 실력에 꽤나 자신이 있어보이지만, 봉룡의 자리에 오른 본인에게는 안될 것이외다.”

진짜 답없는 새끼구나 저거.

아무래도 봉룡지회 전에 한 번 조져둘 필요가 있어보였다.

“...소협의 탓입니다.”

그리고 결국 고개를 저은 주서현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후후, 본인이 이기면 참가해주시오.”

뻔뻔한 남궁악의 대답과 함께 둘이 살짝 거리를 벌렸다.

아무리 그래도 초절정에 다다른 자들의 대결.

순식간에 둘 사이에 날카로운 기파가 회오리치고, 오도결이 잠깐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삼 수 양보해주겠소.”

“...”

남궁악의 말이 같잖은지 대답조차 안하는 주서현.

녀석은 그게 긴장한 탓이라고 느꼈는지 또다시 느끼한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더 이상은 내가 좆같아서 못 견딜 것 같았기에.

폭풍처럼 회오리치는 기파 사이로 가볍게 한 발 내딛었다.

콰가가각!!

“...뭣? 갑자기 어디서...”

“으, 은공! 위험한... 아...”

당황한 듯한 둘의 말투.

고수들이 내뿜는 기파 사이에 들어가는 건 상당히 위험한 행위다.

살의와 투지가 기(氣)에 섞여서 휘몰아치는 공간이기에, 자칫하면 큰 사단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

하지만 이정도 수준에선 내게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런 것쯤, 내공으로 누르면 그만.’

주변에 칠흑색의 내기를 흘려내며 기파를 중화시켰다.

압도적인 내기의 힘으로 찍어누르자 금세 잠잠해지는 공간.

남궁악은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고, 주서현은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 그쪽은 누구...”

나는 남궁악을 쳐다보며 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칼 치워, 새끼야.”

“...새끼? 무례하시구려. 이건 가벼운 대련이오. 그리 위험한 것은...”

“무당산에서 무당의 제자에게 칼을 뽑는다라. 누구 허락을 받고?”

“큭...”

살짝 당황한 듯한 녀석이 대꾸했다.

“댁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말을 할 권리가 있소?”

“있지 그럼.”

장문인 제자에 애인에, 장로들 기둥서방인데.

무당파는 이제 내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 헛소... 아니, 잠깐...”

그제야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지, 미간을 꿈틀거리는 남궁악.

오도결 또한 묵묵하던 아까까지와는 달리 눈빛을 빛내며 남궁악에게 귓속말을 하는 것이 보였다.

“특이한 머리칼, 새카만 피부와 흑색의 내기. 저자가 흑룡 백무진인 듯하오.”

“흑룡...?”

“...다 들리는데.”

“귀가 좋으시구려.”

음... 꽤나 당당한 프렌즈구나.

그래도 남궁악보단 나았기에 이내 시선을 돌렸다.

칼을 집어넣고 언짢은 표정으로 손을 올리는 녀석.

“커흠... 이거참,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흑룡 소협을 뵈어서 영광이오.”

“칼 뽑은 건 봐줄테니 돌아가라.”

“...소협이 아무리 장문인의 제자라 하여도 본인을 그렇게 무례하게 대하는 건...”

“두 번 말 안한다, 남궁악.”

딱딱하게 굳어가는 남궁악의 얼굴.

어차피 나도 봐줄 생각은 없기에 거침없이 도발을 감행했다.

“주둥아리에서 악소리 나오기 싫으면 조용히 숙소로 돌아가.”

“으, 은공. 저는 괜찮으니...”

“하핫, 그렇군. 주 소저의 앞이라 강짜를 부리는 것이오?”

주서현의 말림을 어떻게 알아들은 건지.

남궁악이 개소리를 시전하며 웃었다.

“영웅은 호색이라. 흑룡이라는 허명이 남아있을 때 어떻게든 해보려는 것, 이해하오.”

“...”

“분명 세령과 소유에 대한 이야기도 거짓말이겠지. 회임은 무ㅅ, 커흡!!!”

순식간에 움직인 내 몸이 남궁악의 턱을 쥐고선 가볍게 들어올렸다.

짧은 신음과 함께 단숨에 내게 제압당한 남궁악.

“이놈!!”

초절정이라는 말이 구라는 아닌지 다급히 검을 출수하려는 것이 보였다.

“내가 악소리 나오게 해준다고 했지, 씹새끼야.”

두터운 손아귀가 남궁악의 손을 감쌌다.

칼의 손잡이를 쥔 채 그대로 내게 붙잡힌 녀석의 손.

“끄아악...!”

힘을 주자 뚜둑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압착되듯 남궁악의 손이 뭉개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박살을 내줄까.”

“은공!!”

주서현이 한달음에 달려와 내 손을 붙잡았다.

뒤이어 남궁악의 턱을 쥔 내 팔뚝에 손을 올리는 오도결.

그가 고개를 숙였다.

“남궁형을 대신해 사과하겠소.”

“아아악!! 그만, 그마안!!”

“받기 싫은데?”

빠각. 침묵 속에서 은은히 울려퍼진 파골음(破骨音).

결국 내 손아귀힘을 이기지 못한 남궁악의 손가락 하나가 부러졌다.

“이 개새끼! 씨발새끼가아아!! 끄으으...!!”

광분하며 이리저리 몸을 비트는 남궁악.

여리여리한 남자 새끼가 몸을 조금 흔들어봤자 내 팔엔 미동조차 주지 못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녀석을 보며 나를 말리는 둘.

“은공, 이만하면 남궁 소협도 알아들었을 거에요. 그만두세요.”

“...충분히 악소리가 나오지 않았소.”

“흠.”

“남궁형도 손가락 하나로 깨달음을 얻었으니 자중할 것이오.”

마음 같아선 5개 전부 다 부숴주고 싶은데...

그래도 여기보단 제대로 된 무대에서 박살내는 게 재밌을 것 같긴 했다.

“남궁 친구야. 여기 오도결이라는 동생이 살려준 거야. 알아들어?”

“끄으... 닥쳐라! 남궁이, 남궁이 네놈을...”

빠악!

“컥... 오, 오...”

“이쯤에서 봐주시오, 흑룡.”

풀썩. 남궁악의 고개가 꺾였다.

남궁악의 발악에 내 미간이 꿈틀거리는 순간.

오도결의 두툼한 손날이 녀석의 뒷목을 강하게 내리쳤기 때문이다.

“헉...”

놀랬는지 숨을 삼키는 주서현.

나는 오도결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왜 이딴 새끼를 따라다니는 거냐?”

내가 손을 놓자 남궁악이 그대로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런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오도결.

이내 자리에 앉아 남궁악의 손가락을 짜맞춰주는 것이 보였다.

뚜둑.

“음... 깔끔하게도 부러트리셨구려.”

응급처치를 마치더니, 이젠 아예 남궁악을 업어준다.

착잡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 오도결.

“어렸을 땐 남궁형이 이렇게 모질이같진 않았소.”

“음...?”

“자신의 한계를 알아차리고 나선 조금씩 변해갔지.”

작은 고추의 한계를 깨달은 건가.

하긴 남자는 백날 노력해봐야 적당히 재능있는 여자들보다 못한 게 이 세계니까.

“최근 경지에 올라 과욕을 부리는 것 같소. 이해해주시길.”

“말 잘하는데 왜 아까 추태를 부릴 땐 안 말렸지?”

“동생으로서 형님이 하는 일에 딴지를 걸 수는 없는 법.”

생각보다 의리 넘치는 새끼였다.

아무래도 떡협지다보니 남자놈들한테는 포커스가 안 맞춰지는데.

이런 성격이었구나.

“그럼 가보겠소.”

“살펴가라.”

꾸벅 고개를 숙이고 떠나가는 녀석.

그와 함께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려는 주서현을 붙잡았다.

“...으, 은공, 놔주세요.”

“부끄러워서 그러시오? 왜 자꾸 나를 피하는 거요?”

“그, 그런 건 아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그리 노골적으로 피하면 상처받소. 설마 그때의 일 때문에 그러시오?”

입을 꾹 다무는 주서현.

나같아도 그런 일을 겪으면 피할 것 같긴하다.

그때는 어물쩍 넘어가도 곰곰이 곱씹어서 생각해보면 미친 변태짓이란 걸 깨달았겠지.

“그건 우리 둘 사이의 일이었고, 죽을 때까지 함구할 것이오. 다만 그 일 때문에 다른 것들이 불편해지잖소.”

“...죄송해요.”

민폐끼치고 있던 건 아는지 결국 미안하다 말하는 주서현.

커다란 눈망울이 축 처지는 걸 보니 발기를 참기가 힘들었다.

“아무튼, 장문인께서 주 소저의 봉룡지회 참가를 권하셨소.”

“...제게요?”

“주 소저 정도면 충분한 자격이 있소. 잘 생각해보고 이장로님이나 장문인께 뜻을 전해주시오.”

“...네, 생각해볼게요.”

“그럼 수고하시오.”

그렇게 미련없이 떠나려는 찰나.

주서현이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우물쭈물대더니 결국 개미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그녀.

“은공... 혹시 다, 다시 같이 수련해도 될까요...?”

“음, 양기가 필요하오?”

“네? 아, 아뇨! 그, 그런 이상한 짓말고... 평범한 수련이요... 아니, 네... 그, 양기가 조금 필요하기도 한데... 아으...”

손을 붕붕 저어가며 횡설수설하는 주서현.

결국 부족함을 느끼긴 한다는 거지.

오행 두 개로 만족할 수야 없지 않겠어.

“내 정을 파하는 것이 가장 효율이 좋지 않겠소?”

“으... 그, 그렇긴 하지만... 너무, 너무... 부끄럽잖아요...”

주서현이 귓불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겨우겨우 답을 쥐어짜냈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럼 이 방법은 어떻소?”

뷰지에 정액토핑을 강요하긴 조금 그렇고, 수위를 조금 낮춰보는 건 어떨까.

내 물음에 주서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어떤, 방법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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