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137화 (137/230)

“불안해보이시네요.”

“무슨 소리요, 연 소저. 본인이 연회의 주최자이거늘.”

“누가봐도 뭐 마려운 개처럼 보이는 걸요. 좀 더 진중한 모습을 보이시는 게.”

“크흠... 조언 고맙소.”

금룡전장. 호북성의 중앙 가까이에 떡하니 자리잡은 7층 전각.

그 안쪽으로 이어진 호화스러운 객잔에 수많은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공자님께서 사활을 거신 모양이야.”

“아무렴, 우리 남궁이 천하에 우뚝 설 수 있는 기초가 되지 않겠는가.”

“자자, 어서들 움직이게!”

봉룡회라 하여 봉룡만이 오는 것이 아니다.

당금 무림의 모든 관심이 쏠린 봉룡지회.

그곳에 참가할 많은 이들의 이목 또한 한꺼번에 쏠리니 결코 허투루 준비할 수 없는 것.

‘괜히 참가했나.’

그런 연회의 주최자인 남궁악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일테지만.

연화란이 보기엔 그저 똥 마려운 개처럼 보일 뿐이었다.

5년 전 봉룡의 위를 얻어 무희봉(武戱鳳)이란 별호를 받은 이후.

다시금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참가한 봉룡지회.

‘전부 참가할 거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더니...’

굳이 무당으로 가지 않고 이곳에 객으로 머문 탓일까.

아직까지 자신 빼고 도착한 이는 하나도 없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연 소저. 본인이 확실히 답장을 받았소이다.”

“...그러시군요.”

“진짜래도. 아무튼, 참가해주셔서 고맙소.”

“밥 몇 끼 얻어먹었으니 체면을 살려드려야죠.”

무미건조한 말투로 답해도 남궁악은 뭐가 그리 좋은지 자꾸만 엉겨붙었다.

“우리 봉룡들이 큰 걸음의 첫 주자가 되는 일이오. 수십 년전의 혈사 이후로 무림맹의 권위가 너무나 커졌소이다. 세가들의 힘도 줄었고. 시대의 주축이 되려면, 우리가 뭉쳐야하오.”

“흠...”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방식이 너무 노골적이었다.

사실 초절정에 이르렀다는 말에 조금 관심이 생겨 만나보기로 마음먹은 것도 있었다만.

‘생각이 너무 단순한 것 같네.’

무림맹의 늙은이들이 그런 노림수 하나 모를까.

차라리 저기 구석에서 조용히 신체수련이나 하는 오도결이 훨씬 나을 지경이었다.

결국 그냥 나가서 달이나 보려던 찰나, 바깥에서 푸르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궁악 또한 들은 모양인지 목소리가 커졌다.

“도결! 땀내 나게 그만 힘쓰고 와서 연 소저와 이야기좀 나누게나. 손님이 오신 모양이야.”

“알겠소, 형님.”

잠시 뒤 남궁 떠버리가 나가고, 오도결이 묵묵히 자신의 곁에 앉았다.

자신의 뚱한 얼굴을 봤는지 한 마디 붙여주는 오도결.

“미안하오. 원래 좀... 형님이 말이 많소.”

“뭐, 주최자께서 말을 많이 하셔야죠.”

“크흠... 그래도 헛걸음은 아닐 거라 생각하오. 형님의 뜻이 어쨌든 간에, 안면을 익히고 인연을 넓히는 것은 좋은 일 아니겠소.”

“...그렇죠.”

처음 강호에 나와 무공을 펼쳐냈을 때 얼마나 두려웠었는가.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지냈던 적이 없었다.

‘...혼자 버티기엔 너무 힘들었지.’

다행히 무림맹주의 눈에 들어 그 뒤로는 그나마 조금 나아졌지만.

그때 바깥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팽 소저, 서문 소저와 천 소저까지 참가해주시다니. 이 남궁모는 기쁨에 몸 둘 바를 모르겠소.”

두런두런 말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팽가인, 서문비연.

그리고 타는 듯 붉은 머리칼을 한 아름다운 여인.

먼저 일어나 손을 올렸다.

“오랜만이에요, 팽 언니, 서문 소저.”

“오! 연 매, 반가워!”

“...오랜만이네.”

이상하게 서문비연이 조금 의기소침한 듯했지만, 팽가인은 그대로였다.

“자자! 앉아서 차들 드시고 계시오. 곧 다른 손님들도 도착할 것이니.”

보아하니 봉룡뿐만 아니라 자기 마음에든 인물들은 전부 초대한 듯 싶었다.

‘하긴, 8명이 모이기엔 너무 자리가 컸지.’

잠시 뒤, 꽤 많은 인원들이 자리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다른 세가의 후기지수들도 있었고, 구파일방의 제자들도 남궁악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보였다.

확실히 주축이니 뭐니 떠벌릴 정도의 인맥은 가지고 있는 듯한 모습.

참여가 그래도 나쁘진 않다 싶은 순간, 교태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하하, 반가워요 연 소저. 전 천화령이라고 한답니다?”

“...반갑습니다. 연화란이라고 해요.”

“무희봉 연화란 소저, 맞나요?”

살랑이는 붉은 머리칼을 타고 아찔한 체향이 묻어나왔다.

연회가 아니라 홍등가에 왔나 싶을 정도로.

간신히 안색을 유지하며 답했다.

“부족하지만 그리 불리고 있습니다.”

“무희봉의 연검은 마치 뱀과도 같이 적을 쫓아 주살한다던데, 꼭 보고 싶네요.”

“연이 닿으면, 보여드리죠.”

“아하하, 좋아요. 그건 그렇고... 우리 남궁 소협이 가장 기다리는 손님은 언제 오려나요.”

남궁악이 가장 기다리는 손님이라.

단연코 그 여자, 선녀봉 백세령이겠지.

‘회임했다는 소문... 진짜일까?’

많은 여성 무림인들에게 회임은 약점 그 자체다.

더군다나 20대라는 나이에 일찍 임신하는 여무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정도.

‘임신 자체가 손해니까...’

한창 때의, 재능 넘치고 혈기 넘치는 시기에 무공 말고 다른 쪽에 정을 쏟는다니.

도대체 백세령을 그렇게 만든 사내가 누구일지.

“아, 왔나봐요. 말 울음소리가 들리네요.”

그에 다들 기다리기라도 한 듯, 시끄러웠던 연회장이 가만히 침묵으로 잦아들었다.

여기 모인 모두가 무림의 호사가들이 한 번씩은 떠들었던.

선녀봉과 유녀봉의 진실을 확인하고 싶을테지.

‘나도 없지 않아 있고.’

누군들 안 궁금하랴.

무려 현 정파의 기둥이라 불리는 두 절대고수.

천극혜검 담소율과 파천검선 소서화의 제자들이 회임을 했다는데!

‘그것도 한 사내에게 말이지.’

심지어 동향인도 아닌, 저멀리 이역만리의 곤륜인이라는 소문.

오늘 드디어 그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아하하하, 기대되네요.”

“...”

옆사람의 침넘김 소리까지 선명히 들리는 침묵.

연회장의 문이 열렸다.

“...아.”

“엥...?”

“반갑소, 시주들. 무양대사라 하오.”

“...누, 누구시오?”

잔뜩 긴장을 하고 있던 남궁악의 어벙한 질문.

자신을 무양대사라 칭한 남자가 답했다.

“방금 말했소만... 빈승은 아미파의 무양대사라 하오.”

“음, 봉룡회에 아미파는 초대한 적이...”

“봉룡회라 함은, 봉룡들이 주최하는 친목회 아니오?”

“...맞소.”

“빈승은 유녀봉 소소유 소저의 초대로 왔소이다.”

남궁악이 헤벌어진 입을 다물며 안색을 굳혔다.

봉룡회에 봉룡이 직접 초대를 했다는데, 그로서도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 그럼 유녀봉께선 어디에...”

“곧 들어오실 것이오. 배가 많이 불러, 거동이 불편하니 이해해주시길.”

무양대사의 대답에 연회장 안쪽에서 탄성과 탄식이 함께 터져나왔다.

‘유녀봉... 가슴이 컸지. 만두 머리가 인상적인... 우승자였어.’

몇 년 전의 그날, 출렁이는 커다란 만두를 보고 얼굴을 붉히지 않을 사내가 없었을 것이다.

연화란은 고개를 숙여 잠깐 자신의 가슴을 쳐다보고선 차를 들이켰다.

“후... 씨ㅂ...”

“...연 소저?”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이 빨간머리도 꽤 큰...

'시발.'

그리고 마침내, 문이 열리고 모두가 기다려왔을 한 여인이 등장했다.

흰색과 꽃무늬가 고아하게 어우러진 옷을 입고 등장한... 그야말로 선녀.

“오오...”

“아... 지, 진실이었다니...”

“아아...!! 선녀님...”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그럴만도 했다.

선녀봉 백세령의 배는, 누가 보더라도 회임한 것처럼 크게 불러있었으니까.

특히나 사내들이 격한 반응을 보이며 넋이 나간 얼굴을 했다.

이내 아기를 진정시키려는 듯 배를 가볍게 쓰다듬은 그녀가 살포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신경쓰시지 말고 남궁 소협이 주최한 연회를 잘 즐겨주시길.”

“...세, 세령.”

“남의 부인의 이름을 너무 쉽게 부르시네요, 남궁 소협. 애초에 저희가 그리 친근한 사이였나요?”

“부, 부인이라니... 혼례도 치루지 않았을텐데...”

“이미 백년가약을 맺었는 걸요.”

“아...”

남궁악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소문은 무성했지만, 결코 믿을 수 없었던 모습.

무당에 올라서도, 차마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보지 못했던 모습.

몇 년이고, 몇십 번이고 그리워하고 사모했던 여인이.

“거, 거짓ㅁ...”

“앗, 언니! 입구에서 뭐하는 것이에요!”

“아, 소유. 자리 찾고 있었지.”

“남궁허접! 당장 자리를 안내 안하고 뭐하는 것이에요!!”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령과 마찬가지로 부른 배를 이끌고 나타난 작은 키의 여인.

여전한 만두 머리와 만두보다 훨씬 풍만한 가슴을 출렁이는.

“소, 소유...”

“함부로 이름 부르지 말라는 것이에요! 어딜 허접 좆밥 주제에!”

“아, 아니...”

“시끄러운 것이에요!!”

"소유, 말 예쁘게 해야지."

"흥, 저런 멍청한 허접한테는 그럴 필요없는 것이에요."

하긴 저번의 봉룡지회 때도 저런 성격이었지...

"소, 소 소저..."

앙칼지게 몰아치는 호통에 남궁악은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연회장의 인물들도 사내나 여인 할 것 없이 당황을 금치 못했다.

“유, 유녀봉마저...”

“봉황이 둘이나...? 정말로...?”

연회장의 모두가 기감을 읽힌 고수.

세령과 소유의 뱃속에 든 것이 살아숨쉬는 생명이라는 것에 아무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했다.

“무량수불. 다들 기감을 걷어주시지요.”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앞을 무양이 가로막았다.

이리저리 얽힌 연회장 안의 기파가 산모에게 좋지 않을 수도 있었으니.

‘음... 일부러 기를 쏘아보내는 자들도 있구려...’

본디 계집이란 질투의 화신이라.

그녀들의 행복한 모습을 싫어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터.

무양이 내기를 끌어올리며 기파를 중화하려 애썼다.

‘으으음...’

하지만 이곳에 모인 후기지수들은 대부분 절정의 끝자락에서 초절정의 무인들.

겨우 초절정 초입에 오른 무양으로선 버티기 힘들었지만.

“...음.”

그는 갑작스레 편안함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오셨군.”

연회장의 모두가 다시금 침묵을 맞이했다.

문 바깥에서부터 거대하다 못해 광대하게 느껴지는 기운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리저리 얽히고 설켰던 기파는 그에 짜부라지듯 흩어졌고.

그 패도적인 기운에 일부러 내기를 쏘아보내던 몇몇은 목구멍으로 핏물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으음...”

“과연...”

그렇게 모두의 이목이 쏠린 연회장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휘황찬란하게 꾸민 실내에 비해, 너무나도 어두운 색의 사내.

그는 문이 작다는 듯 허리를 굽힌 채 들어와 바로 섰다.

“오라버니!!”

“무진!”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세령과 소유가 그에게 달려가 안겨들었다.

사내의 품은 두 여자를 품기에 충분했고.

이어진 행동은 연회장 안의 모두가 경악하기 충분했다.

“미, 미친...”

“저, 저런 남사스러운...!”

“시정잡배나 할 법한 짓을 하다니!!”

밝고 화려한 옷에 비해 너무나도 눈에 띄는 흑색의 커다란 손.

그 손이 당당히 보라는 듯 두 계집의 엉덩이를 거칠게 주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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