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138화 (138/230)

“아응... 무, 무진...”

“오, 오라버니...”

“같이 들어가자니까. 버러지들이 귀찮게 하잖아.”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나오는 연회장.

멍하니 서있던 남궁악의 시선이 무진의 뒤로 향했다.

거품을 물고 쓰러져있는 남궁세가의 호위무사들.

따로 백무진을 막으라 지시내린 적은 없지만, 아마 알아서들 행동하다 당한 것이리라.

‘가만히 당할 줄 아느냐...!!’

봉룡회를 이끌 인재들을 끌어모은 자리다.

이중 절반 이상은 이미 자신의 뜻에 동참하기로 한 이들.

가만히 상황을 보아 어떻게든...

‘아니... 어떻게든 해도, 바뀔 게...’

이미 배가 불러 행복하다는 듯 저 사내에게 안겨있는 세령은 돌아오지 않는다.

심지어, 이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떡 주무르듯 그녀의 엉덩이를 주무르다니?

‘대체 왜 화를 내지 않는 것이오!!!’

자신이 보았던 백세령은 이러지 않았다.

자신이 사모하던 그녀는 저러지 않았다.

선녀봉이란 별호를 얻어내고, 고고하게 구름 위에서 노닐던 그 고아하고 우아한 품격은 어디 가고.

“읏... 사, 사람들이 본다구요...”

“보라그래요. 이제와서 그런 게 부끄러워요, 세령?”

“...짓궂어요, 바보. 스승님이 혼낼 거라구요.”

아양을 떠는 한낱 계집년이 되었다니.

부끄럽다는 듯 그의 손을 말리기는 하지만, 오히려 돕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오라버니, 얼른 자리로 가자는 것이에요.”

“그럴까.”

앙칼지게 자신을 욕하던 소소유도, 저렇게 사내에게 몸을 안겨 엉덩이를 주무르게 할 계집이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저놈에게 안겨 그 우악스런 손길에 비음을 내고 있었다.

‘대체 저 시꺼먼 자식이 뭐길래!!!’

분노로 떨던 손이 반사적으로 허리춤을 짚었다.

하지만 연회를 위해 두고 온 터라 허전한 칼자리.

당장이라도 무기로 쓸만한 것이 없나 싶어 주변을 휘돌던 시선이.

사내의 우묵한 눈빛과 마주쳤다.

피가 싸하게 식어가는 기분.

마른 침을 삼키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배, 백...무진 소협... 오셨소이까.”

“아, 남궁 소협. 반갑소.”

“...바, 반갑소이다.”

섬찟한 느낌에 다급히 허리춤에서 손을 떼어 포권을 했다.

그제서야 엉덩이를 주무르던 손을 놓고 마주 포권을 하는 백무진.

“연회에 참석하신 분들도 모두 반갑구려. 무당의 백무진이라 하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좌중에게 살짝 고개를 까딱였다.

연회장의 인물들 또한, 그 담백한 인사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당과는 어울리지 않는 패도적인 내력.

밤처럼 새카만 사내의 정신이 나간 듯한 행동.

그 하나하나가 모두에게 충격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아까처럼 그 침묵을 무양이 깨트렸다.

“아우가 자리를 맡아놨소, 형님.”

“그래.”

두 여자의 허리춤을 휘감아 마치 창기를 데려가듯 이끌고 가는 사내.

그저 뒷모습만이 보였지만, 충격으로 물드는 좌중을 보니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았다.

“허어...”

“어, 어찌 저런 무뢰한이...”

“왜 선녀봉과 유녀봉은 아무런 제지도 하질 않는 건가...”

그렇게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멍하니 있던 남궁악의 시선을 다시금 잡아끄는 이가 있었다.

“아구, 이 사람들은 여기서 왜...”

호위무사들이 쓰러진 자리를 폴짝폴짝 뛰어오는 여인.

사타구니 사이로 내려온 하늘하늘한 천 틈새로 언뜻 맨 살결이 비치는 듯한...

“아, 저기...”

“...?”

이전의 세령을 보듯. 아니 그녀보다 더한 우아함을 뽐내는 여자.

흑과 백이 적절히 어우러진 옷에선 기품이 흘렀고, 연하게 채워진 화장은 그 아름다움을 더더욱 끌어올리는 듯 했다.

‘주서현...!’

다행히도 알고 있는 얼굴인 터라.

남궁악은 간신히 신색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어... 드, 들어와도 되는 건가요, 남궁 소협?”

“다, 당연하오. 어서 들어오시오. 곧 시작하려 했소이다.”

“흠흠,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오, 하하하!”

“아하, 하하...”

어색한 웃음을 보니 오히려 더욱 힘이 솟았다.

그래, 이미 더러워진 년을 신경 쓸 필요가 무에 있나.

새로운 인연을 만나면 그만.

상처받은 자신을 주서현의 단아한 미소가 감싸주는 듯 했다.

“여기 있는 모두가 강호를 이끌어갈 동량들이오. 봉룡지회에 참가하는 이들도 많지. 본인이 주 소저를 소개해도 되겠소?”

“음... 그, 그러면 누군가가 저를 원할까요...?”

“원한다니... 당연한 소리를. 지금 소저의 모습을 보시오. 이미 봉황이라 불려도 부족하오.”

자신의 칭찬이 뭇내 부끄러운지 주서현의 얼굴이 발게지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고운 눈동자가 좌중을 향하고, 다시 자신을 향했다.

은은한 밤하늘 빛의 눈동자에 가슴이 떨렸다.

“...네, 소개해주세요.”

“아, 알았소.”

남궁악이 주서현을 이끌고 단상으로 향했다.

백무진과 그자의 노리개들로 시끄러웠던 회장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여기 왔다는 건 내 초대를 받아드렸다는 뜻이겠지, 주 소저.’

고작해야 계집 둘.

봉룡회가 커가고, 점차 힘을 가지게 되면 그런 계집 둘은 일도 아니다.

보라, 지금도 자신의 기치에 따르고자 하는 아름다운 여인이 제발로 찾아오지 않았나.

무한한 자신감이 가슴 속에서 휘몰아쳤다.

“먼저 인사하시오, 주 소저.”

“...음음, 네 안녕하세요. 무당의 주서현이라 합니다.”

“여기 주 소저는 ‘본인’의 소개로 봉룡회에 참가하게 되었소. 우리 동도들의 많은 관심 바라오.”

“아하하... 많을 것 까지야요...”

그녀는 왠지 모르게 쑥쓰러웠다.

꿈속에서도 이렇게 소개했던 적이 있던 거 같은데.

그때와 마찬가지로 박수 소리와 함께 작은 환호성이 들려왔다.

살짝 시선을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츕, 츄르릅... 움...

-그렇지, 후... 조용히 빨아...

미친.

다급히 눈을 돌렸다.

아니, 아무리 구석진 자리라 해도 저렇게 당당하게 입을 맞출 수가...

‘그리고 다, 다리 사이에... 저건 분명 당 소저...’

심지어 의자와 탁자에 가려진 그 사이로.

녹색 궁장을 차려입은 여자가 사내의 가랑이 사이에 있는 것이 보였다.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걸까.

왠지 모르게 분한 마음이 들었다.

“흥...”

더 할 말도 없어 가만히 서있으려니, 오도결이 다가와 자리로 안내해주었다.

“곧 시작할 것이오. 남궁형의 말이 끝나면 다른 자리를...”

“아뇨. 여기 앉아있을 게요.”

“...알겠소.”

눈길 한 번 주지도 않는 나쁜 놈에게 굳이 달라붙을 이유가 없다.

‘양기보관통 주제에!’

야한 짓도 더는 해주지 않을 거다.

꼭 사내로부터만 양기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다른 방법을 취할 것이다.

흥흥이다, 흥.

“이 남궁모의 초대에 와주신 모든 후기지수 분들, 반갑소이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남궁악의 인사에 우레와도 같은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연설을 시작하는 남궁악.

시덥잖은 축사와 주변잡기가 이어지고, 남궁악이 목을 가다듬었다.

“혈교의 혈사 이래, 무림맹은 그 세와 권력을 불리며 오랫동안... 군림해왔소.”

자꾸만 자신을 힐끔거리는 게 조금 불편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봐줄만은 했다.

‘...’

...근데 진짜 계속 힐끔거렸다.

아무리 우의각주님이 예쁘게 꾸며주셨다고는 하지만...

저 뒤쪽의 둘보다는 못하다는 느낌이었는데.

“크흠, 낡고 고루한 이들이 무림의 발전을 저해하고, 어린 동량들이 뻗어나갈 강호를 제한하고 있소이다.”

자꾸만 몸이 앞으로 숙여지던 남궁악이 뒤돌아서 다급히 허리춤을 정리하고는 연설을 이어나갔다.

“해서!! 이 천하오대세가의 일좌인 남궁세가의 후계자, 남궁악이 요청드리오.”

뒤이어 남궁세가의 무사들로 보이는 자들이 뒤쪽에 무언가를 쫙 펼치는 것이 보였다.

봉룡회(鳳龍會)라 적혀있는 커다란 천.

남궁악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지금 이곳에서 정식으로 봉룡회를 출범하고, 함께할 뜻 있는 동도들을 모집하고자 하오!!”

꽤나 괜찮은 연설이었는지, 주변의 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이 보였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 엉덩이를 들썩이기도 했고.

흥미롭다는 듯 가만히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사형에 대한 반항심에 나도 짝짝거리며 박수를 쳤다.

“이것은 강요가 아닌 그저 요청이외다. 참가하든 안 하든, 오늘의 연회는 이 남궁모와 남궁세가에서 여는 것이니 부담없이 즐겨주시길 바라오!!”

마침내 끝난 남궁악의 연설.

그는 우르르 몰려든 주변인들에게 한참을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눴다.

들뜬 분위기를 깨기 싫어 차를 홀짝이고 있자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큼큼, 그... 주, 주 소저.”

“네, 오 소협.”

살짝 고개를 돌리니, 오도결의 얼굴이 발게져 있었다.

‘...뭐지?’

자꾸만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그의 눈동자가 어지러이 흔들렸다.

남궁악보다는 과묵하고 진중한 남자인줄 알았는데, 왜 이러는 걸까.

‘...진짜 좀 달라졌나...?’

남자가 이렇게 많이 있는 곳은 처음이니까.

화장도, 이렇게 차려입은 복식도 처음이다.

이 무뚝뚝해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발게질 정도로 괜찮다는 걸까.

‘흐흥.’

살짝 흥이 나는 기분에 들뜬 목소리로 되물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그러니까, 그, 그것이... 그게...”

“말장난을 하실 생각이라면...”

시덥잖은 장난이라도 치나 싶어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데.

등쪽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수없이 입술을 맞추며 느꼈던 진한 체향이 훅 끼쳐왔다.

귓가에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울렸다.

“아니지, 주 사매.”

“...백 사형.”

그리고 그의 입에서,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말이 들려왔다.

“오 소협은 주 사매의 보지가 보인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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