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140화 (140/230)

“응, 읏... 아, 안녕하세요... 연 소저...”

“반갑소, 연화란 소저. 무당의 백무진이오.”

둘 사이의 일이기에 아무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건 말을 안 하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그... 백 소협. 죄송되지만, 주 소저께서 얼굴도 붉고 많이... 힘들어 보이시는데요.”

“복통이 있다길래 달래주는 중이었소.”

“...”

연화란은 백무진의 뻔뻔한 대답에 절로 입이 다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까 뒤에서도 거칠게 없더니.’

주서현이 보여줬던 파격적인 복장으로 미루어보아 아랫도리가 휑할게 분명했고.

둘의 의자도 지나치게 가까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까부터 귓가에 울리는 질퍽이는 물소리.

그 소리가 짙어질 때마다 주서현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표정을 했다.

“호옷... 읏... 그, 그마안, 사형...”

“그러게 내가 배는 따땃하게 하고 오랬지.”

“개, 솔... 응, 흐오옷...”

순간 주서현의 얼굴이 헤실하게 풀리며 눈동자가 살짝 뒤집혔다 돌아왔다.

‘...대체, 사문의 동기를 무슨 창기 다루듯...’

무인의 예민한 코 끝에 달뜬 비린내가 스쳤다.

“후읏... 하아...”

아마 지금 저 장포 아래에서 일어날 일을 모르는 사람은.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 빼고 없을 거다.

‘...그냥 돌아갈까.’

한 발자국 뒤로 내딛은 자신을 대신해 천화령이 입을 열었다.

“여기 연 소저가 백 소협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시다고 해서요.”

“뭐, 앉으시오.”

“네에~. 어서 앉아요, 연 소저.”

“...”

천화령도 장포 아래의 일을 알고 있을텐데, 그녀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됐다. 남의 성취향을 내가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지...’

노출증에 걸린 치녀든, 그걸 도와주는 변태놈이든...

가진 바 지위와 무력이 필요해 온 것 아닌가.

자신만 안 건드리면 신경 쓰지 않는 게 피차 편할 거다.

“읏차.”

“흐잇...”

장포 아래에서 나온 백무진의 손이 정체불명의 액체로 흥건했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손수건으로 닦아낸 그가 말했다.

“이야기라, 나는 빙빙 돌리는 걸 싫어하니 바로 말해보시오.”

“...흠.”

정말로 이런 변태에게 말해줘도 되는 걸까.

아까 홀로 복잡하게 얽혀든 기파를 밀어내는 걸 보고 실력은 인정했지만.

연회장에서 이딴 변태짓을 하는 그 인성에 조금 신뢰가 가질 않았다.

“혹 사매 때문에 말하기 껄끄럽다면...”

“...아닙니다. 주 소저께도 말씀드리고 싶은 거였으니까요.”

“저, 저요...?”

“...네. 좀 괜찮으신가요.”

“네, 전 갠찬, 갠찬아요오...”

눈은 풀리고 볼은 발갛고, 여지없이 정사를 치룬 듯한 여인의 얼굴.

애써 무시하며 말을 꺼냈다.

“실은... 제 임무를 도와줄 조력자를 찾는 중입니다.”

“임무라 하심은?”

“이미 이쪽의 천화령 소저께서 한 손 거들어 주시기로 했고... 여기.”

품속에서 슬쩍 목패를 하나 꺼내들었다.

무림맹(武林盟)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목패.

“이 패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 무림맹주님의 명을 받아 혈교에 대해 조사하는 특수조사단의 일원입니다. 섬서에서의 일 이후로, 그분에게 은을 받거나 빚이 있는 무인들 몇몇에게 은밀히 전해진 거죠.”

“흐음...”

“곧 맹주님께서 봉룡지회로 무당에 들르실 터이니, 그때 확실히...”

“아니오, 믿도록 하지.”

천극혜검의 직계인 만큼, 뭔가 알고 있는 건가.

그래도 바로 믿어준다니 이야기가 길어지진 않을 듯 싶었다.

“그럼... 정확히 무엇에 대한 조력을 원하는 것이오?”

“최근 호북 인근의 야산에서 발생한 혈교의 습격 사건... 알고 계실 겁니다.”

“알고말고. 내가 직접 서문 소저를 구했으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이미 맹의 정보원에게 들은 사실.

그러니 더더욱 이 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조사에 따르면... 거기서 양광의 흔적이 보였다고 적혀있더군요.”

“맞소. 양광이 있었지.”

역시. 무당에만 처박혀있는 인간이라 정보원도 정보를 캐낼 수가 없었는데.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혈교의 우호법이 겨우 서문 소저 하나 잡겠다고 그리 나왔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흉계가 있겠지요. 아마 그런 납치 사건이 서문 소저에게만 일어난 게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다른 참가자들도 납치해, 무언가 협박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새 정신을 차렸는지 옆에서 한 마디 거드는 주서현.

색에 미친 년인줄 알았더니 그래도 조금은 생각이 있는 여자였다.

“맞아요. 저는 그렇게 의심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장문인께 요즘 주변 인근에서 소란이 잦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생사혈고를 썼겠군요.”

“네, 굳이 다른 외상이나 고문을 하지 않아도, 그 벌레 하나면 충분히 사람을 노예로 부릴 수 있습니다.”

이전의 혈사에서도 그 망할 놈의 벌레덕분에 큰 피해를 봤다고 들었었다.

전쟁 중에 벌어진 일이라 더욱 끔찍했었고.

곰곰이 생각을 하던 백무진이 말했다.

“그럼 그런 짓을 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오?”

“뭐 이유야 많겠죠. 봉룡지회를 위해 모인 이들은 각자 문파의 앞날을 이끌어갈 동량들. 앞으로 무림의 주축이 될 이들에게 생사혈고를 심어 조종한다면...”

“치명적이겠군.”

치명적이다마다.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중원 전체가 혈교의 손아귀에 떨어질 것이다.

“그럼... 연 소저께선 그 생사혈고에 당한 이들을 찾는 걸 도와달라는 것이오?”

“그 당시에도 알아내지 못했고, 지금도 딱히 방법이 없습니다.”

“그럼 뭘 도와달라는 것이오?”

여기부터가 본론이었다.

자신은 의심하고 있었다.

혈교의 우호법이 굳이 모습을 드러내 시선을 끈 이유가 뭘까.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 중원에 침투해왔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호법과 동급인 수준의 지위를 가진 인물.’

그런 존재는 혈교에도 몇 없을 것이다.

역으로 기회를 노려 그자를 잡아낸다면, 정말로 커다란 이득이겠지.

그러기 위해선 무당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제 생각에는 혈교의...”

“커험. 반갑소이다, 연 소저, 천 소저.”

“...남궁 소협?”

망할 남궁놈이 여기서 왜 끼어든다는 말인가.

당장이라도 몰아내고 이야기를 이으려는 찰나, 백무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게 껴들고 싶으면 앉지, 남궁악.”

“백 소협?”

“주최자 본인이 못 앉을 곳이 어딨겠소.”

“흐응...”

아까는 죽여버릴 듯이 싸우더니, 갑자기 또 왜 자리를 허락하는 걸까.

그러더니 백무진이 멍하니 있던 주서현을 끌어안으며 몸을 일으켰다.

“여기 남궁 소협이 두 분 소저께 관심이 많은 듯 하니, 나는 사매를 데리고 잠깐 나가있겠소.”

“...백 소협. 아직 제 이야기가...”

“언제든 또 나눌 수 있을 거요. 가자, 사매.”

“...네, 네! 사형.”

그렇게 기다렸다는 듯 백무진과 주서현이 자리를 뜨고, 남궁악이 떠벌거리기 시작했다.

“잘됐군. 천박한 놈이 알아서 자리를 피해주지 않았소?”

“천박하다뇨, 저는 솔직하신 것 같은데요?”

“그런 소리하지 마시오, 천 소저. 저런 더러운 연놈들과는 상종할 필요 없소!”

“흐응, 그러면요?”

“본인과 함께 봉룡회의 친우들과 이야기나 나눕시다. 어떻소?”

시덥잖은 대화나 듣고 있으려니, 그 사이로 작은 목소리가 하나 꽂혀들어왔다.

-연 소저의 의중은 충분히 알아들었소. 그러니 은인자중 하시오.

이 낮고 굵은 목소리는 분명 백무진이었다.

헌데 은인자중하라니?

‘...그렇군. 이곳에도 간자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인가.’

타당했다.

오히려 섣부르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흥, 봉룡회라. 제가 가입하면 뭐라도 있는 걸까요?”

“당연하오. 바로 간부의 자리를 드리겠소!”

“너무 쉬운 조직 아닌가요? 전 올라가는 보람이 있는 곳이 좋은데.”

“아... 그, 그러면 나중에...”

“아하하, 생각해볼게요, 남궁 소협.”

그새 이야기를 마쳤는지 시무룩한 얼굴로 사라지는 남궁악.

천화령이 여전한 색기를 내뿜으며 말을 걸어왔다.

“남궁 소협도 애쓰네요. 불쌍하기도 해라.”

“...뭐, 이해합니다.”

"어차피 안 갈 거지만요."

"..."

신랄한 말이었지만 자신도 다른 건 아니었다.

아까 보여준 백무진의 무위는 남궁악이 끌어모은 인간들보다 몇 배는 더 강렬했으니까.

‘...그래도 저렇게 당당하게 음탕한 짓을 하는 건... 적응이 안되는군.’

혹시라도 저 색마 같은 사내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슬 배가 고프네요, 연 소저. 뭐라도 먹을까요?”

“그러죠, 천 소저. 아까 오향장육 냄새가 괜찮던데... 가지고 올테니 기다리고 있어요.”

“네에~.”

연화란이 자리를 비운 사이, 천화령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가득했다.

‘역시, 백 소협은 뭔가 알고 있군요?’

몰래 전음을 훔쳐듣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았다.

기 속에 섞인 소리를 간파하는 것 뿐이니까.

‘우리 연 소저는 아쉽게도 헛다리만 열심히 짚고 있네요.’

양광이 이곳에 온 것도, 서문비연을 납치한 것도.

전부 자신이 여기에 무난히 들어오기 위해 별같잖은 연극을 한 것일 뿐.

허나 그 남자는 분명히 무언가 확신하고 있었다.

아까도 연화란의 입을 막으려 일부러 남궁악을 자리에 허락했겠지.

“아하핫... 역시, 못 참겠어요.”

그 앙큼한 사내의 갓 짜낸 피맛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새카만 속살 아래에 흐르고 있을 피를 뒤집어쓰고, 고통에 겨운 비명을 내지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사내의 아이를 밴 계집들 앞에서, 하나하나 천천히 세심하게.

살과 뼈를 발라내어준다면.

“하아아...”

아랫도리가 슬그머니 젖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에게 피는 미약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상상만 하더라도 전신이 찌릿하게 달아오르니.

‘아핫, 야한 짓을 시키면서 죽이는 것도 재밌겠네요.’

아무튼, 지금은 들끓는 살심을 살짝 달래줄 대상이 필요했다.

“...천 소저?”

그렇게 연화란이 자리에 돌아왔을 때, 천화령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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