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미친 것들이...!’
바로 아래서 무림의 동량이 될 아이들이 고군분투를 하고 있거늘.
한 문파의 장문인이자 위엄을 보여야할 년이 사내놈과 몸을 섞어?
“맹주님, 올해는 괜찮은 이들이 많은 것 같네요.”
“...그래.”
“이참에 맹의 무인들을 더 늘려보는 것도...”
옆에서 당하린이 뭐라 이야기를 건네고 있지만.
절대 고수의 단련된 감각은 그런 사소한 방해에 가려질 만한 것이 아니었다.
‘방에 애기아씨가 둘에, 맹주인 나, 주작단주인 하린이까지 있는데도 감히...’
도저히 눈뜨고 봐줄 만한 행태가 아니었다.
“후으, 흐으읏...”
“하아... 소율...”
제딴에는 참는다고 참고, 막는다고 막는 것 같았지만 다들렸다.
애초에 이 넓지도 않은 방에서 자신에게 소리와 움직임을 숨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분명 담소율 저년도 자신에게 들킬 걸 알고 저러는 것이다.
“맹주님, 표정이 안 좋으십니다.”
“...신경쓰지 말거라.”
열불이 터져나오는 속을 하린이 건넨 차가운 차로 식혔다.
단숨에 들이키자 시원하게 퍼져나가는 청량함과 알싸한 차향.
코 끝에 맴돌던 애액비린내가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후우...”
차 한 잔으로 머리를 비우고 비무에 집중하려했다.
확실히 이번 세대는 무언가 다른지, 재능있는 아이들이 꽤나 보였다.
“으읏, 응... 앙...”
“소율, 목소리가 크잖아.”
“상공의 자지이, 너무 커서어...”
“소율의 보지도 너무 좋아.”
“아아앙...”
하지만 옆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집중을 흐트려트렸다.
찔꺽이는 소리와 흐느끼는 듯 터져나오는 신음소리.
한 번 참아주니 숫제 대놓고 들으라는 듯 아주 음담패설을 지껄인다.
‘후... 저런 변태놈에게 소유를 짝지어주려 했다니...’
우승이고 뭐고, 그냥 아주 줘패버리고 내쫓을까도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끼고 아끼는 손녀를 홀로 둘 수도 없는 법.
“하아...”
한숨과 함께 슬쩍 옆을 보니 하린이도 입술을 질끈 깨문 채 화를 참는 것이 보였다.
소율이년에겐 감히 비빌 수도 없으니 조용히 참고 있는 것이겠지.
‘확 엎어버려?’
하지만 그랬다간 터져나올 추문이 거슬렸다.
자신과 소율은 언제까지나 정파의 상징으로서 고고하게 남아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잘한 세력들을 억제하고, 다가올 혈교의 위협에 맞서 힘을 모을 수 있으니까.
구파와 일방은 소율이, 오대세가와 나머지 중소방파는 자신이 이끌면 된다.
‘그런데 이년이 협조를 안해주는구나... 하아...’
하기야, 한창 때처럼 활력이 넘치는 여인의 몸이 처음 쾌락을 알았으니 빠져드는 것도 이해는 한다만.
그래도... 저건 심하지 않은가!
‘...벌써 네 번째.’
예민한 귓가로 힘차게 사내의 정이 내뿜어지는 소리를 들은 횟수.
이럴 때면 민감하디 민감한 고수의 감각이 원망스러워질 정도다.
괜스레 생각을 돌리며 옛 추억을 꺼내들었다.
‘남편과는 그리 자주하지는 않았지만...’
어디 서역에서 구해온 약까지 먹어가며 자신을 위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헉헉대고 힘들어해도, 그의 사랑이 느껴졌던 침대 위에서의 밤.
‘...저꼴을 보니 별 생각이 다 나는구나.’
자상하고, 따스했던 사람.
그래서 매일매일이 전쟁이나 다름없던 혈사를 버틸 수 있었겠지.
살짝 고개를 털어내며 상념을 지워냈다.
“맹주님, 한 잔 더 타드릴까요.”
“그래. 아예 그냥 통째로 들고와서 우리거라. 아까부터 시끄러워서 귀가 간지럽구나.”
“...네.”
씹어뱉듯 이야기를 하자 그제야 조금 조용해진 살소리.
곧 당하린이 내어온 차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심호흡을 뱉어냈다.
알싸하고 화하게 퍼져나가는 차의 향.
몸이 살짝 후끈해지면서 정신은 맑아지는 것이, 평소에 타주던 차와는 조금 달랐다.
“흠, 아까도 그렇고. 내가 알던 용정차랑은 조금 다른 것 같구나.”
“제가 살짝 바꿔보았습니다, 맹주님. 당가의 약독술로요. 좀 더 시원하고 청량감이 느껴지실 겁니다.”
“좋은 차로구나, 하린아.”
“감사합니다.”
살짝 열이 날 정도로 화하긴 했지만.
찻주전자 하나 분량의 차를 단숨에 들이켰으니.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아내며 말했다.
“좀 더 타오거라. 차가 없으면 더는 못 참을 것 같구나.”
“네, 맹주님.”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저가는 무당산의 오후.
봉황전 1차 예선 첫날의 마지막 비무가 시작되었다.
*
“오, 색녀다 색녀. 같은 조네.”
“색봉이라니까.”
“자지 말고 내 손도 쓸만할텐데, 대달라 그러면 대줄까?”
“미친년, 여자 좀 그만 먹으라니까.”
“사내새끼들은 영 비실비실해서 별로라니까. 각좆으로 둘이서 쑤시는 게 최고야.”
한창 때의 여무인들이 모인 대기실.
후끈한 음담패설이 그 안을 맴돌았다.
대부분 서로 떨어져 앉아있었지만, 시선은 분명 한 명의 여인에게로 향해있었다.
“하, 근데 진짜 개꼴리게 생겼네. 저정도는 되야 흑룡이랑 떡치나?”
“흑룡 좆도 존나 크다던데? 한 번 떡쳐보고 싶네.”
“쟤한테 물어보면 되지. 윗입 아랫입으로 전부 맛봤을 거 아냐.”
“함 찔러보는 거지. 되면 오늘밤에 따먹고 온다.”
천박한 어투로 입을 열던 여자 중 하나가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단아한 흑백의 궁장을 입고, 앞머리에 새치처럼 하얀 머리칼이 인상적인 묘령의 여인.
그녀는 눈을 꾹 감은 채 무언가를 되뇌이고 있었다.
‘입술봐라, 광이 나네, 광이.’
절로 음심이 치솟는 미모였다.
사내든 여인이든 이 여자를 어떻게든 한 번 안고 싶어 미칠 것만 같은 얼굴.
성큼 다가가 말을 걸려는 찰나, 여자 하나가 앞을 가로막았다.
“쓸데없이 분위기 흐리지 맙시다.”
“넌 뭐야, 너도 따먹어달라고?”
척봐도 조금 비실해보이는 몸뚱아리.
그대로 힘으로 밀고들어가려는 찰나, 뱀처럼 몸을 타고올라온 무언가가 목덜미를 살짝 찔렀다.
‘어, 언제...?’
섬뜩하게만 느껴지는 칼날의 서늘함.
출수하는 것도, 검이 몸을 타고올라오는 것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냥 가라고.”
“씹... 너, 너 위에서 보자.”
“그러든지.”
그렇게 질 나쁜 년 하나를 몰아낸 백색 무복의 여인.
그녀가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저기, 주 소저...”
“저는 색녀가 아닙니다. 저는 색녀가 아닙니다. 저는 색녀가 아닙니...”
“주 소저!”
“히익... 아, 여, 연 소저...?”
“하아... 괜찮아요?”
색녀, 아니 주서현이 고개를 푹 숙였다.
도리도리 흔들리는 머리에 살랑이는 머리카락.
연화란이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옆에 앉았다.
“...뭐라 해줄 말이 없네요.”
“...제 잘못이에요.”
“아뇨, 그게 왜 주 소저 잘못이에요. 그냥... 치기 어린 실수였던 거겠죠. 요, 욕구는 다들 있으니까요.”
보통 욕구를 그런 식으로 발산하지는 않는다.
실수라고 치기엔 음기에 미쳐 날뛰었던 기억이 주서현의 머릿속에 선명했다.
아마 무진이 가진 거대한 양기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음마(陰魔)가 되어 토벌당했을지도 모르지.
“고, 고마워요...”
“곧 시작이니까, 집중해요. 위에선 적인 거 알죠?”
“...네에.”
"안 봐줄 거라구요."
"...네에에."
그래도, 연화란이 따뜻하게 건네준 한 마디는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지난 며칠간 어디에도 나가질 못하고 스승인 운휘의 숙소에만 처박혀 있었다.
스승은 다 이해한다는 얼굴로 보듬어주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떠올라 나갈 수 없었다.
‘왜, 왜 자꾸 이상야릇한 기분이 드는 거냐구요...’
그저 시선이 집중된다는 것이 느껴지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달아올랐다.
시선 하나하나가 자극이 되어서, 속곳이 젖어들어가는 게 선명히 느껴졌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자신이 답도 없는 색녀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결국, 마음 속 깊이 그런 욕망이 존재했기에.
그딴 변태같은 행각을 벌인 걸테니까.
‘...음탕한 년. 걸레년. 천박한 년!’
그래서 무진이 찾아와도 돌려보냈다.
그를 보면 더는 주체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연기고 나발이고, 그에게 안겨 하루종일 있을 것만 같아서 돌려보냈다.
“봉황전 1차 예선 제35조!! 제36조!! 비무장으로!!”
그리고 그때 들려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먼저 일어선 연화란이 손을 건네며 말했다.
“가요, 주 소저. 그 오명을 씻어내려면, 좋은 성적을 거두는 수밖에 없어요.”
“...흐읍, 흑... 여, 연 소저는... 정말 착하시네요.”
“흠흠, 그래도 얼굴 아는 사인데, 이렇게 있는 걸 보기가 그래서요.”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힘내볼게요.”
그래, 연화란의 말대로 결국 바뀌려면 스스로가 노력해야한다.
스스로 힘내본 첫 결과는... 상당히 엉망이었지만.
이번에는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나선 비무장.
늦은 오후의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준비하시오!!”
비무장의 단단한 판석이 발 아래로 느껴졌다.
“후, 후우...”
집중하려 했지만, 곧 곳곳에서 느껴지는 관중들의 시선과.
뚫어지게 바라보는 참가자들의 시선이 뒤섞여 열띤 자극을 만들어냈다.
“흐으... 안돼, 안돼...”
확연히 줄어든 음기지만, 여전히 계속해서 차오르는 중이다.
조금이라도 고삐를 늦추면 돌이킬 수 없겠지.
‘지, 지금이라도 포기해야...’
가슴을 옥죄는 불안함과 죄책감에 다급히 손을 올려 기권을 하려는 찰나.
시야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는 한 사람.
“읏...”
부끄러움에 다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귓가로 파고드는 전음마저 막을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보니까 더 이쁘네, 서현. 잘할 수 있지? 다치치 말고.
저 사람은 도대체 부끄럽지도 않은 건지.
동네방네 소문이 다났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낯짝이 두꺼운 걸까.
“야, 저쪽에 그 색녀 아니냐?”
“맞네, 앞머리에 흰색 새치. 개걸레년. 무당도 끝났지, 저런 걸레연놈들이 장로와 장문인의 제자라니.”
“으으...”
자신은 반대쪽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 이렇게나 움츠려드는데.
검을 쥔 손에 덜컥 힘이 풀리려는 찰나, 그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방금 씨부린 년한테 보여줘야지, 서현의 실력을. 지금 거기 있는 사람들 중에 서현이 제일 강해.
그래도, 목소리를 들으니... 왠지 모르게 힘이 났다.
요동치던 가슴속도 어느새 가라앉았다.
-오늘 이기고 오면, 소원을 하나 들어줄게.
소원...
“꿀꺽...”
언뜻 머릿속을 스친 천박하기 짝이 없는 상상.
살짝 젖어든 비부를 허벅지로 살살 달래며 심호흡했다.
“후우... 할 수 있어.”
서서히 몸속을 채우는 음양의 조화.
‘역시 사형이 도와준 덕에, 많이 안정됐어.’
이전엔 넘치는 음기를 억제해 양기를 맞추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가진 바 힘을 끌어내기만 해도 어느정도 균형이 맞추어졌다.
‘...할 수 있어.’
테에엥!!
마침내 개전의 종이 울리고.
반개한 주서현의 눈이 흑백의 안광을 흩뿌리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