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154화 (154/230)

“이놈! 무슨 짓을 한 게야!!!”

“큭...!”

연화란의 등에 맞닿은 손이 순간 거죽만 남은 듯 미라처럼 변했다.

혈기(血氣), 즉 피란 생기(生氣)와도 다를 바 없는 기운.

마치 무저갱처럼 그녀를 향해 내 생명이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카학...!!”

“당장 멈추거라 백무진!!”

“쿨럭, 크흡...”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기도 잠시, 아랫도리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터져나왔다.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흑천묵지신공의 새카만 기운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내 전신을 덮어갔다.

‘빨리는 걸 강제로 틀어막았다간 둘다 죽는다. 우선은...’

내기의 흐름을 조정해 살짝 길을 틀었다.

사지백해에 넘쳐나는 칠흑의 기운으로 연화란에게 넘어가는 내 생명을 대신했다.

“끄아아아...!”

“정신 차리시오 연소저!!”

울룩불룩 터져나오던 핏줄이 잠시 가라앉은 연화란.

대신, 자궁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단전에 내 내공이 기하급수적으로 쌓이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든 해야돼. 연화란은 내 기운을 받아들일 만한 정신이 아니야.’

폭발하듯 터져나오는 기운에 갈가리 찢겨나가기 시작하는 옷소매.

그 사이 팔뚝까지 피부가 미라처럼 쪼그라든 것이 보였다.

소서화가 그런 내 모습에 다시금 뽑아내려던 검을 멈췄다.

“크으... 호법, 서주십쇼. 어떻게든 할테니.”

“...빌어먹을 놈.”

그녀와 당하린이 방 주변을 빈틈없이 에워싸는 것을 보며 눈을 감았다.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것은 연화란과 나의 내면.

자지에 듬뿍 쌓여있는 기운이 올올이 풀려나오며 연화란에게로 넘어가고 있었고.

이미 그녀의 단전을 가득 채운 내 내공이 연화란의 전신으로 거칠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연화란의 몸이 폭탄처럼 터질 거야.’

그녀의 상태는 최악.

거기다 연화란이 터지면, 그녀의 안에 쌓여있는 내 내공도 함께 터진다.

이 방에 있는 당하린은 물론이고, 소서화도 큰 부상을 입겠지.

어떻게 해야할까.

답은 간단했다.

‘다시 회수해야지.’

현재 상태는 남에게 내공을 전달한다는, 소위 격체전력(隔體傳力)과도 같은 상태.

보통 일방향 진행이긴 하나, 쌍방향으로 바꾸지 못할 일도 없었다.

‘회전, 그리고 흐름.’

질리도록 해온 것들.

회전은 바깥에 원심력을 발생시키고, 안쪽으론 구심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중앙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흡인력 또한 생겨난다.

“후...”

짧게 심호흡을 뱉으며 내 몸 자체를 하나의 원으로 삼아 회전시켰다.

나선파륜권을 통해 이미 몸에 회전을 만드는 법은 깨달았으니.

그 흐름을 전부 하나로 통일해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넘어온다.’

아무 저항없이 그녀에게로 넘어가던 기운이 빙글 돌아 다시 주인에게로 오기 시작했다.

‘이제 다음 단계.’

흐름.

이대로면 그저 뺏고 뺏는 싸움일 뿐이니.

그녀의 난폭한 혈기와, 내가 안정시킨 기운을 계속 순환시켜줘야 했다.

“쿨럭...”

“끄으으... 아, 아으...”

받아들이자마자 가슴 안쪽을 갈가리 찢어내는 듯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아마도... 천화령이 직접 연화란의 몸에 심어놓은 듯한 끔찍할 정도로 폭력적인 혈기(血氣).

‘이대로면... 내가 먼저 쓰러진다.’

과연 혈교주랄까.

섬서에서 얻어낸 간자들의 혈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였다.

그야말로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절대자와도 같은 기운.

점점 버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무언가, 도움을 받을게 필요한데... 아!’

지금 가장 큰 도움이 될만한 건 연화란이 정신을 차리고 기운을 통제하는 것.

그럼 혈기로 어지럽혀진 그녀의 머릿속을 정화시키려면...

우우웅...

‘영기(靈氣)가 제격이겠지.’

만령곡에서 깨우친 힘.

온통 검붉은색이었던 내면의 시야에 한줄기 순백색의 기운이 흘러들어왔다.

곧 살아있는 듯 꿈틀대며 연화란에게로 다가가는 영기.

질척한 피냄새로 가려져있던 그녀의 전신을 영기가 단숨에 관통했다.

동시에 꿈틀거리며 힘겹게 말을 뱉어내는 연화란.

“아, 아아... 이, 이게 무, 쿨럭, 쿨럭!!”

“집중하거라 화란아! 백무진의 기운에 동조해!!”

“커흡... 후우, 흡...”

그녀 또한 초절정의 고수.

단숨에 상황을 파악하고 기운을 갈무리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나와 연화란이 온힘을 다해 집중하자, 난폭했던 혈기도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스읍, 후우... 후...”

“크으...”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한데 모인 기운이 나와 그녀의 내부를 돌고돌았다.

그녀의 혈기를 가져와 내 내기로 억누르고, 안정시키고.

안정시킨 기운을 다시금 연화란의 내부로 보내 스스로 운기행공을 하도록 유도했다.

동시에 서로의 육신을 순환하던 혈기가 이내 내상을 빠르게 치유해나갔다.

‘...결국, 쓰기 나름이란 건가.’

혈기란 즉, 생기.

그렇게 안정된 기운은 나와 그녀의 상처를 아물게 만들었고.

연화란의 몸에 가득 찼던 내 내공도 전부 회수했다.

‘다는 못했으니, 아마... 연화란의 내공이 좀 늘어났겠네.’

흑천묵지신공은 모든 내공으로 변환될 수 있는 진정한 신공(神功).

연화란의 무무검법도 예외는 아닐 거다.

또한 나는 이제 혈교주의 혈기를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 천화령이 직접 나를 해하려 해도, 어떻게든 저항할 수단이 생긴 셈.

“후우...”

“하아, 하아... 배, 백 소협... 고마, 워ㅇ...”

털썩.

힘겹게 눈을 뜨자, 반듯이 세워져 있던 연화란의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다급히 달려온 당하린이 그녀를 받아 맥을 짚었다.

“...기절한 듯 합니다. 맥은 정상이구요.”

“...그래. 다행이구나.”

소서화의 시선이 백무진에게로 향했다.

거대한 기의 폭발과 순환으로 인해 훤히 드러난 근육질의 상체.

불거진 핏줄 사이로 거칠게 약동하는 다부진 몸이 보였다.

‘도대체... 몇 가지의 기운을 다루는 것이냐.’

자신조차도 저리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쉬이 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저만한 기운을 사람의 몸으로 받아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방금 느껴진 혈기(血氣)는 난폭하고, 또 사나운 맹수와도 같았다.

주인이 아니라면, 절대로 길들일 수 없는 그런 맹수.

허나 저놈은 기어코 그것을 길들여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괜찮으냐, 백무진.”

“연 소저나 먼저, 후... 의각에 데려다 주십쇼.”

“...그래. 하린아, 호법을 서고 있거라.”

“네, 맹주님.”

이래서야 괘씸하다고도 못하지 않겠나.

진정한 실력은 위급상황에 발휘되는 법이니, 오늘 백무진의 진가를 본 것일지도 모른다.

‘...소율이년이 부러워지기는 처음이군.’

몸도, 마음도...

“쯧. 금방 갔다오마.”

*

“주인님!!”

“호들갑 떨지마, 괜찮아.”

“하, 하지만 피가, 피가아...”

당하린이 울먹이며 내게 안겨들었다.

차가운 독사의 가면은 언제 벗어내던진 건지, 콧물까지 훌쩍이며 나를 살핀다.

‘심하긴 하네.’

집중해서 몰랐는데, 턱을 타고 흐른 시꺼멓게 죽은 피가 상반신은 물론이고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다만 기분은 뭐랄까, 개운했다.

‘근데 옷은 시발, 왜 또 사라졌어.’

그러고보니 연화란도 옷이 벗겨져있던데.

아무래도 혈기가 난폭하게 날뛰면서 옷가지가 버티지 못한 듯 했다.

“괜찮으니까, 씻을 물이나 좀 떠와줘.”

“네, 네에... 훌쩍...”

당하린이 연신 코를 훌쩍이며 대야에 물을 받아왔다.

내기로 덥혔는지 적당히 따뜻한 물.

“씻겨드릴게요.”

“...그래.”

온몸에 가득찬 혈기 덕에 전혀 지치진 않았지만.

씻겨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진짜 괜찮으신거죠...?”

“응. 괜찮아.”

꼼꼼히 몸을 씻겨내는 하린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제야 살짝 웃음을 보이는 그녀.

덕지덕지 피가 묻은 사타구니까지 닦아내고 나서야 소서화가 돌아왔다.

“...크흠. 멀쩡해 보이는구나.”

“오셨습니까.”

헛기침과 함께 시선을 피하는 소서화.

아랫도리에서 덜렁거리는 자지를 차마 쳐다볼 수 없는지 자꾸만 먼 곳을 바라본다.

“맹주님, 저는 연화란 소저에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미리 일러둔 데로 자리를 피하는 당하린.

소서화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간호하거라.”

“네.”

당하린이 나가고, 맹주가 자리에 앉았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 옷은 안 입...”

“맹주님. 이제야 둘이 되었군요.”

“...두, 둘이 있으면 무, 뭐라도 일이 생길 것 같더냐?”

연화란을 의각에 두고 오는 동안 마음이 좀 안정됐는지.

미약의 효과가 또 그녀의 몸을 잠식해나가는 게 보였다.

필사적으로 부정하려는 모습이 이젠 안쓰러울 정도.

‘슬슬 풀어줘야지.’

솔직히 연화란 덕분에 오늘은 날이 아닌가 싶었는데.

지금은 넘치는 혈기에 빨리 박고싶어서 미칠 지경이다.

그녀가 건넨 장포를 걸치고, 가볍게 이야기를 꺼냈다.

“뭐... 우선은, 섬서에서의 일부터 처리하죠.”

“...늦어진 것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만큼 보상의 가치가 늘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뻔뻔한 대답에 얕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말해보거라. 갖고 싶은 게 있느냐.”

“맹의 보물 중에 용권갑(龍拳鉀)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있지.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다만...”

“소율이 말해줬습니다.”

“...망할 년.”

용권갑과 용린갑.

전설의 신수인 용(龍)의 비늘로 만들어졌다는 신병이기(神兵利器).

내공을 끝없이 흡수해 그만큼의 강도를 지닌다는 신물(神物).

원작에서도 음양신공으로 거대한 내공을 지닌 주인공이 잘 써먹었고.

아마 나도 유용하게 쓸 물건이다.

“그 용권갑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알았다. 다만 지금은 안되고, 따로 맹에 들르거라.”

“알겠습니다.”

오... 생각보다 허락이 빨랐다.

조금 말싸움을 해야하나 싶었는데.

“됐지? 이제 나가보거라.”

그리고 곧바로 떨어지는 축객령.

딱히 말하지 않아도, 이유쯤은 쉽사리 짐작이 갔다.

내 헐벗은 모습을 보고 속내를 알아챘겠지.

더 잴 것도 없이 말을 이었다.

“밤은 깁니다만.”

“닥치거라. 본인은, 너와...”

“그럼. 혈교가 봉룡지회를 학살의 장으로 만들어도 그렇게 음란한 애액 냄새나 흩뿌리면서 다니실 겁니까?”

“이, 뭣... 지금, 어디서 그딴 망발을...”

소서화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발정이 난 상태로 싸우는 건 변태년들이나 하는 짓이다.

우리 맹주님은 변태가 아니니 그럴 리가 없지.

“저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금 당장 혈교주가 쳐들어온다 하면, 그딴 몸상태로 막아내실 수 있으십니까?”

“...혈교주가, 왜 이곳에 오겠느냐.”

“아뇨.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혈교주는 그 육체와 피를 전부 다음 대에 넘긴다.

피를 다루는 만큼 육신에 담긴 모든 것이 내공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고로, 역대 혈교주들의 기운은 모두 비슷한 느낌을 띠겠지.

“...”

“연화란 소저에게 담겨있던 혈기. 혈교주의 것, 아닙니까?”

“그걸... 네가 어떻게...”

“제가 어떻게 알고 자시고, 그 미친년이 봉룡지회에 대놓고 들어왔습니다. 그를 억제해주실 맹주께서 그모양 그꼴인데, 안심이 되야 말이지요.”

내 신랄한 비판에도 소서화는 그저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맑은 정신과 최상의 육체로도 감당하기 힘든 게 혈교주일진데.

보지에선 애액이나 질질 흘리고, 머리는 반쯤 붕뜬 상태에서 상대를 한다?

‘죽여달라는 얘기지.’

혈교주의 강대함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소서화는 결국 내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게야!”

“제가 도와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까 귀빈실에서도 맹주님 보지에서 풍기는 냄새 때문에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이, 이 미친놈이!!!”

콰직.

그녀가 내려친 주먹에 탁자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공간 전체를 쥐어짜는 듯한 느낌의 기운.

“읏...!”

그리고 그녀의 시야가 그 아래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자지에 재빨리 옆으로 돌아갔다.

“후우, 후우... 빌어먹을 놈...”

“제가 맹주님 보지나 따먹겠다고 이러는 거겠습니까? 이게 다 중원무림을 위해서...”

“알겠으니 제발 좀 닥치거라!!”

더 부술 탁자가 없어서 그런가 주먹을 쥐고는 부들대는 소서화.

한참을 그러던 그녀가 몸에 탁 힘을 풀더니, 옹알이듯 작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 어떻게 하라는 게냐...”

“우선 침실로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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