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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171화 (171/230)

“남해룡!! 남해룡!!”

“꺄아악!! 오 공자!! 여길 봐주세요!!!”

앙천화의 손길을 받아주느라 비무장에 조금 늦게 올라왔다.

눈앞엔 준결승전 상대, 남해룡 오도결이 검을 든 채 서있었다.

“반갑소, 흑룡. 아니... 이젠 색룡이 맞지 않나 싶소.”

녀석의 시선이 내 하반신을 살짝 스쳤다.

못 볼 것을 본 것마냥 시선이 빠르게 위로 향했다.

내가 생각해도 이 속곳은 너무 작았다.

자지 실루엣이 다 보이는 건 물론이고, 조금만 움직여도 튀어나오려 했으니까.

“뭐라 부르든 상관없소.”

“...그럼에도 용이라 불릴 그 실력만큼은 인정하겠소만. 도저히 당신이 무당의 도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

“하지만 너보다 강하죠?”

오도결의 날 선 말투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할 말은 많았지만 전부 목구멍 안으로 삼켰다.

뒤편에서 느껴지는 앙천화의 선홍빛 눈동자를 떠올리며 자지를 매만졌다.

지금의 나는 무뢰한이고, 쓰레기고, 변태 새끼였다.

패배한 상대에게 거침없이 모욕을 안겨주는 개새끼였다.

“...봉룡지회에 참가한 무인이라는 자각은 있는 거요!!”

“남해의 지렁이가 뭐라 생각하든, 내 알 바 아니오.”

그러나 누가 뭐라하겠는가.

난 여전히 무당파 장문인의 직전제자이고, 심판이며 부심판.

관중을 지키는 여제자들까지도 전부 내 자지를 맛 본 여자들이었다.

“대사형, 요즘 조금 변하신 거 같지 않아?”

“응... 혜원각에도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시던데?”

“대사저의 아기씨도 곧 태어난다고 하던데...”

허나 지금은 평소와는 달랐다.

그녀들도 나를 보는 눈길이 곱지는 않았다.

작게 수군수군대는 여제자들의 말을 들으며 흘끗 봉룡각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난 몇 주간, 저기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들과는 한 마디도 섞지 못했다.

오로지 앙천화의 곁에서 머물며 개처럼 충성을 다했다.

그녀의 뒤틀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체면이고 명예고 다 갖다버렸다.

‘애초에 있었나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젠 무당파 제자들까지 날 보는 눈빛이 조금 그렇지...’

대놓고 사람들이 있는 비무장에서 비연과 몸을 섞기도 하고.

앙천화의 앞에서 발기한 채 하루종일 만져지고 맞고,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씨발...’

나와 비연을 짐승 다루듯, 남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별 짓을 다시켰다.

개가 밖에서 떡을 치고 오줌을 싸도, 사람들은 눈살만 찌푸릴 뿐이잖은가?

앙천화는 우리를 그렇게 대했다.

철저하게 정신을 무너트리고 망가트리려 수를 썼다.

아마 비연은 내가 없었으면, 정신이 죽어 살아있는 인형이나 다름없어졌을 거다.

‘나도 그렇게 될 뻔했고.’

다만 그녀가 알아채지 못한 것은, 내 정신이 그렇게 쉬운 녀석은 아니었다는 거지.

‘그래도 거신의 힘, 역천(逆天)을 쓰지못했으면 아마 나도 당했겠지.’

칠흑의 거신은 또다른 나이고, 하나의 세계 그 자체였다.

심장과 머리에 깃든 앙천화의 진혈(眞血)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압도하고 있었다.

그만큼 강력한 탓에 아직도 전신의 진기를 다 사용해야만 가능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녀의 감시가 소홀해지는 틈을 타 계속해서 역천을 시도했고.

그 순간순간을 이용해 앙천화의 진혈을 조금씩 나와 동화(同化)시켜갔다.

절대지경의 힘은, 같은 급의 힘으로 대항해야했다.

“태룡전 준결승, 오도결! 백무진! 비무를 시작하시오!!”

상념에서 빠져나오며 심판의 목소리를 들었다.

오도결은 이미 해남파의 절초를 준비해 내게로 쇄도하고 있었다.

“하아아압!!”

쿠르르릉!!

해룡검법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육중하고 거친 용트림이 비무장을 울렸다.

마치 파도가 용(龍)의 형상을 한 채 나를 부수려 달려오는 듯 했다.

“지렁이 새끼 주제에.”

나 또한 노골적인 비웃음을 흘리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색마를 부숴버려요!!”

“오 공자 힘내요!!!”

관중석에서는 나의 패배를 바라는 목소리만이 가득했다.

봉황전과 태룡전의 준결승에 이르기까지, 단 몇 주 만에 내 평판은 바닥을 기었다.

하지만 오늘도 오도결을 이기고, 또 내 평판을 발로 짓밟을 수 밖에 없었다.

“이노옴!!”

해룡검법(海龍劍法) 오의(奧義)

해룡난무(海龍亂舞)

오도결의 검에 깃든 해룡이 순식간에 분열해 내게로 쏟아져내렸다.

건방지게 바다를 흉내낸 만큼, 강대하고 폭력적인 힘의 향연.

용의 이빨이 금방이라도 나를 물어뜯으려 쇄도하고 있었다.

“흠.”

그 촌각을 다투는 순간에도 나는 고민했다.

저 해룡의 모가지를 뜯고, 오도결에게 반격하는 건 너무나 쉬웠다.

절대에 반쯤 걸친 나와, 초절정에서 맴도는 그와의 격차는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져 있었다.

그래도 준결승까지 와서 한 방에 끝내면 멋이 없으니까.

키이이잉...!!

팔 안쪽에서부터 거대한 륜(輪)들이 회전하며 폭발적인 힘을 자아냈다.

무진류(武進流)

나선파륜권(螺旋波輪拳) 오의(奧義)

광룡만천(狂龍滿天)

그대로 가볍게 쏟아낸 흑룡이, 오도결의 해룡과 허공에서 맞붙었다.

콰아아아앙!!!

“크하악!!”

거대한 두 기(氣)가 격돌하며 경천동지할 굉음을 자아냈다.

마치 정말로 파도가 터져오른 듯 비무장 위로 피어나는 물보라.

촉촉해진 피부를 느낄 새도 없이 매섭게 날아드는 칼날이 느껴졌다.

“흡!”

“제법이오, 오 소협. 근성은 있구려.”

오도결의 입술에 한줄기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팔 소매부터 어깨까지 옷이 전부 터져나가 너덜너덜한 것이 보였다.

“네놈 따위에게 질 수 없다!!”

나 같아도 패배한 상대한테 침 뱉고 티배깅하는 미친 새끼한테 지고 싶지는 않을 거다.

이를 꽉 깨문 듯한 오도결의 검이 연신 내 주위를 스쳤다.

고작해야 종이 한 장 차이로 내 살결을 스치는 시퍼런 칼날.

그것이 몇 번이고 반복되자 오도결이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이익...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단 말이다!!”

“뭘 말이오?”

어차피 오도결의 검이 백만번 내려쳐도, 내 피부를 감싼 공륜(空輪)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법칙’이 스며든 그 흐름을, 고작 내공 따위로 뚫어낼 수는 없으니까.

“왜 너같은 놈에게 주 소저가!!!”

“아, 사매를 말하는 것이오?”

그때 서현의 보지를 보고 어지간히도 반했나보다.

보지 보고 반하기 쉽지 않은데.

“어찌, 그때 본 사매의 비부를 떠올리며 수음이라도 하셨소?”

“닥쳐라!! 어떻게 그딴 망발을!!!”

얼굴도 시뻘게지고 반응이 격한 걸 보니 진짠가 보다.

십새끼가 감히 남의 여자로 딸을 쳐?

미간을 찌푸리며 오도결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큭...!?”

순식간에 바뀐 내 기운을 감지했는지 놈의 눈동자가 커졌다.

다급히 검을 휘둘러 연달아 초식을 펼쳐내는 오도결.

나는 손에 공륜을 두르고 먼지 털 듯 놈의 공격을 쳐냈다.

“왜! 왜 너같은 놈에게!!”

“간단한 이치라오. 오 소협이 약한 것뿐이지.”

어느새 비무장 끝까지 몰린 오도결이 다시금 절초를 준비했다.

아까와 같이 용음(龍音)이 울리고 숫제 뇌성(雷聲)을 동반한 듯 파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곧 오도결의 몸에 파짓거리며 미약한 번갯불이 튀는 것이 보였다.

“크으, 이대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오 소협의 한 수 구려.”

피부를 뒤덮은 뇌전(雷電)에 고통스러운 듯 간신히 말을 내뱉는 오도결.

그를 보니 몇 달 전 당하린의 보고서에서 보았던, 해룡검법의 진수(眞髓)가 떠올랐다.

“흐아아아아!!!”

본디 용(龍)이란 비와 구름, 천둥과 벼락을 다루는 하늘의 존재가 아니던가.

그 전설처럼 푸른 뇌전에 휩싸인 오도결이 번개와 같은 속도로 내게 달려왔다.

“죽어라!!”

해룡검법(海龍劍法) 최종오의(最終奧義)

뇌룡초래(雷龍招來)

한 마리의 뇌룡(雷龍)으로 화한 오도결이 천둥처럼 내리쳤다.

그에 대항해 나도 진각을 밟고, 장법을 내지를 준비를 했다.

“화려하게 끝내줘서 고맙소이다.”

끝까지 비아냥거리는 내 말투에 뇌전에 휘감긴 오도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젠 무시하겠다는 듯, 더더욱 크게 피어오르는 뇌룡.

금방이라도 내 목을 베어낼 것 같은 창대한 전격 속으로, 가볍게 손을 밀어넣었다.

무진류(武進流) 공륜(空輪)

역행합륜(逆行合輪)

“크으윽!!”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창대한 뇌룡이 강제로 비틀리는 것이 보였다.

내 손바닥이 닿은 머리는 정회전, 바깥의 꼬리는 역회전.

걸레를 쥐어짜듯, 안팎에서의 회전이 뇌룡으로 화한 오도결을 말그대로 쥐어짰다.

“잘 가시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비틀리던 회전이 마침내 오도결의 몸에서 만나 거대한 비틀림을 만들어냈다.

“끄아아아아!!!”

끔찍한 비명 소리와 함께 오도결의 사지가 뚜둑거리며 꺾일 수 없는 방향으로 부러져나갔다.

그러고도 비틀림은 멈추지 않고 오도결을 비무장 바깥으로 거칠게 날려보냈다.

쿠우웅!

먼지구름이 피어오르며 오도결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비무장 안은 아무런 함성 소리도, 응원 소리도 없었다.

“흠.”

난 반쯤 벗겨진 속곳을 끌어올리며 오도결에게로 다가갔다.

앙천화가 나를 나락으로 빠트리기 위해 내린 명령을 수행해야 했다.

이전의 비무에서 딱 한 번 해본 미친 짓이었지만.

‘상당히 효과적이었지.’

민심은 언제나 중요했다.

인망을 잃은 영웅은 악당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다른 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면 더 심해지겠지.

"그만 둬!!"

"이 깜둥이 새끼야!!"

"니가 그러고도 도사냐!!!"

관중의 야유가 귓가를 울렸다.

“커흑, 쿨럭...”

먼지구름이 가시자 참혹한 모습으로 쓰러진 오도결이 보였다.

목구멍에서부터 진한 가래를 끌어모으려는 그때, 검이 날아와 내 앞에 박혔다.

‘...송문고검.’

시선을 돌리자 소율이 딱딱한 얼굴로 서있는 것이 보였다.

“만행은 한 번 뿐이다.”

“태사부님. 저는 승자로써의 권리를...”

“지금 하려는 짓을 계속하면, 파문이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소율의 목소리가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비무에 진 상대에게 이런 모욕을 주겠는가.

솔직히 한 번으로도 공적으로 찍히고 그 사문에서 추살할 만한 중죄였다.

-되었다. 돌아오거라, 흑노. 저 노마녀의 얼굴을 보아하니 금방이라도 울겠구나, 아하하하!!

앙천화도 이쯤이면 충분하다 여겼는지 명령을 거뒀다.

나는 소율에게 포권을 하고 대기실 방향으로 돌아섰다.

-...잘 되가느냐? 무진아... 무진...

울먹이는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전해져왔지만, 묵묵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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