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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182화 (182/230)

“꿀꺽, 꿀꺽... 찢어죽일 놈들... 본좌가 반드시, 반드시 그 심장을 뽑아내주마...”

“끅... 우, 우호법님...”

“가만히 있거라.”

머리가 하얗게 탈색된 아이가 어딘가에 머리를 처박고 연신 무언가를 들이켰다.

늙은 노인네처럼 쭈글쭈글했던 피부가 점점 혈색을 되찾아가는 것이 보였다.

“끄륵...”

그렇게 움찔움찔대던 사내가 몸을 축 늘어트리며 마지막 숨을 내뱉고.

아이는 피에 젖은 머리를 들어 긴 한숨을 뱉어냈다.

“후우... 부족하구나, 부족해...”

독이 바짝 오른 정파 무인들의 추격에 이미 상당한 손해를 입었다.

적어도 몇백은 살아서 따라왔던 혈교의 무인들은 채 수십이 되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육신 또한 쉬이 회복할 수가 없었다.

“크으... 어째서, 내공이 회복되지 않는 것이야...”

급기야 혈기(血氣)를 지닌 수하를 직접 흡혈해보아도 자꾸만 내공이 새어나갔다.

마치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듯, 어깻죽지부터 텅 비어버린 왼팔에 구멍이 생겨버린 것 같았다.

“대체 무슨 법칙이더냐, 흑룡... 크윽...”

“우호법님, 꼬리쪽에 다시 정파놈들이 붙었습니다.”

“흐으, 미끼로 잘라내라!”

“...이제, 저희쪽도 채 오십이 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무인들을 잃는다면...”

“닥치거라!! 그깟 놈들, 몇이고 보충할 수 있다. 그보다, 신교쪽으로 보낸 놈들에겐 연락이 없더냐?”

“...예, 소식이 없습니다.”

양광이 이빨을 갈았다.

봉룡지회의 습격으로부터 벌써 한달포.

약한 자는 미끼로 내놓고, 부상자는 먹이로 쓰며 쉼없이 달려왔다.

혈교가 있는 서장까지는 이제 이주 정도의 거리.

그동안 또 얼마나 많은 놈들을 내던져야 도착할 지는 모르겠지만, 우호법인 자신만 돌아가더라도 얼마든지 다시 반격을 노려볼 수 있었다.

찌푸려져있던 양광의 입가에 한줄기 미소가 감돌았다.

‘교주... 어찌 그리 가셨소, 크흐흐.’

그래, 돌아만간다면.

절대에 다다른 자가 존재하지 않는 혈교는 자신의 수중에 떨어질 것이다.

비록 교주를 상징하는 혈신패(血神牌)는 없지만, 그 누가 자신을 막겠는가.

혈교의 남은 신물을 취하고, 교주위에만 오르면 된다.

“후... 발이 빠른 놈으로 둘 정도 더 보내거라. 어떻게든 소식을 알려서 지원을 요청해!!”

“...존명!”

바닥에 널부러진 시체를 쥐어짜 남은 혈기마저 취하고.

초췌해진 안색의 혈교 무인들이 다시 길을 떠났다.

그동안 정파의 추격대는 끈질기게 그들을 추살했다.

저번에 양광을 한 번 놓쳤던 사천의 독선까지 직접 참여해 열을 올렸다.

“크하악!!”

“우호법님!!”

무색무취의 독이 은밀히 누군가를 찔렀다.

단숨에 그 부위의 살덩이를 한움큼 베어낸 양광이 비틀거렸다.

그의 안색은 더없이 창백했고, 손끝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양광, 드디어 끝이 보이는구나.”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년!!”

그의 신형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흔들렸지만, 눈동자에선 한줄기 살광(殺光)이 감돌았다.

‘이미 서장의 경계다. 그리고 곧...’

양광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짐과 동시에, 독선의 아미가 잔뜩 찌푸려졌다.

“전부 공격하거라!!”

“지원이 도착했다!!! 조금만 버텨라!!”

저멀리 다수의 기척이 느껴졌다.

질척하고 끈적한 혈기가 뭉클 피어오르는 듯 했다.

“양광! 이번에는 절대 살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본좌가 반드시 네년의 숨통을 끊어줄 것이야!!”

양광은 주변에 잡히는 혈교의 무인들을 닥치는 데로 집어던졌다.

쇠약해지고 피를 흘려도 그는 절대의 무인.

평범한 혈교의 무사들은 그에게 목덜미를 잡혀 피를 빼앗기고, 시체마저 양광이 혈기를 조종해 살점 하나 남지 않게 터트렸다.

“본좌를 살려내라 이 쓸모없는 것들!!”

“이 악랄한 놈!!!”

그에 독선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양광이 자랑하는 혈폭(血爆)은 설령 초절정에 이른 무인이라도 단숨에 격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혈교인들을 던져내자, 결국 지원이 도착하고야 말았다.

“충! 우호법님, 강녕하셨습니까.”

“강녕해보이느냐!! 어서 저 망할년을 막아!!!”

“존명!!”

왠지 모르게 자신을 비웃는 듯한 표정과 말투에 양광은 화가 났지만.

우선은 살고 보는 게 우선이었다.

한줄기 붉은 빛이 어미의 품으로 돌아가듯 재빨리 서장의 경계로 사라졌다.

그리고 지원으로 도착한 무인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늙은이, 혈교는 끝이오.”

홱하고 돌아선 무인들이 칼을 뽑으며 앞을 겨누었다.

그 칼끝엔 녹색 궁장을 입은 현숙한 여인이 서있었다.

“자아, 우호법께선 가셨으니 우리끼리 한 번 놀아봅시다.”

“기어코 본 가주의 앞을 막을 거라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으마.”

“흠, 어찌 그러시오 당 가주? 왜 보자마자 죽이려들지 않는 것이오?”

그들을 바라보는 독선 당예인의 눈빛이 조금 가라앉았다.

자신의 성격이나, 애초에 저들의 목적을 생각했을 때 이렇게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몸에서 풍겨나오는 진득한 혈기의 잔향이며, 눈동자가 붉게 물든 것이 딱 혈교의 무사들이었다.

허나 무언가 이상했다.

그들 특유의 질척하고 끈적한 광기랄까,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착각인 겐가...?’

어쩌면 신교에서만 살아가던 자들이라 피가 가져다주는 광기에 매몰되지 않은 자들일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을 그냥 보내줄 수는 없었다.

“죽이지 않는다라. 그런 선택을 없네.”

그녀가 팔을 휘두르자 무형의 내공이 작게 응축되어 마치 암기처럼 변해 쏘아졌다.

지원 무사들도 그 모습을 보며 혈기를 끌어올렸다.

“한 번 놀아봅시다!!”

“흥! 놀아볼 실력이나 되겠느냐!”

몇 시간동안이나 주변에선 폭음과 비명이 울려퍼졌고.

싸우던 두 무리는 각자가 왔던 길로 돌아가는 듯 했다.

*

죽을 고생 끝에 혈마신교에 도착한 양광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잠시 후 기다렸다는 듯 한 신형이 다가와 그를 일으켜세웠다.

“양 호법님!! 어찌 그런 꼴이십니까!!”

“사마유, 본좌를 놀리는 겐가.”

“아닙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요. 일단 어서 신교전으로 드십시다. 너희는 호위를 서거라. 내 직접 우호법을 모실테니.”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얼굴의 양광이 관능적인 옷차림의 중년 여인에게 부축을 받았다.

그녀는 피를 뚝뚝 흘려대는 아이를 반쯤 업듯 부축해 커다란 건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둘을 향해 인사를 하는 자들이 수두룩했다.

“좌호법님, 안녕하세요.”

“오, 저번에 자네가 준 육포는 내 잘 먹고 있네. 또 보내주게.”

“아유, 별말씀을요.”

그렇게 좌호법이라 불린 중년 여인이 한명 한명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며 대로를 지나갔다.

양광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도, 체력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해 운기행공에 집중했다.

온갖 음식과 물건을 뒤쪽의 무사에게 넘긴 사마유가 손을 휘저었다.

“자자, 양 호법께서 많이 힘드시니 그만 길들을 터주게.”

“존명.”

대로의 사람들과 무인들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미묘하게도 그 각도가 한 사람만을 향했다.

마치 곧 죽을 듯한 양광에게는 그럴 가치가 없다는 듯 보였다.

발걸음은 멈추지 않아 어느새 혈마신교(血魔神敎)라 써진 커다란 전당 안으로 향했다.

“어서 문을 열게, 교주님은 안에 계시는가?”

“존명. 장로님들과 회의중이십니다.”

“알겠네.”

거대한 문이 몇몇 무인들의 손에 의해 육중한 소리와 함께 열려졌다.

그리고, 양광은 숨을 짧게 들이쉬며 입을 열었다.

“...사마 호법. 교주님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아, 양 호법. 모르셨습니까?”

양광이 다급히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려 출수했다.

허나 담긴 힘은 미약하기 그지없었고, 원래도 초절정에 가까웠던 그녀는 가볍게 그를 제압해 혈도를 찍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무슨 짓이긴요. 위를 다시 보십시다, 양 호법.”

사마유가 품에서 작은 부채를 꺼내 흔들었다.

목덜미를 잡힌 양광의 시야가 다시금 대문 위의 현판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는 혈마신교(血魔神敎)라 써져있던 붉은 글씨가, 아지랑이처럼 비틀렸다.

“천마...신교?”

“하하, 눈은 아직 멀쩡하십니다 그려.”

천마신교(天魔神敎)라 적혀진 현판이 위엄있는 필체로 적혀져있었다.

당황에 찬 양광의 시선이 주변을 미친 듯이 흝었다.

혈교의 상징인 핏빛은 온데간데 없이, 보랏빛을 띠는 먹빛의 깃발과 글씨들이 곳곳에 가득했다.

“네년!! 감히 혈교를 배신하는 것이냐!!”

“대세를 따르는 것 뿐입니다. 당신이 무능한 탓에 교주를 지키지 못했으니까요.”

“크... 그건, 그건 그년이 약했던 탓이겠지!!!”

양광이 악을 쓰며 몸을 비틀고 애를 썼다.

허나 약해질대로 약해진 그의 몸은 미동조차 없었다.

“아뇨, 저는 눈뜬 장님인 줄 아십니까. 이미 다 보고 받았습니다. 무당의 흑룡이란 자에게 무참하게 패배했다는 걸요.”

“크으...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이냐, 사마유.”

“자자, 조용히 입 닥치고 따라오세요, 양광.”

마치 개처럼 목을 붙잡힌 채 양광은 사마유의 손에 이끌려 전당의 안으로 향했다.

익숙하게만 보아왔던 것들이 사라지고, 누군가를 뜻하는 두 글자만이 안쪽에 가득했다.

“어찌, 어찌 혈교가 이리도 쉽게...”

“멍청한 교주가 유희를 즐기겠다고 빈몸으로 달랑 나가버렸으니... 아무런 힘이 없는 제가 어떡하겠습니까.”

“그렇다고, 네 가문과 네년이 평생을 바쳐온 혈교를 배신해!!”

피맺힌 고함이 전당 안을 웅웅대며 퍼져나갔다.

허나 사마유는 담담히 답했다.

“그러는 당신도 돌아오자마자 힘을 회복하고 교주위에 오르려 하지 않았나요?”

“흐... 개소리...”

"다 알고 있답니다, 양광."

양광의 생각을 전부 읽어낸 듯 그녀가 뇌쇄적인 미소를 지었다.

애초부터 혈교주 앙천화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교주위를 노렸을 늙은이였다.

양광의 집에서 발견된 상당한 수의 사병과 금은, 무기들.

호법으로서 축적한 재력이라기엔 조금 의심이 들 정도니까.

양광이 짓씹듯 말을 뱉어냈다.

“그러는 네년도, 교주위를 노리지 않았느냐.”

“음... 그럴까도 했었는데, 늦었지 뭐에요. 그래서 넘겨드리기로 했답니다.”

“...넘겨?”

“전(前) 교주께서 살아돌아오신다면 모르겠으나... 지난 한달포간, 그 누구도 저분을 막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죠.”

“...저분이라.”

“혈교의 지선(知仙)이라 불리는 제가 선택한 새 교주십니다.”

어느새 전당의 끝에 다다른 그녀가 양광을 내던지고 무릎을 꿇었다.

양광의 시선이 항상 앙천화가 앉아있던 옥좌로 향했다.

그곳엔, 경국지색의 미인이 생기 넘치는 눈으로 앉아있었다.

"천마(天魔)를 뵈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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